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2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21화
강의
드래곤 사냥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레인로버도 화요일 오전에 들을 강의가 있어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고, 티그리스도 오후에 ‘기사와 마법사의 연계 전투’ 강의가 있는지라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물론 드래곤 사냥은 레인로버와 티그리스 단둘이서 결론을 지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티그리스는 오늘 오전에 나달과의 마지막 강의 회의를 끝내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140명의 학생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오와 열을 맞춰서 서 있었다.
학생들은 티그리스가 연단에 등장하자 숨을 죽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 년, 아니,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와 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개무량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오리엔테이션 때 말했던 대로 이론 수업을 중심으로 진행하겠다. 마법학부 학생들은 조코비치 교관을 따라가고 검술학과 학생들은 나를 따라오도록.”
거의 3주 만에 만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티그리스는 간단한 인사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마법사들은 티그리스의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없다는 말에 아쉬운 티를 팍팍 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수업을 들으러 온 것이지 티그리스의 얼굴을 보러 온 게 아니니까.
조코비치 교관은 연단 앞에 놓인 물약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학생들은 이 물약 상자를 들고 저를 따라오도록 하세요.”
연금학 수업도 아니고 웬 물약인가 싶어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일단 조코비치가 시키니 마법학부 학생들은 잘 따랐다.
오히려 티그리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두 개뿐인 물약 상자를 쟁취하기 위한 작은 소란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때, 티그리스가 말했다.
“라칸과 레인로버는 여기 남아 나를 도와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 말에 검술학과 학생들은 물론이고 마법학부 학생들도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라칸과 레인로버가 굉장히 특출난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조코비치 교관의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될 정도인가 싶었던 것이다.
당연한 의문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마법학부 학생들과 검술학과 학생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애초에 레인로버는 황녀 신분이고 라칸은 티그리스와 레인로버 둘에게 총애를 받는 학생이다.
입을 뻥긋하는 순간 가뜩이나 팍팍한 인생을 하드 모드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물론 티그리스도 아무 이유 없이 둘을 빼낸 게 아니다.
지금 조코비치가 진행하는 ‘실전훈련’은 레인로버와 라칸이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수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티그리스의 수업 진행을 도와주는 편이 효율적이라 판단하여, 오늘 아침에 조코비치와 사전에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조코비치와 마법학부 학생들이 다른 연무장으로 사라지자, 티그리스는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이론 수업에 들어가겠다. 혹시 이번 마법학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조 계열 마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나?”
학생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었고 티그리스는 가장 앞에서 손을 들었던 에이든을 짚었다.
에이든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버프 계열 마법은 매끄러운 바람, 활력 증가, 스트렝스 총 세 가지고 배리어는 1서클 일반 배리어와 그리고 2서클 이중 배리어입니다. 마지막으로 디버프 계열로 홀드와 슬로우, 위크니스 마지막으로 섬광으로 총 9개입니다.”
“정답이다.”
학생들은 에이든을 부러운 눈치로 쳐다봤고, 에이든은 티그리스에게 점수를 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씨익 웃었다.
“오늘은 이 9개 마법을 경험해 보면서 발동 시 어떤 특징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될 거다. 다음 주 수업 때 관련 리포트를 받을 테니 정신 똑바로 차릴 수 있도록.”
리포트를 받겠다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티그리스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또 리포트야?
-다른 교양 과목들도 리포트 쓰는데…….
학사 일정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다른 교관들도 못다 한 이론 수업 내용을 티그리스처럼 리포트로 받았다.
티그리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티그리스가 강의를 어영부영 넘어가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었다.
다른 강의가 어떻든지 간에 학생들은 이번 학기가 끝날 때 티그리스가 목표한 수준까지 올라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들은 훗날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쟁에서 활약할 인재들이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입을 열었다.
“오늘 흘리는 땀은 전쟁에서 흘리는 피와 같다.”
귀를 파고드는 티그리스의 진중한 말투에 학생들은 자신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빨리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현재 제국은 혼란스럽다. 이 혼돈의 파도 속에서 너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줄 첫 방파제는 다른 사람도 아닌 너희들이 꿈꾸는 기사다.”
티그리스의 서슬 퍼런 눈빛에 학생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희들이 나약해지면 너희들의 목숨은 둘째 치고 선량한 백성들과 너희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는다. 너희는 단순한 검술학과 학생들이 아니다.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낼 방패이자 적들의 공포가 될 기사들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대충하고 포기하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티그리스의 호통에 겁을 집어삼켰지만,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그 호통 속에서 익숙한 피비린내를 맡았다.
티그리스는 언제나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전쟁을 확신하며, 자신을 몰아붙였다.
누구와의 전쟁인지 언제 일어날 전쟁인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간혹 아무 이유 없이 티그리스가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면 그 피비린내가 지독하게 둘을 괴롭혀 검을 들게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말이 없던 티그리스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차분해진 것을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수업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레인로버와 라칸은 앞으로 오도록.”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와 라칸에게 마법 증폭 아티팩트를 건넸다.
일회용도 아니고 마석을 바꿔 끼기만 하면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값비싼 아티팩트였지만, 로드엘림 가문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다.
“각 마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 내용은 내가 나눠준 이론서에 나와 있으니 생략하겠다.”
“오늘은 각종 보조 마법의 효과를 직접 체험해 보며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겠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에게 눈짓을 줬다.
레인로버는 손을 뻗어 마법술식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2서클 보조 마법인 매끄러운 바람이었다.
매끄러운 바람의 마법은 신체가 받는 바람 저항을 최소화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버프 마법이다.
기사들이 움직일 때 가장 걸리적거리는 게 공기의 저항인데, 그것을 거의 없다시피 만들어주는 마법이다 보니 기사들이 배리어 다음으로 좋아하는 버프 마법 중 하나였다.
레인로버의 서클 마법에서 발현된 한줄기의 바람이 팔목에 걸린 아티팩트를 타고 흐르며 총 120갈래의 바람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120명의 학생들에게 완벽하게 들어갔다.
“지금부터 버프 마법이 끊길 때까지 자유롭게 연무장을 다녀보도록. 가볍게 허공에 검을 휘둘러봐도 좋고 연무장을 한 바퀴 돌아봐도 좋다.”
학생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줄기의 바람이 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당연하게도 샤를로트와 아이린이었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검을 뽑아 들고 연무장을 종횡무진 하기 시작했다.
둘이 마치 들판을 뛰어노는 여우들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니자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별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조금 빨라진 것 같기도 하고?”
살짝 빨라진 기분을 제외하면 뭔가 다를 게 없어 보였기에 학생들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바람의 저항이 사라진 느낌이 들긴 했는데, 그게 큰 차인지는 잘 모르겠는지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3분 후.
학생들의 몸에 걸린 마법이 풀렸다.
그때, 학생들은 순간 당황했다.
“어어?”
옷깃을 스치는 강한 바람이 학생들을 잡아당겼다.
이 느낌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물속에서 달리는 느낌이랄까?
공기가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체감이 확실히 되나?”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지금 너희들은 기껏해야 2성 기사다. 그런데 너희들이 훗날 4성 기사가 되고 5성 기사가 된다면 공기저항이 얼마나 심할지 상상이 가나?”
학생들은 티그리스의 말에 침을 삼켰다.
이 공기저항을 없애주는 버프 마법이 얼마나 사기적인지 드디어 이해가 된 것이다.
“그럼 계속하도록 하지. 앞으로 너희들이 경험해야 할 마법들은 8가지나 남았다.”
* * *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와 라칸에게 마법을 지속적으로 걸어주라고 전한 뒤, 조코비치가 교육하고 있는 바로 옆 연무장으로 향했다.
티그리스가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발견한 것은 수업 전에 가져갔던 물약 상자였다.
조코비치가 가져간 물약 두 상자 중 한 상자가 텅 비어 있었다.
그 물약은 학생들이 아주 잘 사용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학생들의 뒤꽁무니엔 각각 레이피어 한 자루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가고 있었는데, 몇몇 학생들은 그 레이피어가 마치 오크라도 된 것인 양 겁을 집어삼키고 사방팔방 도망쳤다.
개중 몇몇은 도망치기를 멈추고 레이피어를 떨어뜨리기 위해 마법술식을 빚었다.
펑- 펑-
“으악 또 실패했어!”
“젠장! 내가 왜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그러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실패하여 마탄이 엉뚱한 데로 날아가거나 배리어 마법이 사라졌다.
마법에 실패한 학생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티그리스는 조코비치가 아닌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레이피어를 조종하는 소라에게 향했다.
소라는 학생들이 미치광이처럼 뛰어다니는 게 즐거운지, 미소가 표정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 티그리스 교관님.”
소라는 반사적으로 기사의 예를 표했다.
눈빛이 아주 별처럼 빛나는 것이 충성심이 가득했다.
즐거운 장난감들을 18개나 줘서 행복해하는 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이거 강의가 이렇게 즐거운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학생들을 괴롭히는 게 즐거운 거겠지.”
“아하하하! 뭐든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마치 세상의 진리를 통달한 듯한 말을 하는 소라를 보며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조코비치가 준비한 약물은 일종의 환각제로 솜니움의 ‘나이트메어’에게서 추출한 체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이런 환각제를 마법사들에게 먹인 이유는 마법사들이 강한 심리적 압박 속에서 마법을 신속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마법사들은 적국의 기사들과 마법사 병사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다 보니 여러 위험에 자주 노출된다.
유격대가 난입해 후방을 치기도 하고, 아예 기사단 전원을 파견하여 마법사들을 향해 돌진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전쟁터 속 마법사들은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마법 술식을 전개하는데, 과한 긴장 때문에 마법을 실패하거나 좌표를 틀리게 설정하여 아군에게 마법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티그리스는 적어도 티그리스의 강의를 듣는 마법학부 학생들만큼은 강한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도 정교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훈련시키고 싶었고, 전쟁터와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저들에게 환각제를 먹인 것이었다.
물론 이 아수라장은 티그리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과하긴 했다.
조코비치가 티그리스를 발견하곤 천천히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환각제를 생각보다 많이 투입한 거 아닙니까?”
“아뇨. 미치광이 버섯의 독성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아직 학생들이 이런 심리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마법을 사용해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그렇죠.”
조코비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마법사들을 보며 말했다.
“라칸은 이것보다 훨씬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마법을 잘 사용했습니다. 이 정도도 못 해주면 전투 마법사라고 할 수 없지요.”
“이보다 더 가혹한 상황 말입니까?”
“라칸은 정신 공격이 먹히지 않아서, 실제로 제가 직접 만든 골렘들이 쫓아오게 만들었죠. 그래도 침착하게 마법을 잘 구현하더군요.”
티그리스는 순간 말을 잃었다.
지축을 뒤흔드는 수 톤의 골렘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마법을 사용하게 만들다니.
그건 마법사가 아니라 레인저 육성과정이라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학생들은 약과입니다. 겨우 검 하나 쫓아오는 거로 패닉 상태에 빠지다니. 앞으로 갈 길이 멀었습니다.”
마법사 교육은 조코비치에게 모두 일임했기 때문에 일단 가만히 놔두기로 했다.
“그럼 전 이만 검술학과 학생들에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맞다. 방금 전에 바스티얀 학교장님께서 오셨었는데 전해주시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저녁을 레인로버 황녀님과 함께 드시자는 말씀이었습니다. 도마뱀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실 게 있는 모양입니다.”
* * *
바스티얀과 레인로버 그리고 나달과 티그리스는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바스티얀은 가벼운 학교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나달, 어제오늘 학생들을 가르쳐보니 어떻던가?”
“연금학 강의든 티그리스 경과 같이 진행하는 강의든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이번에 학사 일정이 꼬여서 힘들지 않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말이야.”
레인로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강의 때 마법학부 학생들이 마법 훈련을 받은 건지 아니면 레인저 훈련을 받은 건지 당최 알 수 없었다니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아주 거지꼴이 됐어요. 오히려 검술학과 학생들 쪽 옷이 깨끗했죠.”
“그래도 마법 실력은 빠르게 늘어났지 않습니까?”
“하긴, 이젠 적어도 기사들이 칼 들고 쫓아와도 오줌 지리지 않고 배리어 마법 정도는 펼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바스티얀은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기사들은 어떻던가?”
“처음 보조 마법을 경험해 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처음엔 어설프긴 했지만, 지금은 제법 잘 적응한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본격적인 팀 훈련을 봐야 학생들의 성취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티그리스 교관의 입에서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와 다행이군.”
식사가 끝나고 차가 나오자 바스티얀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드래곤 아우로므를 처리할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싶다고 들었는데 맞나?”
티그리스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우로므를 언제까지 드라코 레퀴엠 산에 놔둘 수 없으니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텔레포트로 신비의 땅에 봉인시켜버리는 방법이긴 하지만 확실히 드래곤의 신체는 아깝긴 하지.”
드래곤 하트는 천고의 영약이라 불리고, 비늘과 뼈는 모든 대장장이들이 한 번쯤은 다뤄보길 원하는 재료이며, 피와 살점은 최상급 마법 재료다.
아우로므를 안전하게 죽일 수만 있다면, 한창 치솟고 있는 황국의 주가는 천장을 모르고 꿰뚫을 것이다.
황국 전역에 있는 귀족 가문들이 드래곤의 비늘 한 조각, 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 테니까.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제가 찾아본 문헌에 따르면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선 최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해요. 첫 번째는 드래곤을 죽인 전설이 있는 성물이나 드래곤의 비늘과 뼈로 만들어진 무기고, 두 번째는 그 무기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마스터 클래스나 대마법사죠.”
“드래곤을 죽인 성물이라면 총 세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프리하르덴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프리하르덴의 여름’이고, 다른 하나는 아우로므의 가슴팍을 꿰뚫고 있는 ‘신의 창’이고, 마지막 하나는 벨프 가문의 ‘용혈검’이죠.”
“벨프 가문의 용혈검은 소실되었고, 신의 창을 다룰 수 있는 루체트 가문 출신 대마법사는 없으니 실제 사용 가능한 성물은 프리하르덴의 여름밖에 남지 않았네요.”
프리하르덴의 여름.
티그리스가 회귀 전에 사용했던 성물 중 하나로 겨울용 프리하를 죽인 검이었다.
나달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베르강 경이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들고 아우로므의 목을 친다면 죽일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베르강 경은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만지지도 못할 겁니다.”
티그리스가 단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프리하르덴의 여름은 자아가 강해서 프리하르덴 가문의 피가 흐르는 혈족이나 자신이 인정한 기사만이 검을 허락했다.
“그럼 회귀 전에 티그리스 경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겁니까?”
“프리하르덴의 여름에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티그리스 경이 소드 마스터라서 가능했던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소드 마스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리하르덴 류 검술을 익혔는지 안 익혔는지가 중요하죠.”
레인로버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그럼 티그리스 경은 프리하르덴 류를 모두 알고 있는 겁니까?”
티그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티그리스 경은 5성 기사이긴 하지만 검강을 만들어낼 수 있고,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다룰 수 있으니까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최소 조건을 달성한 게 아닌가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단순히 검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드래곤의 목을 벨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조건에 괜히 ‘마스터 클래스’가 붙는 게 아닙니다. 마스터 클래스의 육체로 검을 휘두르는 것과 지금의 불완전한 육체로 검을 휘두르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니까요.”
“그럼 결국 티그리스 경도 소드 마스터가 되어야 드래곤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레인로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다가 말았네요.”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티그리스는 드래곤 하트에 진심이었고, 결국 아우로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철혈 심장이라는 성물을 먹기만 하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