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3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38화
성좌의 던전(8)
닉스들은 레인로버의 손에 들린 사파이어의 움직임에 따라 고개가 마구 돌아갔다.
그 모습이 마치 병아리 떼를 보는 것 같아 솔직히 귀여웠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사파이어를 보여준 뒤 이리저리 흔들면 닉스들처럼 똑같이 눈동자가 고개가 흔들릴 것 같지만…….
아무튼 귀엽고 또 귀여운 게 중요했다.
레인로버도 그런 닉스들이 귀여운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 받아 가.”
막상 레인로버의 손에서 사파이어를 받아 가기는 조금 무서운 건지 아니면 낯가림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닉스들은 주저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막 집어다가 호수 밑바닥에 처박아 넣은 녀석들답지 않았다.
어쩌면 이 부끄러워하고 소심한 모습이 닉스들의 진짜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닉스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하자 레인로버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닉스들은 레인로버가 다가오자 잠깐의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진 않았다.
레인로버는 한 닉스에게 사파이어를 건넸다.
“쫑쫑아, 여기 받아 가.”
어느새 애칭까지 붙여진 쫑쫑이(닉스)는 손을 뻗어 사파이어를 받았다.
그런데 레인로버의 손에 닿을 용기는 없는지 사파이어만 쏙 빼내 품에 안았다.
사파이어는 레인로버의 새끼손톱 1/4크기밖에 되지 않았지만, 쫑쫑이에겐 머리통만 했다.
쫑쫑이는 사파이어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지 함박웃음을 지었고, 다른 닉스들은 사파이어를 받은 쫑쫑이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닉스들이 사파이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소문에 따르면 사파이어에 담긴 순수한 마나를 이용해 마왕에 의해 오염된 정신과 마나를 정화시킨다는 이야기가 있긴 한데, 실제 연구를 근거로 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인간들이 연구를 하기도 전에 눈물을 강제로 짜내 죽여 버렸으니까.
뭐가 되었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닉스들은 사파이어를 좋아하고 레인로버에겐 사파이어가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었다.
레인로버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파이어를 다시 하나 꺼냈다.
“방금 그건 내 친구가 되어줬으니까 고마워서 준 거고……. 아, 친구가 아니라 용서해 준 거라고? 이거 참……. 친구가 되려면 사파이어를 더 달라고?”
닉스들은 어린아이처럼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쫑알쫑알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리니아도 홀린 듯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파이어를 꺼내 들었다.
닉스들은 리니아의 손에 들린 사파이어를 보자 눈을 반짝였다.
레인로버처럼 닉스의 감정을 완벽하게 알아차리는 감응 능력은 없지만, 닉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호…… 혹시 나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꼬마 닉스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리니아의 곁에 다가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린과 트리샤도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파이어를 재빨리 꺼냈다.
“나도! 나도!”
“잠깐, 잠깐! 우리 사파이어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여우에 홀린 듯 닉스들에게 사파이어를 마구 뿌리기 전 트리샤가 제지했다.
C팀이 사파이어를 가져온 이유는 닉스의 눈물을 얻기 위해서다.
나달에게 요구받은 양은 정확하게 50㎖.
그 이상 받아 오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하로 받아 오면 절대 안 된다고 경고를 받았기에 사파이어를 마구잡이로 뿌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레인로버는 닉스들의 눈을 마주치며 마치 유치원 선생님처럼 얼굴에 감정을 듬뿍 담아 말했다.
“난 너희들의 눈물이 필요한데 받을 수 있을까? 막 억지로 짜낼 필요는 없고 조금씩만이라도 줬으면 좋겠는데.”
닉스들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닉스의 눈물은 이름만 눈물이지 사실 닉스가 진짜로 흘리는 눈물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닉스들의 감정이 격앙될 때 나오는 일종의 순수한 마나 물질이다.
그래서 닉스들을 자극하기 위해 악독한 밀렵꾼들은 닉스들을 고문하거나 다른 닉스들을 죽이는 등 잔혹한 짓을 많이 했다.
부정적인 감정도 일종의 감정이니까.
그래서 닉스들이 슬플 때 나오는 물질이라고 해서 ‘눈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반면 지금의 닉스들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파이어를 받은 상태다.
한마디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기쁜 상태.
닉스들은 레인로버가 건넨 작은 유리병에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그러자 손가락 끝에서 맑고 투명한 사파이어와도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닉스의 몸이 워낙 작아서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닉스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목표치인 50㎖는 금방 채울 수 있었다.
오히려 목표치를 넘어 무려 120㎖나 모을 수 있었다.
“우와…….”
닉스의 눈물은 철혈 심장을 만드는 데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다른 영약을 만드는 데도 사용이 된다.
이 닉스의 눈물을 이용해 다른 영약을 만들어낸다면 굉장히 좋을 것이다.
레인로버는 병마개를 꽉 닫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고마워. 쫑쫑아. 뇽뇽아. 살랑아. 뿅뿅아…….”
레인로버는 어느새 모든 닉스에게 별칭을 다 붙여주었는지 닉스의 눈을 똑바로 보며 감사 인사를 했다.
트리샤나 리니아의 눈으로 보기엔 모두 비슷해 보여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레인로버는 신기하게도 모두 구분하는 듯했다.
닉스들은 레인로버가 굉장히 좋은지 손가락에 올라타 몸을 마구 비볐다.
레인로버는 모든 닉스에게 인사를 하곤 일어났다.
“우린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닉스들은 레인로버가 떠난다고 하자 아쉬운지 레인로버 곁을 빙글빙글 돌았다.
아쉽지만 이젠 시간을 더 이상 끌 수는 없었다.
철혈 심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나달의 연구실에 이 닉스의 눈물을 빨리 전해줘야 한다.
그래야 철혈 심장이 빠르게 완성되어 던전 공략을 끝낼 수 있을 테니까.
레인로버네는 배웅해 주는 닉스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나달이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 * *
나달의 개인 연구소는 셀브스 호수에서 북동쪽으로 사흘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소도시 ‘모고’라는 곳에 있었다.
만민의 신분증인 은화 한 닢을 경비병들에게 건네주고 정문을 통과한 C팀은 곧장 연구소로 향했다.
리니아는 다 허물어져 가는 낡은 목조건물과 지도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가 연구소예요?”
“일단 그렇다는데?”
연구소라고 하면 굉장히 세련되거나 깔끔한 건물이라 생각했지만, 이 연구소는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낡아빠졌다.
“일단 혹시 모르니까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자.”
트리샤는 진동하는 수정구를 들고 제일 앞장서서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더러웠다.
얼마나 오랫동안 안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곳곳이 먼지투성이에 거미줄이 잔뜩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여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수정구가 이곳에 반응하니까 여기겠지.”
주변을 살피던 레인로버가 마룻바닥 아래를 가리켰다.
“여기다.”
다른 곳은 먼지투성이였지만 이곳만큼은 누군가가 드나든 흔적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레인로버가 가리킨 마룻바닥에서 갑자기 문이 생겨났다.
갑자기 문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인식 저해 마법이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이윽고 문이 벌컥 열리며 라칸이 두더지처럼 튀어나왔다.
“어서 들어오세요.”
역시나 지하에 연구실이 있던 모양이었다.
C팀은 라칸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딱 맞춰 오셨네요. 마침 닉스의 눈물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는데요.”
“그래? 다행이네. 그나저나 티그리스 님은 오셨어?”
라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거인의 심장을 생각보다 너무 빨리 가져오셔서 좀 많이 놀랐죠. 아, 그런데 지금은 안 계셔요.”
“어디 잠깐 나가신 거야?”
“어……. 잠깐이라고 해야 할 지……. 세 시간 정도 저희가 하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연구실을 나가셨어요.”
“어디로 가셨는데?”
“밀림이라고만 말씀하셨어요.”
트리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밀림? 거기는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네메시스 경이랑 소라 경에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러 가신 게 아닐까요?”
“흠……. 그러려나? 그런데 밀림엔 지금 엘프들이 있어서 인간을 보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텐데…….”
“그거야 잘 모르죠. 티그리스 교관님도 다 생각이 있지 않으실까요?”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계단을 다 내려왔다.
라칸은 계단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거대한 연구실이 드러났다.
연구실은 나달의 결벽증 성격을 반영이라도 한 듯 온통 하얬다.
연구실 한가운데엔 가로세로 3m들이 통이 떡하니 놓여 있었는데, 그 통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렸다.
나달은 부유 마법으로 몸을 띄운 채 실시간으로 통 안의 반응을 관찰하며 시약들을 한 방울 한 방울씩 계속 떨어뜨리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지금 좀 중요한 작업을 하고 계셔서요. 지금 인사를 드리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아요. 혹시 닉스의 눈물을 먼저 받을 수 있을까요?”
“아, 여기.”
트리샤는 닉스의 눈물 50㎖가 정확하게 담긴 앰플을 건넸다.
라칸은 앰플을 받아 들곤 선반으로 향하더니 이상한 기계에 앰플 통째로 집어넣었다.
기계 끝에는 긴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라칸은 새 앰플을 꺼내 호스에서 나오는 액체를 담았다.
라칸은 기계에 달린 복잡한 계기판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순도 99.98%짜리네요.”
“그게 놀랄 일이야?”
“엄청난 거죠. 과거 자료를 찾아봤는데 닉스의 눈물의 순도가 90%를 넘어가는 게 거의 없었거든요. 레기우스도 겨우 85.57%짜리 닉스의 눈물을 사용했고요. 이 정도면 따로 정제는 할 필요가 없겠어요.”
라칸은 앰플을 마개로 꾹 닫곤 라벨을 붙여 한쪽 구석에 놓았다.
그러곤 종이에 뭔가를 계속 적었는데, 그 모습이 평소의 라칸과 이미지가 많이 달라 느낌이 기묘했다.
아마 이 모습을 아모리스가 본다면 사진을 찍어두고 싶어 난리를 피우지 않았을까 싶었을 정도로 기묘했다.
나달은 일이 다 끝났는지 부유 마법을 끊고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레인로버 황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레인로버 황녀님.”
“아녜요. 그것보다 진행률은 어떤가요?”
“거의 80%는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만 도착하면 될 것 같습니다.”
D팀인 네메시스와 소라는 던전 입성 후 21일 안에 실험실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은 10일 정도가 지났으니 앞으로 11일 정도 남았다.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가 도착했다고 가정하면 어느 정도 만에 끝날 수 있을까요?”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는 마지막에 사용되는 재료다 보니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가 도착하는 즉시 완성이 가능합니다.”
“그럼 21일째에 완성이 가능하다는 거네요?”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그렇게 되겠죠.”
별바라기의 천체지도의 능력으로 현실 세계와 던전 내 시간은 10배 정도 차이 난다.
말이 10배지 대략적으로 성좌의 던전에서 한 달이면 사흘 정도 시간이 흐르는 것이니 3주 정도면 현실 시간으론 이틀 정도 지난 것이리라.
“그럼 이제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아뇨. 없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푹 쉬시죠.”
C팀의 임무는 닉스의 눈물을 건네는 것으로 끝이 났다.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이제야 끝이 났다는 후련함과 함께 시원섭섭함이 몰려왔다.
“근데 이제 뭐 하지……?”
이곳에서 검술 수련을 해도 큰 의미는 없다.
이곳에서 오러 수련을 해도 본래 세계로 돌아갔을 때 육체의 성장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달과 라칸의 일을 도와주자니 너무 복잡해서 앰플이나 스포이드 하나 건드리기 어렵다.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겠고.
샤를로트는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눈을 껌벅였다.
“뭔가 나 스승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샤를로트의 말에 아이린과 리니아 그리고 레인로버는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대로 11일 동안 가만히 있자니 시간이 아까워.”
“그러게요.”
현실 시간으론 하루나 이틀 정도밖에 흐르지 않겠지만, 멍하니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아까웠다.
그렇다고 검을 휘두르자니 현실 세계에선 도움이 안 되고.
트리샤도 젊은 나이에 6성 기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좌의 던전에서 실전을 많이 겪고 바깥에 나와 영약으로 육체를 빠르게 성장시킨 덕분이었다.
“흐으으음…….”
네 사람은 뭔가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뭐를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트리샤는 네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듣곤 입을 열었다.
“그럼 재밌는 부업 하나 안 할래요?”
“부업이요?”
트리샤는 씨익 웃었다.
“성좌의 던전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이 던전 내에서 성물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현실 세계로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 시대에서만 존재하는 몬스터들의 부산물이나 유물들을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트리샤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말했다.
“물론 짭짤하기도 하고.”
네 사람의 눈이 금색으로 반짝였다.
“네! 좋아요!”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러면 혹시 티그리스 경도 트리샤 경하고 똑같은 생각이지 않았을까요?”
“음……. 그러게요. 티그리스 경이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멍하니 있을 사람은 절대 아니니까요.”
“그럼 왜 하필 밀림으로 향한 걸까요?”
트리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모르죠. 엘프들의 검술이라도 연구하려나? 티그리스 님은 검술광이시니까요.”
* * *
밀림에 얼마 없는 텅 빈 공터.
티그리스는 공터 한가운데에서 샐러맨더의 검을 뽑아 든 뒤 자신의 눈앞에 있는 하얀 옷을 입은 엘프와 눈을 마주쳤다.
엘프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엘프들의 전통 곡검 미쉬타를 뽑아 들었다.
“후회는 없겠지? 티그리스?”
티그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는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종달새처럼 티그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굉장한 속도였지만 융단처럼 깔린 풀 한 포기도 상처 입지 않았다.
엘프는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얼음 결정의 기운이 담긴 오러가 티그리스에게 날아갔고.
붉은 피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