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재앙(2)
난카이 대지진은 수도권 바로 아래인 시즈오카현에서 서남부 규슈에 이르는 태평양 연안의 난카이 해구에서 발생하는 대형 지진을 지칭하며 일본 지질학계의 영원한 숙제이자, 언젠간 무조건 일어난다는 지진이기도 했다.
지진의 규모는 때마다 달랐지만 보통 8.0 전후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최초로 기록된 684년 하쿠오 지진을 시작으로 하여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된 1946년 쇼와 난카이 지진까지.
난카이 해구 대지진은 100년에서 150년 간격으로 꾸준히 발생해왔다.
인간에겐 축복이자 저주이기도 한 망각이란 기능은 난카이 대지진이 자신들 세대에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었고, 설마하니 그 재앙이 지금 일어날 거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 일본.
일본 열도를 덮친 난카이 대지진의 여파는 결코 한국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모든 언론 매체에서는 느닷없이 발생한 난카이 대지진에 관련한 속보가 종일 방영되고 있었다.
휴일에 다급히 회사로 모인 우리 역시 회의실 의자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TV를 응시했다.
앵커로 보이는 여자가 얼굴이 덥수룩한 수염으로 뒤덮인 중년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번 난카이 지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 한국 지진공학회 회장이자 한영대 한상일 교수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네, 한상일입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시청자분들을 위해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일본은 지진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도 지진과 관련된 내용이 다수 등장하죠. 416년에 처음으로 지진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아쉽게도 당시 규모나 피해 정도를 추측할 수 있는 서술은 없습니다. 지진 강도와 피해에 대한 구체적 서술이 등장하는 건 645년부터 710년 사이인 하쿠호 시대에 들어서부터입니다. 특히 684년에 발생한 지진은 일본 서기에 기록된 최초의 난카이 트로프 지진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큼큼···.”
안경을 고쳐 쓴 한상일이 헛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 온 나라 사람들이 소리치며 도망쳤다. 산이 무너지고, 강은 범람하였으며, 파괴된 건물을 헤아릴 수가 없었고 많은 사람과 가축이 죽거나 다쳤다. 온천이 사라졌고, 논밭 50만 결이 가라앉아 바다로 변했다. 바다에서는 높은 파도가 몰아쳐 많은 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구절만 봐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고 참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많은 지진이 발생해왔습니다.”
“유독 일본에서만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지구 표면은 여러 플레이트 판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판들은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느껴지진 않지만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 판들이 부딪히는 경계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화산폭발이 일어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중에서 일본은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북미판, 필리핀해판 등 총 4개의 판으로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동일본 대지진이 바로 북미판과 태평양판의 경계 일본 해구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한상일 교수가 화면에 띄어진 자료를 짚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발생한 대지진은 난카이 트로프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난카이 트로프는 일본 시코쿠 남쪽 해저에 위치한 수심 4000m급의 깊은 협곡을 가리킵니다. 필리핀해 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어 가는 경계에 자리한 이 협곡은 거대 단층을 품고 있는데, 이 단층의 움직임이 지진을 유발하게 됩니다. 판의 경계에서 조금씩 변형 중인 단층은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하면 단번에 어긋나면서 거대한 지진을 촉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잘 아는 오사카와 나고야 등의 대도시가 이번 지진에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겁니다.”
화면이 전환되며 시커먼 바닷물에 잠긴 오사카의 모습이 송출됐다.
“높이 30m의 쓰나미가 인근 도시를 모조리 휩쓸었습니다. 특히 오사카나 나고야 같은 대도시는 지대가 낮고 매립지가 많습니다. 오사카의 유명 관광지인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사실 바다를 매운 매립지에 건설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때문에 오사카 같은 경우는 도시 중심부까지 쓰나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정말 참혹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부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진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교수님. 이번 난카이 지진은 조금 다른 점이 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 난카이 트로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토카이, 도난카이, 난카이로 구분되는데 이를 통틀어서 난카이 트로프라고 통칭하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 트로프 중 하나만 움직이거나 혹은 둘이 움직여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고, 세 트로프가 동시에 연동하여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은 이번 난카이 대진은 3연동으로 발생한 지진이라는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605년에 3연동으로 지진이 발생했었고, 1707년에도 3연동으로 지진이 발생했죠. 이때는 그 여파로 후지산까지 폭발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난카이 3연동 지진은 1854년 이후로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165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이번에 발생한 것입니다.”
“정말 대자연의 무서움 앞에 한낱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는데요. 일본 역시 이번 지진에 철저히 대비 해왔다고 들었는데 피해 규모가 심상치가 않다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직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를 못 하고 있지만, 진도 9.1의 강력한 지진과 여기에서 파생된 쓰나미가 시코쿠 남부 지역에 무려 5분 만에 도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치, 도쿠시마, 와카야마, 미에, 아와지등 쓰나미를 직격으로 맞은 지역은 지진으로 해저 케이블이 끊어져 통신 인프라마저 마비되었습니다. 지금 영상에 나오는 곳이 일본 도쿠시마의 해안 마을이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세상에···.”
영상을 본 앵커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닷물에 잠긴 마을은 거대한 호수를 연상케 했고 수면 위에는 온갖 부유물들이 묘지처럼 둥둥 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 대부분이 실종 상태라고 합니다.”
“일본에는 지진 경보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정도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거죠?”
“지진이 새벽에 발생한 터라 경보 역시 새벽에 울려 다들 인지를 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말···. 안타깝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참혹한 광경에 앵커가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더 무서운 것은 후지산의 분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1707년 호에이 지진이 발생하고 49일 뒤에 후지산이 폭발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도 후지산이 조용할 거란 보장이 없는 거죠. 더구나 호에이 분화 이후 300년 넘게 분화하지 않고 있으니, 5,000년 동안 가장 긴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일본인들의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셈이지요.”
“제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길 기도할 뿐입니다. 이번 난카이 대지진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교수님?”
“지리적 혹은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만큼 피해는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난카이 해구 주변에 원전 숫자가 적지 않는데 다들 가동이 멈춰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또다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추가로 더 들어오는 소식이 있으면 발 빠르게······.”
말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뉴스를 보던 우리 네 사람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거···. 꿈 아니죠? 꿀잠 자고 일어났더니 이게 무슨 일인지···.”
“저도 아침에 뉴스 보고 꿈인 줄 알았습니다. 자연재해라는 게 정말 무섭네요. 일본이라면 내진과 지진 예방에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저런 피해라니···.”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더라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방증이겠죠. 하아···.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지진 영상을 보면 정말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아요. 집채만 한 파도가 순식간에 마을 하나를 쓸어버리는데 어찌나 무섭던지···. 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 상상도 안 될 정도예요.”
몸서리를 치는 스테파니를 보며 매튜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공식 발표된 건 아니지만 이번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추정치가 13만여 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오사카나 시코쿠의 주요 도시가 완전히 쓰나미가 휩쓸려나갔으니까요. 경제적 피해도 정말 엄청날 겁니다.”
김선기 역시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피해액 규모가 16조 9천억 엔 정도이니 그것보다는 피해 규모가 더 클 겁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역시 영향이 없진 않다는 거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뜬금없이 벌어졌던 일본의 경제 제재 때문에 조금은 덜 아플 거라는 거? 원래 주사 맞기 전에 엉덩이를 두들기면 덜 아프지 않습니까.”
“정말 인생이라는 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더니. 이제야 장기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나 싶었던 일본이 이런 식으로 제동이 걸릴 줄은···. 아니지, 이건 제동이 걸린 수준이 아니라 경제가 또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겠는데요?”
“가능성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확신이 담긴 매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당장의 물질적 피해도 피해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뿌리 깊게 박혀버린 공포입니다.”
“공포···.”
“추가 여진 가능성도 있을 것이고, 아까 전문가가 말했듯이 후지산 분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로기 상태인데 여기서 추가 유효타까지 얻어맞게 되면 사실상 확인사살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증시는 사람들의 심리가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의 해가 뜨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아···.”
뭔가 이해한 듯 스테파니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일본 경제에 어마어마한 타격이 있을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고, 전 세계 경제 중심지인 월가에서도 대폭락 장이 열리기 시작할 겁니다. 일본의 주요 도시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고, 주요 공항은 사실상 폐쇄 상태입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 재무성에서 모든 주식과 은행 예출금을 동결시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일본 증시는 대폭락을 맞게 될 것이고, 그게 지속되다간 일본은 정말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거 참···.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라고 치부하기엔 지금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환장할 노릇이네요. 설마하니 일본이 이런 식으로 망할 거라고 누가 예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마주 보며 주거니 받거니 하던 김선기와 스테파니의 표정이 조금씩 어색해져 갔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 일본이 망한다고 했던 사람이···.”
“있었죠. 일본은 망할 거라면서 풋옵션을 매수하겠다고 하셨던 우리 대표님이.”
두 사람의 고개가 삐그덕 돌아가며 동시에 나를 향했다.
“설마···. 정말로 그때 풋옵션을 샀어요?”
“예.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지요.”
경악한 스테파니가 내 옷소매를 붙잡았다.
“오 마이 갓! 리얼뤼? 그걸 정말 샀다고요? 세상에···. 아, 아직 만기 안 지났죠?”
“예, 다행히도.”
“와···. 이게 이렇게 될 수도 있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여윳돈이 아니라 좀 더 팍팍 투자하라고 얘기할 걸 그랬어요.”
농담조로 얘기하는 스테파니를 보며 나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저도 이럴 줄 알았으면 한 1조 정도 넣을 것을, 괜히 2,000억 치만 샀네요.”
“호호호, 얼마요?”
“2,000억이요.”
“니케이 지수 풋옵션을 2,000억원치 샀었다고요?”
“예.”
“…………….”
튀어나올 것처럼 눈이 커진 스테파니가 쓰러지듯 소파 등받이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