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14)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14화
회색 쥐(6)
라칸은 어안이 벙벙해져 주변을 훑었다.
라칸이 솜니움의 공유몽에 들어가기 직전에 누워 있었던 병동이었다.
레인로버 황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라칸을 쳐다보고 있었다.
“라칸 괜찮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입안에 피 맛이 느껴졌다.
누가 뺨을 강하게 때렸는지 뺨도 굉장히 화끈거렸다.
라칸은 자신의 뺨을 때릴 만한 사람은 레인로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달이었다면 마법으로 깨웠을 테니까.
“황녀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빠져나왔습니다.”
“감사는 무슨. 라칸을 깨운 건 제가 아니라 나달이었어요.”
“네?”
라칸은 그제야 나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 새하얗던 나달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보아하니 멍이 들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달의 피부는 굉장히 약해서 주먹질을 한 번만 해도 퍼렇게 멍이 들었다.
“스승님! 손은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 그것보다 네 몸은 괜찮으냐?”
“네. 저는 괜찮아요.”
라칸은 굳이 상급 탐색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나달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달은 손바닥의 고통보다 라칸이 무사히 귀환했다는 것에 안도를 느끼고 있었다.
이건 비단 라칸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레인로버는 나달이 위험에 처한 라칸을 보고 엄청나게 흥분하여 멱살을 잡고 뒤흔들다가 뺨을 수차례 때린 것을 떠올렸다.
마법사라면 마법사답게 마법으로 충분히 깨울 수 있었겠지만, 그는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도 순간 잊을 정도로 흥분했다.
‘뭔가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레인로버와 라칸이 자신을 살짝 이상하게 쳐다보자, 나달은 금방 평소의 덤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4서클 힐링 마법으로 멍든 손바닥부터 치료했다.
이렇게 겸연쩍어하는 모습도 처음인지라 레인로버와 라칸은 더더욱 이상하게 쳐다봤다.
“큼! 그것보다 나이트메어부터 어서 빼내자꾸나.”
라칸은 나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 일단 나달의 말에 동조했다.
“아, 네. 그런데 티그리스 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보이질 않으시네요?”
“좀 전에 네가 알아낸 솜니움의 위치로 바스티얀 님과 함께 향했다. 센티넨탈 호텔 707호 맞나?”
“아,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 제 꿈속 세계를 보실 수 있었죠.”
“그래.”
그때, 라칸의 눈에 메시지가 떴다.
[퀘스트 달성!]솜니움의 위치를 찾아서 티그리스에게 알려주기!
[60,000포인트 획득!]라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퀘스트 성공 알림에 라칸이 얻을 수 있는 최대 포인트 60,000포인트도 얻었으니 라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게다가 라칸이 깨어나기도 전에 출발했으니 솜니움은 아직 꿈속 세계에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잘하면 포획도 가능하겠는데요?”
“그렇게 되면 좋겠죠. 일단 라칸은 작전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푹 쉬어요.”
“네. 알겠습니다.”
라칸은 나이트메어를 빼내기 위해 옆으로 침상에 누웠다.
* * *
티그리스와 바스티얀은 노르베르드 타워 맞은편에 있는 콘티넨탈 호텔 707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티그리스가 인퀴지터 수사관의 상징인 은사(銀蛇)를 카운터 직원에게 보여주자마자 707호 카드키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잠시만 기다리게.”
티그리스와 바스티얀은 동시에 서로를 제지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문 입구에 마법 트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티그리스는 뒤로 물러났다.
바스티얀은 빠르게 마법 트랩을 확인한 뒤 단 3초 만에 해제했다.
“…….”
그러나 바스티얀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작전 때문인가 싶었지만, 티그리스의 눈으로 보기엔 바스티얀이 살짝 당황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감정을 빠르게 추스르곤 옆으로 물러났다.
티그리스는 그런 바스티얀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솜니움의 확보가 우선이었다.
티그리스는 바스티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앞장서서 걸었다.
‘지금은 솜니움 하나뿐이군.’
솜니움의 위치는 707호 문 앞에 도착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솜니움이 있는 안방 앞에 올 때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티그리스는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침대에는 곤히 잠을 자고 있는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하나 있었다.
티그리스는 저 여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챘다.
솜니움이다.
‘아직 꿈에서 나오지 못한 모양이군.’
라칸이 시간을 잘 끌어주고 있거나 아니면 꿈 내부 상황을 정리하느라 늦는 모양이었다.
“저 여인이 솜니움인가?”
“네. 맞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심장에 칼을 꽂으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무방비한 상황.
하지만 티그리스에게 내려진 명령은 솜니움의 신병 확보다.
솜니움이 알고 있을 고급 정보들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생포하기만 한다면, 티그리스가 회귀 전에 겪었던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면전을 스킵할 수도 있었다.
티그리스는 바스티얀에게 조용히 물었다.
“마법 트랩을 모두 해제하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빠르면 5분 늦으면 10분 정도 걸리네.”
당연하겠지만 솜니움이 자고 있는 침대 주변에는 마법 트랩이 한가득이었다.
잘못 건드리면 모든 게 끝이 난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아뇨. 그냥 베어 죽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5분에서 10분,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다.
그사이 솜니움이 깨어나거나 솜니움의 동료가 찾아온다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티그리스는 짧게 고민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 마법 해제를 시도해 보시죠. 여차하면 죽이겠습니다.”
“알겠네.”
티그리스는 당장에라도 검을 내려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바스티얀은 곧바로 마법 해제 작업에 들어갔다.
디스펠과 마법 해제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디스펠은 발동되기 직전의 마법을 없애는 것이고, 마법 해제는 지금처럼 이미 발동된 마법을 안전하게 해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후자의 난이도가 배는 더 높다.
그러나 바스티얀은 처음 보는 마법사의 마법을 해제하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르게 마법을 해제하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바스티얀에게 시선을 떼고 솜니움의 얼굴에 집중했다.
혹시나 일어날 기색이라도 보인다면 곧바로 내려칠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군. 솜니움은 주술사인데 왜 마법 트랩이 깔려 있지?’
솜니움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마법 트랩을 도처에 깔아두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7서클 대마법사도 고전할 정도로 고급 트랩 마법을 정교하게 배치한 것은 조금 의아했다.
그때, 솜털이 바짝 서는 듯한 느낌과 함께 희미한 살기가 느껴졌다.
티그리스는 곧바로 검을 내려쳤다.
서걱!
절단의 심상이 담긴 검에 마법 트랩들은 무용지물로 잘려 나갔다.
마법진째로 잘려 나가는 것이라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검은 바스티얀도 감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솜니움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솜니움의 몸에 붉은색 배리어가 만들어졌다.
이 붉은색 보호막은 익숙했다.
레비스가 모리타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7서클 리플랙션 배리어였다.
리플랙션 배리어와 티그리스의 검이 만났다.
모리타와의 전투 때는 티그리스가 폴리모프를 하고 있었을 때라 절단의 심상을 검에 담지 못했기에 섣불리 검을 내지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티그리스의 검이 리플랙션 배리어를 종잇장 자르듯이 잘라냈다.
그리고 솜니움이 사라졌다.
리플랙션 배리어 마법을 건 마법사가 워프 마법으로 솜니움을 빼낸 것이었다.
위치는 그리 멀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곧바로 X자로 검기를 쏘아 보내 벽 너머에 있는 상대를노렸다.
서걱!
또다시 무언가를 자르는 소리가 들리며 벽이 무너졌고, 시야가 열렸다.
그곳엔 왼팔이 잘린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노인과 목을 부여잡고 있는 솜니움이 있었다.
“크륵…….”
솜니움은 반쯤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를 막아보고자 양손으로 상흔 위를 덮고 있었지만, 겨우 그런 것으로 출혈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티그리스는 솜니움에게서 시선을 떼고 노인을 쳐다봤다.
티그리스는 저 노인의 정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교만을 깎아내는 자 펠렌.
8서클 대마법사이자 아르펨이 보유한 최고 무력이었다.
“이거 당했군.”
펠렌은 잘려 나간 왼손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고통은 없는 듯 무심하게 쳐다봤지만, 저 상처는 절대로 치유할 수 없다.
절단의 심상이 담긴 검기로 잘라낸 것이기에 7서클 회복 주문인 ‘리커버리’로도 재생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설의 치료약 엘릭서라면 모를까.
그러나 펠렌은 잘린 왼손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사…… 살려…….”
솜니움은 피 묻은 손으로 펠렌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펠렌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소용이 없네. 솜니움.”
솜니움이 다치자마자 메모라이즈 해둔 7서클 대마법 리커버리를 사용했지만, 솜니움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다.
솜니움은 다급하게 아공간 주머니에서 성수를 꺼내 자신의 목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까운 성수만 낭비될 뿐 솜니움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았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이렇게 죽을 수는…….”
솜니움은 결국 과다출혈로 기절해 버렸다.
펠렌은 기절한 솜니움을 이미 죽은 시체를 보듯 쳐다봤다.
성수로도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로타와 아르펨 측에 없었으니까.
“설마 했지만 정말로 마법이나 성수로도 치료되지 않는 검술을 사용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배리어 마법이 아니라 워프 마법을 빠르게 걸걸 그랬군.”
티그리스의 검격을 리플랙션 배리어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펠렌의 오만이 이런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만약 배리어 마법이 아니라 공간 이동 마법을 먼저 걸었다면, 솜니움도 살리고 왼팔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펠렌은 왼팔에서 피가 끊임없이 콸콸 쏟아져 나오자 결국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그는 왼쪽 어깨까지 마법으로 잘라내 버린 뒤 위에 성수를 부었다.
단면에 새살이 돋아나며 빠르게 회복되었지만, 왼팔이 다시 자라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평생 왼팔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펠렌은 티그리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바스티얀을 쳐다봤다.
바스티얀은 펠렌을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것처럼 쳐다봤다.
“역시 형님이셨군요.”
형님이란 말에 티그리스는 정말 놀라 바스티얀을 무심코 쳐다봤다.
펠렌이 바스티얀의 친형이라고?
이건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마법 트랩의 구조나 보안 술식이 어디선가 낯이 익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군요. 설마 하르케 형님이 살아계실 줄이야.”
“하긴 넌 내가 죽은 줄로 알았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
펠렌은 오른손으로 웃옷을 명치까지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무언가가 심장을 관통한 것 같은 흉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분의 도움으로 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 심장이 없이도 살 수 있게 됐지.”
바스티얀은 완드를 치켜세웠다.
“심장이 있으실 때도 심장이 없는 것처럼 사셨습니다.”
“아니지. 나는 심장이 시키는 일에 그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을 뿐이다.”
“하루라도 빨리 가주가 되기 위해 부모님을 죽인 게 어찌 심장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까!”
바스티얀의 분노가 섞인 외침에 빌딩 전체가 흔들렸다.
펠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스티얀 여전히 너는 모르는 게 많구나. 아직까지도 내가 가주가 되기 위해서 부모님을 죽인 줄 알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긴 복잡한 과거사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서 가주 자리도 그 어린 막내에게 내던지고, 허울 좋은 제국 대학의 학교장이나 하고 있는데.”
“여전히 그 넘겨짚는 버릇은 못 버리셨군요. 제 생각을 감히 재단하려 들지 마십시오. 제가 무슨 심정으로 가주 자리를 포기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시지 않습니까!”
바스티얀은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싫었지만, 그 아픈 상처를 헤집어가며 입을 열었다.
“전 하르케 형님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올랐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싫어 포기한 것입니다! 당신처럼 혈육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오르면 로드엘림 가문의 위신이 땅바닥까지 추락할 테니까요!”
“나이가 들더니 혓바닥도 제법 매끄러워졌구나. 네 본심을 숨기지 마라. 바스티얀. 넌 평생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며 사는 범생이였다. 가문의 안위나 명예에는 관심조차 없어 가문이 어떤 꼴로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지.”
“그럼 말씀해 보십시오! 왜 부모님을 살해하셨는지!”
펠렌은 목을 뚜둑 꺾으며 말했다.
“그 잘나신 우리 아버지는 황제의 혓바닥에 농락당해 반마법사 연합에 가입을 했다. 황국의 빠른 발전과 민생의 안정을 위해 마법 기술을 배울 기회가 기사들의 하찮은 검술처럼 만민에게 제공돼야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마법사 주제에 마법을 개나 소나 배우는 하찮은 기술 따위로 추락시키려 하는 쓰레기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바스티얀은 참기 힘들었는지 무영창으로 5서클 ‘파고드는 화염뱀’을 쏘아 보냈다.
펠렌은 배리어 마법으로 화염뱀을 튕겨내더니 입을 열었다.
“범생이 주제에 제법이구나. 두 번 다시 공격 마법 따위는 연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제 부모님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한마디만 더 하지. 바스티얀, 궁금하지 않느냐? 그때 겨우 4서클 마법사였던 내가 어떻게 6서클인 마법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일 수 있었을까?”
펠렌은 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가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토드 황제는 나와 협력한 가문들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알고 있느냐?”
“…….”
“하긴, 귀를 닫고 눈을 가리고 그 하찮은 미물에게만 관심만 가졌던 놈이 무엇을 알겠느냐. 네가 태양처럼 모시는 황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래서 평민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귀족들의 권력을 약화시켜 자신의 황권 강화를 획책하려 로드엘림 가문을 꼬신 것이다.”
펠렌의 말에 바스티얀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티그리스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이제 잡담은 그만하지.”
펠렌은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우리 형제의 말이 길어진 탓에 지루하셨겠군. 황도의 영웅 나리.”
펠렌은 티그리스의 신체를 스캔했다.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육체였다.
마치 신이 혼신을 다해 만든 것처럼 완벽한 신체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었고, 마나의 양은 5개 고리를 가진 기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유언은 그게 다인가?”
“성질이 급하시군. 난 자네와 싸울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그리고 황도 한복판에서 싸우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눈에 뻔하지 않나? 지금까지 내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자네는 무고한 이가 피를 흘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 같던데…….”
펠렌은 비명이 울려 퍼지는 복도를 턱짓하며 말했다.
“자네의 검술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없지만, 아무 피해 없이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데?”
펠렌의 말이 맞았다.
펠렌은 무려 8서클 대마법사로 염동 마법의 귀재였다.
염동 마법은 기사들과 상성이 좋지 않아 이전 생에서도 마검사였던 라칸과 레인로버 그리고 수백의 철혈 마법사들이 투입된 끝에 죽일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끌리면 불리한 쪽은 나겠지. 베르강과 나달이 오면 제법 위험해질 테니까.”
펠렌은 마법진을 동시에 두 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는 텔레포트 마법이고 나머지 하나는 중력 마법 중 하나인 소행성 낙하 마법이었다.
“7서클 마법을 두 개나……!”
7서클 마법을 무려 두 개나 동시에 펼치자 바스티얀은 믿기가 어렵다는 듯이 펠렌을 쳐다봤다.
티그리스가 움직이려고 하자 펠렌은 미리 준비한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펠렌의 검지에 걸려 있는 ‘천년 감옥의 반지’가 발동하며 티그리스와 펠렌 사이의 공간이 비틀렸다.
“내가 아무런 준비 없이 자네 앞에 나타났겠나? 이 왜곡된 공간을 뚫고 달려올 생각이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군.”
티그리스는 저 왜곡된 공간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펠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간 감옥으로 아무리 달려도 끝에 도달할 수 없는 허무한 공간이었다.
이것을 아는 이유는 티그리스가 예전에 저 감옥에 갇혔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선택하게. 무고한 시민들인지 아니면 나인지. 물론 나를 선택하는 멍청한 수를 두지 않겠지. 내가 이동하는 곳은 내 개인 연구실이니까. 마법사의 연구실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건 그 괴물 같은 베르강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겠지?”
펠렌은 이미 과다출혈로 사망한 솜니움의 시체를 염동 마법으로 들어 올리곤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이런 실수 따위 없을 걸세. 티그리스 자네가 굉장히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펠렌은 텔레포트와 함께 사라졌다.
바스티얀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따라가겠는가? 텔레포트 좌표는 간신히 확인할 수 있었네.”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무런 준비 없이 마법사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은 지금의 저로선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솜니움을 죽이고 펠렌의 왼팔을 잘라낸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당장 중요한 것은 황도로 떨어지고 있는 소행성이었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둑한 밤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펠렌이 떨어뜨린 소행성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티그리스와 바스티얀은 창문 밖을 내다봤다.
“막아낼 방도가 있겠습니까?”
“섣불리 파괴하면 소행성이 쪼개져서 황도를 쑥대밭으로 만들 걸세. 그러니 다른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지.”
바스티얀은 재빨리 술식을 전개했다.
준비하는 마법은 텔레포트 마법이었다.
저 소행성 자체를 다른 곳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 소행성이 내 형님의 연구실에 떨어지면 볼만하겠지.”
바스티얀은 소행성이 날아오는 좌표와 펠렌이 사라진 좌표를 연동시켜 텔레포트를 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