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42)
42화 뜻밖에 재회
지분이 희석되며 내가 보유한 베슬로 지분은 총 17%.
여기서 포스트 밸류에이션 1,000억의 가치를 인정받아 150억의 투자금을 유치했으니, 베슬로의 1주당 가격은 그야말로 떡상.
“내가 가진 주식이 2만개니깐···.”
계산기를 가득 메운 숫자의 향연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170억!?”
이게 말이 되는 수익률인가.
내가 투자한 금액은 2억.
고작 6개월 조금 넘는 기간 만에 약 170억이라는 돈으로 뻥튀기가 되었다.
물론 실제 돈이 아닌 그냥 가치를 말한 것 뿐이지만.
“미쳤네. 수익률만 따지면······.”
계산기를 두드리던 내 동공이 부릅떠졌다.
아니, 코인도 아니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이란 말인가.
“충분히 나올만하죠.”
벙쪄있는 나에게 이지원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타트업들 중에 엑싯(Exit)은 커녕 시리즈A까지 생존률이 2%가 안 돼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위험하니깐 그런 수익률도 가능하다는 거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자했다가 크게 손실 보는 VC도 그만큼 많아요.”
이지원의 차분한 설명에 뜨거웠던 머리도 조금씩 식어갔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이 리턴에는 하이 리스크가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법.
그렇기에 투자심사역(VC)들이 치가 떨릴 정도로 분석에 분석을 통해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던가.
물론 이번 베슬로 투자건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르긴 했다.
예비투자심사는 건너뛰고, 본투자심의, 계약서 조율 등 모든 과정이 한달 만에 마무리 된 무척이나 이례적인 케이스였다.
그만큼 투자 의지가 강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물론 이 회장님의 입김이 들어간 탓이 제일 컷겠지만.”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베슬로는 이제 막 달리는 기차야. 제대로 달리기 시작하면···.’
이번에 유치 받은 150억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무섭게 유저들을 흡수하고 있었고, 부족했던 인력도 충원하며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더구나 새 비즈니스 모델도 곧 적용예정이었기에 매출 상승도 기대할 수 있었다.
“후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묘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이걸 뭐라고 표현 해야 할까?
성취감? 만족감? 기대감? 뿌듯함?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혼합된 것일 수도 있겠다.
확신한 건 코인으로 얼떨결에 벌었던 돈하고는 그 결이 너무 달랐다.
‘재밌어.’
분명 같은 ‘돈’일지언데 어찌 이리도 다르게 느껴질까?
아마 그것은 베슬로의 첫 시작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 모든 발자취에 내 흔적이 묻어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비록 팀원은 아니었지만, 엔젤투자자를 자처하며 불씨를 지펴주었고, 이후 베슬로가 난관에 부딪힐때 마다 어쭙잖은 조언을 하며 결과적으로는 잘 극복해나갔다.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함께 했기 때문일까?
돈의 ‘농도’가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깊은 사색에 빠져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지원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응?”
넋을 놓고 있다가 의아한 눈으로 지원이를 쳐다봤다.
그녀의 짙은 갈색빛 눈동자에서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왔다.
“신기하다구요. 오빠는 제가 이제껏 살면서 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이에요. 지금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거든요.”
“뭐가 말이 안 돼?”
“해커톤을 나가자고 제안했을 때···. 오빠는 분명 창업이니 이런 거 하나도 모르는 사람 같았어요. 아니, 별로 관심도 없었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해커톤이라는 이름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다른 학교 학생들도 온다고 하니 대외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참가했던 게 컸다.
물론 민동원 교수가 내 걸었던 과제와 시험 면제라는 미끼가 제일 달콤했지만.
“분명 그랬는데···. 별 관심도 없이 앉아있다가 갑자기 장원이를 보고 적극적으로 바뀌었어요. 그 이후부턴···.”
이지원의 새하얀 이마에 옅은 주름이 잡혔다.
그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이지원이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운듯 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당시 아무것도 없던 장원이에게 선뜻 투자를 제안했던 게. 그때 오빠 얼굴에선 한점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이장원이라는 인물이 잘 될거라고 미리 알았던 사람처럼···.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거죠?”
이지원의 물음에 순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재벌도 아닌 내가 거액의 돈을 평범한 대학생에게 아무렇지 않게 투자했다는 것이.
엄연히 말하자면 황금빛이 준 확신이었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도 얘기했듯이 나는 장원이의 가능성을 봤을 뿐이야. 해커톤을 하면서 따봉의 사업성도 충분히 봤고. 무엇보다···.”
순간 이지원의 몸이 내 쪽으로 한껏 기울었다.
샴푸인지 향수인지 모를 특유의 향기가 코로 훅 치밀었다.
“내 이름을 떠올려보거라. 큰 대! 옮길 운! 아주 운수가 좋다는 뜻의 대운(大運) 아니더냐. 하하하. 이제야 이 오라버니의 운빨을 실감하겠느냐.”
어쩌겠는가.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수밖에.
바짝 긴장해있다가 김이 빠진 이지원이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운이 좋은건지, 눈이 좋은건지, 실력이 좋은건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알겠죠.”
어쩐지 선전포고 같은 뉘앙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얘가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나저나 북산벤처스 이종훈 대표는···. 어땠어요?”
“응? 갑자기 이 대표님은 왜?”
“아뇨···. 그냥. 저도 평소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아무래도 이지원 역시 이쪽 업계에 관심이 커진 듯했다.
어찌 됐건 질문을 받았기에 턱을 긁적이며 이종훈 대표에 대해 떠올려봤다.
“젠틀한 신사의 표본 같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또 자유분방한 느낌도 있으시고···. 직원들 대하는 거 보면 굉장히 친절하시고, 솔직히 그 나이 어른 중엔 꼰대도 많은데 그런 느낌이 하나도 없달까?”
북산벤처스 이종훈 대표에 대한 나의 평가는 무척이나 후한 축에 속했다.
자식뻘인 나와 장원이에게 늘 존댓말을 쓰며 존중해주었고, 우리가 말할 때마다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
나이답지 않은 트랜디한 유머 감각도 있어서 함께 자리하고 있으면 절로 유쾌해지는 사람이었다.
이승환 회장님과는 완전 느낌이 달랐는데, 이 회장님이 불이라면, 이종훈 대표는 물 같다고나 할까?
“그···. 래요?”
말끝을 살짝 흐린 이지원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다른 사람 칭찬하고 있는데 왜 자기가 더 좋아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빠는 엑셀러레이터에 재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엑셀러레이터?”
“오빠가 했던 모든 것들이 엑셀러레이터가 하는 일이잖아요. 베슬로의 성장을 위해 시드를 투자하고 옆에서 엇나가지 않도록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그러면서 수익도 올리구요.”
“한국에 엑셀러레이터라는게 많아?”
“그건 아니에요. 아직 실리콘밸리에서 넘어온지 얼마 안된 시스템이라 많진 않아요. 앞으론 많아지겠지만요.”
“엑셀러레이터라…”
관심이 갔다.
이번 투자를 유치를 준비하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다.
그러면서 이런 쪽으로 진로를 정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재밌고 보람찼으니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당장에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기에 일단 그 생각은 접어두었다.
그렇게 이지원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조만간 근사한 데서 식사하기로 약속하고 자리를 파했다.
***
– 삑삑삑삑삑
철컥
오후 수업까지 마친 후, 도서관에서 시험공부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 어느새 늦은 저녁이 되었다.
– 애오오옹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문 앞에 일렬횡대로 옹기종기 모여있던 까만 아깽이들이 꼬물꼬물 걸어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모습이 너무 어여쁘고 귀여워 입가에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안 싸우고 잘들 지내고 있었냐 이놈들아.”
안아달라고 빼액 빼액 울어대는 석탄, 공탄, 흑탄 세 녀석을 모조리 품에 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오늘 하루 피곤이 한 번에 싹 씻겨가는 기분이었다.
공허함만 가득했던 집에 나를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힘이 되고 행복한 일인지 이 녀석들 덕에 알게 되었다.
– 냐아아아앙
뒤늦게 나타난 연탄이 녀석이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며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냈다.
일찍 일찍 다니라고 잔소리해대는 여동생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곧장 샤워부터 하려고 욕실로 들어서려던 순간.
– 냐아앙
살짝 열린 문틈으로 연탄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나른함이 느껴지는 눈동자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연탄이가 비데 쪽으로 폴짝 뛰어오르더니 자세를 잡고 광택 도는 검은 몸뚱이를 부르르 떨었다.
“저거 보면 볼수록 웃긴 놈일세. 왜 고양이가 사람 변기에다 볼일을 보는 거야?”
분명 교육받은 대로 고양이용 화장실에 고급 모래까지 잔뜩 깔아줬건만, 제 자식들은 안 그런데 유독 연탄이만 욕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지가 사람인 줄 아는 거 아냐?”
더 웃긴 것은 고양이 주제에 반신욕과 수영까지 즐긴다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물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수의사 선생님도 분명 그랬는데···.”
목욕이 하고 싶을 땐 욕조에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질 않나, 간만에 반신욕이라도 즐길라치면 지가 먼저 욕조를 차지하고는 유유히 수영까지 즐겼다.
“처음 봤을 때도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참 별난 녀석이야.”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단계였다.
사람도 별의별 인간군상이 다 있는데 고양이라고 왜 안 그렇겠는가.
연탄이한테는 신경 끄고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후, 가운을 걸치고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어···. 노곤노곤하다.”
그때였다.
– 냐아아앙.
“응?”
연탄이가 입에 뭔가를 물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 싫어. 이제 막 샤워 끝났다고!”
– 냐아아아앙
원래 산책은 강아지나 하는 게 아니었던가?
고양이 주제에 이상하게 연탄이는 밖으로 산책 나가는 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산책가고 싶다고 알아서 개 목줄까지 들고 왔을까.
“하아···. 내 팔자야. 그래 가자 가.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시위라도 하듯 연신 애달픈 울음소리를 내는 연탄이를 보자 마음이 약해져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연탄이가 가장 좋아하는 꿀벌 옷까지 입히고 한 손에는 목줄을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
“좋냐?”
– 냐아아앙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도하게 걷던 연탄이가 옅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곳이 어디냐 하면 우리 오피스텔 옥상에 조성되어있는 옥상 정원이었다.
천연 잔디가 깔려 있고 아름드리나무가 곳곳에 심겨 있어 연탄이의 최애 산책 장소이기도 했다.
털이 워낙 새까매서 그런지 곳곳에 배치된 호박빛 조명과 꿀벌옷이 아니었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뻔 했다.
그렇게 연탄이가 이끄는 대로 옥상 정원을 거닐기를 십여 분.
“와. 저긴 조명이 죽이네.”
거대 조형물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건너편에 유독 찬란한 조명 빛이 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불에 이끌린 불나방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
당연히 조명이 있을 거로 생각했던 그곳에는 시커먼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휘황한 황금빛을 내뿜고 있었고.
당사자와 눈이 마주친 나는 외마디 당혹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홍슬기?”
“검냥이···?”
어째 홍슬기는 나보다는 연탄이가 더 놀라웠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