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
35화 여긴 내 친구야
같은 배를 탔던 동료 선원이자, 내 인생 첫 황금빛의 주인공인 주석이 형이 입을 한껏 벌린 채 나를 쳐다봤다.
늘 포커페이스를 고수했던 내 얼굴에도 쩌저적 금이 갔다.
이런 곳에서 주석이 형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걸음에 달려온 주석이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야 인마! 내가 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냐? 무슨 간첩도 아니고. 도통 찾을래야 찾을 수가 있어야지.”
배에서 내린 후 공부만 하며 쥐죽은 듯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것보다 내가 묻고 싶었던 건.
“형은···. 좀 많이 바뀌었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주석이 형은 어딘지 항상 초조해 보였고, 날 선 눈빛 때문에 동료 선원들도 쉬이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 동네 만둣집 아저씨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푸근한 인상으로 바뀌어있었다.
치와와를 닮은 독특한 생김새가 아니었으면 나 역시 못 알아볼 뻔했다.
“하하하.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당연히 변했지. 그동안 많은 일도 있었고.”
부둥켜안고 있는 우리 둘을 보며 사람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홍슬기마저 저 멀리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작금의 이주석이 누구던가.
속칭 개통령으로 불리며 방송은 물론 250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너튜버이기도 했다.
그런 이주석이 등장과 동시에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웬 사내를 끌어안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아까 홍슬기랑 같이 작업했던 사람 아냐?”
“맞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이제는 순수하게 궁금할 지경이네.”
“저 사람도 연예인인가?”
“아니야. 아까 분명 한영대생이라고 했어.”
그때 박진우 PD가 슬그머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두 분···. 아는 사이신가요?”
“아예. 제게 아주 특별한 동생입니다. 몇 년간 찾아 헤매다가 결국 못 찾아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이거 참. 오늘 재밌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네요. 정말.”
흡사 먹잇감 바라보는 포식자처럼 박진우 PD가 탐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송대운씨라고 하셨나요? 혹시 조금 있다 인터뷰 요청 좀 드려도 될까요?”
“절요?”
“오늘 홍슬기님 데리고 열심히 일하기도 하셨고, 이주석 훈련사님과도 인연이 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간곡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어조에 쉽사리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 인터뷰 잠깐 하는 건데 뭐 어때. 오랜만에 주석이 형도 봤는데.’
잠깐 고민하던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 훈련사님 바로 촬영 시작할까요?”
“그러시죠. 대운아 어디 도망가지 말고 여기 딱 붙어있어라.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도망가면 그땐 진짜 사람 푼다?”
“안 가요. 안가. 구경하고 있을 테니 잘하고 와요.”
촬영을 위해 주석이 형과 박진우 PD가 떠나가자 주희와, 유진, 가행이가 후다닥 나에게 달려왔다.
“뭐야? 이거 실화야? 형. 내가 아는 대운이형 맞지?”
“뭔 시답잖은 소리야.”
“내가 아는 대운이형은 분명 고된 원양어선 생활 후에 고독한 아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인데···.”
“그 원양어선에서 만난 형이야.”
내 말에 세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엥? 이주석 훈련사도 원양어선을 탔었다고? 심지어 형이랑 같은 배를? 이 훈련사님 정도 되시는 분이 왜?”
남의 개인사를 마음대로 떠벌릴 순 없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튼, 같은 배에 있었어. 나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네.”
“근데 저 PD 아저씨는 오빠한테 뭐라고 한 거야?”
“몰라. 인터뷰 좀 해달라던데.”
“헐. 그럼 애니멀광장에 나오는 거야? 그거 시청률 엄청 높은데.”
“짧게 할 거야. 짧게. 어쩌면 통편집돼서 안 나올 수도 있고.”
짧은 수다 이후. 우린 멍하니 앉아 촬영을 지켜봤다.
주석이 형의 역할은 간단했다.
공격성을 보이거나 이상 증상을 보이는 강아지들의 행동을 교정해주는 일종의 재능 봉사였다.
“여전하···. 아니. 더 발전했네.”
전생에 ‘개’였을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돈다더니 개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개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정말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절로 느껴졌다.
한가지 일화로 늙은 선원 하나가 개는 뒤지게 패야 말을 듣는다며 몽둥이를 들고 바이슨에게 위협을 가한 적이 있었다.
격노한 주석이 형은 그 선원을 거세게 밀쳤고, 주먹다짐 직전까지 갈뻔한적이 있었다.
배에서 바이슨을 훈련했을 때도 봐왔지만 주석이 형은 결코 강아지를 체벌하지 않았다.
대신 간식과 칭찬으로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는 방식의 훈련법을 고수했다.
“개나 사람이나 별 다를 게 없어. 대운이 너는 누가 너 때리거나 잔소리하면 기분 좋냐? 더 삐뚤어지면 삐뚤어졌지? 이렇게 살살 달래가면서 훈련해야 애들도 알아먹는다고.”
석양빛에 붉게 물든 얼굴로 바이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던 주석이 형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했다.
얼추 촬영이 끝났는지 박진우 PD가 나에게 다가왔다.
“대운 씨? 이제 인터뷰 시작할까요?”
“그러시죠.”
PD 양반을 따라가니 야외 풀밭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 세 개에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자리 배치가 좀 이상했다.
왼쪽에는 홍슬기, 오른쪽에는 주석이 형이었다.
설마 가운데 비어 있는 자리가 내 자리인가?
아니나 다를까 박진우 PD가 손가락으로 가운데 자리를 가리켰다.
“남는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근데 저 같은 일반인이 중간에 앉아도 되나요?”
“하하하. 그런 게 의미가 있나요. 그냥 편하게 앉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두 유명인 사이에 앉게 되었고, 곧이어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훈련사 이주석입니다.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매년 8만 마리의 반려동물들이 길거리에 버려지고······.”
전문가답게 주석이 형은 유기되는 동물의 심각성과 대응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말을 전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곳 보호소에서 잃어버렸던 동생도 찾으셨다고요?”
PD의 질문에 주석이 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참···. 저도 이런 곳에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런 거 보면 이 녀석과 인연은 인연인가 봐요.”
“어떤 인연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락으로 갈뻔한 제 인생을 구원해준 은인입니다. 단언컨대 이 친구 아니었으면 훈련사는 생각도 안 했을 거니까요.”
녹진한 진심이 묻어나오는 답변에서 박진우 PD는 대박의 향기를 맡았다.
“방송에서 처음 밝히는 거지만 첫째 딸이 어릴 적 소아 백혈병을 앓았습니다. 당시 저는 배달일로 근근이 먹고사는 처지였죠. 어떻게든 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앞뒤 안 가리고 돈이란 돈을 모두 끌어써서 딸 치료비에 썼습니다. 다행히 병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있는 빚을 감당해야 했죠. 그래서 원양어선에 올랐습니다.”
“네? 이주석 훈련사님이 원양어선을 탔었다고요?”
어느 매체에서도 밝히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박진우 PD가 흥분을 감추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네 탔습니다. 여기 있는 이 동생과는 그때 만난 사이입니다. 뱃생활에 적응 못하는 저를 많이 챙겨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주석형이 그윽한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봤고, 민망함에 나는 턱을 긁적였다.
“솔직히 배에서 내린 뒤 뭘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딱히 가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때 대운이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문 훈련사보다 제가 훨씬 강아지 훈련을 잘 시킨다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뱃일할 때랑 강아지 훈련할 때랑 제 얼굴이 백팔십도 다르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줬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저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된 거죠.”
“그런 인연이···.”
영화같은 사연에 제작진은 물론 옆에 있던 홍슬기까지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후 홍슬기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홍슬기씨 오늘 너무 고생 많이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옆에 계신 능력 있는 사수 덕분에 간만에 제대로 봉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먼지를 이렇게 많이 맞아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순간 홍슬기 팬들에게 테러 당하는 건 아닐지 살짝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홍슬기 인터뷰도 무난하게 끝이 났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박진우 PD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물었다.
“오늘 유기동물 봉사는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감이라···.’
수많은 감정들이 어지럽게 교차했다.
잠깐 침묵하다가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입술을 열며 어렵사리 첫 마디를 내뱉었다.
“사실 저는 봉사 자체가 처음입니다. 보육원에서 자라왔기에 늘 봉사를 받는 피봉사자의 입장이었거든요.”
갑작스러운 내 고백에 현장 분위기가 다소 묵직해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는 보육원 출신 고아라는 걸 구태여 숨기고 싶지 않았으니깐.
내 의사와 상관없이 돼버린 일인데 내가 왜 부끄러워야 하는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나를 버린 부모라는 존재여야 했다.
“이곳에 있는 ‘강아지’나 보육원에서 자라온 ‘저’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보호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요. 유기동물이든 저 같은 고아든,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정을 찾기 위해선 막연히 입양을 기다려야 합니다. 둘 다 아직은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거든요.”
흠칫한 주석이형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배 안에서도 한번 한 적 없던 내 이야기였다.
그때는 고아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으니깐.
“오늘 이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유기동물 보호소라고 하면 막연히 시설 좋고 깔끔한 그런 곳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또 그런곳은 며칠 내에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부분에서는 보육원이 그나마 낫네요. 우린 그냥 사회로 내던져질 뿐이니까요.”
내 얘기가 흥미로웠을까?
홍슬기의 시선이 무척이나 따가웠다.
“확실한 건 피봉사자 보다는 봉사자 입장이 훨씬 좋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봉사라는 게 다른 존재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요.”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명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버린 사람은 두 발 뻗고 자겠지만, 버림받은 존재는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을 안고 가는 법입니다. 생명의 무게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세요.”
어쩌면 날 버린 부모에게 던진 메시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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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되자 촬영 스텝들이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다가온 박진우 PD가 고개를 숙여 나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근래에 인터뷰 중 가장 울림 있는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새삼 민망함이 몰려왔다.
버림받은 눈으로 낑낑거리는 유기견들의 모습에 나 자신을 너무 투영한듯싶었다.
곧이어 주석이 형이 내 휴대폰을 빼앗아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미안하다 대운아. 내가 스케줄이 있어서 끝나고 연락할게. 꼭 전화 받아.”
“알겠어요 형. 조만간 찐하게 술 한잔해요.”
그렇게 주석이 형까지 떠나가고 난 뒤, 곁눈질로 옆을 힐끔 살폈다.
홍슬기 저 여자는 왜 아직도 안 가고 저기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안 바쁘세요?”
“안 바빠요.”
“아 네.”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때 들려 온 익숙한 울음소리.
냐아아앙
“너 또 왔냐?”
아까 봤던 검은 고양이였다.
애달픈 울음을 내면서도 녀석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오롯이 나에게만 고정되어있었다.
나는 녀석이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놀랍게도 이 요상한 검정고양이는 먼저 나를 아는 체하며 동글동글한 머리를 들이 내밀었다.
“얼씨구? 네가 개냐?”
이런 게 소위 말하는 개냥이라 불리는 고양이일까?
검은 고양이가 배까지 까뒤집고 치명적인 애교를 피워댔다.
그러다 낯선 인기척을 느낀 고양이가 후다닥 거리를 벌렸다.
고개를 돌리자 홍슬기가 침울한 기색으로 고양이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했어요?”
“뭘요?”
“쟤랑 어떻게 친해졌냐구요! 어떻게 하면 그쪽처럼 만질 수 있는 거예요?”
순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턱 막혔다.
자기가 알아서 온건데 방법이랄게 뭐가 있겠는가.
“나도 친해지고 싶은데···.”
그래도 오늘 하루, 같이 고생했는데 침울한 기색으로 축 쳐져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진 않았다.
저 멀리서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이곳을 쳐다보는 고양이를 보며 외쳤다.
깊이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야! 여긴 내 친구야. 겁먹을 필요 없으니까 그냥 이리 와! 자식이 겁은 많아 가지고.”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경계심 가득한 눈동자가 누그러지더니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홍슬기의 연분홍빛 입술도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