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4)
354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흔들리는 내 동공이 손에 들린 배냇저고리로 향했다.
“이걸···. 다 알고 있다고요?”
“그래, 그 배냇저고리에 네가 태어난 시간, 몸무게가 쓰여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더구나. 심지어 네 배꼽 위에 커다란 점이 있다는 것까지도.”
“…………”
이쯤 되니 무작정 부정만 할 수도 없었다.
연락 온 사람이 내 생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출생에 대해 뭔가 아는 사람인 건 분명해 보였다.
추정만으로 맞출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일단 내가 먼저 한번 만나볼까?”
걱정어린 기색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원장 어머니.
“아니에요. 제 일인데 제가 나서야죠. 괜히 어머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사기꾼이 맞을 거에요. 제가 단단히 혼쭐 내주고 올게요.”
“너 정말 괜찮은 거니···?”
역시 어머니를 속일 순 없구나.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배냇저고리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부터 내 마음은 무섭게 요동치고 있었다.
지금 이 감정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웠다.
두렵기도 했고, 화가 치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유 모를 설렘도 있었고, 아련함도 있었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것처럼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가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전 정말 괜찮아요. 그냥 얼떨떨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잖아요. 이제 와서? 삼십 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서 뭘 어쩌자고 연락을 해온 건지···. 사실 그립거나 보고 싶은 감정은 전혀 없어요. 그냥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삶을 살고 있길래 배 아파 낳은 자식까지 내팽겨칠 수 있는지.”
날 선 푸념을 내뱉는 나를 말 없이 바라보던 마리아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운이 너라면 현명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우리 대운이 믿어.”
“그럼요. 든든한 아들을 믿어야지 누굴 믿으려고요.”
너스레를 떨며 원장 어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
오래된 수녀복에 풍기는 어머니 특유의 소나무 향기가 어질러진 내 마음을 차분케 했다.
***
캐나다 알버타주에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아오씨! 깜짝이야. 이건 또 뭐야?”
갑자기 도로를 가로막는 사슴들을 보며 기겁을 했다.
빵!!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런 반응 없이 빤히 나를 쳐다보는 사슴 한 마리.
누가 보면 동네 주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태평스러운 모습이었다.
한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사슴이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 동네가 이러냐.”
그야말로 해외 깡촌 마을의 정석이랄까?
주변에는 그 흔한 마트 하나 보이지 않았고 몇몇 가정집만이 듬성듬성 보였다.
“저건 또 뭐야?”
사슴에 놀란 가슴 채 진정되기도 전에 무심코 창밖을 내다봤다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동네 보안관이야 뭐야?”
혹시 잘못 봤나 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분명 카우보이 복장을 한 백인 아저씨가 흑마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웃긴 건 카우보이 모자 대신 자전거 헬멧을 뒤집어썼다는 것이었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보안관인가 보네···.”
워낙 시골이라 그런지 짐승들만 돌아다니고 정작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거리는 너무 한산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 정도였다.
“설마하니 사는 곳이 해외일 줄이야···.”
원장 어머니를 통해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더니, 현재 자신이 어디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답장이 왔다.
직접 찾아가겠다는 뜻을 전하자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주소를 보내온 것이었다.
“하긴, 이런데에 숨어있으니깐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지.”
아무리 내가 명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시골 마을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었다.
“대체 언제쯤 도착하는 거야?”
지금 이 마을도 충분히 시골스러웠건만 네비는 여기서 더 깊은 대자연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했다.
거칠디 거친 숲속 오프로드 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작은 호수를 품고 있는 큼지막한 저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네비가 가리키고 있는 도착지였다.
“이야···. 이런 곳에도 집이 있네.”
입으로는 감탄을 내뱉었지만, 저택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의 박동수는 요동을 쳤다.
출발할 때는 별다른 생각이 안 들더니 막상 저 집에 친부모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후우···. 느낌 없게 왜 이러냐 대운아! 아랍 왕세자한테도 안 쫄았던 놈이.”
일단 근처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찌르륵대는 풀벌레 소리만 어지럽게 들려올 뿐, 다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나뭇가지가 나풀거리며 싸리 빗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고요함에 붙잡혀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던 그때.
타닥타닥 타닥
저 멀리서 정체 모를 짐승 한 마리가 맹렬한 기세로 내게 달려왔다.
작은 송아지만한 크기의 무언가에 덮쳐진 나는 바닥에 쓰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악!”
송곳 같은 이빨이 내 육신에 박히면서 끔찍한 고통이 닥칠 거라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았는데 웬걸?
뜨겁고 축축하며, 미끈한 무언가가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컹! 컹컹!”
“응?”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자 새빨간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대는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강아지라 부르기도 민망한 초거대 사이즈에 똘망 똘망한 눈동자, 축 처진 입꼬리, 얼룩덜룩한 털까지.
다 크면 몸무게가 80kg이 넘는다는 세인트 버나드였다.
녀석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나에게 치대며 덩치에 맞지 않는 애교를 부려댔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한 남성의 목소리.
“Rookie! You can’t do that!”
남자의 목소리에 나에게서 떨어진 개강아지가 후닥닥 남자 쪽으로 뛰어갔다.
거친 숨을 내쉬며 나에게 달려온 백인 남자.
“헉헉,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예, 좀 놀랬을 뿐이지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공격성은 없는데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종종 곤란한 상황이 생깁니다.”
“예. 엄청 좋아하는 것 같네요. 저 정도면 도둑이 들어와도 좋아하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루키라는 이름의 개강아지는 연신 나와 남자의 주변을 빙빙 돌며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하하하. 실제로 그럴 것 같아 걱정이군요.”
남자가 건넨 손을 붙잡고 일어선 나는 그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허옇게 센 백발에 서글서글한 인상.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막 노년에 접어든 백인 사내였다.
“길을 잘못 드셨나 봅니다. 여긴 더 들어가봤자 뭐가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혹시 소피 킴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내 물음에 노인의 청록색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음? 제 아내를 아십니까?”
아내라고? 순간 온갖 망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아내를 찾을 사람이 없을 텐데···.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 저는.”
순간 나를 뭐라 소개해야 할지 몰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친아들일지도 모르는 사람? 과거에 버렸던 자식?
“우선 저는 한국인입니다. 아내 되시는 분이 제 출생에 대해 아신다는 연락을 하셔서 이렇게 방문하게 됐습니다.”
내 말에 사내는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신경 쓰인다더니···. 결국 연락을 했나 보군요.”
주변을 한번 쓱 둘러보던 사내가 자신의 집을 가리켰다.
“소피는 집 안에 있습니다. 일단 들어가시겠습니까? 숲속의 해는 생각보다 빨리 집니다.”
“예, 알겠습니다.”
“아! 정신이 없어서 미처 제 소개도 하지 못했군요. 지미 키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키멜. 딜런입니다.”
그렇게 간단히 통성명을 마치고 키멜의 뒤를 따라나섰다.
착각이겠지만 저택으로 향하는 그 짧은 거리가 유독 멀게만 느껴졌다.
청명한 에메랄드빛 호수를 품고 있는 저택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는 나를 향해 키멜이 씨익 미소를 내보였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아담하지만 멋진 경치를 품고 있는 호수입니다. 이 녀석 때문에 여기 살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럴만하네요.”
빽빽하게 심긴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농도 짙은 피톤치드가 코를 타고 뇌를 씻겨주는 기분이었다.
넋 놓고 쳐다만 보고 있어도 아무런 근심 걱정이 안들 정도로 신비한 분위기가 흘렀다.
“들어가시죠.”
끼이이익
현관문을 열어젖힌 키멜이 적막 가득한 집안을 향해 외쳤다.
“여보! 당신을 찾는 손님이 찾아오셨구려!”
고요를 깨는 키멜의 외침이 울린 후.
끼이이익
거친 쇠 마찰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휠체어를 탄 중년의 동양인 여성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여인의 외관을 유심히 살폈다.
아담한 체격에 앙상한 얼굴,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50대 여인의 모습이었다.
“당신이···. 새싹 보육원에 전화한 사람 맞습니까? 제 생모라고 말했다는···?”
아무 말 없이 휠체어를 이끌고 가까이 다가온 여자가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얼굴이 남아 있네요. 반가워요.”
여인의 얼굴을 살피면 살필수록 확신이 들었다.
눈앞에 저 여자는 절대 내 생모가 아니라는 것을.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말로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본능적인 느낌이 있었다.
“왜 거짓말 한 겁니까? 뭘 노리고요? 돈이 탐났습니까?”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려 했는데 절로 말이 뾰족하게 튀어 나간다.
인간의 본능이란게 원래 그러하지 않은가.
짐짓 관심 없는 척하면서 자신의 뿌리가 어딘지 궁금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글쎄요. 아무리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부모라지만 제 느낌이 말해주네요. 당신은 절대 내 생모가 아니라고. 그나저나 제 출생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겁니까? 그거는 좀 궁금하네요.”
상당히 공격적인 어조였으나 여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더니, 똑 부러지는 성격까지 똑같네.”
“예?”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은 여인이 손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가서 얘기 나눌까요?”
***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던 찻잔이 미지근하게 식어갈 때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낳아준 부모의 존재가 궁금하긴 한가 보네요.”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들이길래 자기 자식을 그렇게 버릴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단순한 호기심입니다.”
“버린게 아닙니다! 절대 버린게 아니에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저는···.”
입술을 질끈 깨문 여인이 마침내 본인의 정체를 밝혔다.
“제 이름은 소피. 한국 이름은 김경애에요. 송대운씨 생모와 같은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죠.”
그리고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