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12)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12화
회색 쥐(4)
때늦은 저녁, 부동산 회사 더 노르베르드의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베이튼의 집무실.
베이튼은 한 여인에게 차를 대접했다.
“늦은 시간에 갑작스레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베이튼 씨.”
“아닙니다. 붉은 사막의 푸른 창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알기론 베이튼 씨는 고디바 왕국과 거래를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부족의 인사법도 아시고…… 대단하시네요.”
“다른 부족 가문이라면 몰라도 고디바 왕가를 모시는 푸른 창 아즈라크 가문은 알아야죠.”
“후후. 감사합니다.”
여인은 홀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 내 정신 좀 봐. 황도에서 기업인끼리 만날 땐, 먼저 명함을 건넨다고 했죠?”
여인은 작은 핸드백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베이튼에게 건넸다.
베이튼도 공손하게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여인에게 건네 명함을 교환했다.
여인의 이름은 ‘레일라 빈트 유누스 빈 야흐야 아즈라크’.
베이튼은 이 여인의 이름으로부터 많은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고디바 사막의 유족민들은 자신의 부모님과 조부모의 이름까지 포함해 이름을 짓는다.
첫 번째 이름인 ‘레일라’는 그녀의 이름이고, 첫 번째 미들네임인 ‘유누스’는 그녀의 아버지 이름 두 번째 미들네임인 ‘야흐야’는 할아버지 이름이고 마지막으로 ‘아즈라크’는 그녀의 가문 이름이었다.
정리하자면 아즈라크 가문의 할아버지 야흐야의, 아버지 유누스의 딸, 레일라가 된다.
베이튼은 명함을 명함 케이스에 집어넣곤 웃으며 말했다.
“사으드 님께선 잘 지내십니까? 제가 듣기론 펠리켈 전갈과 싸우시다가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는데요.”
“제 작은아버지야 워낙 몸이 튼튼하셔서요. 그리고 펠리켈 전갈이 아니라 마르디뉴 도마뱀에게 다치신 거예요. 펠리켈 전갈의 독에 당했다면 열병으로 꽤 고생하셨을걸요?”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유누스 님께서 최근에 빌딩 사업에 관심이 많아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층 빌딩 사업보단 리조트 사업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아즈라크 가문이 보유한 작은 오아시스가 3개 정도 되거든요.”
“도시가 들어설 정도는 아닌가 보죠?”
“그 정도 규모는 아니에요. 기껏해야 30~4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랄까요?”
레일라는 베이튼의 친절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 속에 담겨 있는 날카로운 질문들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베이튼은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았다.
뜬금없이 일면식도 없는 고디바 왕국의 아즈라크 가문의 직계 자손이 찾아와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의심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고디바 왕국이 황국과 경제협력과 기술협력을 진행하겠다는 소문이 들리면서, 황국의 기업인들이 고디바 사막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된다는 정보가 베이튼의 귀에 들려왔다.
아즈라크 가문의 직계 출신과 작은 리조트 사업을 공동 추진하여 고디바 왕국의 귀족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면 나쁘지 않은 장사임이 분명했다.
베이튼은 미리 조사한 아즈라크 가문의 정보와 최신 고디바 왕국의 뉴스를 비교해 가며 레일라가 진짜로 아즈라크 가문의 직계 출신이 맞는지 확인했고, 여전히 의심이 되긴 하지만 사업 이야기를 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오아시스 리조트 사업을 진행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최근 황국의 귀족들이 고디바 왕국으로 여행을 많이 오기 시작한 건 아시죠? 그들을 타깃으로 한 리조트 사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럼 ‘더 노르베르드’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죠?”
“으음~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 ‘더 노르베르드’보단 베이튼 씨 당신에게 원하는 게 있어요.”
“……제게 말씀이십니까?”
레일라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리조트 사업 건으로 티그리스 경과 안면을 트고 싶어서요. 베이튼 씨는 티그리스 경과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럼 그렇지.’
이런 리조트 사업 건으로 고디바 왕국의 귀족이 베이튼에게 직접 찾아올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다른 귀족 가문의 여식들처럼 베이튼에게 티그리스을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티그리스 님과 대화를 나누시고 싶으시면 본가나 아니면 황국을 통해 이야기하시는 게 좋으실 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티그리스 경에게 관심이 많아서요. 무슨 말이신지 아시죠?”
레일라의 나이는 20대 중후반.
굉장히 매혹적인 미모인 것은 인정하긴 하지만 이런 제안을 받을 때마다 베이튼은 고정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그런 문제는 제가 개입할 게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티그리스 님께선 황녀 전하와……”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티그리스 경 정도 되는 사내가 부인을 하나만 두는 건 좀 그렇잖아요?”
하지만 레일라는 베이튼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똑똑한 여자였다.
“제가 티그리스 경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다면, 저도 적극적으로 베이튼 씨를 지원해 드릴게요. 제가 알고 있기론 베이튼 씨는 가문을 세우고 싶다고 들었는데…….”
레일라가 하는 말은 간단했다.
자신에게 줄을 서라.
그러나 티그리스와 황녀 간의 결혼은 거의 확실한 상황인데다가, 이미 베이튼은 황녀와 안면을 튼 상태다.
베이튼이 미치지 않고서야 레일라에게 줄을 설 이유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평생 노르베르드 가문을 모시기로 한 집사입니다. 저를 지원해 주시는 것은 베오울프 가주님 하나면 족합니다.”
“그렇게 정색하지 마시고 잘 들어보세요. 제가 황녀님과의 인연을 저버리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잖아요. 제가 노리는 것은 티그리스 님의 두 번째 부인 자리예요. 정실부인이 되고 싶지도 않고 돼서도 안 되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어요.”
“…….”
“그러니까 제가 티그리스 님과 잘될 수 있도록 지원만 해주시라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베이튼 씨의 도움을 잊지 않고 귀족이 되기 전이나 된 후에도 많이 도와드릴게요.”
베이튼은 차를 마시며 레일라의 표정을 관찰했다.
저 요녀가 원하는 게 정말 그것뿐인지, 아니면 더 원하는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베이튼은 더 캐보기로 했다.
“제게 어떤 도움을 원하십니까?
“티그리스 경이 좋아하는 거나 싫어하는 것처럼 제가 티그리스 경과 친해질 수 있는 사소한 정보들이 필요해요.”
“……사소한 정보를 말씀이십니까?”
“네. 차는 뭐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 이런 사소한 것들이요. 아니면…… 티그리스 경이 과거에 겪었던 트라우마라든가? 티그리스 경이 아파했던 과거를 보듬어주면 점수를 딸 수 있겠죠.”
“…….”
베이튼은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척하며 깊게 생각을 했다.
레일라가 원하는 것이 정말 두 번째 부인의 자리인지, 아니면 그 이상을 원하는 건지.
보통 이런 여인들의 경우엔 무엇이든 첫 번째가 아니면 만족하지 못한다.
‘확실히 사람의 욕망을 자극할 줄 아는 뱀 같은 여자야.’
지금까지 티그리스를 목적으로 베이튼에게 접근해 온 수많은 귀족의 여식들 중 이렇게 거래를 할 줄 아는 여인은 없었다.
이런 여인을 티그리스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맞는가?
하지만 이런 여인과 연을 맺어두면 확실히 베이튼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똑똑해서 자신에게 득이 될 사람에게 지원을 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중 레일라가 먼저 행동했다.
“어? 혹시 모기에 물리셨나요?”
“……네?”
“손등이요. 살짝 부풀어 오르셨는데.”
베이튼은 자신의 손등을 봤다.
레일라의 말처럼 모기가 물린 자국이 있었다.
레일라는 핸드백에서 작은 앰플을 꺼내 들었다.
“손 좀 줘보세요.”
“아뇨. 괜찮습니다.”
“어서요.”
레일라의 강요에 베이튼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건넸다.
레일라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손에 닿자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짜릿했다.
마치 아내와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던, 그날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앰플에 뚜껑에 달린 스포이드에 회복약을 쭉 빨아들인 뒤 베이튼의 손등에 조금 발랐다.
그러자 상처가 아물었다.
“제가 평소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아서요. 피부 트러블이 나면 종종 사용한답니다.”
레일라는 가방에서 새 앰플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따님 나이가 15살이라고 했던가요? 한창 미용에 관심이 있을 나이네요. 선물로 주세요.”
“괜찮…….”
“어서요.”
베이튼은 이상하게도 레일라의 강요에 거부할 수 없었다.
베이튼은 레일라가 강제로 손에 앰플을 쥐여주자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레일라는 베이튼의 손을 꽉 잡으며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를 도와주시는 거 맞죠?”
“그건…….”
“사업에 중요한 건 그 무엇보다 타이밍이란 거 아주 잘 알고 계시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을지도 몰라요.”
“…….”
긴 시간 동안 베이튼이 말이 없자 레일라는 베이튼의 손을 놓아주었다.
“굉장히 신중하신 타입이시네요. 뭐, 어쩔 수 없죠. 오늘 푹 주무시고 내일 이야기하죠. 내일 점심 어때요?”
베이튼은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배웅은 필요 없어요. 밑에 있는 백화점에서 쇼핑 좀 하려고 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레일라는 베이튼에게 가볍게 손 인사를 하며 집무실을 떠났다.
그녀가 떠난 집무실에는 아네모네 꽃 향기만이 남았다.
레일라는 엘리베이터에 타자 특유의 미소를 싹 지우며 눈썹을 찌푸렸다.
“하필 타이밍도 참…….”
좀 더 유혹하면 넘어올 것 같았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레일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레일라의 눈동자가 푸른색에서 짙은 녹색으로 변했고, 기괴한 세상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 세상에서는 제법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그녀가 만든 세상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익숙하기만 할 뿐 저 사내가 누구인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도대체 저놈이 어떻게 내 꿈에 들어온 거지?’
레일라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노르베르드 타워 맞은편에 있는 콘티넨탈 호텔로 빠르게 향했다.
저놈이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놈을 잡아 족쳐 알아내면 그만이다.
공유몽의 세계에선 솜니움이 신이니까.
솜니움이 사라진 자리에 잠시 후 제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년은 도대체 뭐지?”
* * *
[위에서 테이크 다운.] [후방에서 곤봉]. [오른쪽에서 독침.]라칸은 시스템이 알려주는 대로 모든 공격을 덤블링으로 피한 뒤, 다시 달렸다.
이 세상은 한치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하늘 위에 땅이 있었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갑자기 라칸을 향해 위에서 덮치기도 했고, 분명 텅 비었던 판잣집에서 갑자기 괴물들이 뛰쳐나올 때도 있었다.
“방금 건 아슬아슬했네.”
그러나 라칸의 마음은 기이하게도 평온했다.
괴물들의 비주얼은 당연하게도 무서웠다.
곤봉을 들고 오는 경찰들의 옷과 곤봉엔 끈적하게 달라붙은 피와 살점으로 가득했고.
달걀귀신을 연상케하는 얼굴이 없는 메마른 거지들의 손에는 입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덩이들이 꿈틀거리며 라칸을 향해 달려오는데, 평소의 라칸이라면 겁에 질려 입술이 새파래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았다.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마치 공포 영화 속 귀신이 나오는 상황에 뽕짝 BGM이 재생되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할 때마다 목덜미를 스치는 짜릿함에 스릴감까지 느껴졌다.
“그나저나 내가 왜 도망치고 있는 거지?”
라칸은 놀랍게도 왜 자신이 저 괴물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불쾌한 기분을 전에 한번 겪어본 적이 있다.
이런 기분은 마치 트럭에 치여 죽었는데 눈떠보니 이세계에 떨어졌을 때의 당혹스러움이었다.
그때, 시스템이 없었다면 라칸은 자신이 이세계에 떨어졌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탐색 결과]1. 명경지수의 정신을 왜 익혔는지를 떠올리십시오.
라칸은 고개를 휙 돌려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하며 시스템의 조언대로 기억을 헤집었다.
마치 어제 꾼 꿈을 뒤지는 것처럼 답답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아, 여긴 솜니움의 공유몽 세상이구나.”
라칸은 사방에서 달려오는 괴물들의 정체를 이제야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었다.
저놈들은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환자들의 악몽 속 괴물들이다.
그러니 저렇게 기괴하게 생긴 것이리라.
‘그런데 왜 내가 지금까지 공유몽 속 세상인 것을 알지 못한 걸까? 명경지수의 정신은 모든 정신 공격을 방어하는 기능이 있었을 텐데?’
[명경지수의 정신은 정신 공격만을 방어해 줍니다.] [자기 자신에게 걸린 정신적 제약을 방어해 주진 못합니다.]그러니까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신 공격은 방어해 줄 수 있지만, 방금 라칸이 느낀 당혹스러움이나 흥분과 같은 감정을 강제로 잡아주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만약 그런 것까지 잡아줬다면 라칸은 평생 슬픔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이한 인간이 되었을 테니까.
아무튼 그와 같은 맥락으로 라칸이 현재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꿈이라는 자기 정신적 제약을 깨닫는 것은 라칸의 몫이지 시스템의 몫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기가 솜니움의 공유몽 세상이라는 거고 저 괴물들은 이 공유몽 세상 속 괴물들이라는 거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이 세상의 정체와 저 괴물들의 정체를 알게 되자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추측건대 저 괴물들은 제국 대학의 마법학부 학생들과 회색 쥐들의 악몽 속 괴물들이 분명했다.
“티그리스 교관님은 저 괴물들을 베어 죽였다고 했었지.”
꿈속 괴물들을 어떻게 베어 죽인 걸까?
티그리스 교관님이 소드마스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
라칸은 시험 삼아 마법을 쏘아보기로 했다.
달리면서 마법 술식을 빚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달이 모든 상황 속에서 마법을 빚어낼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줬으니까.
라칸은 체내 마나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며 2서클 파이어볼 마법이 그려졌다.
그리고 라칸은 전방에 있는 늑대를 탄 고블린을 향해 파이어볼을 던졌다.
쾅!
거대한 폭발과 함께 라칸의 파이어볼은 정확한 타이밍에 터져 나갔다.
-캬아아아아아!
그러나 고블린은커녕 늑대도 다치지 않았다.
아니, 돌진력조차 줄지 않았다.
“엥?”
분명 일반적인 고블린이나 늑대라면 파이어볼 마법에 터져 죽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라칸의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티그리스는 분명히 저놈들을 베어 죽였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라칸과 티그리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검으로 베어야 통하는 걸까?
아니면 라칸이 소드마스터가 아니라서?
머리가 복잡해질 때쯤, 라칸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사방이 다 까마득한 절벽이라 아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그러나 괴물들은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탈출구는 오직 하늘 높이 떠 있는 땅뿐.
그러나 라칸의 점프력으론 저 높은 곳에 닿을 리가 없었다.
“젠장.”
괴물들은 라칸이 당혹스러워하든 말든 미친 듯이 달려왔다.
라칸은 심호흡을 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자.
이 세상은 꿈속 세상이다.
그리고 분명히 티그리스는 라칸이 상상하는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티그리스의 경우에는 이 악몽 속에서 검을 소환해 괴물들을 베어냈다.
그건 오만한 티그리스가 자신의 검술이라면 저 꿈속 괴물들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라칸이 알고 있는 최고의 무기는 무엇일까?
괴물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라칸은 믿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무기가 오른손에 들어올 것이라고.
라칸의 손에 묵직한 철 덩어리가 잡혔다.
RPG 로켓 런쳐였다.
라칸은 당연하게도 RPG 로켓 런쳐를 쏴본 적도 직접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로켓 런쳐 방아쇠를 당기면 이 묵직한 알라의 요술봉이 적들을 괴멸시킬 것이라 확신했다.
라칸은 예전에 전쟁 영화에서 봤던 대로 어깨에 걸친 뒤 방아쇠를 당겼다.
콰아아아아아앙!
로켓 런쳐가 불을 뿜으며 날아가더니 괴물들을 집어삼켰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로켓 런쳐를 갈기면 라칸도 찢어 발겨져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머리카락 한 올 타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코앞에서 RPG를 터뜨려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으니까.
자신은 절대 다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고 그 결과 무사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또다시 달려오는 괴물들.
라칸은 로켓 런쳐를 놓고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냈다.
이번엔 AK 소총이었다.
왜 굳이 AK 소총을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라칸의 FPS 게임 속 주총이 AK소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라칸의 어설픈 기억으로 만들어진 거라 이게 진짜 AK 소총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어떻게 쏘는 것인지 어떻게 장전하는 것인지 당연히 몰랐다.
하지만 어깨에 견착을 하고 그냥 방아쇠를 당기면 정의의 납탄이 저 괴물 같은 놈들을 분쇄해 버릴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투다다다다다다!
자그마한 납탄이 놈들에게 쇄도했다.
납탄은 라칸의 상상대로 모조리 심장과 머리에 적중하며 죽어 나갔다.
심지어 총알 한 발당 괴물들 대여섯 마리씩 처리했다.
라칸이 그리 믿었기 때문이었다.
투다다다다다!
탄창을 교환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라칸은 그런 것 따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렴 여기는 꿈속 세상인데.
탄창 교환 따위 필요하겠는가?
이 꿈속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각몽을 꾸고 있는 라칸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다.
하나는 상상력, 둘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
라칸은 ‘아몰랑 아무튼 되겠지!’라는 마인드로 방아쇠를 미친 듯이 당겼고, 실제로 아무튼 어떻게든 되었다.
“다 뒤져라아아아아!”
라칸은 좀비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 * *
티그리스는 나달의 표정이 기묘하게 바뀌자 입을 열었다.
“라칸은 지금 어떻습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라칸은 처음 보는 기괴한 철 덩어리를 들더니 괴물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이걸 말로 표현하기가 굉장히 어려워, 나달은 처음으로 곤혹스럽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