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슈퍼 인턴의 하드캐리(2)
순간 회의실 내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가까스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속내는 죽을 맛이었다.
‘아오. 갑자기 나를 언급하셔서는.’
우리 친절한 사수 매튜가 인턴 신분인 나의 기여도가 크다는 공을 챙겨주려 한 행동임은 알고 있지만, 딱히 주목받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이종훈 대표가 흥미롭다는 듯 나를 지목했다.
“호오. 딜런이 처음 스튜디오SH를 언급했다구요? 딜런은 왜 저곳을 택하게 된 것인지 간단히 설명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무려 회사 대표님께서 직접 명하신 미션인데 일개 인턴이 어찌 거부할 수 있으리오.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의연한 얼굴로 테이블 마이크를 부여잡았다.
“2팀 인턴 딜런입니다. 발표에 앞서 게임 산업의 특수성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Painkiiler(진통제)와 비타민의 차이랄까요? 보통의 스타트업들은 유저들의 고통이나 불편함을 덜어주는 서비스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아니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은, 비타민 같은 속성이 있습니다. 혹시 게임을 즐기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 유저 생각이 비슷할 겁니다. ‘재밌으면 좋고, 아님 말고.’
이것이 게임 산업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인 거죠. 그래서 게임 투자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의 본질은 순수 재미였다.
그만큼 게임 유저들의 선택은 무척 냉정하다.
아무리 거액 개발비를 투입한 블록버스터급 게임일지언정 재미가 없으면 그 게임은 망작이었다.
“스튜디오SH는 B-CAMP 데모데이에서 처음 보게 된 회사입니다. 비록 인턴 신분이지만 나름대로 VC의 입장에 유심히 발표를 지켜봤습니다. 물론 당시 송시호 대표의 발표는 큰 주목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몇몇 분은 주무시기까지 하더군요.”
연차 묵직한 투자 심사역들이 피식 웃음을 내보였다.
매서운 눈으로 나를 보고는 있지만, 인턴이라고 무시하는 느낌은 없었다.
“저는 발표 퀄리티보다는 그들이 게임을 대하는 ‘진정성’에 주목했습니다.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송시호 대표가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을 소개할 때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마치 정성으로 키운 자식새끼를 사람들 앞에 자랑하듯. 물론 그것만으로 투자할만한 회사라 단정 지을 순 없겠죠. 그냥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말에 홀로 스튜디오SH 사무실을 찾아 가봤습니다.”
놀랐는지 매튜의 눈이 살짝 커졌다.
놀라지 말아요 매튜.
황금빛만 아니었으면 내 황금 같은 주말을 그렇게 쓰진 않았을 거에요.
“그곳에서 송시호 대표와 그 팀원들을 만나 진솔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구성원들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다들 게임에 인생을 바쳤다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이력을 쌓은 이들입니다. 서로가 만나게 된 스토리도 독특하구요.”
그 부분은 보고서에도 잘 녹아있었기에 다른 VC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다른 VC들의 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게임 업종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게임사에 투자하는 기준은 비슷합니다.”
한 박자 숨을 고르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심사역들을 눈으로 훑었다.
“바로 ‘맨파워’죠. 성별과 나이를 떠나 개발진이 게임에 미쳐, 아니 진심이면 유저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의 아니게 내가 대신 IR하는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괜찮다.
이 게임은 된다.
한날은 송시호가 나와 매튜를 부른 적이 있었다.
“진짜 멋있는 거 있는데 보여줄까요?”
덩달아 모여든 팀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탁!
송시호가 엔터키를 탁 내려치자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모션 그래픽 영상이 흘러나왔다.
“미친! 이거 결국 완성한 거야?”
“크흐흐. 어때 죽이지?”
“개쩔어! 저 털찐거 봐. 세상 귀엽다···. 아나. 개 자극받네? 시부레! 나도 오늘부터 밤샘이다.”
“나도나도!”
뭐가 그리 분한지 씩씩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는 두 안경잽이를 보며 나와 매튜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 송시호가 던진 말 한마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종일 상상하고, 그 상상을 컴퓨터 화면 속에 구현합니다. 심지어 이걸로 돈까지 벌 수 있어요. 이보다 더 행복하고 좋은 일이 있을까요?”
기억의 편린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송시호 대표는 본인이 구상한 ‘헌팅피그’를 만들기 위해 게임회사에 근무하며 무려 2년 동안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을 성공적으로 검증하며 초기 시드 투자도 받은 것이구요.”
분위기가 약간 돌아선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이종훈 대표의 반짝이는 눈빛은 심히 부담스러울 정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죠. 그때부터 매튜와 저는 약 한 달 동안 스튜디오SH 사무실에 방문하여 그들과 함께 ‘헌팅피그’를 즐기고 분석했습니다. 게임에 문외한인 제가 해도 진입장벽이 없을 정도로 게임은 단순했지만 재밌었습니다. 그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그들의 삶 자체가 이미 게임 그 자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게임 산업에 한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성공하지 않겠습니까?”
옆에 앉은 동기 두 사람이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무표정하던 투자 심사역들도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1팀 수석 심사역 올리버가 마이크를 잡았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저 팀은 저도 기억이 납니다만 디테일하게 설명을 들으니 확실히 다르게는 느껴지는군요.”
깐깐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올리버가 호평으로 서두를 시작하자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죠. 하나 간과한 게 있습니다. 게임 산업의 성장성은 인정하나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인식 자체가 너무 좋지 못합니다. 아직 게임을 마약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고, 청소년들 교육에도 좋지 않다는 여론에 지금도 규제 논의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해보셨는지 궁금하군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캐릭터 하나는 일관성 있는 양반이었다.
“추가로 하나만 더. 게임 시장규모가 13조에 달하는데도 왜 VC들이 소형 게임사에 투자를 꺼리는지 아십니까? 게임 산업 자체가 일부 대형사들이 독식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에는 중국 자본까지 들어오다 보니 VC들도 게임 투자는 뒷전으로 미루는 분위기가 형성된 겁니다. 실제로 작년 중소형게임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3%였습니다. 반대로 빅3로 꼽히는 대형 게임사 영업이익률은 30%에 달했죠.”
설마 저 수치들을 다 외우고 다니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시장 지표들이 술술 나오는지 궁금했다.
“이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두드러질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 스튜디오SH의 ‘헌팅피그’라는 게임이 대형 게임사의 게임을 제치고 한국 시장에서 유의미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이 양반 알고 보니 게임 덕후였던거 아냐?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에 관한 답변을 매튜가 하긴 했지만, 머릿속에 느낌표가 뜰만 한 답변은 아니었다.
분위기가 다소 과열되는듯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이종훈 대표가 중재에 나섰다.
“다들 일리 있는 의견이니 각 팀별로 논의하시어 점수를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외 없이 북산벤처스가 자랑하는 3-2-1 포인트 시스템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 투자가 성사되는 데 필요한 포인트는 10점.
솔직히 쉽지 않아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흘렀을 5분이 지독히도 느리게 흘러갔다.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이종훈 대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시간이 다 됐네요. 팀마다 점수 말씀해주세요.”
시작은 당연하게도 심사를 올린 2팀 수석 심사역 매튜였다.
“2팀 점수는 3점입니다. 만약 투자가 성사되면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다음은 1팀 수석 심사역인 올리버.
“저희 1팀 점수는 1점입니다. 아무리 벤처 투자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지만 아직 한국에서 이런 게임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부정적 견해를 내놓았던 1팀이었기에 예상했던 바였다.
오히려 0점을 주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종훈 대표가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다.
“3팀 점수 듣기 전에 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점수는 3점입니다.”
웅성웅성
이종훈의 발언에 회의실 내에 미약한 소란이 번졌다.
“이 대표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외네. 보통은 관망하듯 보시는데···.”
이종훈 대표가 그런 VC들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는 게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매튜의 안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들은 건데 매튜는 이종훈 대표가 북산벤처스 대표로 취임할 때 직접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삼고초려 끝에 겨우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만큼 이쪽 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실력으로 보였다나.
아무튼, 내 사수 매튜는 무척 잘난 인간이었다.
“그가 얼마나 투자에 보수적이고 신중한 성격인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 매튜 수석 심사역이 한 달이나 살피며 투자 심의를 올렸다는 것은 자료로 다 보여줄 수 없는 무언가를 봤다는 얘기겠지요. 물론 제 시각으로도 충분히 잠재성은 있어 보입니다.”
매튜 얘기하면서 왜 나한테 윙크를 날리는 겁니까 대표님.
일개 인턴은 대표의 가벼운 윙크에도 심장이 내려앉는 법입니다만.
정리하면 지금까지 획득한 포인트는 3-3-1, 총 7점.
3팀이 무조건 3점을 줘야지 투자 진행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이목이 투자 3팀, 이든 수석 심사역에게 몰렸다.
“저희 3팀의 점수는···.”
꿀꺽.
무거운 긴장감이 엄습했다.
이든의 두툼한 입술이 열리는 그 몇 초가 왜 이리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걸까?
“2점입니다.”
순간 몸 안에 힘이 쭉 빠져가는 느낌이었다.
“게임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건 인정하나 더 좋은 대안이 많은 상황에서 굳이 더 큰 위험을 안고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총점 9점으로 스튜디오SH의 투자 건은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렸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매튜도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회사의 ‘원칙’이었으니깐.
원칙은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
특히나 벤처캐피탈은 업의 특성상 하루에도 수백 개의 선택을 해야 하기에 더더욱 원칙이 중요했다.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붕괴될 수 있었기에.
이종훈 대표가 다시 한번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총점 9점으로 스튜디오SH에 대한 투자는 진행하지 않는 걸로······.”
너무 아쉬웠다.
단순 돈이 문제가 아니라 분명 길이 있을 텐데 당장은 그 길이 보이지 않으니 더 답답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스쳐 가며 짜릿한 번개가 내리쳤다.
– 벌떡
“잠깐만요!”
감히 일개 인턴이 대표님의 멘트를 끊어?
라는 벙찐 얼굴로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때가 아니었다.
매튜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나는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했다.
눈을 부릅뜬 매튜가 이내 턱을 쓰다듬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로 돌아간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3-2-1 포인트 제도에 예외 조항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웅성웅성
“그런게 있었어?”
이종훈 대표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네. 공동 투자 제안이 들어온다면 예외적으로 9점도 투자 진행이 가능합니다. 리스크가 상쇄된다는 점을 참작해서.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안이 들어온다는······.”
“있습니다. 공동투자를 제의한 곳이.”
회의실이 다시 한번 소란스러워졌다.
가볍게 책상을 두드려 소란을 잠재운 이종훈 대표가 심유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딥니까 그곳이.”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입니다.”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는 내 개인 투자 법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