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3)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3화
안개의 숲(3)
레니가 티그리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제인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싶은데 과연 허락을 할지, 애매한 듯했다.
“허락하지.”
그 말에 레니는 소리 없는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조건을 달았다.
“단, 샘 밑바닥에 있는 얼음 정수를 준다면 주겠다.”
“으……. 역시 너도 이 얼음 정수를 노리고 온 거구나.”
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인의 샘에 ‘별빛을 머금은 얼음 정수’가 있다는 소문은 유명했다.
거의 300년 가까이 햇빛 한 줌 보지 못한 샘의 가장 밑바닥에 오로지 별빛을 보길 염원하며 피어난다는 얼음 정수는 천고의 영약이었다.
“미안하지만 줄 수 없어. 그 얼음 정수에 내 혼이 담겨 있거든. 다른 부탁은 안 될까?”
천고의 영약에 혼령이 깃드는 것이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다. 혼령은 오래된 물건에 깃들 수 있는데, 오래된 영약이나 고목에 혼령이 혼을 담아두곤 했다.
“그것 외에 네게 바라는 것은 없다.”
“으……. 진짜 먹고 싶은데에…….”
제인의 어깨가 축 내려앉으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비를 쫄딱 맞은 강아지처럼 식탁 위를 빙빙 맴돌았지만, 티그리스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티그리스는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접시는 깨끗했다.
“레니 잘 먹었다. 나는 수련을 하고 있을 테니 마무리를 부탁한다.”
“……네에.”
레니는 제인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제인은 레니의 곁을 맴돌며 말했다.
“나, 진짜 음식을 먹어본 지가 거의 35년은 넘거든? 그때도 모험가들이 놓고 간 차갑고 딱딱한 호밀빵이었어.”
“제인 정말 안 돼요……. 티그리스 님께 혼날지도 몰라요…….”
“그 호밀빵 맛이 어땠는지 알아? 딱딱했지만 너무나도 고소했어. 35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으…….”
제인은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티그리스는 어느새 명상을 하고 있었다. 레니는 설거지를 하는 척하며 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레니는 정말 연기 못하는 초보 연기자의 말투로 말했다.
“아. 까…… 깜빡하고 접시를 닦을 수세미를 놓고 왔네?”
레니가 먹던 음식 중에 깨끗한 것들을 바위 위에 조심스레 올려놨다. 심지어 깨끗한 식기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제…… 제인, 수세미를 가져올 동안 음식을 지켜줄 수 있어요?”
제인은 가만히 명상을 하고 있는 티그리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 당연하지! 들짐승들이 가져가지 않게 꼭! 지키고 있을게! 그…… 그런데 날쌘 다람쥐가 오면 지키기 힘들지도……?”
“그…… 그래요? 그건 어쩔 수 어…… 없죠.”
레니는 도망치듯 나왔고, 제인은 맛있는 음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인은 빵을 뜯어서 양송이 수프에 찍어서 먹었다.
살짝 식긴 했지만 레니의 따뜻한 손길이 닿은 음식이었기에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다음은 빵에 소고기 야채 볶음을 올려서 먹었다.
“으으으으! 너무 맛있어어어!”
그러나 신기한 점은 음식의 양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음식에 남아 있던 온기가 줄어들고 생기를 잃어가는 것뿐이었다.
레니가 수세미를 찾아서 돌아왔을 땐, 음식에 서리가 껴 있었다.
“어? 음식에 왜 서리가…….”
“레니! 너무 고마워. 너무너무 맛있었어! 또 먹고 싶을 정도로.”
제인은 레니를 꽉 껴안았다. 당연히 혼령이 안는 것이기에 살짝 찬 기운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제인의 행복이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혹시 다음에도 음식이 남는다면…….”
“음식이 남을 일은 없을 거다.”
뒤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레니와 제인은 얼어붙었다.
“티…… 티그리스 님.”
“레니. 그렇게 제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싶었나?”
레니는 바짓단을 꽉 잡고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티그리스 님. 그게…….”
그때 제인이 티그리스 앞에 나타났다.
“레니는 잘못이 없어! 내…… 내가 너무 먹고 싶다고 졸랐으니까. 레니는 너무 마음씨 착해서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혼령에게 먹을 걸 준거야. 그러니까 나를 혼내.”
“넌 내 시종이 아니다. 그러니 널 혼낼 이유는 없지.”
“이…… 이! 나쁜 놈! 사람들은 항상 그랬어. 내가 길을 알려주고 샘에서 쉬어가게 도와줬는데 먹을 것 하나 안 주고! 먹을 걸 줄 테니 얼음 정수를 내놓으라고만 하고!”
제인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나는 남은 음식이라도 먹고 싶은 것뿐이라고……. 굶어 죽은 것도 서러운데 이렇게까지 나한테 모질게 굴어야겠어……?”
“그럼 묻지. 얼음 정수에 깃들어 있는 이유가 뭐지? 그렇게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으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제인은 작게 말했다.
“나는 그냥……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어. 배가 정말 터질 정도로!”
“그렇다면 음식을 제공해 준다면 얼음 정수를 줄 생각이 있나?”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조금 무리야. 얼음 정수에서 벗어나면 나도 사라지고 마는걸?”
“한이 사라지면 현세를 떠나는 게 맞지 않나?”
“날 완전히 만족시킬 만큼 음식이 많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너희 둘 먹을 양도 부족하지 않을까?”
“먹을 것은 충분하다. 레니.”
레니는 눈치 빠르게 후다닥 달려가 아공간 가방에서 식재료들을 차곡차곡 꺼내기 시작했다.
식재료들은 레니의 허리까지 쌓일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저희 먹을 것은 충분해요. 오히려 많이 남겠죠.”
제인은 어마어마한 양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먹을 게 이…… 이렇게나 많아?”
“네가 먹을 것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해뒀지. 이 정도면 충분한가?”
“이걸 전부 나한테 주겠다고? 그것도 요리를 해서?”
레니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당연하죠. 제인이 원하는 음식은 무엇이든지 다 해줄게요.”
“우와아아앙!”
제인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레니에게 달려들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를 위해 이렇게 음식을 준비해 준 사람은 처음이야! 너무 고마워!”
레니는 살짝 놀랐지만 제인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제인은 혼령이기에 레니의 손이 제인의 몸에 닿을 리가 없었지만, 이상하게 레니의 손이 제인의 등에 닿았다.
그러자 샘이 작게 요동치더니 샘의 가장 깊은 곳에서 아름다운 얼음꽃 하나 올라왔다. 티그리스도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에 살짝 놀랐다.
얼음꽃에 깃들어 있던 청백색의 제인의 혼이 유유히 빠져나왔다.
제인도 이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운지 눈물을 멈추고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어? 어? 나 설마…….”
제인의 혼이 레니의 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설거지를 위해 근처에 두었던 레니의 무쇠 팬에 들어갔다.
레니의 할머니가 주셨다고 자랑하던 무쇠 팬이었다.
“엉?”
제인은 물론이고 레니도 놀라서 멍하니 무쇠 팬을 쳐다봤다. 무쇠 팬은 칙칙한 검은색이 아니라 은은한 청백색 빛을 내고 있었다.
제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다.
“……나 레니의 수호령이 된 건가 봐.”
“네? 수호령이요?”
“그러니까…… 네게 해코지하는 사람들이나 악령들을 혼내줄 수 있다랄까? 나도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는데…….”
티그리스는 그사이 샘에 둥둥 떠 있는 얼음꽃을 건져 왔다. 티그리스의 손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얼음꽃은 여전히 형태를 유지했다.
티그리스는 얼음꽃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암청색의 얼음 구슬을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암청색의 구슬 안에는 반짝이는 빛들이 우주 속을 유영하는 별들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라칸에게 들었던 모양새 그대로였다.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군.’
라칸이 이 얼음 정수를 얻기까지 무려 9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일주일은 제인의 수다를 들어주고 남은 3일은 제인의 먹을 음식을 요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 것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 제인은 바로 현세를 떴다.
‘레니를 데려온 게 이런 식으로 작용할 줄 몰랐군.’
티그리스는 라칸처럼 일주일 동안 다른 사람의 수다를 들어줄 수 있는 인내심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요리도 해줄 겸 레니를 데려온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얼음 정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레니에게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었다.
“레니.”
“아, 티그리스 님!”
레니는 그사이 샘에서 무쇠 팬을 박박 닦았는지, 무쇠 팬에선 유난히 더 빛이 났다.
“제인이 제 수호령이 되어주었대요! 그러니까 저를 지켜주는 착한 영혼이란 건데, 저랑 같이 있으시면 나쁜 일은 없을 거래요! 그러니까 제 곁에 평생…… 아니, 그렇다고 해서 평생이 아니라…….”
“레니 내가 너를 부른 것은 혼을 내기 위함이다.”
레니의 들뜬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 그…… 죄송합니다.”
“왜 제인에게 네 음식을 주었지?”
“……죄송해요. 티그리스 님께서 제인에게 음식을 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때 제인이 레니를 껴안으며 말했다.
“티그리스! 우리 레니에게 너무한 거 아니야?! 결국 다 잘됐잖아! 너도 얼음 정수를 얻고 나도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게 되고.”
“결과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으……! 이런 고집쟁이! 꼰대!”
티그리스는 제인을 무시하며 레니를 쳐다봤다.
“레니 네 따뜻한 마음씨는 나도 좋게 평가를 한다만 네 선의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내 명령이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 그렇게 제인에게 음식을 주고 싶었다면 내게 먼저 물어봤어야 했다. 네 독단으로 몰래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티그리스는 울상을 짓고 있는 레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레니.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를 굉장히 아끼고 있다. 그러니 나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제인에게 음식을 주고 싶다고 네가 말을 했다면 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식사를 했을지도 모르지.”
“……정말요? 제가 그렇게 말씀을 드렸다면 제인에게 음식을 주셨을 건가요?”
티그리스는 사실 이렇게 기죽어 있는 레니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회귀 전 티그리스는 어렸을 적의 레니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의 레니는 그냥 평범한 사용인에 불과했으니까. 그런 모습만을 보여줬다면 티그리스는 레니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니는 노르베르드 가문의 가세가 기울어가던 시기에 사용인 장을 맡아 티그리스에게 건강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내 음식을 줄이고 병사들에게 음식을 풀어라.
-변경백님의 식사가 최우선입니다. 전 돌아가신 세바스찬 님에게 그렇게 배웠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황제 폐하도 재난이 일어나면 음식의 양을 줄여 고난을 겪는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러니 음식을 줄이는 것은 합당하다.
-황제 폐하는 직접 전선에서 싸우시진 않습니다. 그러나 티그리스 변경백님께선 전선에 직접 나서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 많이 드시고 죽어가는 병사들을 대신해 많이 싸워주시지요.
-……한마디를 지지 않는군. 영지에 너를 대신할 사람이 없음을 감사히 여기거라. 안 그랬다면 근신을 명했을 테니. 명령이다. 내 먹을 것을 줄이고 병사들에게 풀어라.
레니는 나이가 들어가며 어린 시절 덜렁거리던 성격이 사라지고, 노르베르드 장벽처럼 굳세고 단단해졌다.
그러나 오만한 티그리스는 레니의 말을 포함해 그 어떤 가신의 조언도 듣지 않았고 결국 노르베르드 장벽을 잃고 말았다.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다. 네가 의견을 말하면 나는 경청했을 것이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의 그 어떤 기사보다 강인했던 레니의 눈을 떠올리며 말을 했다.
“모든 것을 홀로 판단하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너처럼 믿을 수 있는 종복이 내게 조언과 질문을 해야 한다. 내가 너를 옆에 두는 이유는 단순히 요리 솜씨가 좋아서가 아니라 네 현명한 조언과 내 판단을 향한 질문을 듣기 위함이란 것을 잊지 말거라.”
“제…… 제 조언을요? 저는 티그리스 님보다 많이 부족한데요?”
“옳지 못한 조언과 질문은 내가 알아서 걸러 들을 것이다. 그러니 넌 내게 말을 아끼지 말거라.”
레니는 밝게 빛을 내는 무쇠 팬을 꽉 쥐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티그리스 님.”
“그럼 가서 제인에게 요리를 해주거라. 나는 홀로 수련을 할 테니.”
“네!”
제인은 그런 티그리스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지? 착한 꼰대?”
제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인! 뭐 먹고 싶어요?”
“먹을 거?!”
제인은 간식을 든 주인에게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밝게 미소를 지으며 날아갔다.
“나 스테이크!!!”
* * *
제인이 음식을 먹고 레니가 요리를 하는 사이 티그리스는 별빛을 머금은 얼음 정수를 섭취하기로 했다.
별빛을 머금은 얼음 정수를 섭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생식이다.
그러나 얼음 정수의 지독한 냉기 때문에 그냥 먹었다간 몸에 냉기가 가득 차 얼어 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라칸은 얼음 정수를 어쩔 수 없이 정제하여 먹었지만, 티그리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냉기가 몸에 쌓여 위험해진다면 그것을 정상적으로 배출하기만 하면 될 일이니까.
티그리스는 얼음꽃이 감싸고 있던 얼음 정수를 똑 떼어냈다. 그러자 얼음꽃이 사르르 녹으며 얼음 정수로 스며 들어갔다.
티그리스는 망설이지 않고 얼음 정수를 입에 털어 넣었다.
입에 넣자마자 얼음 정수는 마치 빙수처럼 사르르 녹아서 사라졌고, 티그리스의 몸으로 차가운 냉기와 함께 극도로 정순한 마나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 중요했다.
티그리스는 검을 뽑아 들어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티그리스가 선택한 검무는 월녀(月女)의 검무였다.
멸종한 엘프들이 달 밝은 밤 신성한 세계수 앞에서 추었다고 전해지던 검무였다.
티그리스가 이 월녀의 검무를 배운 것은 순전한 운이었다.
드워프는 무엇이든지 일단 기록하고 보관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과거 엘프의 검무를 보고 기록한 책자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었다.
티그리스는 그 책자를 바탕으로 이미 사라진 월녀의 검무를 복구시켰다.
그러나 티그리스의 몸으론 이 월녀의 검무를 오래 출 수 없었다.
엘프처럼 음기(陰氣)로 가득한 몸도 아니었기에, 냉기가 밖으로 모조리 빠져나가 몸의 온도가 급격하게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음 정수를 먹은 지금이라면 다르다.
티그리스의 몸에는 냉기가 가득했고 오히려 독이 될 지경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냉기를 뽑아내야만 했다.
아름다운 곡선의 향연.
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제인과 레니조차도 티그리스의 검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다.
티그리스의 검 끝에서 차가운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차가운지 수증기가 검과 만나자 곧바로 얼음이 되어 낙하할 정도였다.
“후…….”
티그리스가 숨을 내뱉자 지독하도록 차가운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 숨결에 샘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생각보다 냉기가 지독하군.’
냉기가 지독한 만큼 정순한 마나 또한 가득했다.
정순한 마나가 티그리스의 몸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며 노폐물들을 모두 걸러내기 시작했다.
마력 회로 또한 정순한 마나에 의해 청소되고 티그리스가 미처 뚫지 못했던 세맥까지 퍼져 길을 뚫었다.
육체가 정순해지고 깨끗해지자 티그리스는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러 고리를 하나 만든다.’
티그리스는 가열차게 오러를 심장 부근으로 모았다.
냉기 또한 같이 모여들기 시작해 심장이 깨질 듯이 아파왔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만들 수 없다. 지금 얼음 정수의 마나가 티그리스의 마력 회로를 돌고 있을 때, 고리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그냥 몸이 깨끗해지고 마력 회로가 넓혀진 것 외에는 얻은 소득이 없다.
그것만을 위해 300년 된 얼음 정수를 먹은 것이 아니었다.
월녀의 검무를 추며 냉기를 날리는 것과 오러 고리를 하나 더 만드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봤다면 모두 놀랄 것이다.
보통 오러 고리를 만들 땐,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전히 집중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마력 회로가 박살이 나거나, 기존의 고리가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달랐다. 검을 휘두르는 것과 오러 고리를 만드는 것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천재였다.
티그리스의 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검으로 이동했던 냉기가 심장으로 이동하자 티그리스의 땀이 얼음으로 떨어져 낙하했다. 검은 머리는 이미 서리가 맺혀 하얗게 변했다.
제인과 레니가 이대로 가다가 티그리스가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있던 순간 티그리스의 검이 멈췄다.
그리고 티그리스의 몸에 붙어 있던 서리들이 모조리 떨어져 나갔다.
우수수-
티그리스는 뒤늦게 샘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샘은 티그리스의 냉기에 의해 단단한 빙판이 되어 있었다.
티그리스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성공이군.”
네 개의 오러 고리를 타고 정순한 오러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