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8)
8화 이제 세상 무서운지 좀 알겠지?
신림역 인근 연탄 구이집.
“대운아! 여기다 이 자식아!”
구석 자리에 앉은 검은 셔츠 차림의 남자가 유쾌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상철이 형! 이게 몇 년 만이야. 잘 지냈지?”
“몇 년 만이긴 인마! 거의 4년 만이지. 너 참치 잡으러 간다고 훌쩍 떠나고는 한 번도 못 봤잖아.”
차상철.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형이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보육원 형들 사이에서 정말 몇 안 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원양어선에 오른 뒤로는 차마 연락 하지 못 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나저나 너 때깔 많이 좋아졌다? 예전엔 비리비리한 주제에 눈깔엔 독기만 가득하더니 지금은 정 반대가 됐네.”
“형도 4년 동안 그 지랄 같은 참치 배 타봐. 이렇게 안 되면 그게 이상한 거지.”
“크흐흐. 난 때려 죽어도 배는 못 탄다. 기본적으로 뱃멀미가 심해요 내가. 어찌 됐건 간만에 찐하게 소주나 때리자. 이모! 여기 삼겹살 삼 인분에 소주 한 병 주세요. 후레시한 걸로!”
그렇게 상철이형과 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오래 만나지 못한 회포를 풀었다.
“크으···. 옛날에는 이 소주란 놈이 쓰기만 했는데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이제는 소주가 달다 달아.”
“거짓말 좀 하지마. 형 중학교 때부터 술 마시던 거 내가 다 아는데.”
“큼큼···. 그랬냐? 마! 그때는 술맛도 모르고 그냥 세 보이려고 무작정 들이부은 거였지. 낄낄낄. 영탁이 새끼 술 취해서 오줌 지린 거 내가 얘기해줬나?”
4년 만에 만난 상철이형은 여전히 엄청난 수다쟁이였다.
하지만 얘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기에 오랜만에 격의 없이 웃으며 즐거운 술자리를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부탁한 건 좀 알아봤어?”
“아차차. 내 정신 좀 봐라.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기다려봐.”
서류 가방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건넨 상철이형.
“네가 따달라고 했던 그 꼰대 양반. 아주 잡스러운 인간이더만. 어째 파도 파도 괴담 밖에 안 나와. 파일 안을 보면 관련 자료들 다 들어가 있다.”
“크으! 고마워 형. 실력 있는 사설탐정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니 진짜였네.”
현재 상철이형의 직업은 사설탐정.
원래는 형사가 꿈이었는데 술 마시고 시비가 걸린 친구를 돕다가 되려 싸움에 휘말려 금고형을 선고받게 되었고 당연히도 경찰의 꿈은 꺾이게 되었다.
하지만 매사에 긍정적인 상철이형은 비슷한 거라도 해야겠다며 사설탐정을 직업으로 택했고, 현재는 업계에서도 꽤 인정받는 실력이라고 전해 들었다.
“실력 있는 탐정은 개뿔. 맨날 불륜 남녀나 쫓아다니면서 뒤에서 사진이나 찍는 게 단데 뭘. 그나저나 그 인간 뒤는 왜 파달라고 한 거냐?”
상철이형도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기에 새싹보육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말해줬다.
“뭐? 이런 개쓰레기 같은 새끼를 봤나. 꼬꼬마들이랑 원장 엄마한테 그따위 말을 했다고?”
얼굴이 시뻘게진 상철이형이 셔츠 단추를 하나 풀어 재끼고는 거칠게 잔을 털어 넣었다.
“파보니 어때?”
“쓰레기야. 그것도 분리수거도 안되는 개 쓰레기. 그쪽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부동산 투기 조직의 대가리더라고.”
“자세히 좀 설명해줘 봐.”
“그 양반이 했던 불법 중에 탈세 목적의 명의도용은 귀여운 수준이고, 분양권 불법 전매 알선,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 구조물 설치, 개발 제한구역 특별법 위반, 전세 사기 등등 그냥 이쪽에서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모조리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아마 보육원 부지를 산 것도 불법으로 농지 취득자격을 따려고 그랬을 거다.”
“형이 준 자료면 확실히 빅엿···. 먹일 수 있는 거지?”
“그렇긴 한데···. 시발. 법이 좀 좆같애. 부동산 투기는 기껏해야 벌금 몇백 뚜드려 맞는 게 다거든. 분양권 불법 전매로 5000만 원의 수익을 챙겨도 내는 벌금은 고작 300 정도니깐. 거기다 이 양반···. 유명한 지역 유지야. 국회의원이랑도 친분이 두터운 것 같고. 아마 재판까지 올리긴···. 솔직히 쉽지 않을 거다. 크으. 쓰다.”
거칠게 소주잔을 털어낸 상철이형이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근데 또 방법이 영 없는 건 아니란 말이지.”
“뭔데? 그 방법이란게.”
“죄를 한꺼번에 모조리 묶어서 기소를 때리는 거지. 불법 투기에, 전세 사기, 부동산 실명법 위반, 탈세 이거 4개만 묶어도 실형은 무조건 나올걸?”
“그럼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냐?”
내 말에 상철이형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서라. 요 순진한 놈아. 가진 건 돈밖에 없는 양반이야. 아마도 곧장 구앤장 같은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할 거다. 돈만 주면 없는 죄도 만들고, 있는 죄도 없애는 게 구앤장 변호사들이야. 사실상 실형은 힘들다고 봐야지. 에라이. 더러운 세상. 술이나 마시자.”
상철이형의 빈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방법이 없겠어? 겨우 벌금 몇백 정도로 끝내고 싶진 않은데.”
“초호화 변호단이고 나발이고 꼼짝도 못 하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뭔데 그게?”
“언론을 이용하는 거야. 거세게 여론을 일으키는 거지. 그렇게 되면 경찰도, 변호사도 함부로 설치지 못해. 전 국민이 눈 시뻘겋게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떤 간 큰놈이 그 지랄을 하겠어? 근데 어디 그게 쉽겠냐고···. 그 정도면 메이저 언론사에서 꽤나 비중 있게 다뤄줘야 할 텐데 걔내들이 하겠냐? 괜히 변호사 놈들 잘못 건드렸다가 골치 아파질 거 뻔히 아는데.”
상철이형의 말을 듣자 내 머리에서 무언가 번득였다.
“에이씨. 이 얘기는 그만하자. 술맛 떨어진다.”
“그래도 고마워 형. 엄청 도움 많이 됐어. 계좌번호 좀 줘봐. 의뢰 비용 넣어줄게.”
내 말에 상철이형이 표정을 굳혔다.
“이 자식이. 이 형님을 뭐로 보고. 참치만 뒈지게 잡다가 이제 막 빚 갚은 놈한테 의뢰비 받을 정도로 양아치 아니거든? 거기다 너한테는 신세 진 것도 있잖냐. 그냥 지인 찬스라고 생각해 새꺄.”
코인에 한참 미쳐있던 시절.
자산이 1억까지 불었을 때 상철이형이 다급히 돈을 빌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어머니가 큰 사고를 당해 당장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말없이 800만 원이라는 돈을 형에게 송금했다.
물론 돈은 다 갚았지만 상철이 형은 아직도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 많은 지인 중에 선뜻 돈을 빌려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나.
“고마워 형.”
“고마우면 이렇게 술이나 종종 먹자. 사설탐정이 겉으로만 좀 있어 보이지 존나게 외로운 직업이야.”
그렇게 상철이형과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술잔을 주고받았다.
***
며칠 후. 한국대 입구역 작은 카페.
“혹시···. 송대운씨?”
“네. 제가 송대운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
[너튜브 ‘킹기자 김민우’ 채널 주인장 김민우]킹기자 김민우.
8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기자 출신 너튜버였다.
개인 채널에 취재기를 올리는 크리에이터였는데, 특히 사기꾼을 잡는 너튜브로 유명세가 있었다.
“저는 딱히 명함이랄게 없네요.”
“괜찮습니다. 일단 앉으시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자 본격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메일로 보내주신 내용 꼼꼼히 검토해봤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크로스체킹까지 해봤는데 충분히 다뤄볼 만한 내용이더군요.”
“그렇습니까?”
망망대해같이 보이는 바다에도 길이 존재한다.
이를 ‘해로’라고 하는데, 배가 이 해로를 따라 이동하면 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활한 바다에서 ‘무조건’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어떤 변수가 생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다라는 곳이었으니깐.
그리고 실력 있는 선장들은 이런 변수를 만날 때 기존의 ‘해로’를 벗어난 새로운 해로를 개척하기도 한다.
나는 가방에서 서류 파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추가 자료입니다.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전세 사기단이더군요.”
내가 건넨 서류를 훑어보던 김민우가 나지막이 감탄을 내뱉었다.
“이런···. 자료는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이거 원. 제가 딱히 할 것도 없겠군요.”
상철이형의 작품이었다.
새싹보육원이 없어질 뻔했다는 얘기에 분노하여 앞뒤 다 제쳐두고 이 일에만 몰두한 결과물이었다.
마성준이라는 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질적인 인간이었다.
알고 보니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전세 사기를 치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바로 마성준이었다.
“부디 이 제보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피해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대운씨 같은 정의로운 분이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김민우의 두 눈이 형형하게 번득였다.
“걱정 마십시오. 기자로서의 사명감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 일을 만천하에 드러내서 이 사기꾼 놈을 지엄한 법의 심판대에 올리겠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김민우는 떠나갔고, 다음 날 저녁 6시.
‘킹기자 김민우’ 너튜브 채널에 영상 세 개가 동시에 업로드된다.
[전세 사기의 대부 빌라왕 마00. 그가 청년들 등쳐먹는 방법.]“근래 전세 사기 피해액이 한 달에 천억씩 터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십니까? 그 배후에는 일명 빌라왕이라 불리는 마모씨가 있다고 합니다. 그의 깡통 전세 사기 수법은······.”
다음날에도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직접 전세 사기 당한 대학생 피해자와 인터뷰 했습니다.]그 다음 날에도 또 다른 영상이 올라왔다.
[전세 사기는 ‘바지’가 아니라 조직의 ‘우두머리’인 마00을 잡아야 합니다.]해당 영상은 순식간에 ‘화제의 영상’으로 올라가며 조회수가 무섭게 치솟았다.
ㄴ저런 사기꾼 새끼는 재산 다 몰수해서 빚 다 몰아주고 후대까지 빚 상속해서 갚으라고 해야함.
ㄴ경찰은 뭐함? 또 설렁설렁 넘어가지말고 이런 사기꾼 빨리 안잡고.
ㄴ아니 어떻게 대포통장은 그렇게 엄격하게 단속하면서 대포 집주인은 저렇게 방치해두는거냐고.
ㄴ사형 때려야함. 살인자는 한두명 죽일 뿐이지만 저런 사람들은 한참 젊은애들 수십명을 죽이는거나 마찬가지인거임.
ㄴ아니 명백한 사기범죄고 얼마나 피해가 많은데 경찰은 가만이 있고 너튜버가 이런걸 파헤치는 거냐고!
나는 흐뭇한 미소로 영상에 달린 댓글 하나하나를 정독했다.
“이 양반. 일 한번 야무지게 잘하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나비의 날갯짓은 바다를 건너 태풍이 되어 돌아왔으니.
거센 여론이 형성되자 경찰들도 부랴부랴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정치권에서도 2030 표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발 빠르게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고, 검찰과 경찰 고위부를 압박하며 사건을 더 키워갔다.
그리고 결국.
[드디어 잡혔다. 수백억대 전세 사기 피의자 마모 씨. 수사 한 달 만에 검거.] [김덕수 국무총리 “전세 사기범, 지구 끝까지 쫓아가 엄벌할 것.”] [최준수 의원. 빌라왕 전세 사기 방지 3법 대표 발의 ‘관련자 엄중 처벌할 것’]익숙한 실루엣의 남자가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끌려가는 모습이 뉴스에 송출되었다.
“이 양반아. 이제 세상 무서운지 좀 알겠지?”
TV를 보며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듣기로 마성준이 가진 모든 부동산 자산은 경매 혹은 신탁회사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보육원 땅을 미리 사놓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오늘은 두 발 뻗고 개운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이다. 오늘은 자축하는 의미에서 족발이나 시켜 먹어야지.”
그렇게 나는 허름한 모텔방에서 나만의 참교육 축하 파티를 즐겼다.
***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모텔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향했다.
한참을 걸려 도착한 곳은.
[노다지 공인중개사]이제는 꿉꿉한 모텔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금자리를 구할 때가 왔다.
어릴적부터 그저 상상만 해왔던 그런 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