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초대
북산타워 회장 집무실.
이승환 회장님과 오래간만에 두는 대국(對局).
워낙 장기를 워낙 많이 둬서 그런가 어느 순간부터 바둑으로 종목이 바뀐 상태였다.
탁!
장고 끝에 일수를 놓는 이 회장님.
“가만보면 이 바둑이란 놈은 인생의 축소판아니더냐? 바둑도 그렇고 사람의 인생도 그렇고 결국 선택의 연속인걸 보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도 있지만, 영양가 없는 자질구레한 선택도 많지. 수많은 가능성 중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걸을 수도 있는 게지. 나 역시 이 나이 되도록 수도 없는 선택을 해왔고, 지난날을 회상했을 때 고비마다 아쉬움이 남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 더구나.”
또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셔서 이런 장황한 서두를 까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집안 큰 어른이 되실 존재였기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세를 바로 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있다. 네 인생에 가장 큰 선택이 될 테지. 후회하지 않겠느냐?”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이승환 회장님, 아니 할아버님을 바라봤다.
“물론입니다. 지원이가 저를 선택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회장님은 저를 오랫동안 지켜봐 오지 않으셨습니까? 이제는 저란 놈에 대해 어느 정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정말 자신 있습니다.”
절절한 진정성이 담긴 답변에 이 회장님이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끌끌끌, 고놈 여전히 대답 하나는 기똥차구나.”
“사나이 송대운, 말만 번지르르한 놈 아닙니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믿는다. 내가 봐온 송대운이란 놈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입 밖으로 꺼낼 놈은 아니지.”
탁!
이 회장님의 한 수에 바둑판 승기가 뒤바뀌었다.
사람 방심시켜 놓고 이런 수를 준비해뒀다니···.
뭔가 억울했지만 표정 관리는 필수였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다 똑같은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판의 흐름이 잔잔하다도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하고, 과욕을 부리다가 대마가 몰사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상대의 사소한 실수 하나로 일확천금을 얻을 때도 있지. 악수가 다시 없을 행운이 되기도 하고, 잘못된 한 번의 선택으로 대세를 그르치기도 한다. 그런 풍파가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예, 절대 흔들리지 않습니다. 어쭙잖게 돈 좀 벌었다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가족입니다. 그리고 그런 저에게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습니다. 자고로 책임감이 강한 남자는 지킬 게 많을수록 강해지는 법입니다.”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입에 내건 이 회장님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주 마음에 드는구만. 그냥 데릴사위로 들어오라니까 왜 고집을 부려?”
“큼큼···. 아무리 그래도 신혼 생활은 제대로 즐겨야죠. 대신 자주자주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흥, 어차피 네놈이 안 찾아오면 내가 알아서 가려고 했다. 이젠 아무 데나 찾아가도 뭐라 할 수 없지 않겠느냐?”
바둑이나 장기를 두자며 매번 집으로 찾아오는 이 회장님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지만, 가까스로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무조건 환영이죠.”
그러면서 집 비밀번호는 수시로 바꿔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이 회장님이 혀를 쯧쯧 찼다.
“마음에 없는 소리 하기는. 일 없다 이 녀석아!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는 줄 아느냐?”
“큼큼···. 진짠데···.”
역시 이 회장님은 속일 수가 없구나.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모든 걸 꿰뚫어 보신다.
옛날에는 그런 게 살짝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젠 진짜 가족이 될 사이라 그런 것도 없었다.
“지원이한테 얘기 들었다.”
“무슨···. 아!”
친 부모님의 존재를 말하는 듯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구나.”
“예. 괜찮습니다. 저를 낳은 부모님이 혹시나 좋지 못한 사람들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제 착각이더군요. 누구보다 선하고, 성실히 인생을 사셨던 분들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저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왔는데 정반대였습니다. 사실 저는 누구보다 사랑받고 축복받으며 태어난 존재였습니다.”
“끌끌끌. 좋구나. 네놈 얼굴에 묻어있던 일말의 그늘이 싹 걷혀서 썩 볼만한 얼굴이 됐어.”
“그전에는 어땠는데요?”
“네놈이 더 잘 알지 아느냐. 자신의 뿌리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 너는 잘 감췄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아서라 요놈아. 내 눈엔 다 보였다.”
“회장님 앞에선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그런데 언제까지 회장님 회장님 할게냐? 이제 집안 식구가 될 건데.”
“저도 아는데 할아버님은 아직 입에 잘 안 붙어서···. 노력해보겠습니다.”
“할아버님은 무슨 할아버님이야? 그냥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예?”
“너랑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이제 그렇게 부를 때도 되지 않느냐?”
“……..그건 그렇죠.”
호칭 하나 바꾸는 것뿐인데 식은땀이 날 정도로 어렵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
“끌끌끌. 오냐 나도 잘 부탁하마. 참고로 이번 바둑은 내가 이긴 듯하구나. 바둑은 못 두는 손녀사위야.”
탁!
치사하게 방심을 틈타서 허점을 파고들다니.
아무래도 바둑은 심리전이 중요한 게임인데 살짝 흔들린 멘탈이 패전의 요인이 된 듯싶었다.
“몇년 사이에 실력이 엄청 느셨네요. 이제는 한판 이기기도 힘이 듭니다.”
“끌끌끌.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너 하나 이겨보려고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 얼마인지 아느냐?”
정말 우리 할아버님 승부욕 하나는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찌 보면 나이를 초월한 저 승부욕과 열정이 북산의 황금기를 이끈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승리가 썩 흡족하셨던지 손수 차까지 내려주시는 이 회장님.
“그나저나 뉴스에 흘러나온 얘기들은 모두 사실이렷다?”
“이번에 일본 정부 사과의 막후에 제가 있다는 소문 말입니까?”
“소문이 아니지 않느냐?”
“뭐···. 어차피 다 까발려진 거···. 맞습니다. 제 지분이 없진 않습니다.”
“네놈이 치고 다니는 사고야 늘 어이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말문이 턱 막히는구나. 수요미씨 슌사쿠 그 늙은 이무기를 협박해서 사과를 받아내? 어느 나라 기업가도 못 한 일을 투자가인 네가 해냈구나.”
“제가 기업가가 아니니깐 가능했던 겁니다. 수요미씨가 가진 막대한 영향력이면 웬만한 기업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겠지만 저는 투자가입니다. 더구나 외부자금 유입 없이 자체 계정만으로 투자를 집행하는 아주 특수한 벤처캐피탈이죠. 그들이 저를 압박할 패는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더 난감했겠죠. 협박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야 통하는 법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수요미씨이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슌사쿠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원하는 바를 쟁취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잘 안다. 수요미씨의 힘이 얼마나 막대하고, 일본 내에서 슌사쿠가 가진 입지가 어떠한지 말이다. 북산뿐만 아니라 국내 어떤 기업의 총수라도 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창피한 일이지만 그게 현실이지. 그 어떤 정치인도, 기업인도 하지 못한 일을 너 혼자 해낸게야. 장하구나.”
이 회장님이 이 정도로 노골적인 칭찬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집안 어르신한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어디 보자. 그럼 이번에 정확히 얼마를 번 거냐? 대체 얼마나 벌었기에 천하의 슌사쿠가 벌벌 떨면서 한국까지 쫓아왔을꼬?”
“혹시나 해서 미리 말씀드리는건데 일본에 지진이나 화산폭발이 일어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운 좋게 얻어걸렸을 뿐이고, 다시는 파생상품 같은 건 할 생각이 없습니다. 대략 30조 정도 벌었습니다.”
옵션 투자 수익금을 밝히면 항상 따라오는 질문이었기에 이제는 내가 먼저 선수 치는 지경이 이르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신 듯했지만, 그 수치를 한참 상회하는지 이 회장님이 하얀 수염을 부르르 떨며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사, 삼십조? 허···. 북산 상위 계열사 1년 매출과 비등한 돈을 투자 한번에 벌다니 허허···. 네놈을 보고 있으면 기업놀이 하면서 아등바등 돈 버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나야 이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그렇다 치지만 어디 가서 그 얘긴 하지 말거라. 세상에 돈보다 사람의 사기를 꺾는 것도 없는 법이야.”
“당연하죠. 회장···. 아니, 할아버지 앞이니깐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끌끌끌 어째 돈 자랑 할 때가 나밖에 없다는 뜻으로 들리는구나?”
“그냥 손녀사위가 할아버님께 점수 따려 어필한다고 생각해주세요.”
“나는 네가 30조를 벌었다는 사실보다 그걸 통해 국격을 높여줬다는 것에 더 감동을 했다. 단순히 돈만 좇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건 보통의 그릇으로 할 수 없는 일이거든. 그러니 요즘 사람들이 네 이름에 열광하는 것 아니겠냐? 듣자 하니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가 좋다던데?”
“그것 때문에 아주 피곤해 죽겠습니다. 결혼식만 올리면 한동안 외국에 가 있던지 해야겠어요.”
“아! 결혼식이 언제라고 했지? 요즘 영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7개월 뒤입니다. 아직 기간이 좀 남았어요.”
“결혼 준비는 잘 되어가느냐? 우린 다른 집안이랑 달라서 본인들 결혼은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
“지원이와 머리 싸매고 열심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손님이 적진 않을 것 같아서 식장 잡는 게 곤혹이네요. 북산 쪽 손님도 많이 오시죠?”
“아마 대한민국에 20대 기업 총수들은 죄다 온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역시 북산 왕 회장님! 아직 영향력 건재하십니다.”
“쯧쯧, 눈치가 없는게냐 아니면 다 늙어빠진 영감 물 멕이는게냐?”
“예?”
“그 양반들이 날 보러 왜 와? 죄다 널 보러오는 거지.”
“저를요···?”
“나한테 잘 보여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이제 경영은 아들놈들이 알아서 하는데. 그것보다는 네놈한테 잘 보이려 죄다 모여들게다. 안 그래도 벌써부터 청첩장 나오면 꼭 달라고 어찌나 애걸복걸하던지. 누가 보면 청첩장이 아니라 초대장인 줄 알겠어.”
“굳이 그렇게까지···.”
“슌사쿠도 바싹 엎드린 마당에 눈치가 안 보일 수 없겠지. 끌끌끌. 그 치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신경끄고. 대운이 너도 초대할 손님이 적진 않을 듯한데 미리 얘기는 했느냐? 빈사르 왕세자 같은 경우는 미리 알려줘야할게야. 1년 치 스케쥴은 꽉 차있는 공사다망한 양반이라.”
“아! 그렇겠네요. 늦기 전에 연락 돌려야겠어요.”
이 회장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초대할 외국인 손님 중에는 범상치 않은 신분의 인간들이 많다 보니 미리미리 알려줘야 서로 난감하지 않을 듯했다.
북산 타워를 빠져나온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식탁 의자에 외투를 던져놓고선 소파에 앉아 빈사르 왕세자에게 연락을 했다.
개인 친분이 있는 사람들만 연락할 수 있는 직통 전화였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연락하는 거네.”
결혼 준비다 뭐다 해서 워낙 정신이 없었기에 근래에는 게임 접속도 거의 하지 못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더니 연결된 통화.
“여보세요? 왕세자님? 앗살라말라이꿈?”
하지만 어쩐 일인지 침묵만이 흐르는 수화기.
“뭐지? 잘못 걸었나?”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오랜만이군.]“아! 왕세자님. 잘 지내셨습니까? 저는 또 번호가 바뀐 줄 알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양반···. 단단히 삐졌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 삐돌이 왕세자의 토라짐을 단번에 푸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요즘 연락을 뜸하게 드려서 죄송합니다. 결혼 준비를 서두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결혼?]“예. 일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혼인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결혼이 확정되고 왕세자님께 처음으로 알려드리는 겁니다.”
이후, 약 10초 후에 들려오는 나직한 목소리.
[정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