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1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18화
서고(1)
티그리스는 오랜만에 제국 대학에 출근했다.
2주 동안 ‘기생충 세뇌 사건’ 때문에 제국 대학은 비상사태를 발령하여 모든 교육을 중지시키고 학생들의 신체 검사 및 내부 보안 점검을 실시했기 때문이었다.
2주 동안 강의를 진행 못 했다고 강의를 내년 연초까지 진행할 수 없는 법.
결국 티그리스는 네이션의 조언대로 강의 스케쥴을 다소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티그리스는 이번 ‘기사와 마법사의 연계 전투’ 과목의 보조 교관인 ‘조코비치’ 교관에게 말했다.
“마법사들의 보조 마법 교육에 차질이 없겠습니까?”
“대부분 필수적인 보조 마법을 익힌 전투 마법사들이라 가르치는 데는 그리 문제없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마법 교육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치고 문제는 실전 교육이군요.”
마법 이론 교육만을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돌발적인 상황 속에서도 마법을 차분하게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티그리스와 조코비치는 마법사들을 실제 전쟁터에 일어날 법한 상황에 몰아붙여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마법을 펼칠 수 있는 훈련을 할 생각이었다.
“그건 걱정 말고 맡겨주십시오. 라칸에게 실전 같은 훈련을 시켜봐서 잘할 수 있습니다.”
“라칸과 일반 마법사들을 동격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라칸이 뛰어난 군인이라는 점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감안하고 진행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조코비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조금 힘들겠지만요.”
“…….”
조코비치의 옅은 미소가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마법 교육 분야는 조코비치에게 일임한 상태다.
티그리스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현재 하루라도 시간이 아까운 상황이다 보니 조코비치를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소라와 네메시스를 보조 교관으로 임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둘이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겁니까?”
“아닙니다. 둘은 실전과 같은 훈련을 도와줄 교보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트리샤와 제인의 헌신적인 교육 덕분일까?
식사 예절이나 다도 예절, 인사법 등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법’ 하나만큼은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지금 집무실 밖에 트리샤와 함께 둘이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진 괜찮은 모양이었다.
“이제 문제는 팀 결정이군요.”
“팀 결정에 저희가 관여할 부분이 있겠습니까? 학생들이 알아서 결정하게 놔둘 생각이지 않았습니까?”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죠. 하지만 샤를로트와 아이린의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월등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들었습니다. 저번 오리엔테이션 때, 샤를로트와 아이린이 각각 10명씩 상대해서 이겼다죠?”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고리가 3개고 일반 검술학과 학생들은 기껏해야 고리가 2개뿐이라 체급 차가 많이 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기술적인 면까지 압도해 버리니 단순한 물량만으로 둘을 이길 수 없었다.
이런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고블린 떼 사이에 오우거가 낀 격이었다.
“레인로버 황녀님과 라칸은 어떻습니까?”
“레인로버 황녀님은 3서클 마법사시고 라칸은 워낙 실전을 많이 겪어봤다 보니 다른 마법사들보다 월등한 것은 사실입니다.”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집무실에 있는 칠판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우선 샤를로트, 아이린, 레인로버, 라칸 이 네 학생은 팀을 나눌 때 떼어놓는 것이 좋겠군요.”
이 네 명 중 두 명이 같은 팀에 들어가는 순간 팀들 간 파워 밸런스가 무너진다.
나달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법사가 총 20명에 기사가 120명이니 마법사 1명당 기사 6명. 총 7명씩 20팀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 20팀의 팀장을 저희가 임의로 선정하고 팀장이 하나씩 데려가는 식으로 진행하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네 사람의 팀에 뛰어난 학생들이 몰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16팀은 개인 역량이 다소 뒤떨어지는 학생들로 구성되겠죠.”
“저희가 팀 선정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겠군요.”
티그리스는 칠판에 적혀 있는 라칸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더니 말했다.
“라칸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2서클 공통ㆍ원소ㆍ보조 마법과 1서클 기초 연금 마법을 모두 익혔습니다.”
“연금 마법도 말입니까?”
“솜니움의 공유몽에 다녀온 뒤로 화학과 공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유몽에서 만들었던 기관총과 로켓 런처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합니다.”
“……그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안 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공학은 제 분야가 아니라서 가르치진 못하겠지만, 드워프들이 내년에 트리니티 교관으로 들어오면 라칸에게 부족한 공학 지식을 채워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정말로 로켓 런처와 기관총이란 것을 만들 수 있겠죠.”
라칸이 진짜로 말도 안 되는 무기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티그리스는 살짝 떨떠름했다.
나달이 말하길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세상이 완전히 뒤바뀔지도 모를 무기들이라고 하니 조금 궁금해지긴 했다.
“물론 만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그게 바로 대마법사가 되는 왕도이니까요.”
“라칸이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봅니까? 전에는 아직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코비치, 아니 나달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똑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이 나왔다.
예전에는 라칸이 대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담백하게 대답했지만, 지금은 라칸이 자신과 똑같은 대마법사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이 담겼다.
티그리스가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바뀌었듯이 나달은 라칸을 만나 많이 변한 듯했다.
“아무튼 라칸은 레인로버를 제외한 다른 마법사들 중에서는 최고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라칸은 아직 검술 학과인데 마법사로 분류하실 생각이십니까?”
“제 직권으로 라칸은 마법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알렌 마법 학부장님과 이야기가 거의 끝난 상태이긴 합니다만, 라칸은 성적 커트라인만 통과하면 거의 확정적으로 마법 학부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흠……. 그렇군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라칸도 샤를로트나 아이린, 레인로버와 마찬가지로 크랙인 것은 확실했다.
조코비치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학생들의 서열을 임의로 나누어 배정하는 것은 안 되겠습니까?”
“140명의 학생들의 수준을 일일이 확인할 시간도 없고, 단순히 검술을 잘한다고 해서 전투도 잘하는 게 아니고, 개인 전투를 잘한다고 해서 전투 지능이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일일이 따져가며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거 생각보다 까다롭네요.”
티그리스와 조코비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들어보죠.”
“다른 사람들이요?”
티그리스는 문밖을 가리켰다.
“네메시스와 소라 말입니다.”
* * *
티그리스는 문을 열었다.
“네메시스, 소라 들어와라.”
티그리스의 갑작스러운 호출에 네메시스와 소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서로를 쳐다봤다.
“저희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요.”
“그런 게 아니다. 이번 수업 간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들어와라.”
소라와 네메시스는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티그리스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아~ 그러니까 네 사람이 너무 뛰어나서 팀을 나누기가 힘들다는 말이네요?”
“그렇다.”
소라는 머리를 북북 긁으며 말했다.
“난 모르겠네요. 이런 복잡한 일을 고민하는 건 내 성미랑 맞지 않아서.”
소라는 역시나 그냥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렸다.
그러나 네메시스는 달랐다.
네메시스는 말없이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는데, 네 명을 깍두기로 놓으면 안 돼요?”
“……깍두기가 뭐지?”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네메시스는 소라의 팔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소라 너 깍두기 알지?”
“뭐, 알지. 그런데 깍두기는 못 하거나 완전 꼬맹이를 시키는 거 아니었어?”
“반대로 적용하면 되지. 결국 이 네 사람은 비등비등하게 강하다는 거 아니야? 뭐, 라칸이란 녀석이 마법 실력이 조금 모자라긴 하는데, 별 차이는 없을 것 같고.”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냥 이 네 명을 한 팀으로 묶어서 깍두기로 만들어 놓는 거야. 그럼 7명이 아니라 11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게 하는 거지.”
“오. 나쁘진 않긴 한데 11명은 좀 많지 않나?”
“그런가?”
소라와 네메시스는 둘이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더니 결국 결론을 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재밌겠네. 난 찬성.”
티그리스는 네메시스를 보며 말했다.
“이야기는 다 끝났나?”
“아, 네.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이 네 명을 한 팀으로 묶거나 둘ㆍ둘로 묶어서 두 팀을 만들어버리는 거죠. 우린 그 별개의 팀을 깍두기라고 불러요.”
“그 깍두기를 만들어서 어떻게 사용할 셈이지?”
“그러니까 이 깍두기를 제외하고 나머지 136명을 총 8명씩 17팀 아니면 4명씩 34팀으로 만든 뒤 팀 결투를 할 때마다 깍두기를 계속 집어넣는 거예요.”
네메시스와 소라의 생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괜찮은 아이디어에 티그리스와 조코비치는 의외라는 듯이 둘을 쳐다봤다.
“나쁘지…… 않군. 아니, 이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 것 같아.”
“깍두기의 숫자를 늘리고 줄이면 팀의 숫자가 달라지다 보니 다채로운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침 깍두기도 기사 둘 마법사 둘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평가가 문젠데……. 결과 평가보단 관찰 평가와 팀 내 평가에 비중을 더 크게 주면 불만은 사라지겠군.”
“깍두기들은 완전 관찰 평가로 돌리면 될 것 같습니다.”
“깍두기란 표현도 다른 식으로 바꾸는 게 좋겠어. 특별팀이 무난할 것 같군.”
네메시스와 소라는 으스대며 말했다.
“어때요? 저희 도움이 됐나요?”
“큰 도움이 됐다.”
네메시스와 소라는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 * *
“그럼 내일 오후에 뵙겠습니다.”
티그리스와 조코비치는 회의가 끝나고 헤어졌다.
조코비치는 오늘 오후에 연금술 강의가 있었고, 티그리스는 황금 기사들이 가져온 검술서 오러 운용술서들을 읽고 분류하는 작업이 남았다.
집에 가서 읽을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집무실에서 읽고 싶었다.
티그리스는 어제 읽다 만 ‘천벌’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건 소드 마스터가 집필한 게 아니군.’
티그리스는 문장만 봐도 이 검술서를 쓴 사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천벌’의 핵심은 검에 ‘뇌기(雷氣)’를 담아 번개 같은 속도와 파괴력으로 다수의 적들을 격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러 유동과 검술에만 치중되어 있을 뿐이지 이 검술서엔 심오한 ‘심상’이 담겨 있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다른 검술서를 꺼내 읽었다.
이번엔 ‘제비잡이’라는 검술서였다.
제비잡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기를 쏘아내 하늘을 나는 와이번과 같은 나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데 사용되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역시나 심오한 심상이 담겨 있지 않았다.
펄럭-
다른 검술도.
펄럭-
다른 오러 운용술도.
티그리스의 눈을 뜨게 할 만한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긴 호스의 검술서만큼 대단한 검술서는 보기 힘들지.’
티그리스가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서 8번째 고리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검성 호스의 검술서 덕분이었다.
사실 그건 검술서라기보단 호스가 검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오한 고찰을 끄적인 책에 불과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그 검술서에 적힌 검성 호스의 심오한 깨달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호스는 당시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검술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고, 그 고민과 고찰을 완전히 이해하자 티그리스는 ‘8번째 고리’를 만듦과 함께 ‘절단의 심상’을 검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호스는 왜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검술을 만들어내려 한 것일까?
그 이유는 검술서 첫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
마왕의 갑주와 검 때문이었다.
마왕의 갑주와 검은 세상 그 어떤 명검으로도 잘라낼 수 없었다.
호스의 말에 따르면 마왕의 갑주와 검은 특정한 물질이 아닌 일종의 법칙 같다고 말했다.
모든 물건은 아래로 떨어지듯이 마왕의 검과 갑주는 절대 베어낼 수 없다는 세상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고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노도 그랬지.’
티그리스는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는 절단의 심상을 검술로 표출할 수 있다.
절단의 심상을 구현할 땐 티그리스의 마음엔 일종의 확신이 담긴다.
무조건 베어내고 죽일 수 있다는 확신.
하지만 우노를 봤을 때는 마치 검성 호스가 마왕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절대 베어 넘길 수 없다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마왕도 우노와 같은 성좌였던 것일까?’
책장을 넘기는 티그리스의 손이 멈췄다.
마왕을 죽일 수 없어서 그 유명한 페레이라도 봉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가 마왕도 우노와 같은 성좌였던 거라면 말이 된다.
티그리스는 책을 덮고 일어났다.
황궁의 서고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