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59)
59화 황금빛의 비밀을 풀 열쇠
웅성웅성
정숙함을 자랑하던 북산벤처스 대회의에서 오늘 여러 번 소란이 빚어졌다.
” 그런 예외 조항이 있었나?”
“있긴 있어. 이제껏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어서 그렇지.”
“그나저나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거기가 어디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탁탁탁
이종훈 대표가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자 회의실엔 다시 정숙이 찾아왔다.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와 확실히 공동투자 진행하는 건가요?”
“네. 확실히 진행합니다.”
진행하고말고.
내가 결정권자인데 뭐가 문제일까?
중요한 건 이 투자를 어떻게든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그냥 내 돈만 투자해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
혼자서 감당하기엔 액수도 액수였지만, 이번 건은 북산이라는 대기업의 후광도 반드시 필요했다.
게임은 개발도 중요하지만 퍼블리셔의 역할도 상당히, 아니 매우 중요하다.
개발사와 퍼블리셔는 악어와 악어새와의 관계.
개발사가 열심히 만든 게임을 대중들에게 홍보하고 유통해줄 퍼블리셔가 반드시 필요했다.
대형 게임사는 자체 퍼블리셔가 존재했지만, 중소형게임사 같은 경우에는 퍼블리셔를 끼고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시장에는 수많은 퍼블리셔가 존재했고, 그들마다 역량도 상이했다.
더구나 대형 퍼블리셔와 중소 개발사 간에는 소소한 불공정 계약이 마치 관행처럼 굳어있기도 했다.
아무래도 북산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받쳐준다면 영향력 있는 퍼블리셔와 보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있음은 당연한 일.
“좋습니다. 스튜디오SH의 총 합산 포인트는 9점. 원칙상 투자가 진행될 수 없으나 다들 아시다시피 공동투자가 성사되면 리스크가 상쇄된다는 점을 참작하여 9점까지 투자 진행이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 이의가 있으십니까?”
무겁게 흐르는 침묵.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원칙에는 어긋나지 않았기에.
심사역들이 얼빠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좋습니다. 그러면 스튜디오SH의 투자 건은 일단 통과하는 거로 하고······. 매튜?”
“네 제임스.”
“공동투자 진행 관련해서는 매튜가 잘 해주실 거라 믿고 실사까지 진행해주세요.”
실사가 필요한 이유는 회계의 투명성을 파악하려는 목적이 컸다.
큰돈을 투자하는 이상 그동안 자금을 얼마나 투명하게 사용했는지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장장 4시간에 걸친 투자 심의 회의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천신만고 끝에 스튜디오SH의 투자 진행을 기어코 성사 시킬 수 있었다.
***
강남역 인근 카페.
매사 잔잔한 물결 같던 매튜가 드물게 당황하며 벙찐 얼굴로 반문했다.
“딜런이···.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 대표라구요?”
“지금에서야 말씀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절대 속일 의도는 없었습니다.”
원래는 인턴이 끝날 때까지 감추려 했지만, 어쩌다 공동투자까지 하게 되다 보니 더는 감출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내가 보고 느낀 매튜는 정말 ‘괜찮은’ 사수였고, 쭉 인연을 이어가고픈 사람이었다.
더 이상 그에게 뭔가를 숨기고 싶진 않았다.
“사실은······.”
어쩌다 북산벤처스에서 인턴을 하게 된 것인지 짧게 요약하여 매튜에게 설명했다.
황당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매튜는 내 얘기를 들을수록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뀌었고 종국에는 옅은 감탄을 내뱉었다.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요. 이런 케이스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괜한 분란이 생길까 봐 감춘 거지 결코 매튜님을 기만할 생각은 없습니다.”
“전후 사정을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나저나 딜런이 그 정도의 자산가인 줄은 몰랐군요. 하하하. 오히려 잘됐어요. 공동투자는 사실 골치 아픈 부분이 많은데 딜런이 의사결정자라면 순탄하게 갈 수 있겠군요.”
이런 게 어메리칸 마인드란건가?
매튜는 내가 당황할 정도로 쿨하게 내 사정을 이해했고 되려 살짝 기뻐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내가 사수 복(福)은 대운(大運)이 맞구나.
“공동투자는 크게 클럽딜(Club Deal), 멀티클로징(Multi Closing) 방식이 있습니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복습한다는 생각으로 매튜의 말을 경청했다.
“클럽딜은 간단히 말해 여러 투자자가 한 번에 동일한 계약서로 계약 진행하는 방식이죠. 장점은 간편합니다. 경영상의 사전동의, 이사회, 주주총회 등 투자 계약에 필요한 법무 절차를 한 번에 같이 진행할 수 있거든요. 멀티 클로징은 반대로 별도로 투자 계약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때문에 다른 투자자의 부정적 의사 결정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클럽딜로 진행하시죠.”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했던 부분이었다.
멀티클로징 방식을 택하면 시간 지체가 너무 심했다.
스튜디오SH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자본을 수혈받아 론칭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대부분 공동투자 건은 클럽딜을 선호하는 편이죠. 스타트업의 생명은 스피드이니까요.”
이후 나는 공동투자의 의사결정권자로서 매튜와 이런저런 제반 상황을 협의하고 조율했다.
“총투자금은 송시호 대표가 요구했던 대로 총 80억에 지분율 20%, 북산벤처스와 스프라우트 인베스트먼트에서 5:5로 출자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하하. 이로써 투자자 간에 사전 조율은 모두 끝이 났군요. 보통 이거 조율하는 데만 길게는 몇 달도 걸리곤 하는데 하루 만에 끝내다니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입니다.”
“그만큼 매튜가 경험도 많고 실력도 좋으신 덕분이죠. 그다음 절차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오늘 협의한 내용을 토대로 가계약서를 만들어 송시호 대표에게 보내야겠죠. 별도로 검토해 보셔야 할 테니까요. 이후 최종 미팅을 거친 후에 계약서 날인을 하면 끝입니다. 계약서 날인 후 7일 이내에 약속된 자금을 투자기업의 통장으로 입금만 하시면 됩니다.”
귀에 쏙쏙 박히는 강의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히 벤처 투자계의 1타 강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매튜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요?”
“이전과 다름없이 저를 인턴처럼 대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인턴을 인턴처럼 대하지 그럼 제가 시큐리티처럼 딜런을 대하겠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뭘 그렇게 진지하게 하냐는 얼굴로 반문하는 매튜를 보자 괜히 오바한거 같아 민망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그러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맞죠! 인턴 딜런!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겁니다.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면 홈웍을 잔뜩 내줄 테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숙제는 좀···.”
“EXAM 안보는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헉···. 시험만은 제발. 열심히 하겠습니다!”
군기 잡힌 이등병처럼 오바하는 내 모습에 매튜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계약 절차는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약 한 달 후.
스튜디오SH에 80억 규모의 시리즈 투자가 성사됐다는 소식에 작게나마 스타트업 뉴스에 실리게 되었다.
**
판교 스튜디오SH 사무실.
화기애애했던 사무실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그렇게···. 성적이 별론가요?”
내 물음에 송시호가 대역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고개를 푹 내리깔았다.
“면목 없습니다···. “ACCU(평균동시접속자수)의 낙폭도 낮은 편이고, ARPU(고객별 평균 매출)도 유저수 대비 나쁘진 않은 수준인데 문제는···.”
“유저 수가 늘지 않는다는 얘기네요.”
“맞습니다···.”
흡사 학생주임 선생님 앞에 선 학생처럼 송시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마케팅은 제대로 하고 있죠?”
“퍼블리셔에서 마케팅은 공격적으로 잘해주고 있는데···. 후우···. 뭐가 문제일까요? 도통 유입이 늘질 않습니다. 이러다가 골든 타임이 지나가 버릴까 봐 솔직히 두렵습니다···.”
골든타임은 게임 론칭 전후 3개월의 기간을 뜻한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초반 마케팅에 실패하면 두 번 다시 소생할 수 없었고, 당연히 재기의 기회도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기간이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진 말죠. 그래도 유입된 유저들의 이탈률은 저조하잖아요. 그만큼 게임은 잘 만들어졌다는 거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죄인처럼 시무룩해 있는 송시호를 보니 내 기분도 썩 좋진 않았다.
*
스튜디오SH 사무실을 나와 매튜에게 퇴근 보고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삑삑삑삑삑
철컹
현관문이 열리자 우리 검은 천사들이 쪼르르 달려와 일렬횡대로 서서 나를 맞이했다.
어느새 어미의 덩치와 맞먹을 정도로 이제는 어엿한 성묘의 모습을 갖춘 삼탄 형제들이었다.
-냐아아아
-니야옹
-애오오옹.
같은 배에서 태어나 생긴 것도 비슷한 놈들이 어찌 이렇게 다른 개성을 가졌을까?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검냥이 삼 형제의 모습에 하루의 피곤이 사르르 녹는 듯했다.
“안 싸우고 잘들 지냈냐?”
하지만 말 끝나기 무섭게 세 녀석은 칼같이 돌아서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같이 사는 식구지만 고양이들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간단히 샤워를 마친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잔뜩 쌓인 빨래 바구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애고고. 오랜만에 밀린 빨래나 해야겠다.”
천근 만근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이전에 널어놓았던 빨래를 모조리 걷어왔다.
거실에 마른 옷들을 던져 놓고, 바닥에 앉아 천천히 옷을 개기 시작했다.
“야야야. 공탄이 너 인마! 내가 그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지!?”
쌓여있던 마른 빨랫감 위에 위풍당당하게 올라선 공탄이가 앞발을 혀로 핥아대다가,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캣타워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잰 꼭 옷만 개려고 하면 저길 올라가더라. 누굴 닮아 그런가 성격도 희한해.”
알 수 없는 취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주섬주섬 옷을 개며 천천히 상념에 잠겼다. 빨래는 귀찮았지만, 옷 개는 건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송 대표한테 황금빛이 흘렀으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게 뭔지 당최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내색은 안 했지만 ‘헌팅피그’의 론칭 결과에 나 역시 무척 실망한 상태였다.
이토록 반응이 없을 줄이야.
송시호는 나에게 미안해했지만, 나로서는 사수인 매튜에게 면목이 없었다.
사실상, 이 투자 건은 내가 강하게 푸쉬해서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하아···. 황금빛···. 황금빛···. 뭘까? 분명히 뭐가 있긴 있을 텐데.”
발표 중간에 별안간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는 건 분명 무슨 변수가 개입되었다는 뜻인데 그게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뒤늦게 떡상한다는 뜻일까···? 솔직히 지금 흐름으로는 힘들 것 같은데···.”
어째 생각하면 할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쉰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털어버리려 빨래 개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남은 검은 정장 바지를 접으려던 순간.
“응?”
바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고개를 갸웃한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까슬까슬하면서 빳빳한 감촉.
나는 주머니 속 정체불명의 물건을 꺼내 들었다.
“이건···?”
내 집게손가락엔 너덜너덜해져 거의 걸레짝이 다된 빛바랜 연두색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