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30)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30화
호문쿨루스(3)
바다처럼 푸른 하늘.
살구색 천장.
선선한 바람.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색 커튼.
따뜻하고 부드러운 담요.
메마르고 창백한 손.
그리고 휠체어.
나달에게 그 무엇 하나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굉장히 익숙했다.
모순된 감정과 기억이 교차하며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달은 고개를 돌려 누가 왔는지 보려 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근육이 거의 없다시피 한 몸 때문에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
그저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과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 정도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나달은 기이하게도 자신의 상태를 곧바로 진단할 수 있었다.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물을 먹지 못해 말라가는 식물처럼 온몸이 서서히 메말라 가고, 결국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게 되다가 횡경막을 움직이는 근육마저 굳어 질식사하게 되는 불치병이었다.
성수나 포션으로도 고칠 수 없어 보통 이런 병에 걸리면, 문둥병처럼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굶어 죽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다.
그러나 나달은 이런 병에 걸리고도 몇 년 동안이나 숨을 붙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돈 많은 귀족 집안의 자제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이런 것을 알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운 감정과 기억에 나달의 온몸을 옥죄여 오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가 나달의 앞에 나타났다.
얼굴이 마치 검은색 물감으로 칠해진 듯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
시녀는 나달에게 무슨 말을 했다.
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병 때문에 들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시녀는 나달이 타고 있는 휠체어를 끌고 문밖으로 나섰다.
나달은 그제야 이 집 안 구조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나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공간이었다.
아센시오 남작 가문의 저택이었다.
아센시오 남작 가문의 저택에는 계단이 없다.
원래 가문의 저택에 계단이 있었지만 마고의 외동아들이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려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면서 모든 계단을 없애고 완만한 경사로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달은 경사로를 따라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몸이 앞으로 쏠렸지만, 나달의 몸을 고정하고 있는 안전벨트가 나달의 몸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나달은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에는 나달에게 익숙한 돌담길이 놓여 있었다.
마고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이 돌담길을 산책하면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니 나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달은 현재 마고의 외동아들 노엘의 기억 속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익숙한 돌담길을 지나 꽃이 피는 정원에 다다르자 한 사내가 나달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고였다.
나달은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마고가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던 건가?
마고는 죽기 직전까지 나달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마고는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달을 맞이했다.
“—.”
그러나 역시 마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달은 마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일 것이다.
마고는 언제나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면, 노엘과 함께 산책을 즐겼으니까.
시녀가 떠나고 마고는 직접 노엘의 휠체어를 끌며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마고는 뒤에서 계속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노엘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노엘의 볼을 스치며 잠이 들기 시작했다.
노엘은 눈을 감았다.
* * *
나달은 정신을 차렸다.
나달의 미각 세포는 피 맛만을 감지했고 턱에서 시작한 통각 신경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제야 나달은 아모리스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달은 아모리스를 뜯어말리고 있는 레인로버와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아모리스 님! 이제 그만하세요!”
“어허! 이것도 엄연한 혼령술이야. 영혼이 잊고 있는 기억을 되돌려 주는 방법이라니까? 한 대만 딱! 한 대만 더 때리면 기억이 돌아올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짜고짜 때리시면 어떻게 해요!”
“영혼에 충격을 줘야 하니까 그렇지. 원래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아야 영혼도 자극을 크게 받는다고.”
아모리스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나달에게 향했다.
“내가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몸에 드는 약은 쓴 법이라고!”
“개인적인 감정이 남은 것 같은데요?!”
나달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터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닦아냈다.
“전 괜찮습니다. 레인로버 황녀님.”
“나달. 지금 당신 얼굴을 못 봐서 그래요! 지금 얼굴에 피멍이……. 풋!”
이러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달의 얼굴은 정말 웃겼다.
나달의 왼쪽 뺨에는 아모리스의 주먹 자국이 도장처럼 꽝! 박혀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나달. 제가 웃으려고 한 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나달은 익숙하다는 듯이 품속에서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포션을 꺼낸 후 손수건에 묻혔다.
그리고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얼굴에 박혀 있는 주먹 도장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모리스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 다셨다.
“표정을 보아하니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지?”
나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아모리스는 구겨진 옷을 펴며 말했다.
“그 기억을 인정할 수 있겠어? 네 영혼에 남겨진 기억 조각인데.”
“믿을 수밖에 없죠. 그 글러브에 최면이나 정신계 마법이 걸려 있지 않다는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대 더 맞아볼래? 그러면 다른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필요한 정보들은 얻었으니까요.”
나달은 반 병 정도 남은 포션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 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모리스는 글러브를 벗어 품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래. 뭐든지 물어봐.”
“방금 제가 보고 온 기억이 영혼 속에 남은 기억이라고 하는데, 왜 기억이 조각난 것처럼 완벽하게 떠오르지 않는 겁니까?”
“한 대 더 맞으면 기억나지 않을까?”
“…….”
아모리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진지하게 말하자면, 네 영혼은 인위적으로 한번 세탁돼서 기억이 많이 휘발된 거야.”
“인위적으로 세탁되었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아모리스는 탁상 위에 놓여 있는 펜과 노트를 꺼내 슥슥 쓰기 시작했다.
[영혼 : 기억 X]“영혼에는 기억을 남길 수 있는 기관이 없어. 그렇다면 저 밖에 있는 혼령들은 어떻게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느냐? 그건 ‘한(恨)’이라는 특별한 감정 때문이야.”
“한이 정확히 어떤 종류의 감정입니까?”
“이게 딱 잘라서 구분 짓기가 참 힘든 감정이야. 100이면 99는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좋은 기억 때문에 생기기도 하거든. 그냥 미련이나 원통함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한이라는 감정 속에 기억을 담느냐.”
아모리스는 노트에 다시 글을 썼다.
[슬픔→상실]“보통 슬픔이라는 감정을 떠올리면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경험을 떠올리잖아? 이것처럼 혼령들은 자신의 슬픔과 애통함이라는 감정 속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억을 담는 거야. 네가 방금 떠올린 그 기억도 영혼 속에 담겨 있던 ‘한’에 기억이 담겨 있었던 거지.”
“그럼 제가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제 영혼의 기억을 훼손했다는 뜻입니까?”
“맞아. 보통 영혼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건 혼령술사밖에 없지. 하지만 네 경우에는 조금 특수해. 넌 훼손을 당한 게 아니라 세탁을 당한 거야.”
[위령: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것.] [세탁: 영혼에 남아 있는 기억을 휘발시키는 것.]“보통 혼령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위령 또는 제령이라고 해서 한을 풀어주면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어. 하지만 너는 그 순서가 반대야. 네 영혼 속에 있는 한은 그대로인데 기억만 강제로 뜯겨 나간 상황이지.”
“그게 가능한 겁니까?”
“일반적인 혼령에겐 가능하지. 당연하겠지만 그 방법은 굉장히 힘들고 까다로워. 그뿐만이 아니라 그 혼령은 100% 악령이 되게 되어 있어. 그것도 굉장히 위험한 악령이 되어버리지.”
“그럼 제 영혼은 이미 악령화되어 있다는 뜻입니까?”
“아니. 신기하게도 아니야. 네 영혼을 조작한 혼령술사가 대단한 놈인 건지 아니면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네 영혼은 상처만 입었을 뿐 생각보다 정상적이야.”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정상적이라는 뜻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인가요?”
“당연하지. 강제로 기억을 추출당한 영혼이 괜찮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저렇게 피부가 약하지.”
“그럼 나달의 피부가 저렇게 약한 원인이 영혼에 문제가 있어서 건가요?”
“당연하지. 원래 영혼이 아프면 육체에 바로 티가 나게 되어 있어.”
지금까지 나달은 약한 피부를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 시술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분명히 마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자꾸 실패하는 이유가 영혼 때문이었다니.
나달은 살짝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제 피부를 낫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아쉽게도 없어. 네 영혼은 지금 네 육체에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영혼을 건드리면 네 육체와 균형이 맞지 않아 리바운드될 거야. 마법사니까 리바운드가 뭔지는 알지?”
리바운드 현상은 마법사들이 아주 가끔 겪는 현상 중 하나다.
마법이 예상치 못한 요인으로 실패할 경우 술자에게 피해가 오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렇게 됐을 때 체내에 있던 마나가 요동치면서 신체를 망가뜨리는 현상을 리바운드라고 한다.
“그 말씀은 제 영혼에 상처를 낸 것도 일부러 제 육체에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낸 것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내가 네 육체를 만든 연금술사가 아니잖아?”
아모리스는 냉수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아무튼 궁금증은 해결됐지?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야. 네 영혼의 기억은 뭐였어?”
나달은 방금 보고 왔던 기억을 모두 털어놓았다.
나달의 영혼 속 기억을 모두 들은 레인로버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노엘이라면 그 근육이 굳어가는 불치병에 걸려 죽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그럼 마고 님께서 설마…….”
레인로버는 뒷말을 삼켰다.
하지만 아모리스는 달랐다.
“마고가 노엘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새 육체를 만든 거네. 그리고 노엘의 영혼을 그 몸에 넣은 거고.”
나달은 순순히 인정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너 생각보다 침착한 것 같다? 넌 호문쿨루스가 아니라 인간이야. 이제 감정을 컨트롤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니야?”
“전 지금까지 감정을 죽이며 산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제게 없는 감정을 느끼고자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죠.”
그래서 지금까지 나달은 직접 범죄자들을 고문해 그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절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고자 했다.
나달이 슬픔과 절망을 먼저 느껴보려 한 이유는 간단했다.
보통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공포와 슬픔이니까.
그래서 나달은 자신이 제일 먼저 느끼게 될 감정은 슬픔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공감하려 해도 공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라칸을 키우면서 마고를 떠올리게 됐고 그 속에서 ‘기쁨’을 먼저 느끼고 말았다.
왜 그런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아모리스의 설명을 들으니 얼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나달의 영혼 속에 남아 있는 ‘한’ 때문에 슬픔과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먼저 느끼게 되었음을.
“아직 저는 모자란 인간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완성된 인간이랄까요?”
나달은 문밖에서 트리샤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라칸을 느끼며 말했다.
“하지만 라칸을 통해서라면 제 모자란 감정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칸을 올바르게 키우고 성장시킨다면 어쩌면 마고가 노엘에게 주었던 사랑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모리스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
“너 그거 아니지?”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너 그 라칸을 그…… 그거 있잖아. 그거. 연애 감정으로 보는 그런 감정은 아니지? 라칸은 여자 좋아해. 알지?”
“……제가 라칸을 연애 대상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니지? 만약 그랬으면 내 정의의 글러브를 또 꺼내야 했을 거야.”
나달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럼 아모리스 님께선 라칸을 사랑하십니까?”
“음…….”
아모리스는 솔직히 지금 라칸을 향한 이 감정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칸은 페레이라의 환생일 뿐이지 동일 인물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 떨리는 심장은 주체할 수 없었다.
라칸에게 잘 보이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으니까.
그래서 험한 말이 나오기 전에 라칸을 서재에서 내쫓은 것이었다.
“일단 노코멘트할게. 아직 나도 날 잘 모르겠거든. 시간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아.”
“그게 무슨…….”
“아아! 됐어. 이런 이야기는 그만!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다른 거 궁금한 거 없어? 레인로버? 티그리스?”
아모리스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티그리스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럼 마고의 호문쿨루스 연구는 실패한 겁니까?”
대답은 아모리스가 아닌 나달에게서 나왔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호문쿨루스 연구는 성공했습니다.”
레인로버는 고개를 갸웃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나달은 호문쿨루스가 아니라 인간이라면서요.”
“연금술사들이 지금까지 호문쿨루스 제작에 실패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의식을 담을 완벽한 육체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죠.”
아모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다른 영혼이 인간의 육체에 오랫동안 빙의하지 못해. 시간이 지나면 육체가 망가지거나 아니면 영혼이 튕겨 나가게 되지. 내가 방금 말했지? 리바운드라고.”
“하지만 전 오랫동안 노엘의 영혼이 육체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부가 약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불편한 점은 없었죠.”
나달은 문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마치 라칸처럼 말이죠.”
“……그러고 보니 라칸도 영혼이 중간에 들어왔다고 했었죠. 그럼 나달이 육체에 영혼이 들어간 것과 라칸이 라칸의 육체에 들어간 것이 비슷한 원리로 이뤄졌을 거란 말씀이신가요?”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죠.”
“그럼 나달이 어떻게 그 육체에 자리 잡았는지 알아내면, 라칸의 빙의의 원리도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렇게 되면 라칸의 ‘시스템’의 원리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죠.”
시스템이란 말에 티그리스와 레인로버 그리고 아모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나달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뭔가 너무 깊게 파고들면 크게 다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지식을 얻게 되면 신이 노하여 천벌을 내린다는 이야기. 더 파고들면 위험할 것 같긴 한데 굉장히 궁금하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달이 이런 말을 하니 레인로버는 살짝 기분이 묘해졌다.
“그러면 오슬로는 뭐지? 오슬로도 영혼이 있는 건가?”
“오슬로라면 나태를 깎아내는 자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것까진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오슬로를 아모리스 님께서 직접 보신다면 의문은 풀리겠죠.”
나달은 뭔가 큰 짐을 훌훌 털어버린 듯 평온해 보였다.
“제 몸의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새 숙제가 하나 생겼군요. 마고 님…… 아니,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죠. 기존에 있던 수사 자료는 당연히 조작되었을 테니 폐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30여 년 전의 재수사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겠지만 알아내야죠. 저를 알게 되면 라칸과 오슬로, 레비스의 비밀도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나달은 몸을 일으켰다.
“물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철혈 심장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겠죠. 제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다시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때 아모리스가 다급하게 말했다.
“급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겠어? 같이 라칸하고 저녁이라도 먹자.”
“일정이 조금 빠듯해서요. 오늘 하루를 날린 만큼 오늘은 밤을 새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너만 밤새워. 라칸은 오늘 나랑 같이 밥 먹고 같이 쇼핑 좀 할 테니까.”
나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가 보시죠. 아마 제 말을 더 잘 따를 것 같지만 말이죠. 전 라칸의 직장 상사이자 스승이지만 아모리스 님께선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너……! 너 설마 지금 복수하는 거야? 너 그렇게 쫌생이였어?!”
“쫌생이라니 말이 조금 심하지 않습니까?”
나달은 문을 열며 말했다.
“미래의 장인어른에게 말이죠.”
“……너 설마!”
나달은 아주 오래전부터 라칸을 양자로 삼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