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전시회에서 만난 황금동아줄
“타지에서 온 저를 이토록 환대해주시니 너무 감동입니다. 그래서 저도 술라이만 형님의 가족분들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가족들의 시선이 모조리 나에게 집중됐다.
그 눈빛에는 선물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기특함이 더 커보였다.
그럴 만도 한게 저 분수처럼 돈이 넘쳐흐르는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선물이란 게 존재할까?
하지만 지극 정성이란 놈은 이런 사람들도 감동시킬 수 있는 법이었다.
“우선···. 우리 공주님들 선물부터.”
나는 메고 온 가방에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 몇 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술라이만 형님의 두 딸들이 눈을 반짝이며 내가 건넨 선물을 두 손으로 소중히 받아들었다.
“삼촌이 한국에서 어렵게 구해온 거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정말 감사해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고맙긴 하다만 상자는 까보고 마음에 든다고 해야 하지 않겠니?
형님을 닮아 예절 교육이 잘된 아이들이었다.
뒤이어 선물 상자를 열어본 두 소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건!?”
아이들 손에 들린 건 평범해 보이는 모자와 티셔츠.
하지만 아이들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서, 설마 이거 VTS 사인인가요?”
이제는 명실상부 월드 클래스가 된 아이돌그룹 VTS의 애장품이었다.
SNS 염탐을 통해 도출한 정보를 토대로 두 소녀의 취향을 저격한 선물이었다.
새삼스레 저걸 구하기까지의 고된 과정이 눈앞을 스쳐 갔다.
내가 연예계 인맥이 어디 있겠는가.
유일하게 하나 있다면 이웃사촌 홍슬기였다.
그리고 홍슬기는 VTS 멤버 하나와 친분이 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말로 사인을 받아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의외로 홍슬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한술 더 떠서 사인이 담긴 애장품을 얻어왔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단번에 나타났다.
“진짜진짜! 정말 정말 고마워요 삼촌!”
“나 정말 눈물 날것 같아. VTS 정혁의 애장품이라니. 더구나 내 이름까지 적혀있어···. 꺅! 어떡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자와 티셔츠를 품에 꼬옥 껴안고 자리에서 방방 뜨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주는 사람이 흡족할 정도의 참된 리액션 아닌가.
“하하하. 우리 딸들이 선물 받고 이렇게 좋아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명품 수백 개를 사줘도 심드렁하더니 말이야. 역시 동생 센스는 최고로구만.”
함박웃음을 지은 술라이만이 나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명품 수백 개를 이겼다고 생각하니 더욱 뿌듯함이 차올랐다.
다음은 두 형수님 차례.
원래 아랍에서 결혼한 여인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큰 결례의 행동이나 술라이만 형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이거 받으세요 형수. 선물입니다.”
“어머 이건?”
범상치 않은 패키지에 두 형수님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지금도 아름다우시지만, 더 아름다워지시라고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립서비스도 한번 날려주고.
선물 포장이 벗겨지자 모습을 드러낸 건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화장품 케이스였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장품 회사에서 한정판으로만 출시되는 제품입니다. 그것도 국내에서만 판매되는.”
‘한정판’과 ‘국내 판매’라는 점을 강조했다.
적어도 중동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선물이어야 메리트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 전략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세상에···. 너무 고마워요 쏭. 마음에 무척 들어요.”
“어머. 이쁘기도 해라. 향도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캐피아, 그린 다이아몬드 등 초호화 로얄 성분을 주원료로 한 화장품들이었다.
재료의 희소성 때문에 1년에 단 600병만 구할 수 있다는 귀한 녀석들이었다.
이건 이지원의 도움이 컸다.
그 화장품 회사의 본부장과 친분이 있다나.
‘근데 일개 대학생이 그런 대기업 임원과 친분이 있을 수 있나?’
선물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자자 칼 라흐 카이르’를 외치는 두 형수님.
신께서 나에게 선한 보상을 내릴 거라는 극도의 감사를 담은 인사였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이미 술라이만 형님에게 넘치는 보상을 받았기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 형수와 따님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이제 남은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형님의 부모님이면 마찬가지로 왕족 출신이실 것이며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사셨을 터.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가장 고민한 대상이기도 했다.
옥빛 비단 보자기가 스르르 벗겨지자 직사각의 나무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상자의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호오···. 이건?”
촉촉이 수분을 머금은 이끼 위에 다소곳이 놓인 인형 모양의 삼.
정말 어렵게 구한 전남 화순군 산지에서 채집된 190년 묵은 천종산삼이었다.
큰 감정 표현 안 하시던 노부부의 입에서 미약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약재인 코리(산삼)입니다. 두 분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습니다.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사십시오.”
보통 졸부들은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부자인 이들은 다르다.
나이 들면 들수록 그들이 진짜 소중히 여기는 것은 돈이 아니라 건강.
넘치는 돈으로도 유일하게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었기에.
“한국 드라마에서 본 적 있습니다. 아주 귀한 약재라고 들었는데 허허허.”
때마침 한의약에 대한 아랍인들의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한약재가 인공 첨가제가 없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낀 탓이었다.
다만 특유의 쓴맛에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어서 이렇게 원재료로 구해다 준 것이었다.
더구나 드라마 허준이 중동에서 85%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보이며 대흥행하는 바람에 그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었다.
노부인 역시 내 손을 붙잡고 진한 감사를 전했다.
“우리 건강까지 이렇게 신경 써주시다니. 정말 고마워요. 아들 녀석이 동생 하나는 참 잘둔 듯하여 어미 된 입장으로 기분이 참 좋구려.”
역시나 선물 증정 타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더욱 훈훈하게 달궜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술라이만이 다가와 살포시 나를 끌어안았다.
“우형은 아우에게 해준 게 없는데 우리 가족을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하하하. 무슨 말씀 하십니까? 형님. 그리고 안타깝지만, 형님 선물은 없습니다. 나중에 한국 또 놀러 오시면 근사한 곳에 가는 걸로 퉁 치시죠.”
“아우님의 존재가 내겐 알라신이 내려준 축복일세.”
과하게 감동 먹은 것 같았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다들 이토록 좋아하니 나 역시 진한 뿌듯함이 차올랐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우리 집 치타를 데리고 와야겠어.”
“괘, 괜찮습니다. 형님. 걔도 쉴 땐 쉬어야죠···.”
너무 더워서 아까 내의도 벗었단 말입니다!
계속 된 만류에 결국 입맛을 다시며 포기한 술라이만은 차를 권했고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 꼭대기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날의 홈 파티는 끝이 났다.
그리고 언젠간 나도 이런 화목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다짐을 고이 접어 조용히 가슴 속에 품었다.
***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제 전시컨벤션센터.
웅성웅성
중동 최대 게임 전시회 중동 게임스콘 (Middle East Games Con)의 폐막일이자, 주말 연휴답게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새하얀 구트라를 뒤집어쓴 아랍인들이 대다수였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전시장에는 수많은 게임 업체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널찍한 부스에 게임 일러스트가 프린팅된 배너를 도배하다시피 달아 놓았다.
전시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업체가 내놓은 것은 VR 게임.
게임 체험장에는 다들 뭔가를 얼굴에다 뒤집어쓰고 맨땅에 수영하는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특성상 야시시한 복장의 코스프레 걸(Girl)들이 없다는 점은 눈여겨 볼 만했다.
이런 열띤 분위기 속에 외딴 섬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로운 부스가 있었다.
고양이 캐릭터 가면을 쓰고 휘적휘적 열심히 풍선을 흔들어대는 두 사람.
“아오. 팔 떨어지겠네. 들어가서 좀 쉴까요?”
“그, 그럴까요?”
부스로 돌아온 우리 두 사람은 뒤집어쓰고 있던 고양이 가면을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는, 의자에 앉아 시큰거리는 다리를 두드렸다.
임시 대피소마냥 단촐한 부스에는 ‘Hunting Pigs’라 적힌 현수막과 함께 여러 고양이 캐릭터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거 무슨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인데요?”
“그러게요. 위치가 위치인지라 사람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이 정도도 없을 줄이야···.”
분명 같은 공간에 존재하건만 이런 빈익빈 부익부가 없었다.
간혹 관람객들이 찾아 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한다는 말이.
“여기 화장실이 어딘가요?”
“‘길드 워’ 부스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아조씨 너무 더워여!”
길 잃은 관람객들이 우리 부스를 인포데스크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포기를 모르는 근성의 한국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끊임없이 되뇌며 사흘째 고양이 가면 쓰고 열심히 풍선을 흔들어댔건만 얻은 것이라고는 양팔에 자리잡은 근육통뿐이었다.
“마음은 안 꺾였는데 풍선은 꺾여버렸네···.”
어찌나 열심히 흔들어댔던지 한번 꺾인 막대 풍선이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아···.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확실히 무자히드 대표가 큰 기대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네요.”
이미 꺾여버린 송시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으쌰으쌰 하자고 어깨를 두드리고 싶었지만 사실 나도 지칠 만큼 지친 상태였다.
낚시도 고기가 있어야 잡히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웅덩이에 낚싯대를 들이대봤자 무슨 소용 있겠는가.
더구나 VR이니 AR이니 첨단 기술을 적용한 화려한 액션 슈팅 게임이 즐비한 곳에서 모바일 게임, 그것도 앙증맞은 고양이 캐릭터가 못생긴 돼지나 잡고 앉아있는 게임이 주목을 이끌긴 힘들었다.
“무슨 방법이 없으려나···.”
이대로 전시회를 끝내기엔 너무 아쉬웠다.
어찌 됐건 중동에서 가장 큰 게임 전시회인건 팩트였으니.
“안 되겠어요. 부스 좀 지키고 있을래요?”
“어쩌시려구요?”
“제가 그래도 아랍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깐 직접 발품 팔아서라도 사람들 좀 데리고 올게요.”
“그렇게까지···.”
내 적극적인 태도에 송시호가 감동 받은듯했으나 누누이 말했듯이 난 이 회사의 투자자이다.
고로 게임이 잘되어야 내 소중한 돈도 지킬 수 있는 것이었기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송시호를 부스에 둔 나는 전시장을 유랑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온도가 이렇게 다르나?”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주 그냥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정도였다.
VR 게임 한번 체험해보겠다고 줄지어 있는 사람들을 보니 황망하기까지 했다.
“어쩌겠냐···. 인생이 다 그렇지.”
인생사 모든 것이 공평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어려서부터 자각하고 있었다.
확실한 건 불공평하다고 투덜대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는 것이었다.
“어디 보자···. 누구를 데리고 가야 하나.”
지나다니는 관람객의 면면을 빠르게 훑었다.
어린 자식의 고사리 같은 손을 붙잡고 온 가족들도 보였고, 왁자지껄하며 친구들끼리 온 청년 무리도 있었다.
간혹 업계 사람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로비에 비치된 알록달록한 소파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쳐다보길 십여분.
벌떡
“차, 찾았다!”
분명 내 눈에 보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 홀로 고고히 빛나는 황금빛이.
혹여나 놓칠세라 인파 속을 헤집으며 황금빛의 주인공을 애타게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허억···. 허억···.”
저 멀리 간이 카페 테이블에 홀로 앉아 고고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주인공을 천신만고 끝에 발견할 수 있었다.
깊게 심호흡하며 숨소리를 정돈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나 이 황금빛이 황금 동아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아프완(실례합니다).”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린 황금빛 주인공과 눈을 마주친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넹?”
아니. 왠 고삐리가?
이건 어려도 너무 어려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