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04)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04화
살바도르
살바도르는 알렌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겼다.
특유의 곱슬머리 갈색 머리칼과 매부리코, 그리고 신장까지 모두 똑같았다.
‘쌍둥이군.’
하지만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살아온 세월과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 따라 몸에 작은 흔적이 남는 법.
살바도르는 알렌과 달리 손과 목덜미에 흉터가 많은 편이었다.
서 있는 자세도 약간 삐딱하고 지팡이를 짚은 것이 다리도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흉터와 장애는 그의 컴플렉스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 흉터와 장애를 스스럼없이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어떤 투쟁의 삶을 살아왔고 이겨왔는지 똑똑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입니다.”
“제가 오랜만에 파티에 참석한지라,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들이 많다 보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살바도르는 티그리스가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하면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티그리스가 이런 사교 파티에 친숙하지 않다는 점을 오늘 파티장에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기에, 잘만 구슬리면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떤 부류인지 알 것 같군.’
살바도르는 그 누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였다.
이런 성향은 보통 루카스 후작이나 빈스모크 백작처럼 왕을 꿈꾸는 경우가 많았지만, 인퀴지터는 살바도르에게서 배반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다.
‘나와 비슷한 과군.’
티그리스처럼 오만하고 오만함을 뒷받침할 능력이 있으며 전통을 중시하는 귀족이었다.
알렌이 살바도르를 상인이라고 칭한 것은 손해 보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이지, 결코 상인은 아니었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트리니티에 알브레 백작님 자리는 남아 있거든요.”
뼈가 있는 대답에 살바도르의 눈썹이 까딱였다.
만약 티그리스가 여타 다른 귀족들처럼 고아한 방법으로 살바도르와 대화를 나눈다면 티그리스가 끌려 당하기 십상이다.
티그리스는 천성이 딱딱한 군인이다.
세 치 혀로 상대방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부류와 대화를 나눌 땐,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딱 떨어지는 숫자와 직설적인 화법만을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맞았다.
“그것참 다행이군요. 혹시 트리니티에 제가 도울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알브레 백작님 정도라면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쉽지 않겠군.’
상놈이 이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교양 없다고 손가락질을 할지 모르겠지만, 티그리스 정도의 대귀족이라면 다르다.
귀족들이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거나 애매한 비유를 들어 돌려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게 교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살바도르는 다르게 생각했다.
자신이 말한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하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말로 명령을 내리는 경우를 보았는가?
물을 가져와라, 음식을 가져와라, 청소해라 등 아주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한다.
현시점 아니, 향후 10년간은 티그리스의 시대다.
티그리스는 황국의 새 시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파도이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이다.
티그리스는 알브레 백작, 아니 여기에 있는 모든 귀족들을 자신의 밑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이 황국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 또한 그랬다.
‘지금의 티그리스와 척을 지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그러나 티그리스에게 굽히되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안 그러면 이 괴물에게 잡아먹히거나 목줄이 걸린 개처럼 끌려당할 것이다.
그것은 살바도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살바도르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말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제가 25년간 알브레 백작 가문의 가업을 도맡아 왔는데,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설계를 해도 현장을 직접 나와 보면 문제가 터지게 마련이더군요. 예상치 못했던 지하수가 발견된다거나, 땅이 생각보다 무른 경우도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제 두 발로 현장검증을 나섭니다.”
알브레 백작은 최대한 여유롭게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길게 설명했지만 요지는 이겁니다. 티그리스 경의 생각과 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한번 맞춰보자는 거지요.”
역시 쉽지 않은 상대였다.
기어코 티그리스의 입에서 먼저 아쉬운 소리가 나오길 바라는 듯했다.
회귀 전의 티그리스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계속 뻐텼을 것이다.
아니면 역정을 내며 자리를 벗어나거나.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티그리스는 알브레 백작의 체면도 세워줘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알브레 백작도 최대한 많이 숙인 상태니까.
“금화는 필요 없습니다. 3서클 마법사들이 필요합니다.”
“흠…….”
알브레 백작은 버릇처럼 지팡이를 쥔 손을 강하게 쥐었다.
“보통 마법사들은 건축 일을 하지 않습니다. 더럽고 하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알브레 백작 가문의 마법사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튼튼한 성벽이야말로 모든 마법사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라 생각하죠. 이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성벽이 없었다면 드래곤의 브레스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성벽이 없었다면 거인들의 몽둥이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몬스터들이 함부로 인간들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내는 역할까지 하고 있죠.”
“한마디로 성벽은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 주는 뼈대이자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르베르드 가문은 제일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티그리스는 알브레 백작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래서 핵심이 무엇입니까?”
“알브레 백작 가문의 마법사들은 언제든지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건축공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마법사들도 있죠. 마치 저처럼 말입니다.”
알브레 백작은 자신의 욕망부터 보여주기로 했다.
“시행권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단독 시공권만 주십시오.”
시행권과 시공권은 엄연히 다르다.
시행권은 베이튼이 운영하는 ‘더 노르베르드’처럼 전반적인 토지 매입부터 시작해서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전 과정을 도맡아 관리하는 권한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시공권은 ‘더 노르베르드’와 같은 시행사로부터 발주를 받아 단순 공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제가 알기론 시행사는 ‘더 노르베르드’로 결정이 되었지만, 시공사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저희 알브레 가문이 단독으로 도맡아 진행하고 싶습니다.”
알브레가 노리는 것은 단순한 시공사의 자리만이 아니었다.
황국의 미래를 책임질 천재들을 가르칠 요람을 성공적으로 만듦으로써 알브레 백작 가문을 더더욱 날아오르게 할 생각이었다.
“이 일은 빠르게 건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이 견고해야 합니다. 황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다닐 곳이다 보니 황궁과 비견될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더더욱 알브레 가문에 맡겨주시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저희 알브레 가문은 황궁을 둘러싸고 있는 황금의 성벽을 시공했습니다. 그만큼 황제 폐하께서 알브레 가문을 믿어주신다는 의미겠지요.”
“건물과 성벽은 성격이 다른 건축물인데 반년 내로 건물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가능합니다.”
‘황녀 전하의 예상이 맞았군.’
레인로버는 시행사를 ‘더 노르베르드’로 두되 시공사를 일부러 선정하지 않았다.
혹시나 알브레 백작이 단독 시공권을 달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판단할 문제는 한 가지.
알브레 백작가에 시공권을 줄 만큼 절박한가?
현재 필요한 3서클 마법사는 최소 50명.
그중 황국 측이 확보한 숫자는 31명이었다.
그런데 알브레 백작 가문과 휘하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3서클의 건축 전문 마법사의 숫자는 20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에 알브레 백작 가문이 시공사로 참여한다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시공을 진행할 것임으로 중간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다.
티그리스는 알브레 백작의 강인한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노르베르드 타워에서 보시죠. 자세한 협의는 그때 하도록 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 * *
멸지(滅地).
흔히 보이는 녹색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잿빛의 땅.
멸지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유해했다.
멸지의 공기를 마시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키메라로 변하고.
멸지를 사는 몬스터들은 제각기 모습이 달라서 황국이 정한 몬스터 등급으로 구분 지을 수 없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재해가 흔했다.
그렇기에 멸지는 인간들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금역으로 설정되었다.
그중 멸지의 가장 최심부이자 마왕의 탄생지, 마왕성에 사람들이 텔레포트로 나타났다.
교만을 깎아내는 자 펠렌.
분노를 깎아내는 자 페이라.
색욕을 깎아내는 자 카이라.
식탐을 깎아내는 자 템페.
나태를 깎아내는 자 오슬로.
로타의 손 스페스.
로타의 발 사티로스.
로타의 눈 솜니움.
로타의 코 포에토.
로타의 귀 비브라토.
총 10명의 인원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라도 입을 벙긋하는 순간 큰 말싸움으로 번질 것이 분명했기에 그들은 서로를 향해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뒤이어 마왕성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문으론 새하얀 피부의 사내 두 명이 걸어 나왔다.
로타와 아르펨이었다.
“로타 님!”
그중 한 사내는 몸이 굉장히 좋지 못했는데, 두 다리는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덜덜 떨렸고 온몸은 마치 사막에 바짝 마른 나무토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로타의 손 스페스가 재빨리 다가가 로타를 부축하려 하자, 로타는 스페스의 손을 내쳤다.
“놔라!”
스페스는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로타의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좋지 못하다고.
만약 스페스가 중간에 힘을 풀지 않았다면, 오히려 밀려난 쪽은 로타였을 것이다.
로타는 스페스를 지나쳐 낡은 의자에 앉았다.
로타는 자신의 권속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슈비츠는 어디에 있지?”
교만을 깎아내는 자 펠렌이 답했다.
“로타 님의 권속 슈비츠가 있는 연구실에 찾아가 봤지만…… 스스로 목을 맨 상태였습니다.”
로타의 뿔 슈비츠는 영혼을 불태우는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슈비츠는 유언장에 자신이 왜 자살하는 것인지 적어두지 않았다면 슈비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순간에 두 명의 권속을 잃은 로타는 주먹을 부서져라 쥐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로타의 입의 기억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로타의 입 레비스는 로타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다.
로타의 가학성과 치밀함, 냉담함 등을 엮어 만든 새로운 인격체로, 레비스가 죽으면 그의 기억이 모두 로타에게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려 봐도 레비스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아르펨은 입을 열었다.
“티그리스라는 자 때문이다.”
“티그리스? 개새끼 이름은 아닐 테니 사람 이름인가? 그 새끼 이름은 내가 처음 들어보는데?”
“당연하지. 네가 잠들기 전에는 그리 유명한 놈이 아니었거든.”
아르펨은 간단히 설명해 주기로 했다.
“티그리스는 황국 역사상 최고의 검술 천재라 불리는 자다. 이제 20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5성 기사에, 검에 심상을 담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더군.”
“……5성 기사인 것도 놀라운데 검에 심상을 담는다고? 그건 소드 마스터 아니야?”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놈은 우리가 포섭해 두었던 모든 귀족의 목을 쳤고, 심지어 슈비츠와 네 꼭두각시도 죽였지.”
로타는 강하게 의자 팔을 내려쳤다.
“레비스 그놈이 죽으면 내 머리로 기억이 흘러들어 와야 한다니까?! 레비스는 아직 죽지 않은 거다!”
“그럼 네가 어떻게 깨어날 수 있지? 레비스가 죽어야 네가 깨어나는 게 아닌가?”
“……레비스와 연결된 혼이 끊긴 것이다. 아마 봉인을 당했거나 그런 거겠지. 티그리스 그놈은 검사라면서 어떻게 레비스를 봉인한 거지?”
로타의 질문에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로타는 어이없다는 듯이 권속들을 쳐다봤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쓸모없는 놈들.”
로타의 격앙된 목소리에 권속들은 몸을 떨었다.
하지만 변명을 해보자면 로타의 권속들은 로타의 명대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연을 끊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설령 하나가 황국에게 사로잡히더라 줄줄히 소시지처럼 다른 권속들의 연구실이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할 셈이지? 이미 계획은 다 틀어진 것 같고 아예 백지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교만을 깎아내는 자 펠렌이 입을 열었다.
“지금 저희에게 부족한 것은 티그리스에 대한 정보입니다. 티그리스의 수준을 파악하고 대적자를 만들어 죽일 것인지, 아니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죽일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 지경이 되도록 티그리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아르펨이 로타의 흥분을 잠재우며 말했다.
“티그리스는 실시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5성 기사이지만 7성 기사에 범접한 소드 마스터라고 보면 되겠지만, 그가 6성 기사가 되고, 7성 기사가 되면 얼마나 강력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레비스와 슈비츠가 당한 거겠지.”
“짜증이 나 미쳐 버릴 것 같군. 그래서 계획은 어떻게 되지?”
“현재 발이 다소 가벼운 권속들이 직접 움직여 티그리스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아야겠지. 의뢰 형식으로 맡는 것이 아니라 직접 두 발로 뛰며 정보를 모아야 할 것이다.”
아르펨은 권속들을 훑었다.
“그래서 누가 나설 생각이지?”
그러나 권속들은 쉽사리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들도 슈비츠나 레비스처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때, 교만을 깎아내는 자 펠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놈이랑 바스티얀의 목도 같이 가져오겠습니다. 기세를 확실하게 한번 꺾을 필요가 있을 테니까요.”
펠렌은 아르펨의 권속 중에서 제일 강한 8서클의 대마법사다.
펠렌이 직접 나선다면 정말로 바스티얀과 티그리스의 목을 가져오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혼자는 위험하다. 슈비츠나 레비스도 홀로 움직이다가 당했지. 혹시 또 자원할 자 있나?”
아르펨의 말에 로타의 권속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르펨의 권속 중에 하나가 나왔으니 로타의 권속 중에 하나가 나오는 게 맞았다.
결국 한 여인이 앞으로 나왔다.
“제가 하겠습니다.”
로타의 눈 솜니움이었다.
“상대방의 약점을 알아내는 데 제 능력만큼 뛰어난 것은 없으니까요.”
솜니움의 능력은 ‘트라우마’.
상대방의 트라우마를 증폭시키고 엿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티그리스의 심리적 약점이 무엇인지 제가 알아 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