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이건 무조건 된다
“오랜만이에요!”
“그러네요. 잘 지냈어요?”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가 이제 숨통 좀 트였달까? 아가들이 얼마나 보고 싶던지. 공탄이 이리 온.”
홍슬기가 양손을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 공탄이가 폴짝 뛰어올라 그녀의 품으로 안겼다.
부러···. 운게 아니고 그래도 명색이 내가 주인인데 지조 없게 자식이.
서로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종종 반상회를 가져왔다.
물론 그 중심에는 우리 집 검냥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어찌 됐건 처음의 그 지독했던 어색함은 많이 희석되어 이제는 편안한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것 같다.
“촬영하면서도 아가들이 얼마나 생각나던지.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이. 공탄아 간지러워.”
공탄이가 하얀 목덜미를 핥자 홍슬기가 꺄르르 웃으며 공탄이에게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이번 홍슬기의 작품은 나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관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어요?”
내 물음에 활짝 미소를 짓는 홍슬기,
“너무~ 너무 좋았어요. 이때까지 찍었던 작품 중에 역대라고 할 만큼. 출연하신 선배님들도 다들 좋으시고, 현장 분위기도 무척 좋았구요. 무엇보다 정 감독님이 열정이 정말···. 덕분에 배우들도 바짝 긴장해서 연기에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
“후편집 작업만 잘 마무리되면 영화는 잘 나오겠네요.”
“말도 마세요. 듣기로는 정 감독님 요즘 식음까지 전폐하며 후작업에 몰두하셨데요. 오죽했으면 주변에서 이러다 쓰러진다고 말릴 정도였으니.”
공탄이의 매끈한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홍슬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아직 여유 좀 있지 않나요?”
“제 말이요! 정 감독님 말로는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은 투자자분께 누를 끼치면 안된다고···. 거의 병적으로 중얼거리신다는데. 대체 무슨 사정인지······. 설마 사채라도 끌어다 쓴 건 아닌지 걱정이에요.”
“사채···. 는 아닐 겁니다.”
“네?”
“하하하. 아무리 급해도 설마 사채를 끌어다 썼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건강이 걱정되긴 해요. 이번 작품하면서 살이 7킬로가 빠지셨다는데···. 투자자가 엄청 압박 주나 봐요. 아니면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억울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무지성 응원만 했을 뿐.
‘네메시스’ 촬영을 하면서 정대윤 감독만의 고민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는데 그중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냥 오구오구 하면서 ‘당신이 최고!’, ‘당신은 할 수 있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런 말만 마구 남발했을 뿐이었다.
정대윤도 원 없이 푸념을 쏟아놓고선 갑자기 답을 찾았다면서 고맙다고 다급히 사라졌고.
“사람도 없는데 좀 걸을까요? 요 녀석들도 걷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어머. 그럴까요?”
내 제안에 홍슬기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 까만 고양이들이 그렇게 좋을까?
나는 연탄이의 형광 목줄을 손에 쥐었고, 홍슬기는 공탄이의 핑크 목줄을 손에 쥐었다.
혹여나 파파라치의 눈에 띈다면 입에 거품을 물겠지만, 이곳은 입주민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장소였고, 늦은 시간이라 우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없었다.
“참 신기해요. 어떻게 고양이가 산책을 이렇게 좋아하지?”
“저는 다른 고양이도 다 이런 줄 알았다니까요. 매번 목줄 물고 와서 산책 나가자고 보채는 거 보면 기가 찹니다. 정말.”
“어머. 너무 귀엽겠다!”
“그게 다면 말도 안 해요. 이제는 샤워기 물도 지들이 알아서 튼다니까요.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대체 어디서 배운건지.”
“어머머. 그것도 진짜 귀엽겠다!”
어쩐지 제대로 대화가 안되는 느낌이었다.
“어째 저는 임시 보호자 느낌이고 진짜 주인은 왠지 홍슬기씨 같으면 착각이겠죠?”
“호호호. 설마요. 안 느껴지세요? 얘들이 대운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저랑은 아예 달라요.”
홍슬기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달라요?”
“저는 그냥 마음에 드는 인간 정도로 대하는 거면 대운씨는 진짜 가족, 아빠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요. 지금도 봐요.”
자연스레 내 시선이 도도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두 모녀 고양이 쪽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가 계속 대운 씨 쪽을 돌아보고 있잖아요. 고양이가 이러는 거 처음 봤어요. 그만큼 대운씨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거죠.”
“흠···. 그런가?”
두 녀석은 조금 걷다가 습관처럼 계속 뒤를 돌아봤는데 보석 같은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식들···.”
새삼 진한 감동이 몰려왔다.
단순 밥만 주는 집사라 여길 줄 알았더니.
집에 돌아가면 츄르라도 하나씩 하사해야겠다.
그렇게 우리는 옥상 정원을 두어 바퀴 돌며 산책을 끝마쳤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홍슬기에게 핑크 목줄을 건네받고 작별 인사를 하려던 때쯤.
쭈뼛쭈뼛하던 홍슬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나에게 건넸다.
“저···. 이거.”
가느다란 손가락에 들린 건 하얀 봉투.
나는 의문 어린 눈으로 홍슬기를 쳐다봤다.
“[네메시스] 시사회 티켓에요. 맨날 고양이들도 보여주시고···. 고마워서 드리는 거예요.”
“호오···. 감사하네요.”
어차피 정대윤 감독이 잔뜩 챙겨주겠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주연 배우에 받는 게 기분이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하고 그녀가 내민 티켓을 건네받았다.
“두 장 들어있으니깐 혹시 여자친구 있으시면 같이 오셔도···.”
“없어요.”
“썸녀라도···.”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혼자 오셔도 돼요.”
“그럴게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옥상을 내려왔다.
***
용산 아이파크몰 CCV.
드디어 대망의 [네메시스] 시사회 날이 다가왔다.
“어후. 내가 출연한 영화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냐.”
나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한 날이었다.
내 현금성 자산의 대부분을 때려 부은 중요한 투자처였기 때문에.
황금빛을 믿었지만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영화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 역시 뼈아픈 손실을 각오해야 했으니.
“일단 평은 나쁘지 않아.”
출발이 좋았다.
영화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기자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강한 기대감이 형성되었다.
이번에 내가 초대받은 시사회는 VIP 시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사 중에서도 초대받은 이들로만 이루어지는 시사회였다.
그것 때문인지 포토월 주변에는 많은 기자들이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고 진을 치고 있었다.
티켓 배부처에서 본인 확인 후 티켓을 받아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듣기로는 유명 연예인이 많다고 하던데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어차피 연예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잠시 후.
“와아아아아!! 홍슬기!!”
“헐. 미친. 남정혁 대존잘.”
환호성과 함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무대 인사를 위해 줄줄이 입장했다.
첫 물꼬는 감독인 정대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네메시스’를 연출한 정대윤입니다. 반갑습니다.”
짝짝짝짝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정확히 10년이 걸렸네요. 사실 ‘네메시스’는 제 첫 상업영화이긴 하지만 8년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만큼 끊임없이 깎고 다듬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후에는 출연 배우들이 맡은 배역을 밝히며 인사를 전했다.
역시 핫한 여배우답게 홍슬기가 마이크를 잡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백아리 역을 맡은 홍슬기입니다. 이번 영화 ‘네메시스’는 제 배우 인생에도 정말 특별한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출연한 모든 배우가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찍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단한 무대 인사를 끝으로 출연진들은 극장에서 빠져나갔고 곧이어 영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단순 관객 입장이 아닌, 이 영화에 최대 투자자로서 비즈니스 관점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나는 다시 관객으로 돌아와 있었다.
“와 미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 영화는 미쳤다.
그 말 외에 이 영화를 표현할 단어를 못 찾겠다.
첫 등장부터 엄청난 포스를 풍기는 주인공 홍슬기와 보고만 있어도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악역들의 연기까지.
파격을 넘어 압도적이었다.
실감 나는 액션과 현장감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했을지 영화를 잘 모르는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냥 고양이 덕후인줄 알았는데···. 배우는 배우네.”
그중에서도 역시나 압권은 홍슬기였다.
아역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청순하고 가련한 역할만 맡았던 만큼, 파격 그 자체인 백아리 캐릭터의 소화가 가능할지 대중들의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자 그런 의문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저게 무슨 청순가련이야. 그냥 복수에 미친 살인귀지.”
정녕 청순가련의 대명사인 홍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일말의 감정 동요도 없이, 오직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에 모든 것을 내던진 미친년 연기를 기가 막히게 소화해냈다.
“2시간이 어떻게 간 줄 모르겠네.”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숨 막히는 연기력, 숨 쉴 틈 없는 긴박한 액션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어 잡생각 따윈 단번에 날려버렸다.
주변을 둘러봤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데도 관객들이 쉽게 자리를 못 뜨고 있었다.
그만큼 영화가 주는 여운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엔딩 크레딧을 보던 중 익숙한 이름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만든 사람들> [공동 투자 송대운…………….]“크으······.”
이 뿌듯함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엄청난 영화에 내 이름 석 자가, 그것도 가장 앞자리에 떡하니 박혀 올라오는데 다른 투자와는 또 기분이 색달랐다.
“이건 무조건 된다.”
영화를 직접 보고 나니 일말의 불안감마저 싹 날아가 버렸다.
이건 안 될 수가 없다.
그만큼 연출도 미쳤고, 연기는 더 미친 영화였다.
가까스로 영화가 준 여운에서 벗어난 관객들이 하나둘씩 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화 미쳤네 진짜.”
“와···. 홍슬기. 나 다시 봤잖아. 연기 존나 잘하네 진짜.”
“블로그에 바로 관람후기 올려야겠다. 이건 무조건 봐야 한다고.”
평소 같았으면 시끄러웠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오늘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감미롭게만 들렸다.
– 지이이이잉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거친 진동에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네. 정 감독님.”
– 송 사장님. 영화 잘 보셨습니까?
“그럼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영화 대박 나겠던데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 하하하 송 사장님이 재밌게 보셨다고 하니 이제야 좀 안심이 되네요. 아! 다름이 아니라 혹시 다음 일정 있으세요?
“저요? 아뇨···. 영화 잘 봤으니 집에 들어가서 밥 먹고 쉬려고 했죠.”
– 그러면 혹시 오늘 저희 회식 자리에 와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회식이요?”
– 무대 인사 잘 끝난 기념으로 출연진들끼리 간단히 식사라도 하려고 하거든요. 송 사장님도 자리에 모시고 싶어서···.”
회식이라.
한번 가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는요?”
– 한우입니다.”
“당장 가죠.”
한우라는 말에 일말의 주저함도 사라졌다.
– 주소 찍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네메시스’팀 회식에 참여하게 됐다.
– 띠링
잠시 후. 울리는 알림음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라···. 여긴?”
무척이나 익숙한 주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