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마침표를 찍은 줄 알았다
기자들로 빽빽이 들어찬 기자 회견장, 단상 앞에 선 일본 총리가 마이크로 입을 가져다 댔다.
양옆으로는 전범 기업의 수장들이 병풍처럼 쪼르르 서 있었다.
“우리 일본은 과거 한국인들에게 끼친 심각한 피해에 대해 깊은 후회로 바라봅니다. 분명히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책임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있으며 깊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속죄에 대한 의지로 일본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들,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피해자분들과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피해자분들께 지금에서야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합니다.”
웅성웅성
전혀 예기치 못한 총리의 발언에 장내 소란이 커져갔다.
“뭐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연다길래 앞으로 회생안에 대한 발표인 줄 알았더니 이런 식으로 뜬금포 사과를 한다고?”
“트, 특종이다!”
일본 특파원으로 있는 한국 기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에 대한 깊은 죄책감을 통감하고 있고, 이에 따른 배상도 제대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우리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 복구를 위한 다각도적인 노력을 시행할 것이며, 두 나라 사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재해 복구가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면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피해자분들께 진심어른 사과를 할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드립니다.”
이후 전범 기업 총수들 또한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고 과거 자신들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전하기 시작했다.
방송은 실시간 세계 각국으로 퍼졌고, 많은 언론이 이에 관해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 발표가 이루어지기 약 두 시간 전.
당시 나는 광복절 80주년을 맞아 독립 기념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했다.
내가 낸 기부금으로 주최된 행사였고 일제 강제 노역 피해자분들과 현재까지 살아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 아홉 분을 모신 자리였다.
전시관에서는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과 강제동원 피해자 31명에 대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구술 사진전이 열렸다.
각자 피해당한 장소와 시기는 달랐지만, 그 아픔은 동일하다는 듯,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피해자의 얼굴이 새겨진 팻말을 어루만지며 함께 슬픔을 나눴다.
행사에 참석한 한명회도 주름진 얼굴과 검버섯이 곳곳에 핀 피해자의 초상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때 한명회의 팔짱을 끼며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어르신. 건강은 좀 괜찮으세요? 그래도 병원 가니깐 훨씬 낫죠?”
“으응? 껄껄껄 누군가 했더니. 대운이로구나.”
주름진 얼굴에서 옅은 웃음꽃이 폈다.
옛날에는 별 반가운 티도 안 내시더니 이제는 정말 친손주처럼 아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푸른 빛으로 맺어진 인연, 자주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댁에 방문하여 말동무도 해드리며 이런저런 친분을 다질 수 있었다.
우선 열악한 주거 환경부터 싹 고쳐드렸고, 의료비 지원도 아낌없이 행했다.
친일파 후손이자 악명높은 사채업자였던 백선생으로부터 삥 뜯은 3,000억이라는 거금이 있었기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여러 파격적인 지원 사업을 할 수 있었다.
“다 늙은 노인네가 갈 때 되면 가는 거지 쓸데없이 오래 살아서 뭐할꼬?”
“그런 말씀 하신 것 치고는 치료 엄청 열심히 받으셨던 거 다 알고 있거든요?”
“큼큼···. 그래도 의사 양반 성의가 있는데 늙은이가 고약한 심술을 부려서야 쓰나.”
민망하셨던지 툴툴거리면서 먼저 앞서가는 한명회 어르신이었다.
픽 웃으며 어르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쫓아가서 어르신 팔짱을 꼈다.
“걸음은 또 왜 이렇게 빠르세요? 같이 좀 가요.”
“에잉. 젊은 놈이 뭐가 이리 굼떴어? 그래서 장가는 가겄는가?”
“그럼요! 무조건 가야죠 장가! 저 장가갈 때 어르신도 꼭 오셔야 됩니다?”
“일 없다. 괜히 우울한 늙은이 갔다가 잔칫집 분위기 망칠라.”
“우울하긴 왜 우울합니까? 오늘부로 신명 날 일만 있으실 텐데?”
“뚱딴지처럼 갑자기 무슨 말이야?”
고개를 갸웃하는 한명회 어르신을 향해 씨익 웃음을 내보였다.
“그냥 그런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제가 촉이 되게 좋거든요.”
“끌끌끌. 별 싱거운 놈 다 봤구나.”
내 말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긴 한명회 어르신이 혀를 쯧쯧 차며 앞서 걸어가셨다.
나는 그런 어르신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미소로 지켜보다가 조용히 뒤를 따라나섰다.
웅성웅성
강당에 모든 참가자가 집결하자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애국가 열창 및 순국선열들을 위한 묵념이 이어졌고, 축사와 기념사가 이어졌다.
이후에는 살아계신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이 한 사람씩 나와서 본인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첫 발표자는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일본 이바라키현 군인 농경근무대로 끌려간 이경수 어르신의 이야기였다.
“제가 말입니다.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일본 군부대에 끌려갔습니다. 일본놈들 소굴 속에 한국인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지옥 같은 일인지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이렇게 살다가 정말 죽겠다 싶어 군부대에서 탈출을 감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본군에 붙잡혔는데 저를 본보기로 삼는다며 거꾸로 매달고 호된 매질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당한 부상 때문에 아직도 팔이 접히질 않습니다. 정말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았고, 해방 이후에도 그 흉터들은 제 인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후안무치한 저 일본 놈들은······.”
육두문자까지 섞어가며 울분을 토해내셨지만, 그 심정을 이해하기 그것을 뭐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음 차례는 수요미씨 중공업에 강제로 끌려가 고된 강제 노역을 치른 양금순 할머님의 차례였다.
“저는 말입니다. 수요미씨 중공업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 이상 한국 정부가 대신 지급한다는 손해배상금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다 늙은 인생.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내가 가난하게 살더라도 그런 돈을 받아서 뭐하겠습니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일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입니다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반쯤 포기했수다. 비록 나 살아있는 동안에는 못 보겠지만 내가 죽고 난 이후라도 꼭 놈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갑자기 단상 위에 오른 나를 보며 양금순 할머니가 살짝 당황해하셨다.
“총각은 누구···?”
“갑자기 말 끊어서 죄송해요 할머니. 다름이 아니라 오늘 행사에 참여해주신 분들께 보여드릴 게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단상 위로 오르게 됐습니다. 일단 스크린부터 좀 내려주시겠습니까?”
내 지시에 무대 위에서 거대한 스크린이 스르륵 내려왔다.
“오늘은 매우 뜻깊은 날입니다. 광복 80주년 이기도 하고, 여기 계신 많은 분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리모콘 전원 버튼을 꾹 눌렀고 곧이어 거대 스크린에 영상 하나가 흘러나왔다
[日 정부 위안부 만행 사죄.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 전달과 함께 배상 문제 논의키로] [수요미씨 그룹 총수 사가미 슌사쿠 의장,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보상 문제 논의키로 결정]이라는 자막과 함께 여성 앵커가 멘트를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긴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지진과 화산폭발이라는 큰 재액을 겪은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김지선 특파원이 전해드립니다.”
강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앵커의 목소리에 장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리에 앉아있는 수십 명의 어르신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일본 총리와 전범 기업 총수들이 정수리를 내보이며 공식적인 사과를 내뱉는 장면에서부터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게 참말이가. 정말로 일본놈들이 사과를 했다꼬? 지금 이기 꿈이가 생신이가···. 으이?”
“아이고야. 우리 할매들. 이제야 하늘나라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네. 흐흐흑. 참말로 오래 걸맀다 참말로···. 할거면 조금만 빨리 해주지···. 저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렵드나. 흐흐흑.”
“으허헝. 저 말 한마디 듣겠다고 질긴 목숨 어떻게든 연명해왔는데 내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버지. 이제 저승에서 편히 지내시오. 저놈들이 드디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으니 말입니다.”
울음에는 전염성이 있다고 했던가.
그동안의 억눌러온 설움, 비애, 한(恨) 같은 것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며 장내에 휘몰아쳤다.
하지만 꿈에서도 바라던 원(願)을 이뤘기 때문이었을까?
응어리진 원념(怨念)이 조금씩 흩날리며 모두의 얼굴에 개운함이 감돌았다.
눈동자를 굴려 한명회 어르신을 찾았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스크린 화면만 쭉 지켜보고 계셨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한명회 어르신 쪽으로 다가가 말없이 손을 잡아 드렸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내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게야? 이게 꿈이라면 정녕 깨고 싶지 않구나. 설령 이후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꿈도 아니고 당장 돌아가실 일도 없으십니다. 분명히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인 사과 발표를 했고, 차후에 한국에 직접 방문하여 피해자분들께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어르신이 그토록 꿈꾸시던 일이 벌어진 겁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저들이 절대 순순히 사과할 종자들이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지···.”
“혹시 진관사에서 어르신을 처음 뵙던 날. 제가 했던 얘기 기억나십니까?”
나직한 내 목소리에 한명회 어르신의 고개가 천천히 내 쪽으로 향했다.
“어르신이 말씀하셨죠. 생이 다 하기 전에 일본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약속드렸죠. 어르신이 염원하시던 것 제가 보여드릴 수 있게 하겠다고.”
“기억나지. 암 기억나고말고.”
“저 그 이후에 기도 엄청 열심히 했거든요? 신이 존재한다면 제발 저놈들 좀 정신 차리게 하고 제대로 된 사과할 수 있도록 힘 좀 써달라고. 근데 신이 제 간절한 목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결국 소원이 이루어졌네요.”
넉살 부리는 나를 보며 한명회 어르신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돈놀이로 성공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고놈의 주둥이로 성공한 놈이로구나.”
“그것도 크게 한몫했죠.”
픽 웃음을 터트린 한명회 어르신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고맙구나. 이게 다 네 덕분이다. 이제 저세상 가더라도 아버님 보기 부끄럽지 않겠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일본으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았으니 이제 편히 지내시라고 말이야.”
이후로도 한명회 어르신은 한참 동안 뉴스 화면만 바라보셨다.
분명 시작은 한명회 어르신으로부터 보게 된 푸른빛이었다.
이후 친일 기업부터 전범 기업까지.
어디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고 제법 많은 고충을 겪고 나서야 어느 정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솔직히 아직도 그 푸른빛이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피해자 어르신들의 한을 풀어줬다는 것만으로 더할 나위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 그 시퍼런 빛이 뭐든 무슨 상관이야. 저 웃음이면 충분하지.”
대충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푸른빛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아니, 찍은 줄 알았다.
며칠 후, 전혀 예상치 못한 기사 하나가 대한민국 전체를 또다시 뒤흔들기 전까지는.
[단독]’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공식적인 사과, 그 배경에는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송대운 대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