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93)
93화 너무 욕심 부렸나?
데뷔 시작과 동시에 원치 않은 논란에 휩싸였던 걸그룹 ‘아이리스’는 그 모든 논란이 허위로 밝혀지며 오히려 전화위복을 맞이했다.
더구나 데뷔 동기라 할 수 있는 코튼핑크가 나락으로 떨어지며 그 팬덤까지 흡수하자 인기는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리스, 성공적인 데뷔 활동 마무리]‘아이리스(유라, 다영, 채린, 나비)는 NBC 핫가요 출연을 끝으로 4주에 걸친 방송 활동을 종료했다. 아이리스는 이날 방송에서 데뷔곡 ‘별을 달리다’로 1위를 차지하며 음악방송 5관왕에 올라······.’
“오우. 탄력 한번 받으니깐 쭉쭉 날아가네.”
아이리스의 데뷔 앨범 ‘IRIS’는 발매 일주일 만에 음반 판매량 22만 장을 넘기며 역대 걸그룹 데뷔 앨범 초동 3위의 기록을 세웠고,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인 레몬, 램프, 앤트의 주간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데뷔 앨범의 누적 판매량 50만 장 달성.
과거와 달리 요즘 앨범 구매는 사실상 팬덤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오디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특정 팬덤을 확보한 상태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연차가 쌓여야 가능한 수치기도 했다.
“일단 공식활동은 끝이 났으니 애들도 여유 있겠지?”
모 기획사는 한번 반응이 오면 소속 연예인들을 마른 걸레 짜듯 굴린다던데 다행히도 김채형 대표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다.
언제 한번 김채형과 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누군가 아이돌은 수명이 짧기에 단거리 육상과 같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물론 일부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굳이 따지면 인터벌 운동과 같다고 할까요? 짧은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임팩트를 남기고 팬들에게 여운을 남기는 거죠. 대신 그 텀이 너무 길면 안 됩니다. 그 사이에 바로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를 준비를 하는 거죠. 그 완급조절이야말로 아이돌 그룹이 그나마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본격적인 2집 준비에 들어가기 앞서 오늘은 간만에 신사동 나들이에 나섰다.
“아이고. 얼굴 까먹을 뻔 했습니다 송 대표님. 아! 이사님으로 불러 달라 하셨죠?”
갖은 마음고생으로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서 이제는 얼굴에 제법 살이 붙었고,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온 것처럼 피부도 반들반들한 김채형 대표였다.
근심 가득했던 얼굴에선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김대표님? 얼굴 좋아지셨네요.”
“하하하. 요즘 뭐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으니까요. 이게 모두 송 이사님 덕분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귀빈 모시듯 나를 소파로 안내한 김대표가 손수 내린 드립 커피를 나에게 건넸다.
“요즘 좀 어떠세요? 1집 활동 마무리됐는데.”
“어후. 공식활동만 끝났을 뿐이지 바로 2집 준비도 해야 하고 바쁘기는 지금이 더 바쁜 것 같습니다.”
김채형 대표가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애들 분위기는 어때요?”
“말도 마세요. 웬만한 군인들보다 전우애가 더 넘칩니다. 보고 있으면 주책맞을 정도라니까요.”
“대체 어떻길래···?”
“투닥투닥하면서도 서로 어찌나 극진히 챙겨주는지 얘네들 혹시 친자매 아닌가 저도 헷갈릴 지경입니다. 보고 있으면 아주 웃겨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아이리스에 대한 진한 애정이 녹아있었다.
“그래도 군말 없이 바쁜 스케줄 묵묵히 견뎌내 줘서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아마 곧 정산도 받게 될 겁니다.”
“벌써 애들이 손익 분기를 넘겼나요?”
일반적으로 국내 아이돌은 데뷔 후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초기 투자금과 진행비를 회수하기 전까지 아무런 수익을 가져가지 못하는 구조였다.
물론 대형 기획사 같은 경우에는 애초에 연습생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않는 조건도 있었지만, 중소형 기획사에게 그러한 시스템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직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익 일부를 아이들에게 지급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애들도 동기부여가 될 거고 더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하면서 김채형 대표가 내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내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엄연히 지분 40%를 가진 대주주.
특히나 수익과 정산 관련된 부분은 예민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내 의중을 떠보려는 듯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김 대표님 생각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물론 손익 분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회수 비용을 정말 최소한으로만 잡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홀짝이던 김채형 대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뜬금없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송 이사님.”
갑자기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깊게 허리를 숙여 보이는 김채형.
입에 머금은 커피를 급히 삼키고 그런 김채형의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어휴 왜 이러십니까? 사람 당황스럽게.”
“유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아이리스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는 말이었다.
아마 김채형은 유라 사건이 발 빠르게 수습된 것에 내가 개입되어있음을 눈치챈듯했다.
“제 동생 일입니다. 제가 투자한 회사의 일이기도 했고요. 당연한 겁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아마···. 플레티넘 뮤직이 그렇게 된 것도 송 이사님과 관련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양반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데?.
그런데 어째 나를 보는 눈빛이 흑막 속에 가려진 어마어마한 거물이라도 보는 듯했다.
“플레티넘 뮤직은 그동안 쌓아온 업보를 되돌려 받았을 뿐입니다. 저와는 무관합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냥 내가 한 짓이라고 단정 지은 듯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다 끝난 일인데.
“절대 허튼짓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회사가 잘 성장할 수 있을지만 신경 쓰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네네. 믿습니다.”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열심히 한다는데 응원해주는 수밖에.
말없이 김채형 대표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으로 그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행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략 3개월 정도 후에 2집으로 컴백 할 겁니다. 이번에는 살짝 컨셉을 비틀어서 편하고 친근한 여동생 컨셉을 잡고 재즈 사운드와 중독적인 힙합 비트를 섞은 곡을 만들 겁니다.”
본인 전문분야가 나오니 김채형 대표가 신이 나서 주저리저주리 떠들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그의 수다를 들어줄 뿐이었다.
그러다 김채형 대표가 나에게 뜻밖에 제안을 했다.
“이제 아이들한테 송 이사님 정체에 대해 밝히시는 게 어떨까요?”
본인이 먼저 저런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필시 무슨 연유가 있을 터.
“그럴 이유가 있는 겁니까?”
“사실 그게···. 애들도 이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것 같더군요. 송 이사님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고, 단순히 유라의 오빠라기엔 아무래도 제가 송 이사님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긴 하니까요.”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회사 내 속사정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고, 회사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사실 보통 사람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그런가요···?”
“물론 송 이사님이 회사가 도산하기 직전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투자자란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그냥 다른 뭔가가 있나 의심만 하는 거죠. 심지어 막내 채린이는 송 이사님을 제 이복동생으로 추측하고 혼자 망상에 빠져있더군요.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애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엉뚱한 구석이 있었다.
이복형제라니.
어려서부터 엄마 따라 아침드라마를 많이 봤다고 하더니 그 부작용인듯 싶었다.
“뭐···. 이제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무슨 국정원 요원도 아니고.”
내 승낙에 김채형 대표가 반색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난감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 송 이사님만 특별대우하냐면서 말이죠.”
김채형 대표만의 고충이 많았나 보다.
하긴, 애들이 좀 별나야지.
아이리스 멤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나 할까?
가끔씩 툭툭 던지는 장난에 나 역시 당황할 때가 많았다.
물론 이제는 어림도 없었지만.
“지금 애들 연습실에 있나요?”
“네. 한참 연습 중일 겁니다. 요즘 의욕이 장난 아니거든요.”
“그러면 인사도 할 겸 연습실로 내려가서 잘 설명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골치 아픈 문제 하나를 해결한 듯 그의 얼굴이 한결 개운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벽에 달린 시계를 확인한 김채형 대표.
“마침 연습 시간도 다 끝나가네요. 저는 밀린 업무가 있어서···.”
“이런. 제가 너무 시간을 오래 잡아두고 있었군요.”
“아닙니다. 송 이사님과의 시간은 언제나 환영이죠.”
저 말이 딱히 가식 같진 않아 기분 좋게 악수를 나눈 후, 계단을 타고 지하 연습실로 향했다.
둥.둥.둥.둥
3층까지 들려오는 역동적인 비트.
그리고 때마침 음악 소리가 뚝 끊겼다.
타이밍 좋게 연습이 끝난듯했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홀로 상념에 잠겼다.
“상황이 잘 정리되긴 했는데···. 진짜 이게 끝인가?”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 떠도는 의문.
분명 아이리스의 데뷔는 성공적이라 할만했으며, 각종 성적표도 모두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 개운치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라고?
지금까지의 황금빛을 반추해보면 다소 아쉬운 결과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황금빛은 그 색의 농도에 따라 돌아오는 보상도 컸다.
물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았지만.
‘내가 유라한테 봤던 황금빛은 결코 옅지 않았단 말이지.’
비록 검은빛에 절반을 내어주긴 했지만, 흡사 골드바를 연상케 하는 짙은 황금빛.
그 정도의 빛을 뿜어냈는데 고작 이 정도의 성공으로 막을 내린다고?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가?”
그간 이룬 성공에 취해 나도 모르게 감을 잃었나 보다.
지금도 충분히 남들이 우러러볼 정도의 성공이건만.
애써 고개를 털어버리고 내려가는 속도를 올렸다.
“꾸준한 계단식 성공이겠지 뭐. 정신 차리자 대운아. 몇 번 잘 됐다고 많이 건방졌구나! 너.”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연습실 문 앞까지 도착했다.
어쩐 일인지 연습실에는 조용한 침묵만이 흘렀다.
“뻔하지. 퍼질러 누워있거나, 핸드폰 보고 있거나.”
문고리를 손에 잡고 확 젖히자 코로 훅 치미는 소녀 특유의 체취와 함께 연습실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이건 또 뭐야?”
극도로 당황한 나는 어버버하며 말까지 더듬었다.
누구든 지금의 상황과 마주한다면 나와 같은 반응이지 않을까?
기다란 소파에 쪼로미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네 명의 소녀들에게서 동시에 찬란한 황금빛이 흩뿌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