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02)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02화
알렌
티그리스는 오랜만에 제국 대학 집무실로 출근했다.
바로스 후작의 목을 치고, 레비스를 봉인시키는 큰 업적을 거두었기에 몇 주 동안 집에서 푹 쉬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티그리스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3주 후면 제국 대학의 개강 날이고, 티그리스는 아직 새 강의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학기 수업을 준비하려면 오늘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
티그리스는 집무실 책상에 앉았다.
책상은 샤를로트나 아이린이 관리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누군가 미리 청소를 해둔 모양이었다.
테이블 위엔 작은 쪽지가 놓여 있었다.
[이번 주까지 강의 계획서를 제출해 주게. – 바스티얀]강의 계획서 제출 기간은 이미 지났지만, 바스티얀은 티그리스의 강의 계획서는 조금 늦더라도 받아줄 모양이었다.
티그리스는 쪽지를 품속에 집어넣은 뒤 의자에 앉았다.
티그리스는 예전에 바스티얀에게 말한 대로 실전적인 교육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특히 이번 바로스 후작의 목을 치면서 더더욱 그 필요성을 느꼈다.
트리샤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베테랑 모험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법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다.
물론 ‘활활이’라고 부르는 성화의 검의 사기적인 성능 때문에 굳이 마법을 자세히 알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마법에 대한 무지는 비단 트리샤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사의 문제였다.
마법은 마법사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기사들은 마법에 관해 공부를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래선 안 된다.’
각종 위험한 마법이 담긴 스크롤과 아티팩트가 시중에 풀리면서, 일반 시민들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기사들은 언제나 최전선에서 적과 싸워야 하는 만큼, 마법에 굉장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
적어도 적이 무슨 마법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아군이 무슨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야 대응을 하지 않겠는가?
티그리스는 타자기에 종이를 끼우고 타자기 헤드를 옆으로 밀었다.
찰칵-
기분 좋은 기계음이 공허한 집무실을 울리자 티그리스는 자판에 손을 올렸다.
이미 머릿속에는 어떤 강의를 할 것인지 구상이 되어 있었다.
달리는 열차에서 보낸 몇 주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으니까.
이제 머릿속에 담겨 있는 것을 종이와 잉크를 이용해 담아내는 것뿐이다.
타다다닥-
티그리스의 손은 마치 피아니스트처럼 자판 위에서 놀았다.
* * *
다음 날.
티그리스는 검술 학과장 네이션을 찾았다.
네이션은 티그리스가 가져온 강의 계획서를 말없이 계속 읽었다.
네이션은 한숨을 토해내듯이 제목을 입에 담았다.
“기사를 위한 마법의 이해라…….”
네이션은 강의 계획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뚜껑이 닫힌 만년필로 탁자를 두들겼다.
네이션이 고민할 때 나오는 일종의 버릇이었다.
네이션의 고민은 길었다.
티그리스는 네이션이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차를 맛보았고, 차를 모두 마실 때쯤 네이션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인지 아주 잘 이해했네.”
전체적인 강의 내용은 1학기 때 가르쳤던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와 똑같이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놀라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는 일종의 검술서를 보는 것 같다면, 이것은 군대에서 사용할 법한 전술적 교리를 보는 것 같았다.
여기에 담긴 내용은 단순히 기사들이 마법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전술 및 전략적 응용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술학과를 넘어 무투학부 전체가 이런 마법에 대한 내용을 다루려고 몇 번 시도했었지. 물론 젊었을 적의 나도 시도했었네.”
네이션도 기사들이 마법에 대해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기사들은 전투에 나가면 마법사들과 연계하여 전투를 치를 일이 많기도 하고, 간단한 아티팩트를 활용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런 마법과 연계된 강의를 계획하여 학교장님께 제출했었지만 모두 반려당했네. 왜 그런지 아는가?”
“마법은 마법사들이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겠죠.”
“맞네. 이런 강의를 검술 학과에서 가르친다고 할 때마다, 마법 학부에서 월권이라며 문제 제기를 해왔네. 실제로 마법은 마법사들이 가르쳐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도 하니 강제로 밀어붙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
네이션은 만년필 뚜껑을 열어 검토자 칸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황도의 영웅을 상대로 제국 대학의 마법사들이 자네의 강의를 막을 수 있을지 조금 궁금해지는군.”
“감사합니다.”
“황국을 향한 자네의 헌신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네이션은 검토자 칸 바로 아래에 즉석으로 ‘협조자’라고 적었다.
“그러나 바스티얀 학교장을 찾아가기 전 마법학부의 학부장님을 한번 찾아가는 것이 좋을 걸세. 그래야 그 속 좁은 놈들이 자네와 학교장님을 덜 괴롭힐 테니까.”
티그리스는 강의 계획서를 되돌려 받았다.
“예. 알겠습니다.”
“알렌 학부장님껜 내가 미리 연락을 넣어주지. 연락이 오면 본가로 전문을 날릴 테니 그동안 출근하지 말고 쉬고 있게. 지난 2달간 여름 휴가도 쓰지 못하고 파견 근무를 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황국의 공식 입장은 티그리스가 방학 동안 황금 기사들을 가르쳤다는 내용이지만, 그 누구도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더 문’과 같은 황색 언론들에선 티그리스가 간악한 바로스 후작이 반란을 저지를 것을 미리 파악하고 죽였다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네이션이 그런 황색 언론에 휘둘릴 사람은 아니지만, 검술 학과의 학과장인 만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게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푹 쉬게. 아마 알렌 학부장님의 성격으로 보아선 이틀에서 사흘 정도 걸리겠군. 워낙 자기 연구에 정신이 없는 분이라서.”
* * *
네이션의 생각과는 달리 알렌 학부장으로부터 연락은 굉장히 빨리 왔다.
네이션이 알렌 학부장에게 연락을 넣자마자, 알렌 학부장에게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원래 당일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티그리스가 알렌 학부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터라 조사를 하고 만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다음 날로 미뤘다.
티그리스는 마차 안에서 인퀴지터가 건넨 알렌과 관련된 자료를 훑어봤다.
‘알렌 폰 알브레라…….’
알브레 백작가.
로드엘린 공작 가문이 군사용 아티팩트 제작 및 납품을 담당하는 가문이라면, 알브레 백작 가문은 대대로 성벽을 제작 또는 보수하는 가문이었다.
그것도 일반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성벽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성벽에 충격 약화와 같은 반영구적인 마법을 부여하는 데 탁월한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가문이라서 노르베드르 장벽을 쌓을 때도 도움을 받았던 가문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주에 열릴 파티에서 황국이 노려야 하는 마법사 가문 중 1순위에 있는 가문이었다.
성벽을 건축하는 마법사 가문인 만큼 그 누구보다 튼튼한 건축물을 올리는 데, 노하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다면 파티에서 다른 마법사들에게 손 벌릴 필요 없이 그들의 도움만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인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 것인지 모르겠군.’
바스티얀이 요청한 대로 그냥 파티에서 얼굴마담 역할만 하면 될 테지만, 티그리스는 트리니티에 진심이었다.
트리니티의 성공 여부에 따라 황국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알렌에게 강의 계획서 허가도 받을 겸, 알브레 백작이 어떤 인물인지 들어볼 생각이었다.
마차가 예약한 식당 앞에 도착하자 티그리스는 마차에서 내렸다.
식당은 아카데미 타운 내에 있는 고급 스테이크 집이었다.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알렌 학부장이 있는 룸으로 향했다.
룸에는 빼빼 마른 사내 하나가 열심히 자료를 보며 만년필로 끄적이고 있었다.
“으음…….”
티그리스와 트리샤가 들어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언가에 계속 열중하고 있었다.
인퀴지터의 조사 내용에 따르면 알렌 학부장은 괴짜로 소문이 났다.
제국 대학에 온 이유도 가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을 한 것이었고, 실제로 알렌 학부장의 황국의 지원하에 다양한 실험들을 마음껏 하고 있었다.
“학부장님. 티그리스 교관님께서 오셨습니다.”
비서의 말에 알렌은 눈을 끔뻑이더니 티그리스와 주변을 훑었다.
자기가 여기에 왜 있는 건지 잠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아, 미안하네. 혹시 오랫동안 기다린 건가?”
“방금 왔습니다.”
“아, 그래. 다행이군. 혹시 식사는 뭘로……. 아, 여기가 스테이크 집이었지.”
알렌은 굉장히 정신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건 필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종이들은 각종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서클들과 수식으로 가득했는데, 티그리스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필이었다.
알렌은 종이를 대충 모아 비서에게 건넸다.
‘하긴 이게 진짜 마법사긴 하지.’
철혈 마법 병단이나 바로스 후작처럼 정치나 군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마법사들이 특이한 것이다.
대다수의 마법사들은 알렌처럼 골방이나 연구소에 처박혀 연구하는 것을 원했다.
“일단 식사부터 시킬까? 여기가 굉장히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예약하긴 했는데, 입맛이 맞을까 모르겠군.”
뒤에 있는 비서가 조용히 말했다.
“이미 예약을 하셨습니다.”
“……아, 그랬던가? 그럼 이제 뭘 하면 되지?”
“곧 애피타이저가 나올 테니 잠시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음 그렇군.”
침묵.
알렌은 조용했지만 굉장히 부산스러웠다.
자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눈알을 굴리는 것이 귀족답지도 않았다.
티그리스는 알렌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알렌은 지식에 중독된 사람이었다.
알렌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고, 뭔가를 계속 연구하고 조사하며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때려 박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런 불필요한 긴 침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저 머릿속에선 아까 연구하던 자료들을 계속 머리로 검토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티그리스는 뒤에 있는 트리샤에게 말했다.
“트리샤, 가방 좀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트리샤는 센스 있게 가방 안에 들어 있는 티그리스의 강의 계획서를 꺼내 들었다.
티그리스의 가방에서 서류가 나오자 알렌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 그게 그 강의 계획서인가?”
“예. 그렇습니다.”
“지금 봐도 되겠는가?”
“예. 얼마든지 보셔도 됩니다.”
티그리스는 알렌에게 서류를 건넸다.
알렌은 마치 처음 동화책을 접한 아이처럼 강의 계획서를 훑었다.
속독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한 페이지를 읽는 데 거의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애피타이저가 나올 때쯤 알렌은 강의 계획서를 다 읽었다.
“전체적인 내용 구성은 굉장히 깔끔하고 명료하군. 중언부언도 없고 비문이나 오탈자도 없어. 우리 교관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군.”
“감사합니다.”
“내용도 굉장히 참신해. 기사들에게 단순히 배리어 마법을 걸어주는 것이 아니라 신속 마법과 같은 서포트 마법을 걸어주거나 지형지물을 바꾸는 마법을 이용한 연계 플레이라. 이건 강의 계획서라고 하기보단 새 전술적 교리를 보는 것 같군. 굉장히 혁신적이야.”
알렌은 강의 계획서를 내려놓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티그리스 교관이 가져온 게 아니었다면, 당장에 반려했을 정도로 말이지.”
알렌은 강의 계획서를 손끝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기사들에게 마법의 종류를 파악하게 만드는 것은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실제로 자네가 마법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각 마법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 설명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후반기에 진행할 마법사와 기사와의 연계 전술 내용은 선 듯 동의하기가 힘들군. 이게 만약 통과된다면 마법사 가문들이 들고일어날 거야. 마법사들을 단순한 아티팩트로 보냐고 말이지.”
“그러나 기사들이 마법사들을 지키고 마법사들이 화력을 담당하는 기존 구조는 드래곤이나 거인을 상대할 때 사용하던 방법입니다. 오우거와 같은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는 기존의 방식이 맞습니다. 검기를 발현할 수 있는 4성 기사가 아닌 이상 효과적인 타격을 입힐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오크나 트롤, 망키, 놀과 같은 일반 몬스터들만을 상대하는 이 상황에서 그런 구식 전술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내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전술이 아니네. 전술은 실전을 겪어본 자네가 더 잘 알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에 하나 이 전술 구조가 고착화되는 순간 마법사들의 위상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네. 난 마법사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선뜻 동의하기 힘드네.”
아직까지도 전쟁에서 수훈을 결정할 땐 누가 얼마나 많이 죽였냐에 따라 수훈을 매긴다.
만약 이런 혁신적인 전술 구조가 고착화되는 순간 전선에 나가는 마법사들은 평생 훈장 구경은 못 해볼지 모른다.
결국은 돌고 돌아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알렌은 만년필 펜 뚜껑을 열어 협조자 칸에 사인을 했다.
티그리스는 순간 이 상황을 이해 못 해 멍하니 알렌을 쳐다봤다.
“그러나 제국 대학이 아니면 이런 혁신적인 도전을 누가 해보겠는가? 특히 황도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가 해보겠다고 하는데 내가 막을 수는 없지.”
알렌은 굉장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법사를 가르치는 교관의 입장에선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니, 갑자기 혁신적인 도전이라며 동의를 하다니.
알렌이 괴짜라는 소문이 자자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째서 허락을 해주신 겁니까?”
“내가 연구에만 온 신경을 다 쓰는 미치광이 괴짜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귀족으로 태어나 제국 대학의 학부장 자리에 오르면 어쩔 수 없이 정치라는 걸 하게 되네. 그리고 정치에 가장 기본은 세상의 흐름을 읽는 거지.”
알렌은 강의 계획서를 티그리스에게 건네며 말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나나 바스티얀 학교장님은 이제 퇴물일세. 새 시대를 열어갈 사람은 자네와 같은 젊은이지. 향후 황국의 50년을 책임질 인재의 앞길을 막아서는 꼰대가 되기는 싫네. 차라리 미친놈이 낫지.”
티그리스는 왜 지금까지 이런 사람을 알지 못했는지 굉장히 아쉬웠다.
역시 세상은 넓었고 티그리스가 알지 못하는 유능한 인재들은 차고 넘쳤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 형님은 다를 걸세.”
알렌의 형이라고 하면 알브레 백작가의 가주 살바도르 폰 알브레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 형님은 마법사라기보단 상인에 가깝네.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
알렌은 애피타이저로 나온 스프를 떠서 먹었다.
“형님께선 최근 황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트리니티의 출범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시네. 드워프의 공학 기술이 흘러들어 오면 크게 손해를 볼 가문은 알브레 가문일 테니까.”
“그럼 알브레 가문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형님은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는 것을 싫어하네. 동시에 확실한 것을 좋아하지.”
알렌은 스푼을 내려놓은 뒤 입을 닦았다.
침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오랫동안 시간을 끈다.
그 말은 티그리스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형님의 막내아들이 아직 결혼을 못 했더군.”
알브레 가문이 노리는 것은 리니아였다.
귀족 중에 티그리스가 레인로버와 결혼을 할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티그리스의 여동생을 노린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뻔한 노림수지만, 그 누구도 티그리스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없었다.
티그리스와 직접 대화를 할 기회 자체가 전혀 없기도 했고, 이런 혼사는 보통 노르베르드의 가주인 베오울프와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았으니까.
흠칫-
알렌은 오싹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살기의 근원지는 티그리스의 눈이었다.
알렌은 처음 겪어보는 살기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그렇기에 알렌, 아니 알브레 가문은 실수한 것이다.
티그리스가 얼마나 가족을 사랑하는지 알았다면, 리니아를 입에 담지도 않았을 테니까.
티그리스는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리니아의 행복을 깨부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리니아는 회귀 전 티그리스 때문에 너무나도 힘들었으니까.
이번에는 리니아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리니아의 인생은 리니아가 알아서 결정하게 할 겁니다. 그리고 알브레 백작님께 전해주십시오. 저를 만났을 때 괜히 떠보지 마시라고 말입니다.”
“…….”
“저는 그리 참을성이 많은 성격은 아니니까요.”
알렌은 이게 티그리스가 주는 마지막 경고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경고 따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알렌에게 빚을 진 것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 주는 것이란 것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귀족적인 기사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군. 피비린내 진동하는 투견이었어.’
저 이빨을 보지 못하고 덤볐기에 바로스 후작과 빈스모크 백작이 죽었으리라.
아니면 멈출 수 없었거나.
‘여기서 내 역할은 끝이다.’
알렌도 원래 이런 정치적인 싸움이 싫어서 제국 대학에 투신한 거다.
살바도르가 부탁만 하지 않았어도 티그리스에게 떠보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꽤 고생 좀 하시겠군.’
살바도르가 티그리스를 얻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알겠네. 그리 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