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Investor Who Picks Up Conglomerates RAW novel - Chapter (98)
98화 드디어 터지다
“MS···? 설마 매크로 소프트?”
나도 모르게 놀라서 반문했다.
매크로 소프트가 어떤 회사던가?
미국 워싱턴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술 기업으로 시가총액이 2,600조 원에 육박하는 초거대 기업이었다.
“거기뿐 아니라 트위트랑, 이즈코드도 ‘따봉’에 관심이 있다고 연락이 왔었어요.”
“허···. 따봉이 그 정도야?”
스타트업계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거물급 기업들이었다.
요즘 미국 IT 공룡들이 M&A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 대상이 베슬로가 될 줄이야.
“잠깐. 근데 아까 사업부 인수라고 하지 않았냐?”
“맞아요.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회사를 팔 이유는 없죠.”
당연했다.
이제 겨우 동남아 시장에 뿌리내렸을 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길고 단단한 줄기가 뻗어 나올 것이 분명한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동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럼 사업부 인수는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예요. 회사 전체를 인수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따봉’을 서비스할 수 있는 권한을 사겠다는 거죠.”
“흐음···. 쉽게 말해 프렌차이즈 내고 싶다는 뜻인가? 레시피랑 재료만 제공해주면 운영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뭐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되죠.”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동남아에서처럼 미국에서도 직접 운영하면 되는 거잖아.”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뭐가 쉽지 않아?”
“동남아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호감과 인지도 높은 편이라 그나마 괜찮은데 북미나 유럽은 규제도 많고, 로비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진출이 쉽지는 않아요.”
“그래?”
듣고 보니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닌듯했다.
어떻게 보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격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니.
“근데 그런 중요한 일은 네가 직접 만나야지 왜 나를 시키냐 인마.”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제가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당장 내일도 미팅 때문에 인도로 출국해야 하고요. 팀원 녀석들을 보내자니 그런 미팅에는 젬병이고. 믿을 사람이 형밖에 없어요. 그냥 간단히 차 한잔하면서 얘네들이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파악만 해주세요. 형 그런 거 전문이잖아요.”
“진짜 그 정도면 되냐?”
“일단 그 정도면 충분해요. 당장 급하게 진행할 건 아니니까요. 조건 안맞으면 거부할 수도 있고. 부탁 좀 드려요 형님.”
어깨까지 주무르며 아양을 떨어대는 장원이놈을 보니 차마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 자식이 오랜만에 해외 놀러 가나 했더니 숙제를 시키네.”
“VC 입장으로도 나쁠 거 없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랑 안면 트기가 쉽진 않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계 굴지의 기업 CEO들과 안면을 틀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벤처캐피탈로서는 가히 천금 같은 기회가 될 수 있었기에.
“갔다 오면 비싼 술 사라?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미리 잘 전해놔. 또 막상 갔는데 너는 누구니? 이런 표정으로 만나게 하지 말고.”
“하하하. 그건 걱정 마세요. 단단히 일러둘게요.”
“오냐. 인도 잘 다녀오고.”
“넵! 인도에도 사고 한번 쳐보겠습니다.”
경례 모션을 취하며 씩씩하게 대답하는 장원이를 보자 피식 웃음을 흘러나왔다.
내성적이고 자신감 없던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자신감과 여유가 충만한 모습이었다.
확실한건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았다.
그렇게 이장원과 헤어지고 베슬로 사옥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판교로 향했다.
판교에 한 카페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가운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하하하. 어째 회사 나가고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군요 딜런?”
“매튜님! 잘 지내셨어요?”
북산벤처스 인턴 시절. 내 사수였던 매튜였다.
내 마음 속 스승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인만큼 이렇게 종종 만남을 가질 생각이었다.
“저야 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처럼 눈에 불을 켜고 투자할만한 회사만 찾아다니고 있지요.”
역시 매튜다웠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그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으니.
확실히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다.
“일단 음료부터 시킬까요?”
“아! 제가 사겠습니다.”
“무슨 소리. 여긴 엄연히 비즈니스 자립니다? 고로 법카를 써도 무방하다는 소리지요.”
이런 센스쟁이 같으니.
한쪽 눈을 찡긋한 매튜가 곧이어 음료 두 잔을 쟁반에 담아왔다.
“잘 마시겠습니다.”
빨대에 입을 대고 아메리카노를 한껏 들이키자 불볕더위에 메말라 있던 육신에 생기가 도는듯했다.
“딜런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야 뭐. 이것저것 하느라 쓸데없이 바빴습니다. 학교도 이제 곧 졸업이라.”
“오호.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고졸이 아닌 대졸자가 되는 건가요?”
“하하하. 아직은 졸업예정자입니다.”
전형적인 매튜식 아재 농담이었지만 사회생활을 헛으로 한건 아닌만큼 영혼 없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몇 주 후에 실리콘밸리를 갈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요?”
“네. 학교 연수 프로그램 지원했습니다. 아마도···. 되지 않을까 싶고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내가 안 되면 누가 되겠냐는 생각이 있었다.
“실리콘밸리라···. 정말 큰 공부가 될 겁니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생태계가 전 세계 스타트업계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없을 테니까요.”
“매튜는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고 하셨죠?”
“물론입니다. 심지어 거기서 창업도 했었는걸요.”
“창업이요? 매튜가요?”
처음 듣는 얘기였다.
매튜가 창업자라니.
뭔가 매칭이 되질 않았다.
“하하하. 저라고 무작정 벤처캐피탈업에 뛰어든 줄 알았나요? 저도 엄연히 창업 유경험자입니다. 크진 않지만 나름 엑시트도 했었고요.”
세상에. 엑시트까지 성공했단다.
호기심이 들끓었다.
“전혀 몰랐습니다.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별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창업 놀이 좀 했다고나 할까요? 대학 시절 백인 친구와 장난처럼 시작했던 창업이 운 좋게 T콤비네이터 그러니깐 엑셀러레이터의 시초지요. 운 좋게 그곳의 컨택을 받아 보육프로그램에 참가한 게 큰 기회가 됐습니다.”
“오오. 그래서요?”
듣기로 T콤비네이터는 전 세계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중 1위 기관이며, 하버드 MBA보다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체계적인 스타트업 육성 시스템을 통해 에어비앤비, 드롭 박스 등 막강한 동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은 물론이고, 경영 및 회계, 마케팅 전략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벤처캐피탈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죠.”
“뭐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건 없었나요?”
“특별한 에피소드라···.”
턱을 괴고 곰곰이 생각에 빠져있던 매튜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하나 생각나는 게 있긴 하군요.”
“그게 뭔가요?”
“보육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막 실리콘밸리에 도착했을 때 일이었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실리콘밸리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중고 컴퓨터 2대를 구매해야 했죠. 당시 저희는 가난한 대학생 신분이라 온라인에서 중고로 컴퓨터를 알아봤습니다. 때마침 괜찮은 매물이 있었고 근처 카페에서 판매자와 만나기로 했죠.”
살인적인 물가로 악명이 높은 실리콘밸리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서 조그만 경차를 몰고 웬 아주머니가 나타나더군요. 그분이 판매자였던 거죠. 물건을 거래하며 그 자리에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기부하기 위해 일하던 회사의 물품들을 처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 이게 실리콘밸리구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놀랍게도 며칠 후에 그분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정말 뜻밖에 장소에서요.”
낮은 톤의 조곤조곤한 말투였지만 이상하게 몰입이 잘 됐다.
“TC 프로그램 중 창업자가 본인의 엑시트 스토리를 공유하는 프라이데이 디너(Friday Dinner)라는 세션이 있습니다. 거기서 한창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더군요. 우리에게 컴퓨터를 팔았던 바로 그 아주머니였습니다.”
“엥? 그분이 왜 거기서···?”
“하하하. 알고 보니 그분이 실리콘밸리 게임회사 바밤(Babam)의 창업자인 홀리 수(Holly Su) 님이셨더군요. 한 달 전 미국의 대형 게임회사에 회사를 매각하셨고요. 2조라는 금액에.”
“커헉. 2조···.”
평범한 가정주부인 줄 알았더니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마치 요즘 유행한다는 웹소설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하네요.”
“그만큼 실리콘밸리에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이 창업 생태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가보시면 딜런도 배우는 게 많을 겁니다.”
“근데 거기도 회식 같은 걸 하나요?”
쓸데없는 질문이었지만 괜히 궁금했다.
“하하하. 한국식 회식 문화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껏해야 핑거푸드에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간단히 얘기 나누는 자리일 뿐이죠. 그마저도 보통 한두 시간이면 끝이 납니다. 저녁 약속이 잡혀있는 직원은 도중에 가버리기도 하죠.”
“헐.”
오늘은 먹고 죽자!
술 잘 마시는 놈이 일도 잘하는 법이야!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아직 한국에선 이런 식의 회식 문화가 빈번했다.
만약 한국에서 말단 직원이 저녁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간다는 용기있는 멘트를 날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몰라도 그다지 유쾌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미국에선 그게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가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렇군요.”
이후에도 나는 메튜로부터 실리콘밸리에 대해 이런저런 코칭을 받았다.
“이런. 너무 제 얘기만 떠든 것 같군요.”
“무슨 말씀을. 제가 여쭤본 건데요.”
“하하하. 그 정도면 알고 가도 지내는 데는 크게 문제 없을 겁니다. 그나저나 지금 투자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어쩌다보니 작은 엔터 회사 한곳에 투자했습니다.”
“호오. 엔터 회사를요?”
매튜의 목소리에서 옅은 흥미가 묻어나왔다.
나는 파랑새 엔터테이먼트에 투자한 과정에 대해 매튜에게 설명했다.
“아이돌 기획사라···. 역시나 딜런은 늘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는군요. 사실 벤처캐피탈 입장에서 연예 기획사가 그리 매력적인 파트너는 아닙니다.”
“어째서죠?’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적으로 원칙 없는 신사업투자, 감으로 이뤄지는 의사결정, 주먹구구식 투자 등을 손 꼽을 수 있겠네요. 특히나 보유 아티스트의 이미지 관리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보니 외부 투자자들이 제안하는 일에 꼬투리를 잡는 경향이 있어서 콧대가 높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인기가 높아지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회사 입지가 치솟다가, 변수가 터지면 하루아침에 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엔터 사업의 특성도 한몫했고요.”
확실히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나 역시 유라로부터 황금빛을 보지 못했다면 연예 기획사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을 테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수요가 꾸준히 있는 이유는 그 포텐셜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터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만요.”
메튜가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압니다. 딜런이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딜런이 보기엔 그 파랑새 엔터에서 제작했다는 그룹이 언젠간 터질 거라고 보는 겁니까?”
“네 터집니다. 아니 터졌습니다.”
“네?”
벙찐 얼굴의 메튜가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내 시선은 방금 도착한 휴대폰 메시지에 가 있었다.
– 파랑새 김채형 대표: 송 이사님! 지금 우리 애들 택톡 영상 반응이······.!!!
조용히 부풀기만 하던 풍선이 마침내 뻥 하고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