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58)
358화 세기의 결혼식(1)
[정말인가···?]살짝 바뀐 목소리 톤.
그 안에는 분명 옅은 만족감이 묻어있었다.
“제 인생 가장 중요한 이벤트인데 왕세자님께 먼저 알려드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애초에 그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흐음···. 하긴 그런 중요한 소식은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에게 가장 먼저 알리는 게 맞지.]비록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빈사르의 입가에 제법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있을 거라는 것을.
“왕세자님 스케쥴이 워낙 바쁘시니 미리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미리 전해드립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절대 부담가지시지 마시고, 다른 일정 있으면 안 오셔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예?”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네. 가장 아끼는 친우가 결혼을 한다는데 하늘이 두 쪽 나도 가야 하지 않겠는가?]“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역시 의리 하나는 최고인 왕세자였다.
[어떤 여자인가?]“왜 기억 안 나십니까? 저번에 왕세자님 별장에 휴가 갔을 때 같이 놀러 갔던···.”
[아! 그 세 여인? 합동결혼식으로 진행되는 건가?]이 아저씨가 대체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끔찍한 소리를 세상 해맑게도 한다.
“서, 설마요. 전 일편단심 민들레. 오직 한 여자만 사랑할 겁니다. 왜 그때 검은 머리에 가장 이쁘게 생긴 여인이 있지 않았습니까?”
당시 홍슬기와 고유라는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염색 머리를 하고 있었고, 지원이만 유일하게 흑발을 하고 있었다.
[아! 그 둘째 부인. 기억나는군. 축하하네.]맙소사. 저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니.
혹시나 세 여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싶어 등골이 오싹했다.
“큼큼···. 아무튼,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청첩장 드리러 사우디 한번 들리겠습니다.”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안 그래도 자네가 없어서 요즘은 통 게임이 재미가 없어. 마침 스튜디오SH에서 신작 게임이 나온다고 하니 같이 즐기면 되겠군.]청첩장 드리러 간다고요 이 양반아! 게임하러 가는 게 아니고.
라는 말이 턱 밑까지 올라왔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나로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갑 오브 갑이었다.
“물론입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뭘 갖고 싶나?]“예?”
[그대가 결혼한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혹시 갖고 싶은 게 있는가?]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버렸다.
“그, 글쎄요? 저는 왕세자님의 마음만 받아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일단 내뱉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왕세자가 혀를 찼다.
[쯧쯧. 사람이 그렇게 욕심이 없어서야···. 하긴, 그대 정도면 웬만한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겠지. 이해했네. 자네 혹시 보석으로 치장한 낙타를 선물로 보내주면 받겠는가?]“예? 뭘 보내주신다고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낙타 인형을 보내준다는 건가?
[낙타 미모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고 혈통의 낙타일세. 자그마치 알무하라미 가문의 낙타 와힐라의 피를 이어받았지. 다리가 길고 곧으며, 털은 매끄럽게 윤기가 나니 보고만 있어도 흡족한 기분이 들 걸세. 그대가 흡족할 만큼의 보석 장신구로 치장을 해서 보내주지.]“자, 잠깐만요 왕세자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기겁한 나는 통화인 것도 잊고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맙소사. 살아있는 낙타를 그것도 보석으로 휘감아서 보내겠다니.
다른 사람 같았으면 픽 웃음을 터트렸겠지만 안타깝게도 저런 짓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게 문제였다.
[농담일세. 선물은 내가 알아서 준비하는 걸로 하지.]“하하하···. 그렇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마냥 농담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글쎄요···. 신부 쪽에서 제법 많은 많이 올 것 같긴 한데 제 손님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럴 리가? 그대 인맥 정도면 손님이 적지 않을 텐데?]“대부분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라 결혼식에 초대하기엔 좀 그렇습니다. 결혼으로 장사할 것도 아니고 괜히 초대했다가 상대방이 부담가질 것 같아서요. 저는 그냥 술라이만 형님과 왕세자님 정도면 충분합니다.”
[흐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술라이만과 얘기해서 같이 갈 인물들이 있으면 함께 가도록 하지.]“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세자님. 아무튼, 조만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빈사르 왕세자와의 식은땀 나는 통화가 끝이 났다.
오랜만에 연락이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삐져있었다니···.
더 늦게 연락했으면 위험할 뻔했다.
– 깨톡
슬슬 퇴근을 준비하려던 중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
[이웃사촌 홍슬기: 오늘 저녁에 바빠요? 프랑스에서 어제 도착했는데 검냥이들 보고 싶어요 ㅠㅠ]“이야. 오랜만이네 이웃사촌씨.”
장기간 해외 로케 촬영을 간다고 거의 반년 넘게 보지 못했던 홍슬기였는데, 간만에 연락 받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지원이도 개인 약속이 있어서 시간은 괜찮았다.
[매일 보던 시간에 아지트에서 접선하는 걸로] [이웃사촌 홍슬기: 콜!]***
모두가 꿈나라로 떠난 야심한 밤.
이 시간의 옥상 정원은 언제나처럼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잠시 후, 옥상 문이 열리며 유모차를 이끈 누군가가 정원길을 가로질렀다.
유모차가 도착한 장소에는 후드를 뒤집어쓴 선객이 휘황찬란한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야 이게 누구야. 진짜 오랜만이네.”
고개를 돌린 홍슬기가 뒤집어쓴 후드를 젖히고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로요! 이게 얼마 만인지···. 체감은 한 몇 년 만에 보는 것 같은데요?”
“오바하기는. 그래봤자 겨우 6개월 정도거든?”
홍슬기와 알고 지낸지도 어느덧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연예인과 일반인, 아무런 접점 없는 이웃일 뿐이었지만, 질긴 인연의 고리는 우리 두 사람의 친분을 조금씩 두텁게 만들었다.
“얘네들도 오랜만이지?”
유모차 캐노피를 젖히자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의 털을 핥아주는 네 마리의 검냥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떡해···!”
양볼을 감싸 쥐고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른 홍슬기가 쪼그려 앉아 검냥이들과 눈을 맞췄다.
“어머! 얘들아 잘 지냈니? 세상에! 오늘은 네 마리 다 데리고 나왔네요? 무슨 날이에요?”
“응. 아마 이렇게 옥상에서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거든.”
“그게 무슨···. 아!”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한 홍슬기가 이내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지원이한테 들었어요. 결혼식 날짜 잡았다고.”
“응. 벌써 그렇게 됐네.”
“그럼 곧 신혼집으로 이사 가겠네요?”
“그렇게 되겠지.”
“아···. 아쉬워서 어쩌나···. 오빠 가는 건 아무렇지 않은데 우리 검냥이들 못 보는 건 너무 마음이 아픈데요.”
“그래도 개미 눈곱만큼은 섭섭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있는데.”
“헤헤헤. 농담이에요. 당연히 서운하죠. 빡빡한 연예계 생활에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었는걸요.”
아련한 눈이 된 홍슬기가 검냥이들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들이 새빨간 혓바닥으로 손을 핥았다.
평소 같았으면 난리 블루스를 쳤겠지만 똑똑한 녀석들이니 알 거다.
여기에서 이렇게 홍슬기를 만나는 게 사실상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정말 축하해요.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두 사람이 만난다고 얘기 들었을 때 내심 얼마나 박수쳤는지 모르죠?”
“그랬니? 전혀 몰랐네.”
잠깐 말없이 검냥이들만 쓰다듬던 홍슬기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딸싹거렸다.
“사실 예전엔 헷갈렸던 적도 있었어요.”
“응?”
“기억나죠? 오빠랑 저랑 처음 만났던 곳이 유기견 보호소였다는 거.”
“당연하지. 연탄이 저 녀석도 거기서 만난 건데.”
“그때는 솔직히 오빠라는 사람이 되게 이상했어요. 분명 일반 대학생으로 알고 있었는데 절 보면서 어려워하지도 않고, 청소 못 한다고 오히려 틱틱거리기나 하고, 그 유명한 이주석 훈련사님과도 친하고, 예쁘게 생긴 고양이도 오빠만 따르고. 뭔가 억울하면서 약이 오르더라고요. 제가 어디 가서 주목 못 받는 스타일이 아닌데···.”
어딜가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톱스타인데 어련할까?
근데 당시 상황만 생각하면 홍슬기 입장에선 어이없을만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어요. 어차피 스쳐 가는 인연. 또 볼 일 있겠냐 싶었죠. 그런데 웬걸? 같은 오피스텔에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좀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어요. 뭐랄까···. 앞으로 이 사람과 계속 마주치겠구나 하는 어떤 여자의 촉 같은게 발동했다고나 할까?”
“그래? 신기하네.”
“이후에 우리 검냥이들 덕분에 종종 보게됐고, 그 외에도 오빠한테는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죠. 생각해보면 그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뭔가···. 이런 말까지 하면 주책이라 하겠지만 오빠를 못 만났으면 지금처럼 인생이 잘 풀렸을 것 같진 않아요.”
확실히 여자의 촉이 무섭긴 하다.
당시 홍슬기로부터 황금빛을 봤고, 그 여파로 엎어지기 직전까지 갔던 ‘네메시스’라는 작품이 내 투자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으며, 홍슬기도 오랜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 역시 제법 두둑한 수익을 벌 수 있었으니 서로 윈윈한 셈이었다.
“그렇게 오빠랑 가까워지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내가 오빠를 남자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응? 나를?”
전혀 예상치 못한 흐름에 놀라서 딸꾹질이 튀어나올 뻔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척척 해결해주니깐 뭔가 듬직하기도 하고, 의지하고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거든요. 저도 긴가민가했어요. 이게 이성적인 감정인지 뭔지.”
검냥이들에게서 시선을 뗀 홍슬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눈을 또렷이 쳐다봤다.
“나중에는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아! 든든한 친오빠가 있으면 이런 느낌이겠다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이번에 지원이랑 결혼한다고 할 때도 누구보다 기뻤어요. 제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된다고 하니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둘 중에 누굴 본다고 해도 딱히 불편할 일은 이제 없을 테니.”
실제로 처음에는 으르렁거리던 지원이와 홍슬기는 프랑스 휴가를 다녀온 이후로 급격히 친해지며 지금은 친자매와 다를 바 없는 친분을 과시했다.
“아무튼, 오빠와 이웃이어서 너무 좋았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 쭉 이어갔으면 해요.”
환한 미소로 손을 내미는 홍슬기.
그런 홍슬기를 빤히 바라보다가 씨익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결혼식은 올 거지? 나 뒤끝 무지 길다? 무조건 와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안 갔다가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축의금 얼마 하는지 볼 거다? 대한민국 최고 여배우의 씀씀이를 보겠어.”
“흥! 오빠 말고 지원이 쪽에다가 할거거든요?”
“그러시던가. 어차피 부부는 공유 경제인거 모르니?”
“아오! 얄미워.”
그렇게 우리는 친남매처럼 투덕거리며 유쾌한 작별식을 끝마쳤다.
***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러 새해가 찾아왔고 신록의 계절인 오월이 다가왔다.
세기의 결혼식 중 하나로 기록될 기적의 투자가 송대운과 북산 가 최고 재원(才媛)이라 불리는 이지원의 결혼식을 며칠 앞둔 시점.
한국의 공항으로 전 세계 개인 전용 비행기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