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40)
340화 가장 중요한 미팅
[송 대표님! 드디어 뚫었습니다!]“뭘 뚫었다는 겁니까? 설마···. 상대 조직의 본진을?”
종종 이렇게 야쿠자식 농담을 던지곤 했다.
당황하는 다케시의 반응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아니라! 시즈오카 시청에서 라이프 세이버에 관심이 있다고 제안서와 견적서를 요청했었는데 오늘 계약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호오,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더니 드디어 한 건 해내셨군요.”
실제로 다케시는 미야기현에 라이프 세이버 설치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도,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활발한 영업활동을 펼쳐왔다.
확실히 이제는 적지 않은 수주 실적이 있다 보니, 쓰나미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많은 지자체에서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수주로 이어지기는 쉽지가 않았는데, 아무래도 검증이 되진 않다 보니 아직은 신중하게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다케시는 굴하지 않고 정말 집요할 정도로 문을 두드렸고, 이제야 하나둘씩 그 결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발주는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일단은 50개입니다. 추후에 설치된 모습을 보고 추가 발주를 넣을지 결정한다고 합니다.]“잘 될 겁니다. 미야기현에 설치된 모습을 보니깐 제법 멋이 나던데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설치된 라이프 세이버는 의외로 도시 미관을 살리는 감초 역할을 했다.
특히나 막내 쇼타의 아이디어로 붙여 놓은 야광 스티커가 빛을 발했다.
각 현을 상징하는 로고가 밤마다 형광으로 반짝이는 모습은 밋밋한 시골 저녁에 이색적인 멋을 연출했다.
“이제 미야기현 쪽은 설치가 거의 끝나가죠?”
[예. 마을 두 군데만 설치하면 끝 입니다.]“고생하셨습니다. 중요한 건 이걸 발판 삼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물론입니다 대표님. 지금껏 도움 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은혜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숨 걸고 어떻게든 성과를 보이겠습니다.]“거참. 목숨은 와이프한테나 걸라니까 그러네. 그렇다고 너무 무모하게 서두르는 건 안됩니다. 제가 말했죠? 속도보다 중요한 건 뭐다?”
[방향!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속도는 금방 따라잡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래요. 방향에만 신경 써요.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예. 뼛속까지 새기고 있습니다. 그럼 조만간 또 연락드리겠습니다.]그렇게 다케시와의 통화가 끝이 나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잠시 허공을 쳐다봤다.
“이제는 무서워서 농담도 못 하겠네.”
나에 대한 충성심? 혹은 존경심이 한계치를 뚫은 다케시는 장난으로라도 할복하라고 하면 정말 할 것 같은 지경에 다다랐다.
“이제 당분간 다케시한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서포팅은 할 만큼 했다.
나머지는 다케시와 팀원들이 알아서 헤쳐나가야 할 영역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때가 됐는데···.”
개인 여유자금 2,000억 원을 들여 TOPIX와 니케이225 지수 풋옵션을 대량 매수했다.
보통은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과감한···. 아니 정신 나간 투자였지만 금강불괴와 같이 단단한 내 멘탈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그만큼 내 능력과 그간 쌓아왔던 경험을 믿는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장 구석에 박혀있던 일장기를 꺼내 들었다.
슌사쿠 회장이 조롱의 의미로 내게 건넨 일장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별다른 특징 없는 일장기겠지만 내 눈에는 보였다.
곧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흘러나오는 농도 짙은 암광(暗光)이.
2,000억 원.
대부분 사람은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을 경영하고, 국정을 운영하는 이들에겐 어찌 보면 별 감흥이 없는 액수일 수도 있었다.
2,000억으로 쏘아 올린 공이 향후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내 생각대로 얼추 흘러간다면 이 돈이 수요미씨의 폐부를 꿰뚫을 치명적인 비수가 될 수도 있었다.
“일단은···. 존버가 답이다.”
그렇게 홀로 대표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중, 불현듯 시계를 쳐다봤다.
“헉! 벌써 시간이?”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 다급히 외투를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삐죽 튀어나온 머리를 정리하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점검한 나는 마른 침을 꿀떡 삼켰다.
“어후···. 왜 이렇게 긴장되냐. 엑싯 미팅하는 것보다 더 떨리네.”
오늘은 내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미팅 자리가 있는 날이었다.
긴장이 안되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참 동안 거울 앞을 서성이다가 황급히 대표실 밖을 나섰다.
***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고급 한식당 ‘석파랑’
“후우···.”
입구 앞에서 연신 넥타이를 매만지는 나를 보며 지원이가 픽 웃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 긴장해요? 아빠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면서.”
“사장님으로 뵀을 때랑 아버님으로 볼 때랑 같니?”
과거 북산벤처스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
대표이사와 인턴 관계로 처음 만났다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니 뭔가 감개가 무량했다.
항시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내가 봤던 어른 중에 가장 나이스한 분이셨지만 예비 장인어른으로 만나 뵙게 되니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리고 아버님도 아버님이었지만 그 무엇보다 긴장되는 이유는 지원이의 어머님 때문이었다.
한번도 뵌 적은 없지만, 이종훈 사장님이 꽉 잡혀 사실 정도로 현명하고 강단 있는 분이라는 건 일찍이 잘 알고 있었다.
‘후우···. 괜찮겠지···?’
결혼을 전제로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결혼이 깨졌다는 인터넷 썰들을 몇 개 접하고 나니 더욱 긴장이 됐다.
무엇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가장 걸리는 게 있다면···.
‘고아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련지···.’
흔히들 연애와 결혼은 아예 차원이 다른 문제로 본다.
연애는 자기들끼리 좋으면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문제이기에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고아 출신들은 결혼 시장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내가 딸이 있다고 해도, 웬 시커먼 늑대 같은 놈이 고아 출신이라고 하면서 딸을 달라고 하면 마냥 유쾌할 것 같진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지원이가 달달 떠는 내 손을 살포시 잡아줬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선택한 남자에요. 다들 좋아하실 거에요.”
지원이 특유의 서늘하면서 담담한 목소리에 떨리던 가슴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다들 기다리시겠다. 얼른 들어가자.”
마음을 다잡은 나는 지원이의 손을 붙잡고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직원의 안내를 받아 룸 앞에 도착한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번 하고선 힘껏 미닫이문을 밀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내게 쏠렸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송 대표···. 아니지. 이제는 예비 사위라고 불러야 하나?”
“잘 지내셨습니까! 아…버님?”
세상에 이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입에 달라붙은 대표님이라는 단어를 단번에 떼어낸다는 게 역시 쉽지가 않았다.
거의 2년 만에 보는 이종훈 대표님은 정말 변한 게 하나 없으셨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눈가에 자연스럽게 자리잡힌 주름은 중년미의 표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자리에 앉은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곁눈질로 주변을 스윽 훑었다.
맞은 편에는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지원이의 여동생까지 총 세 명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여동생은 누가 봐도 지원이와 비슷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는데 분위기는 전혀달랐다.
지원이가 밤하늘의 달빛과 같은 느낌이라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봄날의 햇살 같은 느낌이랄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냉큼 허리를 접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원이 남자친구. 송대운이라고 합니다.”
“굳이 일어날 필요까지는 없어요.”
“앗? 옙.”
조곤조곤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자리에 앉았다.
처음 마주하게 된 어머님의 모습은 정말 단아한 부잣집 사모님 그 자체였다.
그 나이로 안 보이는 동안 미모는 물론이었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고한 아우라가 정말 남달랐다.
옆에 앉은 지원이가 내 손을 한번 잡아주고선 차례대로 인사를 시켜줬다.
“아빠는 당연히 잘 알 테고, 옆에 계신 분이 우리 어머니. 차정옥 여사님.”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처음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래전부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버님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하도 얘기를 많이 들었더니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처럼 느껴지네요.”
문득 지원이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왠지 모르게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서늘한 포스가 어머니에게서도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엄마 옆에 있는 애는 철없는 내 동생.”
“언니도 참. 애가 뭐야 애가. 나도 이제 성인인데. 안녕하세요 형부! 이지수라고 해요.”
“혀, 형부···.”
올라가는 입꼬리를 안면 근육으로 겨우 내리눌렀다.
지원이와 다르게 유쾌한 성격의 왈가닥 소녀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동생분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자리에 나와주셨네요?”
나이 터울이 제법 있는 동생이 현재 독일 음대에서 유학 중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우리 언니가 드디어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죠! 세상에 언니가 남자친구라니.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요. 우리 언니는 평생 솔로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줄 알았는데. 언니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날 줄이야. 제 생에 이런 날이 다 오네요.”
“평소에 지원이가 제 얘기를 많이 하던가요?”
“말도 마세요. 평소에는 연락 한번 없는 무심한 언닌데, 남자친구 생기고 나서는 얼마나 자주 연락 왔는지 아세요? 남자들이 무슨 선물을 좋아하냐, 애교는 어떻게 부리는 거냐 이런 것들 얼마나 많이 물어봤었는데요.”
“에···? 정말요?”
새삼스러운 얼굴로 옆을 돌아봤고, 얼굴이 잘 익은 복숭아가 된 지원이가 동생 이지수를 매섭게 흘겨보고 있었다.
물론 콩깍지가 단단히 씐 내 눈에는 그 모습마저 예뻐 보였지만.
한껏 긴장한 게 무색하게 분위기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흘러갔다.
고맙게도 아버님과 동생 지수가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럼에도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역시 어머님이었다.
첫인사 이후에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나를 못마땅해하시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열탕과 냉탕 사이를 오가는 식사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갈 때쯤.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은 어머님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예. 뭐든 괜찮습니다.”
“가족 관계가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충분히 각오하고 나왔건만 막상 질문을 받으니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제가···. 비록 부모님 없이 자란 보육원 출신이긴 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순간 어머님의 서늘한 시선이 나에게 닿는 느낌이 전해졌고.
“실망이네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심장의 고동이 딱 멎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