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왕족 애착인형
이슬람 최대 축제인 라마단.
무슬림이 지켜야 할 5대 의무 중 하나에 속하는 달로서, 선지자 무하마드가 처음 알라의 계시를 받은 성월에 해당했다.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금식과 함께, 담배, 식음, 심지어 성관계까지 하지 않는 금욕의 생활을 해야 한다.
타 종교인들이 봤을 때 저런 미친 짓을 왜 하나 싶을 수 있지만 무슬림들은 라마단을 통해 알라에 대한 믿음을 시험한다는 의미와 함께 가난한 이웃의 굶주림을 함께 체험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여가 활동들을 찾게 되는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찾는 것이 바로 ‘게임’이었다.
***
토마템 게임즈 사옥.
“라마단이 시작되며 헌팅피그의 신규 회원수는 150% 증가했고, 동시접속자수도 80% 이상 늘어났습니다. 특히 이집트의 증가율 200%로 가장 높고, 가장 낮은 파키스탄도 80% 이상은 됩니다.”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치들의 향연에 산전수전 다 겪은 무자히드마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놀라운 점은 라마단 기간 중 평균 결제 비용도 함께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특히 쏭이 제안한 라마단을 겨냥한 이벤트와 프로모션들이 큰 효과를 봤습니다.”
무자히드와 송시호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향했다.
“점심시간에 유저들이 몰릴 것을 예상해서, 각 국가의 점심때에 맞춰 현지 운영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적절한 홍보를 병행하도록 전략을 짠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덕분에 서비스 만족도가 기이할 정도로 높습니다.”
무자히드가 눈을 찡긋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행운이라는 놈도 준비된 자만이 쟁취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 됐건 결과가 잘 나왔다니 다행입니다.”
물 들어온다고 멍청하게 앉아만 있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다.
물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미리 모터까지 준비해놓는다면 남들이 1km를 갈 때 100km를 갈 수 있는 법.
나는 라마단이라는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전략을 구상하여 제시했다.
“라마단 기간 한정으로 만든 전통 복장 코스프레도 엄청나게 팔렸어요! 한국에 있는 직원들이 좀 고생하긴 했지만···.”
라마단이라는 특수성을 이용한 전통 무슬림 코스튬 업데이트.
짧은 기간 안에 적용하기까지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돈이면 안 되는 게 있던가.
이럴 때 쓰라고 받는 것이 투자금라는 놈이다.
부족한 시간은 실력 있는 외주 인력을 통해 빠르게 메꿨고 다행히 라마단 기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업데이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히 국가마다 조금씩 다른 복장 양식을 디테일하게 구분한 게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신난 송시호가 어깨춤까지 추며 주절주절 떠들었다.
옆에서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던 무자히드가 말을 덧붙였다.
“헌팅피그 고유 콘텐츠도 유저 폭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퍼블리셔로서 수많은 게임 론칭을 해왔지만···. 두 분의 혜안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는 무자히드의 눈빛에는 존경의 그것이 담겨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되리라 의도한 기획 아닙니까? 이슬람 국가가 신성시하는 고양이를 메인 캐릭터로 잡고 불결함과 혐오의 상징인 돼지를 때려잡는. 지금 커뮤니티에선 ‘헌팅피그’가 라마단 기간에 반드시 해야 할 게임으로 국가에서 지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우스갯소리겠지만.”
의도는 개뿔.
개발자들의 지극히 사적 욕망을 투영한 게임이 저 ‘헌팅피그’였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이유야 어찌 됐건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하하. 중동에 대한 저희의 관심과 사랑이 이제야 빛을 발한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심상치가 않아요. 이 업계에 18년 가까이 일해온 제감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그건 알라신만이 아시겠죠. 확실한 건···. 아직 라마단은 3주나 남았다는 겁니다.”
“3주라···.”
의도치 않게 두바이 체류 기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다행히 두바이에선 돈만 내면 60일까지 비자 연장이 가능했다.
“송시호 대표님.”
“네 대운씨?”
“남은 3주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갈아 넣읍시다. 헌팅피그···. 진짜 사고 한번 쳐보자고요.”
흔히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송시호에겐 이번이 그 세 번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기회가 왔는데 놓치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씨익 미소지은 송시호가 목이 부러질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몇 년간 개고생해서 만든 자식이 드디어 빛을 볼 수 있게 됐는데요. 지금 한국에 있는 팀원 녀석들도 난리입니다. 집에 안 간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요. 오죽했으면 건물에 썩은 내가 난다고 민원까지 들어왔을까요.”
그 양반들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애초에 게임에 미친 작자들로 구성된 팀이었으니.
“크흠···. 그래도 사람처럼은 하고 다니라고 좀 전해주세요.”
“지랄지랄 해서 겨우 목욕탕 보내놨습니다. 후우···. 아무튼.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단단한 결의를 다진 무자히드, 송시호, 나까지, 우리 세 사람은 손을 모아 화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 영원할 것 같았던 라마단도 끝이 났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듯 거센 태풍도 서서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침내 집계된 ‘헌팅피그’의 각종 성적표가 우리 손에 들렸다.
***
“그…러니깐. 이게 지금 저희 헌팅피그 지표라는 거죠?”
송시호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며 각종 지표가 어지럽게 적힌 서류와 무자히드를 번갈아 쳐다봤다.
늘 허허 웃으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무자히드 역시 상기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기적이라고 밖엔 볼 수 없군요. 이 정도로 대유행 할 줄은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알라신의 가호가 있었다고 밖에는···.”
“도대체 얼마나 잘됐길래 그래요?
개발자가 아니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지표들이 많았기에 호기심을 담아 송시호에게 물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혹시 몰래카메란가요?”
느닷없이 무자히드 집무실을 두리번거리며 카메라를 찾기 시작하는 송시호.
“아니면 만우절인가? 아닌데. 만우절도 지났는데.”
혼자 생쇼 하는 송시호를 보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상태가 매우 불안정해 보였기에 다그치기보다는 잠깐 시간을 두고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후우···. 죄송합니다. 잠깐 정신을 놨네요.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제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무자히드가 나를 보며 한 달 새 헌팅피그에게 벌어진 기적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헌팅피그의 영향력은 어느새 MENA 지역 전역에 퍼진 상황입니다.”
“MENA지역이요?”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얘기합니다. 이 MENA 지역에서 ARPU 지수, 즉 사용자당 평균매출이 70달러(약 9만원)에 육박했습니다. 사우디가 1인당 80달러로 가장 높고, 2위가 UAE로 78달러입니다. 단순 플레이 시간으로만 따지면 유저 1인당 하루 평균 5시간 정도는 게임을 했구요.”
“미쳤어···. 미친거야.”
진짜 미치기라도 하듯 송시호가 멍한 얼굴로 연신 중얼중얼했다.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무자히드가 모니터 화면을 내보였다.
화면에는 너튜브 콘텐츠들이 쭈르륵 나열되어있었는데 썸네일에 보이는 이미지가 무척 낯익었다.
“헌팅피그를 검색하면 나오는 콘텐츠들입니다. 일명 헌피 챌린지라고 불리죠.”
“헌피 챌린지요?”
“게임 너튜버들 사이에서 밈처럼 퍼지고 있는 겁니다. 한 번의 목숨으로 어디까지 깰 수 있는지 SNS에 인증하는 거죠. 이게 유행처럼 퍼지며 일반 유저들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도전하고 있습니다.”
“허. 이게 이렇게 되나?”
그야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연쇄작용의 결과물.
“겨우 한 달 만에 이 정도의 성적은···. 저도 본 적 없습니다. 지금 길거리에 있는 카페에 한번 나가보십시요. 꽤나 흔하게 헌팅피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더라.
이 말만큼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한 문장이 있을까?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천대받던 게임이 중동에서 소위 말하는 초대박을 터트렸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런데 정리 좀 할게요. 아까 MENA 지역에 헌팅피그가 그리 잘되고 있으면 현재 누적 다운 수는 어떻게 되고 매출은 어떻다는 거죠?”
PU니 ARPU니 LTV니 이런 복잡한 단어는 난 잘 모르겠고, 가장 직관적인 수치는 역시 매출 아니겠는가.
“오늘 기준으로 누적 다운로드 수 500만을 넘겼습니다.”
“네? 얼마요?”
500만!?
50만도 아니고 500만이란다.
그것도 불과 한달만에.
참고로 한국에서는 채 10만도 넘기지 못했었다.
“매출 같은 경우엔 꾸준히 우상향 중이라 정확히 말씀드리기 애매하긴 한데 일 매출 8억을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아마 한두 달 더 지나면 그 두 배도 기대해볼 수 있을 겁니다.”
“시, 십억이요?”
한 달도 아니고 하루 매출이었다.
단순 곱하기만 해도 한 달 매출만 240억은 넘는다는 소리.
연으로 따지면 2,800억이었다.
그야말로 초초대박.
명경지수와 같이 잔잔하던 내 멘탈에 강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허어···.”
장내에 내려앉은 무거운 정적.
머리가 하얘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막간의 침묵을 유지하며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다 송시호를 바라봤다.
“어차피 일은 벌어졌습니다. 한국에 있는 인력은 문제없나요?”
차분한 어조에 정신을 차린 송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투자금으로 가장 먼저 해결한 것이 인력 문제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부족할 듯하네요. 개발 인력을 더 보충하라고 하겠습니다.”
“충원 범위를 너무 보수적으로 잡지 말고 최대한 넉넉하게 잡는 게 좋을 듯하네요.”
“물론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자히드?”
“네 말씀하시죠.”
“매출이 가장 많이 발생한 포인트가 어디죠?”
‘헌팅피그’는 대놓고 과금을 유도하지도 않았고, 그다지 과금할 요소도 많지 않았다.
“커스터 마이징입니다. 자신이 키운 고양이 캐릭터에 애착이 생긴 거죠. 그러다 보니 더욱 특별하게, 나만의 캐릭터로 꾸미고 싶은 욕구가 커진 겁니다.”
이해가 됐다.
당장 길거리만 나가봐도 커스텀 오더 슈퍼카들이 길가에 즐비해 있었으니.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물이 쓰나미일 줄 몰랐지만···. 어쨌든 유저들이 그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크다면 굿즈 비즈니스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굿즈요?”
내 제안에 무자히드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송 대표님. 혹시 지금 시스템에서 더 과금을 유도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갑작스러운 물음에 당황하던 송시호가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저희 게임을 더 많이 즐기게 하는 것이 회사 비전이니까요.”
“좋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겁니다. 그러니 헌팅피그라는 IP를 이용해 굿즈(goods)로 기타 수익을 만들자는 거죠.”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던 무자히드가 나지막한 감탄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기획입니다. 저희 IP 사업부를 통해 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인드로 다 같이 으쌰으쌰해서 일 한번 내봅시다.”
내 파이팅에 두 사람의 얼굴에도 진한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헌팅피그는 명실상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으로 완벽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
경기도 판교 스튜디오SH 사옥.
이제는 어엿한 중견 게임사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규모가 된 스튜디오SH이었다.
회전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울리는 전화벨.
– 띠리리리리♬
“네. 형님! 출장은 잘 갔다 오셨어요?”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통화하던 내 표정이 돌연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사우디 왕세자가 우리를 보고 싶어 한다고요?”
이 정도면 나···.
중동 왕족들의 애착 인형이라 불려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