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3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35화
성좌의 던전(5)
마부가 마차 아래에 몸을 숨긴 채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것은 인간적인 생존 본능에 더해 15년간 마부 일을 해오며 축적된 생존 노하우가 만들어낸 반사적이고도 계획적인 일이었다.
데굴데굴
“……!”
마부는 갑자기 자신의 옆구리로 묵직한 무언가가 굴러왔음을 느꼈다.
입을 가리지 않았다면 비명을 질렀을 정도로 너무 놀라 몸을 덜덜 떨었다.
절대 보면 안 되는데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충동적인 호기심과 공포에 마부는 눈을 찔끔 떠 자신의 옆구리로 굴러온 놈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마부의 옆구리에 살포시 기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라이오너의 목이었다.
라이오너의 동공은 실시간으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말은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죽었다는 뜻이었다.
마부는 라이오너의 머리에서 벗어나 마차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온몸에 덕지덕지 진흙을 발랐다.
라이오너는 냄새에 민감해서 냄새만 지우면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차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철창에선 여인들의 공포에 젖은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호송 마차가 자꾸 덜컹덜컹거렸다.
마부는 자신의 불필요한 상상력을 저주하며 계속 손을 움직여 진흙을 퍼다 몸에 발랐다.
마부의 속옷까지 진흙과 라이오너의 피가 스며들 무렵.
티그리스는 마차 아래에 숨은 마부를 불러냈다.
“이젠 안전하니 나와라.”
마부는 호국경의 목소리에 눈을 슬며시 떴다.
지렁이나 땅강아지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본 숲의 전경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사방엔 조각난 라이오너의 시체들이 가득했고, 마부의 몸에 바른 진흙이 핏물에 절어 있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아챘다.
그러나 마부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마차 인근에는 끔찍한 라이오너의 시체 더미들이 가득해서 도저히 나올 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컹! 끼이이-!
마부의 머리 위에서 묵직한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철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나와라. 검치 가죽들도 챙기고.”
마부는 여인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라이오너 시체를 밀치고 천천히 나왔다.
마부는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주변 상황이 더더욱 믿기지 않아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주변엔 라이오너 시체들이 한가득이었다.
얼마나 많은 숫자가 덤벼들었는지 셀 수 없었다.
하나같이 허리나 목이 잘려 나간 상태라 어느 목이 어느 몸뚱아리의 주인인지 도저히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마부에게 열쇠 꾸러미를 던졌다.
“히이이익!”
마부는 호국경이 던진 열쇠 꾸러미에 놀라 다시 땅에 엎드렸다.
하지만 이윽고 그게 여인들의 손을 묶고 있는 수갑을 푸는 열쇠라는 것을 알아채곤 조심스럽게 들었다.
“여인들의 손발을 풀어줘라.”
“예! 예! 호국경님!”
호국경이 왜 여인들을 풀어주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마부는 일단 생각을 멈추고 호국경의 명대로 빠르게 여인들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라이오너 떼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나달이 만든 몬스터 유인향이 제법 강한 모양입니다.”
마부와 여인들은 마부석에서 마치 귀신처럼 슬며시 튀어나온 레인로버를 눈을 껌벅이며 쳐다봤다.
하지만 티그리스가 마부에게 말없이 눈치를 주자 마부는 호기심을 빠르게 감추고 제 할 일을 했다.
레인로버는 마차에서 내려 라이오너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은 말들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말은 전부 죽었네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하긴 말이라도 안 죽으면 추적해 오는 기사들이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요.”
마부는 여인들의 수갑을 모두 풀어주자 멍하니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머리가 식자 이성이 돌아왔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골 성의 성주가 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일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던 걸까?
마부는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에 피어올랐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레인로버는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마부에게 건넸다.
“받아요. 이 정도면 새 출발 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마부는 도저히 주머니 속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머니가 묵직한 것으로 봐서 제법 든 모양이었다.
“여인들을 데리고 길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나세요. 웬만한 몬스터들은 라이오너 피 냄새를 맡으면 다가오지도 못할 테니 안전할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이게 왜……?”
마부와 여인들이 당최 이해를 못 하자, 레인로버는 한숨을 내쉬며 티그리스에게 다가갔다.
“티그리스 경 허리 좀 숙여봐요.”
“……예?”
“어서요.”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말대로 허리를 숙였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키스를 했다.
마부와 여인들은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며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한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챘다.
레인로버는 얼떨떨해하는 티그리스를 놓아준 뒤, 마부와 여인들을 보며 말했다.
“이해하셨죠? 그러니까 어디서 저희 둘을 봤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만약 들키더라도 저희는 라이오너 떼에게 물려갔다고 얘기해 주시고요.”
“예! 예! 알겠습니다!”
마부는 주머니를 품속에 집어넣고, 여인들은 검치 가죽을 망토처럼 뒤집어쓴 채 고개를 숙였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호국경님. 성주님.”
“됐어요. 이제 자유를 찾아 떠나세요. 어서요.”
마부와 여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길을 벗어나 숲으로 떠났다.
레인로버는 떠나는 마부와 여인들을 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흔적은 충분히 남겨놓은 걸까요?”
“예. 그럴 겁니다. 성이나 마을을 몇 개 정도 지나치면 아예 쫓아오지도 못할 겁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말도 다 죽었는데 어떻게 갈까요?”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공주님 안기로 안았다.
레인로버는 즐거움과 놀라움에 심장이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팔딱팔딱 뛰었다.
“이대로 해가 지기 직전까지 달릴 테니 여유롭게 있으십시오.”
“어떻게 여유롭…… 꺄아악!”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안고 빠르게 달렸다.
레인로버는 즐거움에 웃음을 터뜨렸고, 티그리스는 묵묵히 앞을 보며 달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군.’
* * *
티그리스가 성과 작은 마을을 네 개 정도 무시하고 지나치자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배에서 난 꼬르륵 소리를 들었고, 더 달리는 것은 조금 무리라고 판단했다.
“다음에 나타나는 성에서 쉬도록 하죠.”
얼마 가지 않아 나골 성보다 작은 성이 하나 나타났고,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성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어차피 호국경과 나골 성의 성주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최상위 귀족들뿐이고, 일반 평민들은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분을 밝…… 어서 오십시오! 스미스 씨! 엘라 씨!”
팅-
신분을 물어오는 병사에게 레인로버가 은화 하나를 튕겨주자 병사는 고개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했다.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여관 겸 식당으로 향해 식사 주문을 했다.
“이제 앞으로 일정을 얘기해 볼까요?”
레인로버의 말에 티그리스는 트리샤가 준 지도를 꺼내 들었다.
이 시대의 지도는 그리 정확하지 않아서, 트리샤가 만든 지도로 앞으로의 일정을 준비하는 것이 나았다.
티그리스는 마부가 알려주었던 거인들이 사는 곳과 셀브스 호수를 동그라미 치고 현재 위치를 펜으로 동그라미 쳤다.
“셀브스 호수하고 거인이 사는 동굴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군요. 제가 집결 지점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멀지 않긴요. 직선거리로 거의 50㎞정도나 떨어져 있는데요?”
“이 정도면 달려서 1시간 반이면 충분히 갑니다.”
“잠깐, 뭔가 말을 타고 가지 않고 그냥 뛰어가시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네. 그편이 빠르니까요. 제가 좀 전처럼 업어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레인로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게 확실히 빠른 것은 맞긴 하지만……. 저를 업고 달리시는 것은 굉장히 피곤하실 텐데요?”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이 던전은 공략 속도가 중요하니까요.”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눈을 쳐다봤다.
티그리스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티그리스.”
“예. 전하.”
“제 눈을 보세요.”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눈을 쳐다봤다.
레인로버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저한테 혹시 뭐 숨기는 거 있으세요?”
“…….”
티그리스가 말이 없자 레인로버는 팔짱을 낀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도 말했죠. 티그리스 경은 당황하면 말을 하지 않는다고요.”
“당황한 게 아닙니다.”
“뭔가 숨기는 게 있을 때도 똑같이 말이 없어지잖아요. 왜 그런지……”
“주문하신 양송이 스프와 밀 빵 나왔습니다.”
점원이 스프와 빵을 건네주자 레인로버는 일단 말을 끊고 지도를 치웠다.
그사이 레인로버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조금 이상했다.
앓아누운 바스티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나와서 대원들을 배웅해 주었는데, 베르강하고 아모리스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점원이 물러가자 레인로버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줘요. 이 던전을 빨리 공략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급할 필요는 없어요. 뭔가 숨기고 계신 게 있는 거죠?”
티그리스는 어차피 이렇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레인로버가 티그리스의 조급함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티그리스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제 아버지께서 위험하십니다.”
티그리스는 어젯밤 베르강에게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베르강이 타고 있는 열차에 로타의 귀 비브라토가 타고 있는 것 같으며, 이미 황금 기사들과 인퀴지터 요원들이 많이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레인로버는 차분하게 티그리스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은 뒤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아닙니다. 황녀 전하님껜 미리 말씀을 드렸어야 했습니다.”
“제가 괜히 걱정할까 봐 말씀해 주시지 않은 거잖아요. 특히 변수가 많은 이 성좌의 던전 속에서 마음이 흔들리면…….”
레인로버는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요.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레인로버의 손가락 사이로 은빛 눈물이 흘러나왔다.
레인로버는 솔직히 티그리스와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성좌의 던전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렇게 지내고 싶을 정도로.
황녀로서의 무거운 짐도 벗어던지고 남들 눈치도 보지 않은 채 티그리스와 단둘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 티그리스가 더더욱 힘들어 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는 게 더 미안했다.
티그리스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레인로버에게 건넸다.
레인로버는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미안해요. 진짜 힘든 사람은 티그리스 경일 텐데.”
“아닙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레인로버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곤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지금 이렇게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티그리스는 거인의 심장을 찾아 나달의 연구실에 건네줘야 했다.
거인의 심장이 철혈 심장의 메인 재료다 보니 얼마나 빨리 나달에게 건네주냐에 따라 철혈 심장의 완성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를 업지 마시고 빨리 거인들을 잡으러 가세요. 저는 따로 이동할게요.”
“황녀 전하.”
“아뇨. 어차피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빨리 이동했을 거잖아요. 이렇게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어요.”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저는 알아서 이동할게요. 그러니까 저는 놔두고 먼저 가세요.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이게 백번 맞아요.”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손에서 전해져 오는 복잡미묘한 감정에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안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걱정을 받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그래도 레인로버 황녀님과 약속했지 않습니까? 집결지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요.”
“그건 베오울프 변경백이 위험하다는 것을 몰랐을 때고요.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요.”
“제가 업고 달리면 이틀이면 충분히 집결지까지 모셔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집결지와 거인이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혹시 제가 걱정이 돼서 그런 거라면 접어두세요. 전 진짜 괜찮으니까요.”
“제가 황녀님을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겁니까?”
티그리스의 말에 레인로버는 순간 숨이 막혔다.
“방금 라이오너를 만나지 않았습니까? 이 인근엔 위험한 몬스터들이 살고 있습니다. 혼자 다니셨다가 위험한 몬스터와 만나기라도 하신다면 큰일이 나실 수 있습니다.”
“그걸 대비해서 아티팩트들을 미리 준비했잖아요. 전 진짜 괜찮아요.”
“그래도…….”
그때, 티그리스와 레인로버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신호기가 진동했다.
그 뜻은 하나였다.
5㎞ 인근에 공략 대원이 있다는 뜻이었다.
티그리스가 입을 열기 전에 레인로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근처에 대원들이 있는 모양이에요. 셀로스 호수 인근이니 아마 C팀일 가능성이 높겠죠. 만약 이 사람이 C팀이면 저를 놓고 가세요. 더 이상 양보할 순 없어요.”
레인로버의 단호한 말에 티그리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 * *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성문 밖에서 공략 대원을 만났다.
트리샤였다.
“넌 그리폰 기사였나 보군.”
“역시 티그리스 님이 호국경이셨군요.”
트리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기사단에서 탈출할 수 있었어요. 호국경이 라이오너에게 물려갔다는 소문이 퍼지니까 기사단이 난리가 났거든요.”
“다른 그리폰 기사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아직 여기까진 못 왔어요. 습격받은 지역 주변을 수색하고 있거든요.”
“그나마 다행이군.”
트리샤는 레인로버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는 황녀님을 데리고 셀브스 호수로 향할게요. 티그리스 님은 거인을 찾으러 가셔야죠?”
“트리샤는 지금 던전 밖이 무슨 상황인지 아시나요?”
레인로버의 돌발적인 질문에 트리샤는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네. 베르강 경에게 들어서 아주 대충만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경위는 잘 모르고요.”
레인로버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그럼 어서 가세요. 저희도 닉스의 눈물을 최대한 빨리 구해서 연구소로 향할 테니까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샤라면 레인로버를 맡길 수 있으니까.
“트리샤 부탁하마.”
“예. 맡겨두세요.”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품에 안았다.
티그리스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처음 보는지라 레인로버는 물론이고, 가만히 보고 있던 트리샤도 살짝 놀랐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레인로버 님.”
“……저야말로요.”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한 시간이 지나자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놓아주었다.
“그럼 실험실에서 뵙겠습니다.”
티그리스는 트리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트리샤는 레인로버를 흘금 보며 말했다.
“……오늘따라 옆구리가 참 시리네요.”
“큼! 어서 가죠!”
* * *
티그리스는 쉬지 않고 달려 거인들이 사는 동굴로 향했다.
생각 없이 무작정 달렸더니 해가 떠오를 때쯤 거의 다 도착했다.
거인이 사는 곳 근처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챈 이유는 간단했다.
이 인근에 거인의 발자국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거인의 발자국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크군.”
티그리스도 거인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문헌상으로 일반 성인 키의 15배에서 20배 정도 된다고만 들었지 실제로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큰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티그리스는 거인의 발자국 안으로 들어갔다.
발자국의 깊이는 티그리스의 키를 훌쩍 넘겼다.
거인이 사는 곳은 숲이 없고 건조해 땅이 딱딱하다.
그런데 티그리스의 키를 넘길 정도로 발자국 깊이가 깊다는 말은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런 육중한 몸무게를 버틸 수 있는 뼈대나 피부, 근육의 경도는 티그리스가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드래곤이 거인들을 피해 다녔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가는군.’
마왕의 시대를 거치며 대가 완전히 끊겨 버린 드래곤의 입장에서 이런 거인들과 영역 싸움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티그리스는 거인의 발자국에서 빠져나와 거인들의 흔적을 쫓아갔다.
그때,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을 뽑아 들어 허공을 향해 내질렀다.
후우우우우우웅-!
티그리스는 어디선가 날아온 묵직한 돌풍을 완벽하게 갈라냈고, 잘려 나간 돌풍은 거대한 허리케인을 만들어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 돌풍을 맞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아 죽거나 기절했을 것이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흙먼지를 뚫고 정확하게 이 거대한 바람을 날린 놈을 쳐다봤다.
쿵-! 쿵-!
티그리스가 밟고 있는 땅마저 위아래로 크게 흔들릴 만큼 거대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티그리스를 향해 오고 있었다.
묵직한 철몽둥이를 든 거인이었다.
거인은 티그리스를 흥미로운 듯이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넌 정말 맛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