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망하기엔 내 재산이 너무 많아
유모차에 누워 곤히 자는 갓난아기를 세상 행복한 얼굴로 바라보는 젊은 부부의 사진.
그리고 액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백의 하얀 빛.
신기한 점은 빛의 밝기에 비해 눈이 부시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 향긋한 라벤더 향이 코로 스며들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살며시 팔짱을 낀 지원이가 사진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어머님 아버님이 맞네요.”
“그렇게 보여?”
“네. 특히 오빠가 어머님을 엄청 닮았네요. 딸은 아빠 닮고 아들은 엄마 닮는다더니.”
“어허, 그러면 안 되는데. 자길 닮아야 내가 딸한테 원망을 안 들을 텐데.”
“왜요? 난 오빠 닮았으면 좋겠는데. 귀여울 것 같아요.”
그렇게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부모님 앞에서 알콩달콩 주책을 떨어대다 지원이가 조심스레 물었다.
“친부모님 만나 뵌 기분이 어때요?”
“그냥···. 생각보다 아무 생각도 안 들어. 그냥 이분들이 나를 세상에 있게 해주신 분들이구나···. 하는 정도?”
“그래요? 나는 되게 감정이 북받쳐 오를 줄 알았는데···.”
“많이들 그런 오해를 해. 보육원 아이들이 부모를 그리워하거나 굉장히 외로워할 거라고. 근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야. 어릴 때는 분명 엄마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데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갈수록 아는 거지. 그리움은 결국 상처가 될 뿐이라는 걸. 막 드라마 같은데 보면 보육원 출신 애들이 부모를 원망하고 애정 결핍에 걸려있고 그렇잖아? 근데 난 그런 걸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결핍을 어떻게 증오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그리움 때문에 부모를 찾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궁금했던 거야. 나는 어떻게 태어났으며 나를 낳은 존재는 누구인지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한때는 이런 내가 이상하고 한편으로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어. 혹시 내가 사이코패스는 아닌가 싶기도 했었거든.”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놓았던 넋두리를 독백처럼 읊조리다 이내 쓴웃음을 입에 머금었다.
“아무튼 뭔가···. 얼떨떨해. 개운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엄마 아빠한테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니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나로 인해 두 분이 돌아가신 것 같아 마음이 좋지만은 않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어쨌거나 내가 아파서 병원으로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 거잖아. 그 와중에 나라도 살려보겠다고 어머니는 제 한 몸 내던져서 나를 보호한 거고···. 어쩌면···. 나만 없었으면 두 분은 지금까지 행복하게 사시지 않았을까?”
나를 빤히 바라보던 지원이가 작은 사각 공간 안에 안치되어 있는 부모님 사진 액자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만약 부모였다면 방금 그 말은 되게 슬펐을 것 같은데요?”
“응?”
“두 분은 아마 하늘나라에서 되게 행복해하고 있을 거예요. 결국, 오빠는 살린 거잖아요. 그 아이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살아왔고 지금은 누구보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죠. 제가 만약 어머니라면 눈물나게 고맙고, 자랑스럽고 행복했을 것 같아요.”
“아···.”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선 다시 사진 액자를 바라봤다.
성스러운 순백의 빛을 뿜어내는 액자 속에서 밝은 미소를 짓는 엄마와 아빠.
지원이가 말한 대로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아니 부모님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에 홀린 듯 유리문을 열고 손을 뻗었다. 내 손끝과 액자의 겉면이 닿는 그 순간.
액자에서 흘러나오던 순백의 빛이 폭발하듯 범람하며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벽에 걸려있던 시계 초침이 멈춰 섰고, 누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듯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마치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순백의 백자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 때쯤.
뒤에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운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내 눈앞에 서 있는 두 사람, 바로 사진 속 아빠와 엄마였다.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두 분을 바라봤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온 아빠 엄마가 내 손 하나씩을 붙잡으셨다.
포근하고 따스한 온기가 신경을 타고 심장에 닿자 순간 울컥 눈물이 치밀었다.
“우리 대운이···.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되는구나.”
“엄마···.”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엄마라는 소리.
어떻게 보면 처음 보는 여자, 심지어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한테 내뱉은 소리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역시 우리 아들! 거봐 진희야. 내가 뭐라고 했어. 우리 대운이는 날 닮아서 그 어떤 풍파를 겪어도 잘 헤쳐나갈 거라고 했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아빠를 흘겨보는 엄마.
“뭐래? 날 닮은 거지. 당신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칠칠치 못하게 맨날 흘리기나 하고.”
“큼큼···. 그건 맞지만···. 애 앞에서 아빠 체면 좀···.”
같은 보육원 동갑내기 친구라고 하더니 투닥거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니.
엄마 아빠가 나를 꼬옥 안아주며 말했다.
그 따듯한 두 쌍의 온기가 얼어있던 내 심장을 녹이기 시작한다.
“대운아···. 엄마 아빠가 미안해. 대운이한테 정말 미안해···.”
“엄마 아빠가 왜 미안해요?”
“어린 너를 혼자 남겨두고 가서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무것도 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아빠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보란 듯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유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신 게 왜 없어요? 저한테 송대운이라는 멋진 이름을 주셨잖아요. 그리고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한때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비록 엄마 아빠는 곁에 없지만 많은 가족들이 생겼어요. 덕분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또 지금은 엄마 아빠한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됐어요.”
“장하다 우리 아들.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흐뭇한 미소를 지은 아빠가 한팔로 나를 감싸 안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정말이지 생소한 감정이었다. 나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다 있지만, 나에겐 마치 환상 속 유니콘 같은 존재랄까.
뭔가 아빠한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야말로 두 분께 정말 감사해요.”
나는 한동안 엄마 아빠의 모습을 내 눈동자에 담았다.
절대 이 장면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제가 버려진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줘서 고마워요. 세상 누구보다 저를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사실 두려웠어요. 혹시 내가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면 어떡하지? 만약 그렇다면 정상적인 가정을 이뤄서 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뭐 이런 걱정들을 많이 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자랑스러운 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사랑받으며 태어났는지 알았으니 이제는 자신 있어요. 누구보다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내 다짐 섞인 고백에 엄마 아빠는 그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젠 돌아 가야 할 시간이야. 이렇게라도 우리 아들을 볼 수 있어서 더는 여한이 없단다. 대운아.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 아빠가 하늘에서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게 말이야. 그래 줄 수 있지?”
의지와 상관없이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쓱 닦아내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죠. 저랑 같이 온 참한 여자 보셨죠? 놀랍게도 엄마 아빠 며느리입니다. 엄청 이쁘죠? 어디 예쁘기만 한가? 현명하고 배려심도 넘쳐요. 아마 엄마 아빠가 계셨으면 엄청 예쁨받는 며느리가 됐을 거에요.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한테 엄청 잘하거든요. 아무튼···. 엄마 아빠가 하늘에서 질투할 정도로 잘 살 거예요. 나중에는 손주들도 생길 테니까 가끔 심심하면 제 꿈에 들리고 그래요.”
투정 부리듯 말하는 나를 미소로 바라보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마치 홀로그램 영상처럼 희미하게 바뀌어갔다.
새하얗게 물들었던 세상이 씻겨 없어지기 시작했고, 멈췄던 시곗바늘이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마치 달콤한 꿈이라도 꾼듯한 기분이었다.
손에 들린 액자를 내려다보니 하얀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조금 전 그건 결코 꿈 같은 게 아니었다는 것을.
“오빠···? 울어요?”
“응?”
놀란듯한 지원이의 음성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더듬거렸다.
닭똥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턱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라? 이게 왜 눈물이···.”
당황한 나는 소매로 눈가를 쓱쓱 문질렀다.
설마하니 현실에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 줄이야.
예비 와이프를 앞에 두고 굉장히 낯부끄러웠다.
그런 나를 말 없이 꼬옥 안아주며 등을 토닥이는 지원이.
“오히려 다행이에요. 나는 오빠가 감정 없는 로봇인 줄 알았거든요.”
“무슨 소리야. 확신의 F인 사람한테.”
“근데 왜 운 거에요? 이제야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아니, 기뻐서, 그리고 감사해서.”
뒤로 한발 물러선 지원이가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방금 엄마 아빠를 만나고 왔거든. 그런데 그러시데?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잘 커 줘서 고맙다고. 그래서 나도 말씀드렸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줘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끝까지 지켜줘서 감사하다고. 아! 그리고 엄마 아빠한테 지원이 너 자랑도 엄청했어. 흐흐흐. 며늘아기 마음에 든다고 아주 흡족해하시더라.”
내 말이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던지 지원이가 픽 웃음을 터트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이네요. 마음에 들어 하셔서. 이럴 줄 알았으면 스타일 좀 신경 쓰고 오는 건데.”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지원이가 사진 액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님 어머님. 예비 며느리 능력 있는 여자니깐 이제 아드님 걱정은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잘 먹여 살릴게요.”
“크흠···. 가장이 할 얘기를 네가 하면 어떡하니?”
“오빠는 사업가잖아요. 언제 어떻게 망할지 모를 위험이 있지만 저는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직장인이거든요? 그러니 저만 믿어요.”
망하기엔 내 재산이 너무 많긴 한데…
라는 속마음은 감추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능력 있는 와이프 있으니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흥, 받들어 모시도록 하세요.”
그렇게 꽁트아닌 꽁트 한편을 찍은 우리는 처음 들어섰을 때와 달리 개운함이 감도는 밝은 표정으로 봉안당을 나갈 수 있었다.
어느덧 해가 지며 하늘에는 옅은 자주에서 짙은 자주로 변하며 노을이 불타올랐다.
차창에 기댄 지원이는 노을이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정말 결혼 준비를 할 때가 왔네. 기분 이상하다. 우리가 부부가 된다니···.”
“이렇게 이쁜 아내 얻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믿기지 않지. 내가 결혼을 하고 한 여자의 남편, 가장이 된다는 게 실감이 안 나. 뭔가 꿈 같다고나 할까···?”
“저도 꿈 같아요. 늘 바라고 선망해오던 남자가 내 남편이 된다니···.”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비슷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결혼식은 어떤 식으로 준비하면 되려나?”
“집안 어른들이 말했듯이 그냥 우리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요? 오빠는 초대할 손님 많아요?”
“흐음···. 초대할 손님이라···.”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수많은 얼굴들.
“적진 않을 것 같은데, 다들 사는 곳이 멀어서 아마 오진 못 할 거야.”
이때는 몰랐다.
예의상 보낸 청첩장 몇 장이 역사에 기록될 세기의 결혼식의 씨앗이 될 거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