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유명세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지만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태연하게 반문했다.
“죄송합니다만 잘 못 들었습니다.”
“조금 전 슌사쿠 의장이 미요우리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사과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송 대표님께 호된 꾸짖음을 당했고, 그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일본 대지진과 후지산 폭발로 인해 송 대표님이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돌고 있다는데 여기에 대한 입장 표명도 부탁드리겠습니다.”
“…………”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갑자기 노망 난 것도 아니고, 그 영감이 갑자기 왜 그런 인터뷰를 했을까?
설마 나를 엿먹이려고?
아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굳이 지금 시점에 나를 자극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깐.
그럼 대체 왜? 찰나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설마···. 나한테 조금이라도 점수 따려고?’
지금으로선 이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어차피 눈 딱 감고 굽히기로 마음 먹은 거, 할 때 확실히 하자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그게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짧은 침묵 사이에 온갖 상념이 스쳐 갔다.
일단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했다. 안 그러면 방송사고였으니깐.
“큼큼···. 소통 과정에서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 우선 미팅 자리에서 제가 공식적인 사과를 언급 했던 건 맞습니다. 모르실 수도 있지만 제가 독립 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공헌 사업에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 잡았다는 듯 아나운서가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러고 보니 송 대표님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위해 3,000억이라는 천문학적 기부금을 쾌척하셨죠? 단일 기부로는 최고액이라고 들었습니다.”
“기부뿐만이 아니고 주거환경 개선, 연탄 봉사 등과 같은 활동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독립유공자 후손 어르신들 혹은 강제 징용 피해 어르신들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된 삶이더군요. 매일 새벽에 나와 고물 수집을 하시거나, 그마저도 몸이 성치 않아 집에만 계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쭤봤습니다. 지원금이 부족하진 않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지금 와서 부귀나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소리만 하셨습니다. 대부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겠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양반인지 아나운서의 얼굴에도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수요미씨 그룹이라면 대표적인 전범 기업이자 수 많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했습니다. 비즈니스에는 그토록 신뢰를 강조하면서 정작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반성은 왜 하지 않는지, 신뢰를 논하려면 먼저 행동부터 보이라고 말이죠. 그들이 제 말 한마디 때문에 사과를 했을 거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들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간절함이 마침내 하늘에 닿은 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잠깐 말을 잃은 아나운서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송 대표님 나이가 이제 서른 중반이라고 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참···.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군요. 참으로 정의롭고 겸손하십니다. 솔직히 젊은 나이에 세계에서 인정받는 명성과 부를 이뤘으면 자만심이 들 법도 한데 송 대표님께서는 그런 모습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군요.”
“자만이라···.”
나는 뺨을 긁적거리며 자만심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봤다.
“자만은 모르겠지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는 있습니다. 제가 지금껏 투자하고 나름의 성과를 이루면서 확실히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모든 성공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나 자신이 잘나서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순간 성장은 멈춥니다. 제가 이룬 모든 성과는 결국 다른 사람의 덕이 컸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예상치 못한 더 큰 기회가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좋은 말씀이네요. 이번에 일본 대지진으로 큰돈을 버셨다는 소문도 그런 기회 중 하나였나요?”
아나운서 양반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능청스럽게 예민한 질문을 잘도 던지는구만.
“일단 결론만 말씀드리면 큰돈을 번 건 맞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었다.
어설프게 둘러댔다간 나중에 더 큰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기에 차라리 여기에서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소문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여기에도 몇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저는 일본에 지진이 발생하기 몇 달 전부터 일본 증시가 조정국면에 들어갈거라는 판단을 내려 풋옵션을 매수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대지진이 발생했고, 후지산까지 분화해버렸죠. 결과적으로 수익을 보긴 했지만 애당초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벌어들인 돈이라 그저 얼떨떨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말 그대로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죠.”
“하긴, 그 누가 일본에 그런 재난이 닥칠 거라 예상했겠습니까? 그런데 옵션 투자라면 수익률이 엄청났을 것 같은데 민감한 질문이지만 수익률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그걸 밝힐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고통에 신음하는 일본 국민들을 위해 나름의 성의는 보일 생각입니다.”
“예,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 인터뷰가 굉장히 뜻깊은 자리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나라에 이런 대단하고 인품마저 훌륭한 투자가가 있다는 사실이 사뭇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오늘 방송으로 송대운 대표님을 둘러싼 여러 의문과 억측들이 종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상 아나운서 박병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지 않은 뉴스 인터뷰가 이렇게 끝이 났다.
중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잘 대처한 듯 싶었다.
이쯤 했으면 들불처럼 번지는 풍문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는 명백한 내 착각이었다.
***
새로운 핫플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성수동에 모 카페.
오랜만에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는 날이라 모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나왔건만.
“야야야. 저 남자 혹시 그 사람 아냐?”
“응? 누구?”
카페에 앉아있던 두 여자가 구석 자리에 앉아있는 남녀 한 쌍을 힐끔 곁눈질했다.
“왜 있잖아. 요즘 TV만 틀면 나오는 우리나라 최고 부자. 송대운인가 하는 사람,”
“송대운···? 아! 그 애국 투자가? 에이, 그 사람이 이런 댈 왜 와. 재벌 중에 재벌이라던데.”
“쓰읍···. 아닌데···. 아무리 봐도 맞는데···. 가서 말 한번 걸어볼까?”
“아 쫌! 여자친구도 옆에 있는데 괜히 오해받아 이년아. 그리고 설령 맞다 해도 니가 뭘 어떡할 건데?”
“어쩌긴 뭘 어째 기집애야! 사인이라도 받아야지. 그 사람 요즘 얼마나 핫한지 몰라?”
“아 몰라. 쪽팔리게 할 거면 나 그냥 갈 거니깐 알아서 해.”
“알았어. 아무튼, 성질머리 하고는.”
거친 친분을 과시하는 두 여자의 사담이 내 귓구멍에 팍팍 꽂혔다.
그런 나를 보며 픽 웃음을 터트린 지원이가 라떼를 빨대로 휙휙 내저으며 물었다.
“신경 쓰여요?”
“당연히 신경 쓰이지. 이젠 어딜가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서 아주 죽을 맛이야.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불편해 죽겠네 정말.”
“죄지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오빠를 좋아해서 그런건데요 뭘.”
“안 좋아해도 되니깐 제발 모른 척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관심들인지···.”
“이거 왜 이러세요 불철주야 나라를 위해 애쓰시는 애국 투자가 송대운 대표님. 요즘 국내 기업인 브랜드 평판 1순위는 물론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 1위로도 선정되셨다죠? 이거 남자친구가 너무 잘나가니 여자친구된 입장으로서 무척 부담스럽네요.”
“으악! 제발 그놈의 애국 투자가란 소리는 그만해! 애국은 개뿔. 나는 그냥 내 사리사욕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라고. 환장하겠네 정말.”
질색팔색하는 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지원이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조금만 참아요. 솔직히 오빠가 해낸 일이 보통 일은 아니잖아요. 정부에서도 못한 걸 애국···. 큼큼. 일개 투자자가 해냈는데 화제가 될 법도 하죠.”
내가 흘겨보자 지원이가 다급히 어휘를 급선회했다.
이제는 애국에 애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하아···. 이런걸 원한건 아니었다고···. 나는 그냥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날 모르고 돈은 많이 벌었으면 하는 사람인데.”
“그러기엔 사람들이 오빠에 대해서 엄청 궁금한가 봐요. 얼마 전에 오빠랑 관련된 너튜브 영상 봤어요?”
“왜? 또 뭐가 올라왔어?”
원치 않은 유명세에 시달리다 보니 언론 매체나 미디어 콘텐츠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이거 한번 볼래요? 오빠 관련된 콘텐츠인데.”
“누가 또 쓸데없는 짓을…”
짐짓 관심없는 척하면서 휴대폰 화면을 힐끔 쳐다봤다.
영상 속에는 너튜버로 보이는 한국 남자가 실리콘밸리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인터뷰를 했다.
너튜버가 길가는 백인 남자 하나를 붙잡았다.
브라운 계열 곱슬머리에 그레이 후드티 차림의 누가 봐도 개발자로 보이는 행색이었다.
“안녕하세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주 짧게 인터뷰 좀 요청해도 될까요?”
고개를 돌려 너튜버를 쳐다본 백인 남자는 선뜻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시죠. 뭐가 궁금하신가요?”
“아, 혹시 이곳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계신 건가요?”
“예, 이곳 T콤비네이터에서 엑셀러레이팅 받고 있습니다.”
“그럼 혹시 스타트업?”
“예, 그렇습니다만.”
살짝 귀찮았던지 백인 남자가 건성으로 답을 했다.
“T콤비네이터면 세계 최고의 액셀러레이터 기관인데 대단하시네요. 그럼 혹시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VC 딜런을 아시나요?”
“딜런? 물론이죠. 실리콘밸리에서 그 이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VC딜런이 그 정도로 유명한가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감히 장담컨데 딜런과 같은 투자 성과를 이룰 VC는 앞으로 백년이 지나도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의 투자는 가히 기적에 가깝습니다. 왜냐면 그에게 투자받은 스타트업들은 모두 큰 성공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요. 아마 실리콘밸리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스타트업 대부분이 VC 딜런의 선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가 장담하죠.”
시종일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남자가 갑자기 열변을 토해내자 너튜버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 그렇군요. 저는 그와 같은 한국인입니다. 정작 한국에서는 그의 명성이 이 정도로 대단하진 않은데 창업의 본고장인 실리콘밸리에서는 그 영향력이 남다른가 보네요.”
“Really!? 그게 말이 됩니까? 그가 이룩한 성과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한국인들은 모르는 겁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그의 진정한 가치는 앞으로 10년, 20년이 흐르면 더욱 뚜렷이 드러나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 딜런이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기업으로 성장해있을 테니까요.”
거의 찬양과 숭배에 가까운 남자의 대답에 너튜버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후에도 몇 번의 인터뷰가 더 진행됐지만 백인 남자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말 없이 영상 종료 버튼을 꾸욱 눌렀다.
“하아···. 이런 콘텐츠는 왜 찍는 거야?”
“신기한가 봐요. 창업의 본고장이라는 미국에서 오빠의 명성이 이 정도로 뛰어나다는 게.”
“거참 할 짓들도 없네.”
민망한 마음에 애꿎은 빨대만 질겅질겅 씹어댔다.
그런 내 심정을 눈치챈 지원이가 다른 주제를 입 밖에 꺼냈다.
“곧 상견례 날인데 안 떨려요?”
“떨려···. 무지 떨려! 지금도 손발이 달달 떨린다고.”
그렇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견례를 이제는 내가 하게 된 것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던 입장에서는 남녀 사이에 문제만 없으면 됐지 뭐가 그렇게 떨려서 저 호들갑일까 싶었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어보니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마리아 어머님께 장소는 말씀드렸어요?”
“아차차! 어제 말씀드린다는게 깜빡···.”
– 지이이이잉
“나이스 타이밍! 기가 막힌 타이밍에 전화 주셨네.”
반색한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예, 어머니. 안 그래도 상견례 관련해서 전화드리려 했는데···.”
하지만 통화가 길어질수록 내 표정은 돌처럼 굳어갔다.
“뭐라고요···? 죄송한데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어요?”
[대운이 네 생모라고 주장하는 분한테 연락이 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