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86)
86화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김채형의 동공이 거세게 떨려왔다.
“네. 사실입니다. 이곳 매니저인 탁경호씨가 연습생에게 레슨비를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했습니다. 더구나 김 대표님이 지시했다고 하고서요.”
“말도 안됩니다···. 경호가 왜 그런 짓을?”
충격이 상당했는지 김채형이 소파에 힘없이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움켜쥐었다.
“경호는 제 손으로 뽑아서 꼬마 때부터 제가 직접 가르친 놈입니다!”
“어차피 연습생에게 물어만 봐도 금방 밝혀질 얘깁니다. 제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죠.”
“허···.”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린 김채형이 쓰러지듯 소파 뒤로 몸을 젖혔다.
“왜···. 그런 짓을 한 걸까요?”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침착함을 되찾은 김채형이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과 연습생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이었겠죠.”
“이간질해서 얻는게 뭐가 있다고요?”
“파랑새가 망하길 바라는 어떤 곳이 있으니까요. 안 봐도 뻔한 그림 아닙니까?”
“이런 배은망덕한 새끼가···.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라더니···.”
잇몸에서 피가 나는 건 아닐런지 이를 꽉 깨문 김채형의 두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이 개새끼를 그냥!”
결국 참다못한 김채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나는 무심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어떡하시려고요?”
“뭘 어떡합니까! 당장 탁경호 그 새끼 찾아내야죠.”
“그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는 김채형.
“기껏해야 자르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조치가 있습니까? 어차피 증거도 없어서 법적으로 뭘 할 수도 없습니다.”
“하아···.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양팔을 늘어뜨린 김채형이 다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참···. 이러려고 시작한 사업이 아닌데···. 이제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사람 만나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누굴 만나도 의심부터 듭니다. 다른 저의가 있는 건 아닐까? 시커먼 속내를 감춘 건 아닐까 하는? 하하하. 이 정도면 그냥 정신병자 아닙니까?”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김채형이 허망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송 대표님도 의심스럽습니다. 일면식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투자 얘기를 꺼낸 것도 수상하고, 또 이런 사실을 알린 것도 이상합니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이런 얘기를 꺼낸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모든 게 다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제가 정상 같습니까?”
김채형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넋두리하듯 울분을 쏟아냈다.
나는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한 눈으로 그런 김채형을 지긋이 바라봤다.
“잘하고 계시네요. 전부 의심하십시오. 믿지 마세요. 왜 믿습니까? 저는 사람 안 믿습니다. 대신 상황을 믿는 편이죠. 그래서 상황 만드는걸 좋아하고요.”
나지막한 내 목소리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김채형의 몸이 움찔했다.
“김 대표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건 프로의 세계라고요. 어설픈 정 따위 감정은 내려놓고 그냥 비즈니스 대상으로만 보는 겁니다. 아까 저한테 물어보셨죠? 갑자기 왜 투자 제의를 했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왜 이런 뭣 같은 소식을 전했는지요? 간단합니다. 저는 김채형 대표가 이끄는 이 파랑새 엔터테인먼트가 투자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고, 지금은 비록 연습생 신분이지만 아이리스가 걸그룹으로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 내렸기 때문입니다.”
“아···.”
고개를 든 김채형 대표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비밀 지켜주실 거라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유라 때문이었습니다.”
“유라···. 우리 회사 연습생 고유라 말입니까?”
“맞습니다. 걔가 제 동생입니다.”
“동생이요? 유라는 보육원 출신인데···. 아!”
“맞습니다. 저도 같은 보육원 출신입니다.”
“어떻게 그런···?”
보육원 출신에 나이도 어린놈이 어떻게 이런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투자회사의 대표인지 묻는듯한 얼굴이었으나 딱히 설명해줄 의무는 없었다.
“유라는 어릴 적부터 제가 업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중한 동생입니다. 그런 동생이 아이돌을 꿈꾼다는데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파랑새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좀 알아보게 되었고 그게 여기까지 이어진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렇다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투자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이제껏 그런 식으로 투자한 적도 없었고요.”
당연했다.
수십억 단위의 돈이 오가는 투자를 어찌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행한단 말인가.
그것보단 유라에게 흘러나온 황금빛이 더 확실한 보증이었다.
플레티넘 뮤직 황희철이 검은빛의 원흉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나머지 절반의 황금빛은 여기 있는 파랑새 엔터 김채형으로부터 기인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애들을 성공시킬 수 있어.’
서당 개 삼 년이면 빗자루로 마당도 쓴다던데.
황금빛이 아니어도 이제 어느정도 감은 있다.
업에 대한 열정,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등등.
이런 사람은 날개만 제대로 달아주면 훨훨 날아다닐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고 나는 그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론만 말씀드리죠. 투자하겠습니다. 대신 다른 건 신경 쓰지 마시고 아이들 데뷔에만 집중해주세요. 가능하시겠습니까?”
김채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네···. 넵.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얼마를···?”
“반대로 묻죠.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넉넉잡아서요.”
“의상제작, 뮤비촬영, 각종 마케팅 비용까지 고려하면···. 15억은 필요합니다.”
“지분 40%에 30억 투자하죠. 대신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건 뭐든 최상급으로. 어떻습니까?”
“삼, 삼십억···.”
대뜸 내가 두 배를 불러버리니 김채형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법인계좌에서 김선기가 굴리고 있는 현금성 자산만 1,200억을 넘어가는 상황이다.
솔직히 30억은 목욕탕에서 물 한 바가지 퍼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내 희열 섞인 목소리로 당차게 고개를 끄덕인 김채형.
“조,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데뷔는 빠를수록 좋을 테니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는 걸로 하죠. 일단 금주 내로 가계약서 보내드릴 테니 검토해보시고 이상 없으면 저희 쪽에서 실사가 나갈 겁니다. 요청자료 준비해주시고 이후에 바로 본계약 진행하는 거로 하죠.”
충분히 이해한 김채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리스···.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 두 사람은 뜨거운 눈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아. 그나저나 탁경호 그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잘라야죠. 대신 다른 명목으로 잘라야 합니다.”
“어째서죠?”
“지금 그놈을 조지면 도마뱀 꼬리 자르는 꼴밖에 안될 겁니다. 그냥 적당한 명목으로 잘라버리고 방심하게 두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그놈하고 엮인 놈들 줄줄이 묶어서 한 방에 보낼 생각이니.”
상철이 형이 증거를 수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터.
놈과 엮여있다는 거물들까지 싹 말아버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꼭 응징 해주실 거라고 믿고···.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럼요. 반드시 그리해야죠.”
다른 건 다 참아도 내 사람을 건드리는 것만은 절대 못 참는다.
***
신사동 인근 작은 카페.
간만에 유라에게 점심밥을 사주고 커피 한잔하기 위해 연습실 근처 카페에 들렀다.
“어제 뮤비 촬영했는데 글쎄 거기서 채린이가······.”
쫑알쫑알 참 말도 많았다.
처음에 그 까칠 도도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이제는 수다쟁이가 되어 그동안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풀어놨다.
웃긴 게 이런 모습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혹여 다른 사람이 끼어드는 상황이 벌어지면 거짓말처럼 무표정해지며 고장 난 로봇처럼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무슨 야누스의 얼굴도 아니고.
어쨌거나 이전보다 밝아진 건 확실했기에 보기는 좋았다.
“나 오빠 말 듣길 잘한 것 같아.”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 유라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뭔 소리야?”
“한 달 전에 오빠가 그랬잖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단 버티라고. 그거 진짜 잘한 것 같다고. 오빠가 그 말 안 해줬으면···. 탁경호 오빠 따라서 홀라당 나가버렸을 수도···.”
“그 탁경혼가 뭔가 하는 매니저 잘렸다며?”
“어? 어떻게 알았어? 갑자기 그렇게 돼서 우리도 다 놀랬다니깐. 들어보니 법카로 뭘 횡령을 했다는데···. 본인도 순순히 나간 걸 보니 뭘 잘못하긴 했나 봐.”
내가 주문한 데로 김채형 대표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잘 내보낸 듯했다.
“멤버들은 괜찮아? 그 매니저 꽤 좋아하지 않았나?”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잘 챙겨줬으니깐 좀 아쉽다는 정도지 뭐. 그리고 그 오빠 뭔가 이상해. 왜 김 대표님이 레슨비를 요구했다고 거짓말 한 거지?”
가장 중요한 신뢰 문제였기에 김채형 대표는 유라를 찾아가 자신은 결코 레슨비 따위를 요구한 적 없으며 탁경호가 꾸며낸 얘기라고 열과 성을 다해 해명했다고 한다.
“모르지 뭐. 그나저나 어때? 데뷔 준비는 잘돼가? 대표가 뭐 서운하게 하는 건 없어?”
이제는 나도 엄연히 파랑새 엔터테인먼트 대주주.
곧 회사 매출의 핵심이 될 유라를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며 캐물었다.
“서운하긴 무슨. 요즘 너무 잘해줘서 오히려 황송할 정도야. 뮤비 감독님도 완전 유명하신 분이고, 헤어랑 메이크업도 톱스타만 간다는 청담 샵으로 보내주고, 숙소도 완전 좋은 아파트로 바꿔주고, 요새 최고야! 우리 회사 짱짱! 김 대표님 짱짱!”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유라를 보니 내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그동안 처절하게 버텨온 삶이었던 만큼 이제는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오라비의 심정이랄까.
어찌 됐건 유라에게 황금빛이 보인 건 팩트니 엇나가지만 않는다면 아이돌로서 대성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내가 잘 케어해준다는 가정하였지만.
“좋아 보이네. 열심히 해라.”
“오빠가 행운의 인간 토템이긴 한가 봐. 오빠랑 다시 만나고 나서 일이 술술 풀리고 있으니.”
“이제 알았냐? 그러니깐 말 좀 잘 들으라고. 중2병 걸린 애마냥 괜히 원장 엄마한테 투정 부리지 말고.
“아오씨! 죽을래? 이제 안 안 그런다고!”
“얼씨구? 차기 걸그룹 리더가 말하는 본새 보소. 이거 녹음했다가 유명해지면 너튜브에 풀어버려야겠다. 다시 욕 한번 걸쭉하게 해주라.”
“걸쭉하게 맞아볼래?”
“와아. 어릴 땐 다친데 호 해달라고 그렇게 매달리더니 이제는 늙은 오빠 두들겨 팬단다. 동네 사람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아이돌 리더가 여기 있습니다요!”
“아 쫌!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얘기 그만 좀 해!”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카페에서 투닥투닥거리며 시간을 보냈고.
“하아···. 더 놀고 싶다.”
한껏 아쉬워하는 유라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회사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한 달 후.
‘아이리스’와 ‘코튼핑크’라는 팀명으로 가요계에 걸그룹 두 팀이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그중 ‘아이리스’는 기존 아이돌 그룹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 행보를 선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