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2)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2화
안개의 숲(2)
안개의 숲은 신비의 땅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마력과 영기를 막아주는 수목림이다.
이 수목림이 없었다면 황국 수도까지 신비의 땅에서 흘러나온 마력 때문에 신비 현상이 매년 관측되었을 것이란 예측 또한 있다.
신비 현상은 말 그대로 기존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의미했다.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를 경험할 수 있었고, 어떤 이는 대륙 북단에 위치한 멸지나 화산지대를 보고 올 수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좋기만 한 현상인 것 같지만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대가는 바로 시간이었다.
신비 현상을 겪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늙었다. 5년 10년은 우습고, 잘못하면 늙어 죽곤 했다. 안개의 숲엔 호기심과 일확천금을 노리고 들어간 욕심 많은 인간의 백골들이 가득했다.
안개의 숲은 그런 신비 현상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자, 과거와 미래 그리고 공간을 제약 없이 넘나들 수 있는 오직 혼령들만의 놀이터였다.
-다음 역은 종착역인 포그 우드 역입니다. 모든 고객님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티그리스는 눈을 떴다. 레니는 승무원의 알림음에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어젯밤에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달달 떨더니 결국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티그리스는 커튼을 걷었다. 태양의 찬란함도 포그우드의 안개를 뚫지 못해 탁한 회색빛 천지였다.
안개의 두려움을 벗어나 태양을 직접 마주하러 올라간 울창한 고목들만이 흐릿하게 보였다.
기차가 멈춰서자 레니는 눈을 껌벅껌벅하며 떴다.
“아……. 앗! 벌써…….”
레니는 잠잘 때 항상 안고 자는 토끼 인형을 꽉! 껴안았다.
몸이 다시 달달 떠는 것으로 보아 엄청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무서워할 것 없다.”
“티그리스 님은 안 무서우세요? 마…… 막 입이 여기까지 찢어진 귀신들이 나온다고 하던데.”
레니는 덜덜 떠는 손으로 귀를 가리켰다.
“사람을 해치는 악령은 악령 쫓음 부적만 있으면 괜찮으니 걱정 말거라. 그 부적이 없으면 나도 안개의 숲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그…… 그렇죠? 그 부적이 없으면 안 들어가실 거죠?”
“그러나 금방 구할 것이다. 이곳에는 혼령술사들이 많으니까.”
혼령술사들은 안개의 숲 근방에 모여 산다. 잘하면 강력한 혼령과 계약을 할 수도 있고, 안개의 숲 자체가 영기와 마나가 풍부한 지역이다 보니 수련하기 좋기 때문이었다.
“그…… 그런가요?”
레니는 악령 쫓음 부적을 금방 구할 수 있을 것이란 말에 어깨가 축 처졌다. 정말로 귀신이 무서운 듯했다.
티그리스는 단출한 가방 하나를 메고 기차에서 내렸다. 그 외의 다른 짐은 없었다. 이 가방은 무려 7서클 마법인 아공간 마법이 들어가 있는 아티팩트였다.
원래라면 티그리스도 구매하기 힘든 희귀한 장비다.
그러나 베이튼이 열심히 발품을 판 결과 5골드에 3주 동안 빌려 올 수 있었다.
덕분에 티그리스의 지갑이 레니 대신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돈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갈리아산에 올라 금광을 찾으면 되겠지.’
갈리아산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광맥들이 존재했는데, 티그리스는 5년 뒤에 발견될 금맥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각종 던전과 미궁의 위치도 알고 있었으니, 돈은 티그리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포그우드는 안개의 숲과 맞닿은 가장 큰 도시였다.
완전 촌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포그우드엔 없는 것이 없었다. 은행부터 시작해서 술집, 음식점 등 생각보다 구성이 아주 잘 갖춰졌다.
안개의 숲은 위험하긴 하지만 안개엔 농도 높은 마나가 가득 담겨 있어 수련하기에 굉장히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몇몇 귀족들은 안개의 숲과 가까운 포그우드로 수련을 하러 오기도 했다.
안개의 숲에서 오는 악령들이 문제가 될 법도 했지만, 150년 전에 개발된 푸른 등불 주술 덕분에 악령들의 위협은 전혀 없었다.
푸른 등불은 악령 쫓음 부적과 같은 효과를 냈는데, 푸른 등불의 빛이 닿는 곳엔 악령들이 절대로 올 수 없어서 포그우드 안은 굉장히 안전했다.
포그우드역을 나오자 악령을 내쫓는 푸른 불꽃들이 가로등을 대신했다. 온통 푸른빛 일색이라 포그우드 도시 자체가 음습해 보였다.
이 광경 때문에 포그우드를 블루시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티그리스는 악령 쫓음 부적을 파는 혼령술사의 집을 찾기 위해 지도를 확인했다. 티그리스는 과거의 기억을 뒤져 신용도가 높은 혼령술사의 집을 찾았다.
[노파의 집]‘여기서 멀진 않군.’
[노파의 집]은 모험가 사무소가 있는 푸른 등대 광장에 있었다. 이곳은 회귀 전에도 몇 번 들렀던 잡화상이자 혼령술사의 집이었다.티그리스는 [노파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히이이익……!”
레니는 터져 나오려는 숨을 참았다. [노파의 집]은 마치 귀신의 집 같았다. 건조시킨 인간의 팔, 푸석한 긴 가발, 통 속에 담겨 있는 눈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혼령이 담긴 유리병 등이 가득했다.
겁이 많은 레니에겐 작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카운터엔 곰방대를 피우고 있는 노파가 레니를 보며 흘흘 웃었다.
“꼬마 아가씨.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전부 파는 물건들이니까.”
레니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 한 손으론 자기도 모르게 티그리스의 옷깃을 꽉 붙잡았다.
티그리스는 그런 레니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레니, 잠시 밖에 나가 있거라. 이곳은 네게 부담스러운 곳인 모양이구나.”
“아…… 아뇨. 저는…….”
“사람이나 동물을 안 쫓아가면 위험하지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 문 앞에서 가만히 기다려라.”
레니는 흠칫했지만, 이곳이 워낙 무서웠기 때문에 결국 밖을 나섰다.
노파는 하얀 연기를 뿜으며 웃었다.
“말본새를 보아하니 그쪽은 이곳이 처음이 아닌 모양이군?”
“효험 있는 부적을 고를 줄 아는 정도지.”
“이거 등쳐먹긴 글렀군. 끌끌.”
티그리스는 부적이 있는 곳을 뒤졌다.
종이로 된 부적들도 있었지만 티그리스가 찾는 것은 잘 찢어지는 종이로 된 부적이 아니라 복주머니로 구성된 부적이었다.
티그리스는 복주머니들을 만져보다가 적당히 쓸 만한 것 두 개를 골랐다.
그리고 영기(靈氣) 나침반도 하나 골랐다.
영기 나침반은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안개의 숲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노파는 곰방대를 놓고 티그리스가 골라온 부적을 살폈다.
“둘 다 햇곡식을 처녀의 머리칼로 감싸 영험한 나무 밑에 보관하다가 다음 해 정월 밤에 볶은 것이야. 비싸긴 하지만 효험은 확실히 있지. 보는 눈이 있군.”
“얼마지?”
“부적은 개당 30실버. 나침반은 10실버.”
티그리스는 1골드를 건넸고, 노파는 30실버를 거슬러 줬다. 노파는 티그리스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 주름진 손바닥이 손등을 훑어도 티그리스는 가만히 있었다.
혼령술사는 타인의 몸을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자신이 관리하는 혼령들이 혼령술사의 몸을 타고 상대에게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노파가 티그리스의 손을 만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노파는 티그리스가 놀라지 않자 재밌다는 듯이 끌끌 웃었다.
“잘생겼으니 서비스로 하나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지. 저 아이는 귀신을 하나 달고 다닐 상이야.”
“혼령술사가 점까지 볼 줄은 몰랐는데?”
“이곳에서 80년 장사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게 있지. 저 아이는 너무 따뜻한 손을 가졌어. 안개의 숲에 들어가거든 괜한 잡귀에게 정을 주지 않게 하라고. 잘하면 이곳에서 썩 괜찮은 수호령을 얻을 수 있을 것이야.”
“참고하지.”
노파는 곰방대를 피우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참 기묘하군. 이토록 창백한 손과 강인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니. 자네에겐 악령 쫓음 부적 따윈 필요가 없겠어.”
“알고 있다. 부적은 내 것이 아니다.”
“그럼 왜 두 개를 산 거지?”
“언제나 비상용은 구매해 두는 편이 좋으니까.”
티그리스는 회귀 전에 안개의 숲에 온 적이 있다. 처음엔 티그리스에게도 악령이 붙었지만, ‘악령 베기’를 완성하고 난 후에는 악령들이 티그리스를 피해 다녔다.
티그리스가 영혼을 벨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액막이의 효과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악령들이 악령 사냥꾼을 피해 다니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물론 티그리스도 영기가 강한 미궁이나 던전 같은 곳을 들어가면 부적을 사용해야겠지만, 이번에 갈 곳은 그런 미궁이나 던전이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티그리스는 과거 악령을 죽이는 주술을 알려준 악령 사냥꾼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모든 기술은 하나로 통한다지만 이건 너무하군. 액막이를 검술의 영역으로 끌어오다니.
악령 사냥꾼은 티그리스에게 검술이 아닌 주술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놀라운 재능으로 악령을 베어내는 검술로 탈바꿈시켰고 실전에서 사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주술은 준비 기간이 너무나도 길고, 부적이나 주문박이와 같은 주술 도구들의 수명은 영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범용성이 그리 좋은 검술은 아니었다. 혼령을 벨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전혀 쓸모가 없는 검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이도도 굉장히 높았다. 티그리스와 버금가는 검술 천재인 아이린도 주술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 악령 베기를 온전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오직 티그리스에게 악령을 사냥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던 악령 사냥꾼 지오만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노파는 생각에 잠시 잠긴 티그리스를 잠깐 지켜보다 끌끌 웃으며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재밌군. 재밌어. 이것을 가져가게.”
노파는 티그리스에게 작은 귀마개를 주었다.
“안개의 숲을 들어가려는 모양인데 이 귀마개를 사용하면 혼령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지. 저 아이에겐 꼭 필요한 물건일 거야.”
“고맙군.”
“나야 뭐 이런 칙칙한 곳에서 눈요기를 할 수 있으니 좋지 뭐. 부디 그 재미난 얼굴 오래 간직하길 바라겠네.”
티그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노파의 집]을 나서려 문을 열었다.
“아, 그리고 자네가 찾는 건 ‘대길’을 따라가면 있다네.”
“참고하지.”
티그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나갔다.
“어……. 배고프시다고요? 밥은 제가 지금 해드릴 수가 없는데…….”
레니는 정체 모를 사내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정체 모를 사내는 엄청 빼빼 말랐는데 눈가에 힘이 없었다.
“저…… 그러면 이거라도…….”
레니가 개인 가방에 들고 있던 빵을 주려고 하자 티그리스는 말없이 복주머니를 레니의 목에 걸어주었다.
-키야아아아아!
그러자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이윽고 하얀 연기로 사라졌다.
“어……? 어?”
“잡귀와 대화를 나누지 마라. 잘못하면 홀리니까.”
“그…… 그럼 저 지금까지 설마…….”
레니는 자신이 혼령과 대화를 나눴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털썩 주저앉았다.
* * *
티그리스와 레니는 안개의 숲으로 들어섰다. 안개의 숲은 딱히 정해진 구역이 없었다.
그냥 오래된 고목을 관리하는 나무지기와 악령을 내쫓는 푸른 등불이 보이지 않는다면 안개의 숲에 들어온 것이었다.
숲은 전체적으로 평탄했다. 계곡이 흐르지 않았으며, 커다란 바위도 없었고 끈적한 안개만이 시야를 방해했다.
“저…… 티그리스 님 저희는 이제 어딜 가는 거죠?”
“길 잃은 자의 샘으로 간다.”
“길 잃은 자의 샘이요?”
티그리스는 남는 것이 시간이었기 때문에 걸으며 설명했다.
“안개의 숲은 미궁과 같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전혀 알 수 없지. 신비의 땅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이 안개의 숲 안에선 시간과 공간에 괴리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희가 지금 어떻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알 수 없다. 그냥 걸을 뿐이지.”
“그러니까 저희는 지금 길을 잃은 건가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아무리 뛰어난 악령 사냥꾼이라고 할지라도 안개의 숲에선 반드시 길을 잃는다.”
레니는 목에 건 부적을 강하게 쥐었다.
“그…… 그럼 저희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거예요?”
“되돌아갈 수 있다. 그래서 길 잃은 자의 샘이 중요한 거지.”
사막은 세차게 부는 바람에 매번 그 모습을 변화시켜도 오아시스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길 잃은 자의 샘도 드넓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정해진 장소에서 벗어나지 않는 고정된 위치에 있다.
사막의 상인들이 나침반을 통해 오아시스들을 찾아가듯, 티그리스는 영기 나침반을 이용해 길 잃은 자의 샘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티그리스는 영기 나침반을 꺼냈다. 영기 나침반은 일반 나침반과 다르게 6개의 바늘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다이얼은 없었고 바늘에 글자가 적혀 있었다.
대길(大吉) 길(吉) 평(平) 흉(凶) 대흉(大凶) 길흉상반(吉凶相反).
언뜻 보면 점괘처럼 생겼지만, 점괘에서 쓰이는 단어와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길(吉)은 점괘에선 미래에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뜻이지만, 혼령술사에게 길(吉)이란 선령(善靈)의 영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반대로 흉(凶)은 악령(惡靈)의 영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험가들과 악령 사냥꾼은 흉(凶)을 쫓아가고 수행자들은 길(吉)을 쫓아갔다.
티그리스는 미궁이나 던전, 악령 사냥을 위해 온 것이 아니기에 대길(大吉)이나 길(吉) 바라보고 걸으면 되었다.
그중 티그리스는 대길(大吉)을 보며 걸어갔다. 혼령술사의 조언은 듣는 편이 좋았으니까.
“문제는 안개의 숲에서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침반대로 따라가면 분명히 길 잃은 자들의 샘이나 포그우드로 되돌아가겠지만, 거리와 시간은 알 수 없다.”
레니는 손을 불끈 쥐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티그리스 님. 저는 오래 걸을 수 있어요.”
* * *
얼마 안 가 레니의 다리가 후들후들했다.
숨이 차진 않았으나 근육에 무리가 오고 발엔 물집이 잡힌 것 같았다. 하지만 레니는 꾹 참았다. 티그리스에게 민폐가 될 수 없었다.
그때, 티그리스가 멈춰 섰다.
“티그리스 님. 저 정말 괜찮…….”
“혼령술사의 말을 듣길 잘했군.”
“네?”
“목적지에 도착했다.”
레니는 티그리스가 자신의 몸 상태를 보고 걱정해서 멈춘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음? 오랜만의 여행자들이네. 피곤하면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가도 돼.”
반투명한 혼령 하나가 나른한 표정으로 근처에 있는 바위를 가리켰다.
혼령은 동화 속에서나 등장하던 산신령이나 신처럼 샘 한가운데에서 둥둥 떠 있었다.
귀신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던 레니는 겁이 난다기보단 안심이 되었다. 그만큼 혼령이 아름답기도 했고 선한 기운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아……. 그…… 혹시 이 샘의 주인이세요?”
혼령은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셈이지. 너 되게 귀엽다~ 난 제인이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니?”
“저는 레니라고 해요.”
제인은 레니의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발이 조금 불편해 보이네? 꽤 오래 걸은 모양이구나. 샘에 조금 발을 담가. 그러면 나아질 거야.”
“네? 그래도 되나요?”
“원래 사람이 마시는 물이라 발을 담그면 혼을 내긴 했는데, 넌 특별히 허락해 줄게. 내가 정화할 수 있거든.”
“아녜요. 저는…….”
둘이 작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티그리스는 손목시계를 봤다.
“하루하고 2시간 만인가.”
안개의 숲은 시공간의 개념이 뒤틀려 있다. 짧은 거리를 걸어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 있기도 하고, 3번 잠을 자도 10분도 흐르지 않을 수 있었다.
티그리스는 ‘제인의 샘’에 도착하는 시간을 넉넉하게 일주일 정도를 잡았지만, 시간을 굉장히 아낄 수 있었다.
‘……역시 그 노파는 뭔가가 있긴 하군.’
회귀 전에도 노파의 조언을 들었을 때, 로타의 키메라 실험실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노파는 확실히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꼬르륵-
그때 레니의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오랫동안 걸었더니 굉장히 배가 고픈 것이었다.
“레니. 식사 준비를 하지.”
“아, 넵!”
티그리스는 레니에게 아공간 가방을 넘겼다.
아공간 가방에선 갖가지 가재도구들이 튀어나왔다. 간이 선반부터 시작해서 칼과 도마, 마석으로 작동하는 휴대용 버너까지 있었다.
레니는 자신의 할머니가 사용했다던 오래된 무쇠 팬에 기름을 두르며 말했다.
“티그리스 님. 오늘은 뭘 드시고 싶으신가요?”
“네게 맡기지.”
“알겠습니다!”
레니는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으신 것 같지만 안개의 숲을 오랫동안 걸으셨으니 입맛이 조금 떨어지셨을 것이다.
‘이럴 땐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샐러드로 시작하고 양송이 소고기 스프 그리고 따뜻하게 데운 빵, 마지막으로 빵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야채 볶음이 좋겠어.’
레니는 능숙하게 요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티그리스는 아공간 가방에서 장작들을 꺼내 모닥불을 만들었고 텐트도 쳤으며 물도 길었다.
이 모습을 라칸이 봤다면 놀라서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티그리스는 안개의 숲에 와서 모닥불 하나 피우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외부 경계를 하겠다는 핑계로 명상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오만함을 벗어던진 티그리스는 많이 달라졌다.
이런 허드렛일을 한다고 해서 귀족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리가 끝이 날 무렵 텐트도 완벽하게 다 쳐졌다. 혹시 텐트로 악령이 들어올 수 있으니 여분의 악령 쫓음 부적을 텐트 입구에 걸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티그리스 님! 식사하세요!”
티그리스는 간이 의자에 앉았다. 식사는 굉장히 풍성했다.
알록달록한 샐러드와 노릇하게 구워진 빵, 따뜻한 양송이 소고기 수프에 단백질 풍부한 고기볶음까지. 안개의 숲에서 볼 수 없는 호화로운 식단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그래. 고생했구나.”
“헤헤…….”
레니는 티그리스의 칭찬이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꿀꺽-!
그때 호수에서 레니의 요리를 쭉 지켜보던 제인이 있을 리 없는 침을 꼴깍였다.
“저…….”
빵을 양송이 수프에 찍어 먹던 레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제인은 조심스럽게 식탁에 다가왔다.
“나도 먹고 싶은데 조금 줄 수 있을까?”
티그리스는 샐러드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올 것이 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