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3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36화
성좌의 던전(6)
기원을 알 수 없는 고대 종족이자.
인간에겐 선망의 대상.
드워프에겐 영원한 굴종의 왕.
엘프들에겐 나무와 숲의 원수.
드래곤에겐 유일한 대적자.
산을 들어 평지로 만들고 땅을 엎어 산을 만들며 강과 바다를 메울 수 있는 힘이 있어 과거 신의 대리인이라 불렸던 종족.
거인(巨人).
거인이 티그리스를 노려보자 티그리스는 몸을 옭아매는 기묘하고도 불편한 감정에 손끝이 살짝 떨렸다.
이 감정은 바로 인간이라는 종에게 내재되어 있는 피식자로서의 공포였다.
“후…….”
그러나 티그리스는 인간의 유전 속에 각인된 공포를 숨을 한 번 내쉬는 것만으로 털어냈다.
그리고 샐러맨더의 검을 치켜세웠다.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검술은 믿음이었다.
무엇이든지 잘라낼 수 있다는 믿음이 형상화된 것으로, 티그리스는 저 거인을 베어 넘겨 죽이고 말 것이다.
거인은 그런 티그리스가 흥미로운지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피식자 주제에 반항을 하는군.]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이 장면을 본다면 벌레가 인간에게 반항하는 모양새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사마귀가 인간의 목을 잘라내기 위해 낫을 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고, 꿀벌이 침으로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철몽둥이를 든 거인, 스타이느의 입장에선 싱싱한 횟감이 자신을 먹어달라고 반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인은 철몽둥이를 천천히 하늘 높이 들었다.
티그리스는 저 무식해 보이는 철몽둥이가 단순한 철몽둥이가 아님을 알아챘다.
거인에게 있어서 무기는 흔한 것이 아니다.
고목도 한 손으로 으스러뜨릴 수 있는 거인의 악력을 버텨내야 하고, 거인이 휘둘렀을 때 휘거나 부러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탄성도 있어야 한다.
저런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드워프뿐이고, 드워프의 무기를 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족 내에서도 제법 서열이 높은 존재라는 뜻이었다.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이라도 찌를 듯이 올라간 철몽둥이가 우뚝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인간들은 공포에 오줌을 지릴 만도 하건만 티그리스는 덤덤히 검을 내지를 준비를 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거인은 눈썹을 찌푸렸다.
[다져주지.]거인은 철몽둥이를 내려찍었다.
거구의 몸체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
철몽둥이가 밀어내는 공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하늘의 모양새를 바꿨다.
티그리스는 심장에 돌고 있는 오러 고리 6개를 가파르게 돌렸다.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은빛의 오러가 하나의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내며 하늘 높이 올라간다.
거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고 단단한 검강이 철몽둥이와 부딪힌다.
아니, 철몽둥이에 스며든다.
그러자 철몽둥이는 깔끔하게 잘려 나가며 근처에 있던 야트막한 황톳빛 산으로 날아가 꽂혔다.
후웅-!
손잡이만 남은 철몽둥이가 허공을 가르고 압축된 공기가 바닥에 내려꽂히며, 티그리스가 서 있던 자리에 순간적으로 공기가 희박해졌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 버텨내곤 거인을 덤덤히 쳐다봤다.
[네놈이 감…….]푸화아아아악!
거인의 가슴께에 기다란 핏빛 실선 하나가 그려지며, 선홍빛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절단의 심상이 담긴 검강은 철몽둥이를 잘라내는 것을 넘어 질긴 피부와 거인의 육중한 몸을 움직이게끔 만드는 근육과 마나 회로를 잘라냈기 때문이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거인은 처음 겪어보는 날카로운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죽지 않았다.
“역시 안 되는군.”
티그리스의 계획대로라면 거인의 상반신 전체를 갈라내야만 했다.
하지만 검강은 놈의 질긴 피부와 근육만 갈라냈지, 뼈를 잘라내진 못했다.
절단의 심상이 담긴 검강이 거인의 뼈를 자르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아직 티그리스가 검강을 자유자재로 뽑아내기에는 육체가 덜 여문 것도 있었고, 거인의 육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도 있었다.
거인의 뼈는 육중한 몸무게를 버티기 위해 고밀도의 마나와 융합된 물질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저 복합 구조를 잘라내는 건 티그리스의 수준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소드 마스터의 육체를 갖게 된다면 티그리스는 나뭇가지를 들고만 있어도 저 거인을 단숨에 토막 낼 수 있다.
‘빨리 7번째 고리를 만들어야겠군.’
거인은 자신을 능멸한 티그리스를 향해 손을 번쩍 들어 티그리스를 향해 내려찍었다.
후우우웅-!
거인의 손이 먼저 닿기 전에 거인의 손에 밀려난 압축된 공기가 티그리스의 온몸을 짓누른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아주 가벼운 발놀림으로 거인의 손에서 벗어났다.
콰아아앙-!
거인이 움직이면 지형이 변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거인이 땅을 내려찍자 천지가 진동하며 땅이 쪼개졌다.
티그리스가 가슴께를 자르면서 힘줄도 동시에 잘랐기 때문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라면, 웬만한 왕국은 거인 하나만으로도 사라지고도 남을 것이다.
[벌레 같은 놈! 어디에 있느냐!]흙먼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티그리스의 모습에 거인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때, 온몸을 묶는 황금빛 사슬에 거인은 땅에 이끌려 쓰러졌다.
쿵-!
[……이건!]이 황금빛 사슬은 거인도 익히 알고 있는 성물이다.
천공의 사슬.
드래곤의 날개를 묶었다는 최고의 성물.
거인은 온몸을 칭칭 묶은 천공의 사슬을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풀려나지 않았다.
[인간이 이걸 어떻게……! 이것은 거인의 성물이거늘!]거인의 말을 무시한 채, 티그리스는 거인의 등허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샐러맨더의 검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새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대적자의 검이었다.
거인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자…… 잠깐!]그러나 티그리스는 검을 내질렀다.
대적자의 검에 담겨 있는 ‘거인 베기’의 능력이 발동되며 거인의 단단하고 두꺼운 뼈를 가르고 목을 잘라냈다.
피가 쏟아져 강을 만들고.
바닥을 구르는 머리는 골짜기를 만들었다.
거인은 죽어서도 세상에 큰 흔적을 남겼다.
티그리스는 거인의 등에 앉아 숨을 골랐다.
온몸이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티그리스가 내지른 두 번의 참격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금의 육체 수준으로는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무위였다.
바다 같은 오러는 바닥을 드러냈고 강철 같은 육체는 삐걱거린다.
티그리스는 명상으로 뒤틀린 몸의 균형을 다시 맞추며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거인의 심장을 잘라 꺼내는 일이다.
그런데 거인의 펄떡이는 심장을 잘라내려면 뼈를 들어내고 질긴 피부와 근육을 해체해야 했는데, 한번 죽여보니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죽이는 것보다 해체하는 시간이 더 길겠군.’
티그리스는 몸이 진정되자 눈을 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나저나 다른 팀은 잘 진행되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 * *
트리샤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C팀은 무조건 던전 공략 일주일이 되는 아침까지 셀브스 호수 바로 옆 폭포까지 오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오지 못했다.
“샤를로트는 아직인가요?”
레인로버의 말에 트리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나 리니아는 잘 도착했지만 샤를로트는 도저히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크게 다친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당최 알 수 없는 상황.
보름 내로 샤를로트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 사실을 티그리스와 나달에게까지 모두 알린 뒤 샤를로트가 죽었는지 아니면 살았는지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래야 성좌의 던전을 다시 시작할지 말지 판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트리샤는 손에 들린 수정구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일단 저희만이라도 움직이죠.”
일단 계획한 대로 오늘 밤 닉스 포획을 한다.
샤를로트 하나가 없다고 해서 닉스 포획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하염없이 샤를로트를 기다리다가 닉스의 눈물을 연구실에 건네주지 못한다면 철혈 심장 제작에 차질이 생기니까.
일단 빨리 닉스의 눈물을 건네준 뒤 C팀은 샤를로트를 찾는 수색 작업을 들어가는 게 옳았다.
트리샤가 텐트로 향하자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리니아와 아이린이 보였다.
“샤를로트 선배는 아직 안 왔나요?”
아이린의 질문에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뇨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그럼 혹시 스승님께는 연락이 왔나요?”
“아뇨. 없었습니다. 그건 왜 묻는 거죠?”
아이린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페르셴과 아드네의 목걸이를 꺼냈다.
“만약 샤를로트 선배가 죽을 위기에 있었다면, 스승님이 먼저 반응했을 거예요. 스승님에게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샤를로트 선배에겐 큰 문제는 없다는 거겠죠.”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는 이야긴가요?”
“네. 아마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마 빠져나오면서 무슨 문제가 생겼겠죠.”
아이린은 끓고 있는 스프를 푹 떠서 그릇에 담아 트리샤에게 건넸다.
“그럼 계획대로 닉스를 공략하는 게 맞겠죠?”
트리샤는 아이린이 건넨 그릇을 받았다.
“네. 아침을 다 먹자마자 바로 야영지를 정리하고 출발할 테니까 준비하도록 해요.”
“네.”
* * *
샤를로트는 힘겹게 눈을 떴다.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올라 눈을 뜨는 것이 괴로웠지만, 안간힘을 써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파악했다.
샤를로트의 몸은 단단한 쇠사슬로 속박되어 철창에 갇힌 채 어딘가로 이송되고 있었다.
“오, 벌써 눈을 떴군.”
샤를로트는 말에 탄 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하폰스 영지의 영주 마누를 쏘아봤다.
마누는 샤를로트의 전리품을 자랑이라도 하듯 흔들며 말했다.
“이봐 이제 슬슬 포기하고 이 아공간 주머니에 뭐가 담겨 있는지 말하지. 그래? 그럼 편히 죽여주도록 하지.”
샤를로트는 마누의 눈도 쳐다보지 않고 외면했다.
마누는 이번엔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아니면 이 지도에 대해 설명이라도 해주겠나? 정말로 이 셀브스 호수에 닉스가 사는 게 맞는지?”
그러나 샤를로트는 일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누는 죽일 듯이 쏘아보는 샤를로트를 향해 침을 뱉었다.
“독한 년.”
마누는 샤를로트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자 말을 몰아 선두로 사라졌고, 샤를로트는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몸을 떨었다.
샤를로트는 살면서 이렇게 굴욕적이고 무력해진 적은 처음이었다.
성좌의 던전 공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던가.
이 모든 노력이 샤를로트 하나 때문에 허사가 될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심장이 조이듯 아파왔다.
‘그때 잘 도망만 쳤더라면…….’
샤를로트가 이렇게 사로잡힌 이유는 그냥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샤를로트는 하폰스 영지 내에 있던 작은 여관에서 밥을 먹다가 마누와 마주쳤다.
마누는 샤를로트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자마자 자신의 첩이 될 것을 강요했고, 샤를로트는 괜히 마누와 엮이기 싫어 여관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당시 마누가 하폰스 영지의 영주인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자신을 무시한 것에 화가 잔뜩 난 마누가 자신의 호위기사 그렌을 시켜 샤를로트를 사로잡게 만든 것이었다.
아티팩트를 사용했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공간 주머니에서 은신 아티팩트를 꺼내려는 순간 6성 기사였던 그렌이 샤를로트를 곧바로 제압해 버렸기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히이잉-
호송 마차가 멈추자 샤를로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호수에 비치는 찬란한 아침 햇살에 눈이 부셨다.
처음 보는 호수였지만 샤를로트는 본능적으로 여기가 어디인지 알 것만도 같았다.
셀브스 호수였다.
“도착했습니다. 영주님.”
하폰스 기사단의 기사단장 그렌의 말에 마누는 셀브스 호수를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 영지 안에 닉스가 살고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군. 어서 닉스를 불러낼 준비부터 하도록 하지.”
“그런데 정말로 이 호수에 닉스가 살고 있는 게 맞습니까?”
마누는 멍하니 셀브스 호수를 쳐다보고 있는 샤를로트를 보며 말했다.
“한번 잘 생각해 보게. 4서클 마법사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정교한 수정구와 아공간 주머니를 갖고 있는 정체 모를 여인이 갖고 있는 지도에 닉스의 위치가 적혀 있네. 속는 셈 치고 와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그렌은 샤를로트를 흘금 쳐다봤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지이이잉-
마누는 갑작스레 진동하는 수정구에 깜짝 놀라 품속에서 꺼냈다.
마누는 탐욕스러운 뱃살을 출렁이며 크게 웃었다.
“그래! 이 수정구는 역시 닉스의 위치를 알아내는 아티팩트였던 모양이군!”
닉스는 관상용으로 팔아도 비싸고, 닉스에게서 추출할 수 있는 닉스의 눈물은 굉장히 유명한 영약 재료다.
닉스를 열 마리, 아니, 다섯 마리만 사로잡아도 마누는 돈방석에 앉을 것이다.
“어서 닉스를 사냥할 준비를……!”
“마누 님 피하십시오!”
그때, 숲속에서 핏빛 단도가 섬전같이 날아왔다.
그렌은 아주 간신히 검을 뽑아 단도를 쳐냈다.
쳐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핏빛 단도는 기이한 형태로 꺾이더니 마누가 이끌고 온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커어어어억!”
병사들과 기사들은 단도를 피해낼 재간이 없었고, 무려 20명이 당하고 말았다.
단도는 햇빛마저 닿지 못하는 깊은 숲속으로 사라졌고, 그렌은 핏빛 단도가 사라진 숲을 향해 검을 들었다.
언제 또다시 단도가 날아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도는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황금빛 성화(聖火)를 토해내고 있는 묘령의 여인 하나가 핏빛 단도를 들고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트리샤였다.
트리샤는 충분히 피를 먹은 블리더를 작동시켜 피처럼 붉은 검을 뽑아냈다.
트리샤는 사로잡혀 있는 샤를로트를 한번 흘겨보더니 살기를 흩뿌렸다.
“너희는 오늘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