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사랑받으며 태어난 아이
“물론 피를 나눈 혈육은 아니에요. 다만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친자매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죠.”
“아···.”
다른 무엇보다 생모도 나와 같은 보육원 출신이라는 게 뭔가 기분이 복잡 미묘했다.
“이름은 최진희, 착해도 너무 착했던 바보 같은 애였죠.”
“그렇게 착한 사람이 자식을 버립니까?”
“버린 게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버럭 내지른 소피가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대운씨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하지만 제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진희와 주철이는 절대 책임감 없이 행동할 그런 애들이 아니에요.”
“그럼 저는 왜 골목에 버려져 있던 겁니까? 아니, 그전에···. 정리가 잘 안 됩니다. 대체 제 친부모는 뭐 하는 사람들이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해주세요.”
벽난로 쪽으로 시선을 돌린 소피가 타닥타닥 소릴 내는 선홍색 불꽃을 응시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진희와 석철이···. 그러니깐 대운씨 부모와 저는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었어요. 두 사람은 보육원 내에서도 유별났어요. 동갑내기라 그런지 서로에게 많이 의지했고 결국 연인 사이로까지 발전했죠. 성인이 되어 보육원에서 퇴소를 해야 했을 때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차원이 다른 문제잖아요.”
나 역시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앞둔 입장으로서 어느 정도 수긍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서로 다짐을 했데요. 딱 5년만 열심히 돈 모아서 그걸로 결혼 생활 시작하자고. 이후로 주철이는 공장에 들어가서 밤낮없이 일만 했고, 진희도 미용을 배우겠다며 종일 샵에만 붙어있었어요.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 혀를 내두르게 되더군요.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너울거리는 장작불을 바라보는 소피의 눈동자는 당시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했다.
“사실 가장 놀고 싶을 때잖아요. 이십 대라는 게. 근데 그 두 사람은 한 눈 한 번 팔지 않고 정말 일만하더군요. 어느 날은 제가 너무 답답해서 진희를 불러서 밥 한 끼를 사 먹였어요. 그리고선 물었죠. 대체 뭘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가장 찬란할 꽃다운 나이에 매일같이 일만 하는 게 맞냐고. 그러니깐 진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모르겠습니다.”
아직 내 친부모라고 확정 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빠져들어 버렸다.
“나중에 주철이와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게 자신에겐 가장 찬란한 시기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행복할 미래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데요. 정말 한 치의 의심 없는 확신에 찬 눈이었죠. 결국 두 사람은 5년 만에 작은 아파트 하나 구해서 결혼에 골인했어요. 두 사람 모두 가족도 없고, 주변 지인들도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아 하더라고요.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선명해요. 웨딩드레스 입고 혼자 당당하게 입장하던 진희의 모습이.”
“그 정도로 가정에 대한 열망이 남다르신 분이 왜 저를···.”
일렁이는 불을 응시한 소피의 눈동자에 조금씩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의 축복 속에 부부가 됐지만, 생각보다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았어요. 그러다 결혼 3년째가 되던 날 드디어 임신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고, 귀하게 얻은 자식인 만큼 진희와 주철이는 정말 끔찍하게 아기를 아꼈어요. 그날도 아기에게 미열이 있는 것 같아 병원으로 향하던 길이었어요. 그러다···. 사고가 일어났죠.”
“사고···?”
“교통사고였어요. 왜 드라마 같은 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잖아요. 졸음운전을 한 화물트럭이 승용차를 덮치는···.”
“설마···.”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지만 야속한 현실은 언제나 기대를 배신했다.
“주철이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고, 진희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어요. 하지만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는 기적처럼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었죠.”
이때부터는 누가 머리를 한 대 친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얘기를 끝까지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진희는 곧장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고, 아기는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데리고 갔어요.”
듣고 보니 뉘앙스가 좀 이상했다.
“데리고 온 게 아니고 데리고 갔다고요?”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제가 현장에 있던 건 아니니깐.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주철이는 하늘나라로 떠난 후였고···. 진희는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어요. 아기가 보이지 않자 의아한 마음에 병원까지 진희를 데리고 왔던 119 구급대원에게 물어봤는데 자신들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을 수소문해서 물어봤더니 어떤 여자가 자신을 사고자의 친척이라 말하고 아기를 데리고 갔다고 하더군요.”
“예···? 친척이 있었어요?”
“저도 그게 의문이었어요. 일단 경찰에 신고만 하고 진희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사고 6일째가 되던 날 드디어 진희가 정신을 차렸어요. 눈을 뜨자마자 아기부터 찾더군요. 망설였지만···. 얘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주철이는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고, 아기는 누가 데려갔다고 하는데 어디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결국 소피의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희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어요. 그리고 제게 말했죠. 제발 아기를 좀 찾아달라고. 그 말을 끝으로 진희는 허망하게 가버렸어요.”
“아···.”
물밖에 튀어나온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마치 남의 얘기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굉장히···. 스펙타클한 스토리네요. 근데 제가 그 얘길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아니, 설령 그 이야기가 사실인들 그게 저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확신할 수 있어요.”
“네?”
“아기를 찾아 달라는 진희의 유언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저는 아기를 찾기 위해 정말 갖은 수를 다 썼어요. 대운씨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말이죠. 그러다가 큰 병을 얻게 됐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됐어요. 사실상 포기를 한 거죠. 그렇게 진희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을 때, 우연히 TV에서 대운씨 얼굴을 보게 된 거예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어느 하나를 미친 듯이 쫓고 갈망하다 보면 이상한 신통력 같은 게 생긴다고. 화면에 대운씨 얼굴이 나오니깐 거짓말처럼 느낌이 오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아기 때 한두 번 본 걸로 단번에 저인 줄 알았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한두 번 본 게 아니에요. 수만 번은 봤을 거에요. 잠시만요.”
앙상한 손으로 휠체어를 이끈 소피가 낡은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이건···?”
“당시 진희가 썼던 육아 수첩이에요.”
그때부터였다. 손발이 덜덜 떨려오던 시점이.
바래고 낡은 수첩을 펼치니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집어 든 사진 속에는 세상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젊은 부부와 품에 안겨있는 갓난아기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아···.”
순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머리가 찌릿했다.
보자마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분들이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부모님이라는 사실을.
홀린 듯 사진을 바라보다가 한장 한장 천천히 수첩을 넘겼다.
적힌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임신 초기 때부터 출산 이후의 과정이 정성스럽고 꼼꼼히 적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붙어있는 갓난아기 사진 한 장.
그건 분명 내가 맞았다.
한참 동안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수첩을 덮었다.
“이 배꼽 아래에 있는 요상한 모양의 점까지···. 제가 맞네요.”
그제야 소피의 눈동자에 감격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아···. 드디어! 진희야···. 주철아···. 찾았어. 내가 찾았다고···. 흐흐흑···. 세상에···.”
봇물 터지듯 소피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가…저를 데리고 간 것이고, 왜 골목에 그렇게 버려진 걸까요? 대체 왜…? 무얼 위해서…?”
가슴에 돌덩이라도 들어찬 듯한 답답함이 들었다.
애초에 사고 현장에서 아기를 데려갈 미친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짐작 가는 건 있어요.”
소피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뭔가요 그게?”
“해외 입양···. 그걸 노린 브로커가 데리고 갔을 가능성이 클 거에요.”
“해외···. 입양? 겨우 그런 이유로 아이를 납치한다고요?”
“겨우가 아니에요. 당시에는 꽤나 성행하던 대한민국의 아픈 민낯이었죠.”
눈시울이 붉어진 소피가 넋두리하듯 이야기를 풀어냈다.
“믿기진 않겠지만 당시에는 국가 정책적으로 해외 입양을 장려하던 때였어요. 그러다 보니 여러 입양기관이 아이들을 경쟁적으로 해외 입양을 보내려 했죠. 한때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붙었을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아이들이 해외로 팔려가듯 떠나갔어요. 왜냐면 한국 아이들은 머리가 똑똑하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좋았거든요. 더구나 당시 한국은 양부모가 한국에 직접 오지 않아도 입양이 가능했어요. 마치 쇼핑을 하듯 아이들의 사진과 서류만 보고 입양 결정이 가능했죠.”
“근데 저는 해외 입양이 아니라···. 골목에서.”
“시기가 아주 절묘했어요. 당시에는 고아인 아이들을 해외 입양 보내는 것만으로도 큰 돈을 벌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많은 브로커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운씨가 실종됐던 그 시기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해외 입양에 대한 규제가 생겨났어요. 그 여파로 해외 입양 보내는 게 예전처럼 쉽지 않게 되자 그냥 골목에 버려둔 게 아닌가 싶어요.”
“허···.”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게 말이 되는가 싶다가도 당시 80년대 시대상을 떠올려보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 정신이 없어서 말이 두서가 없지만 중요한 건 진희와 주철이는 세상 그 누구보다 대운씨를 사랑하고 아꼈다는 거예요. 그것만큼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묵은 감정을 토해내며 가쁜 숨을 내쉬는 소피를 지그시 바라보던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부모님은 어디 계십니까?”
“용인에 있어요.”
“용인···.”
그렇게 소피에게 부모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음 날 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용인으로 향했고, 부모님이 안치되어있다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한숨도 못 자 정신이 몽롱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부모님을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간신히 납골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골함이 놓여있는 안치단에 도착했을 때 벼락에 맞은 것 처럼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이제껏 본적없던 신성한 순백의 빛을 내뿜는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