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360)
360화 벤처캐피탈의 신화(完)
[ 美 포브스 선정, 역사상 최고의 투자자 TOP 4]시장에서 거액의 돈을 버는 공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투자자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투자 전략과 철학을 갖고 있다.
짧은 기간을 두고 봤을 때 전체 시장을 앞지르는 실적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십 년 동안 시장을 거스르는 실적을 내는 투자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로 다른 경제적, 정치적, 규제적 환경에서 투자했기에 실적을 비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오랜 기간 꾸준히 시장 상황과 상관없는 실적을 냄으로써 전설의 반열에 오른 역대 최고의 투자자 4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4위: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을 이긴 남자로 칭송받는 조지 소로스는 30년 가까이 연평균 32%의 수익률을 올린 전설적인 투자가이다. 특히 1992년 영국 통화 위기 당시 100억 달러어치의 영국 파운드화를 공매도해서 단 하루 만에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드린 사건은 아직도 금융계에서 회자되곤 했다.
3위: 짐 시몬스(Jim Simons)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Renaissance Technologies)를 운용하는 투자가로 1988년에서 2018년 사이, 연평균 39%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달성한 위대한 투자가이다.
2위: 워런 버핏(Warren Buffett)
오마하의 현인이 수십 년간 역대 최고 투자자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던 이유는 엄밀히 말해 수익률 때문이 아니다. 근 60년 동안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꾸준한 복리 수익률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버핏의 투자가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장기적인 실적이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이는 없을 것이다.
1위: 송대운(Dylan Song)
워렌 버핏을 밀어내고 새롭게 1위에 등극한 위대한 투자가이다.
그는 여타 다른 투자가와는 궤를 달리하는, 어찌 보면 괴짜에 가까운 행보를 보여왔다.
순위에 있는 투자자 중 유일하게 벤처캐피털리스트이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믿기지 않은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20년 가까이 벤처 투자를 하면서 그가 달성한 투자 성공률은 무려 80%에 육박한다.
평균 수익률은 감히 추정조차 불가능한 수준.
더욱 무서운 점은 그의 나이가 채 오십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고려하면 그를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손꼽았을 때 반론을 제기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
포춘(Fortune)과의 인터뷰를 마친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선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했다.
“시간이 좀 빡빡하네요. 바로 출발해주세요.”
“예, 회장님. 바로 공항으로 모시겠습니다.”
차가 출발하자 턱을 괴고선 차창 밖을 응시했다.
간만에 찾은 뉴욕이라 그런지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바쁜 일상 속에 사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
휙휙 지나쳐가는 뉴욕 길거리를 바라보며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돌이켜봤다.
정말 쉴새 없이 달려온 세월이었다.
결혼 이후, 가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았지만, 일적으로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뭐랄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단순히 자산이 얼마 있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자아실현 혹은 가장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였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신혼 생활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고, 2년 후에 우리 사랑의 결실인 도윤이가 태어나면서 그 행복은 몇 곱절이 되었다.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나날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려움도 커져갔다.
그래서 더더욱 이를 악물고 가정에도, 회사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수가 있다면 친부모님 사진에서 하얀빛을 본 이후로 더 이상 ‘빛’을 본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빛’에 살짝 당황하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내 인생에 큰 변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삶이 더욱 진취적으로 바뀌었다.
비록 ‘빛’의 도움이 있었을지언정 내 개인 역량 또한 괄목한 성장을 이룬 상태였고, 이 사람이면 분명 ‘빛’을 내뿜었을 것이라는 내 판단에 자신감도 생겼다.
결론적으로 능력을 잃은 것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실망하거나 좌절하진 않았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애초 ‘빛’을 볼 수 있었던 능력도 험난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들을 위한 부모님의 선물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아! 회장님. 혹시 연락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국가식량물자비축국에서 회사로 또다시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조 실장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내가 전화를 안받으니 이제는 회사에다가 전화하나 보네요.”
“예, 아주 집요하고 끈질깁니다. 듣기로는 회장님을 만나 뵙기 위해 정계 인사에 로비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쯧쯧, 열심히들 사시네. 열심히들. 그러게 진작 좀 잘하지. 지금 와서 뭘 어쩌겠다고.”
지들 잘난 맛에 사는 중국 정부가 자존심이고 뭐고 다 던져가며 굽신대는 이유가 있었다.
“설마하니 식량 위기가 정말 닥칠 줄은 몰랐겠지.”
10년 전 중국에서 기상 이변이 발생했다. 몇 년째 지속되는 극한의 강우와 극한의 온도 상승으로 인해 곡물 수확량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이었다.
극한의 강우는 곡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 흡수와 결실을 위한 수분을 방해했고, 지난 10년간 중국의 곡물 수확 감소분은 40%에 육박했다.
“이런 기상 이변에도 잘 자랄 수 있는 새로운 종자를 제이미가 개발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혹시 기억하는가? 하버드 특강을 갔을 때 도강하러 들어왔다가 나에게 투자를 받았던 청년 농부 제이미.
제이미가 창업한 ‘블루어스’는 막대한 투자금을 수혈받고 제대로 된 연구시설과 인력을 갖추며 여러 획기적인 종자 개발을 연이어 성공해낸다.
물론 이 기반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꾸준히 연구해 온 제이미의 연구 노트가 빛을 발했다.
종자 시장에서 무섭게 영향력을 높여가기 시작한 블루어스는 마침내 10년 만에 세계 종자 기업 5위안에 드는 기염을 토해냈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시기여서 어마어마한 주가를 날리는 중이었다.
“회사에다가 중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도 말라고 전해주세요. 더 애끓게 만들어놔야 나중에 협상하기 편합니다.”
“예.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회장님.”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댄 나는 내가 투자했던 많은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반추해봤다.
우선 내 첫 엔젤투자이자 ‘따봉’이란 SNS를 서비스했던 베슬로는 3년 전 미국 MS에 완전한 매각절차를 밟았다.
당시에는 고민도 많았고, 그 좋은 서비스를 왜 넘기냐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시기적절한 매각이 아닐 수 없었다.
SNS 트렌드는 매년 무섭게 변화했고, 그 변화에 걸맞은 획기적인 서비스들이 연이어 출시되다 보니 기존의 SNS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주식으로 따지면 꼭지에서 제대로 판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레스큐 에이스도 그런 식으로 풀릴 줄은 생각도 못 했지.’
야쿠자 출신 CEO 다케시가 운영하는 ‘레스큐 에이스’.
쓰나미 구호 물품의 개발로 출발한 이 스타트업은 지금 놀랍게도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브랜드 회사가 되어있었다.
끔찍한 자연재해에서 수많은 인명을 구해낸 레스큐 에이스의 인지도는 무섭게 치솟았고, 시기에 맞춰 다양한 아웃도어 물품들을 출시했다.
일본인들에게 ‘레스큐 에이스’의 로고가 박힌 물품은 마치 행운의 상징, 혹은 부적과 같은 의미가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됐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은 레스큐 에이스는 점차 해외 시장으로도 영향력을 넓혀갔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웃도어 브랜드 회사가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그 밖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셀의 상용화를 이룩한 북산솔라는 세계 태양광 패널 업계 1위 자리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고, SI하이텍 역시 전력 반도체라는 한 우물만 파더니 지금은 시장 파이를 모조리 먹어 치워버렸다.
희토류 영구자석의 대체재인 테트라테나이트를 개발해낸 이지스 머터리얼즈는 미국 증시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짐바브웨 리튬 광산을 함께 개발한 마스비누 역시 자체 개발한 AI 자원 탐사 프로그램인 리소스 프로스펙터(Resource Prospector)가 연이어 유의미한 실적을 냄으로써 기업가치가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 밖에 다른 스타트업들은 충분한 성장을 하고선 엑싯를 통해 내 손을 떠나갔다.
허나 중요한 건 창업자와의 연결 고리는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째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흐르는 것 같네.’
지난 십 년이 정말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간 느낌이었다.
때아닌 감상에 젖어 든 나는 휴대폰 클라우드에 저장된 결혼식 사진을 뒤적거렸다.
‘참 많이도 왔네.’
보육원에서 맺은 인연부터, 대학 동기들, 회사 직원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맺은 인연들까지.
기적은 인연을 낳았고 인연은 기적을 낳았다.
지금 내가 살아있기에 경험할 수 있는 기적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여 ‘삶’이라는 하나의 장편 소설을 만든다.
우리는 그 소설 속 주인공이자, 그 소설을 만드는 작가.
내가 이 소설을 어떻게 집필하느냐에 따라 소설은 비극이 될 수도 있고, 뻔하디뻔한 싸구려 소설이 될 수도 있으며,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명작이 될 수도 있다.
그 소설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인연은 기적을 품고 있고, 나 자신이 바로 그 기적의 시초이자 근원이다.
그 기적을 발견하고 관조할 수 있다면 소설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기적이 될 수 있다.
살아있기에 가능한 기적의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비로소 나 자신의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정의한 인생(人生)이었다.
“그나저나 회장님. 비공개로 열리는 GFC(세계 경제 금융 컨퍼런스)에는 정말 불참하셔도 괜찮겠습니까? 회장님을 기다리는 인사들이 많을 텐데요.”
“저도 참석하고는 싶지만, 아시다시피 더 중요한 일정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더 중요한 일정이라면···?”
“도윤이 학부모 참관 수업이요. 애 엄마가 해외 출장을 가 있어서 제가 무조건 가야 합니다.”
“아, 그러면 당연히 가야겠군요.”
내 지극한 가족 사랑은 회사 내에서도 소문이 났기에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나는 돌아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
서울 강서구 탑뫼 초등학교.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나는 주변을 걸으며 여유 있는 사색을 즐겼다.
“생각해보니 학부모 참관 수업은 이번이 두 번째네.”
15년 전쯤, 새싹 보육원 동생이자 최연소 황금빛 주인공이기도 한 재철이를 기억하는가.
당시 나는 재철이가 골프에 빛나는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선 친엄마와 같이 살 수 있게 해주었으며 금전적으로도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바 있었다.
어느덧 이십 대가 된 재철이는 국내에서 열린 골프 대회를 모조리 석권하고선 지금은 세계 무대에서 맹활약을 떨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도 무슨 상만 탔다 하면 꾸준히 연락해오는 의리 있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을 하던 중 창문 너머로 교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애들이 정말 없긴 하네···.”
듣기로는 1학년이 총 5학급이 안 되고, 한 반에 학생이 채 15명도 채 안 된다고 들었다.
10년 전, 심각했던 저출산 문제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1-3]큼지막한 선글라스를 끼고 교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교실은 학부모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애닳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도윤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아빠아아아!!!”
“어이구! 내 새끼.”
한껏 상기된 얼굴로 폴짝폴짝 뛰는 것이 학교에 아빠가 찾아오니 신기하면서 좋은가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저리도 좋아하니 아비 된 입장으로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자 본격적인 참관 수업이 시작되었다.
미술 시간인듯 흰 도화지에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을 그리는 미션이 주어졌다.
다들 병아리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며 집중하던 그때, 도윤이가 옆자리에 앉은 짝꿍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니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 도윤이가 본인 것을 같이 쓰자고 제안하는 듯 싶었다.
아이의 행색을 살펴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해진 옷을 입고 있었고 다소 추레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수군대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무리하더라도 사립으로 보낼 걸 그랬어요. 애들 간에 격차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어머, 유진이 엄마도 느꼈어요? 아니 글쎄 아직도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애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듣자 하니 해외 한번 나가본 적 없는 애도 있다던데···. 이거 수준이 너무 안 맞아서 고민이에요.”
“더 늦기 전에 전학이라도 보내야 하나···.”
물론 나 역시 도윤이를 1년 학비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사립초에 보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초등학교 때 만큼은 다양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편견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고나 할까.
지금도 그 결정에는 후회가 없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도윤이가 옆에 앉은 짝꿍을 정말 알뜰살뜰 잘도 챙겼다.
참관 수업이 끝이 나고, 담임 선생님께 인사드린 후 도윤이를 차에 태웠다.
오늘 하루는 아들과 오붓한 데이트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도윤이가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어린이 뮤지컬을 보러 가는 길.
차가 적색 신호에 걸리자 조수석에 앉은 아들을 힐끔 쳐다봤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공룡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도윤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옆에 짝꿍은 도윤이 제일 친한 친구야?”
“웅! 지호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야.”
“그래? 우리 도윤이가 지호 엄청 좋아하나 보다. 아끼던 색연필까지 빌려주는 걸 보니.”
“지호니깐 빌려줘도 괜차나.”
“도윤이는 지호가 왜 좋아?”
“움······. 지호한테는 반짝반짝 빛이 나거든.”
“하하, 그렇구나. 반짝반짝 빛났······.”
아이다운 순수한 대답에 픽 웃음이 나왔다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순간 드는 설마 하는 생각.
급한 대로 갓길에 차를 잠깐 세우고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도윤이에게 물었다.
“무슨 색깔 빛이었어?”
“어엄청 이쁜 황금색!”
“그걸 언제부터 봤어?”
“나도 몰라아. 기억 안나. 근데 아빠한테도 보이는 데에? 반짝반짝 이쁜 황금색! 히히.”
“허억···.”
차창 너머로 전해지는 봄날의 따스한 햇볕 속에서 해맑은 미소 짓고 있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나는 그저 붕어처럼 입만 뻐끔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