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39)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39화
성좌의 던전(9)
시간을 되돌려서.
티그리스가 밀림으로 향한 이유는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 네메시스와 소라에게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 번째, 엘프들의 검술을 보고 배우기 위해.
세 번째, 당장에 할 일이 없어 자꾸 딴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세 번째 이유가 가장 크다.
티그리스가 철혈 심장이 만드는 과정에서 관여할 수 있는 건 이제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던전 밖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지, 만약 베오울프가 죽거나 크게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조급해지고 침울해져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티그리스는 밀림에 도착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엘프들 무리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티그리스에게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엘프들이 티그리스를 전부 감쌀 때까지 멀찍이 떨어져서 티그리스의 뒤를 밟았다.
티그리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깊숙하게 들어갔다.
밀림 깊숙이 들어가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 멀리 찬란한 황금빛을 토해내고 있는 세계수를 보고 달리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섯 명의 엘프들이 티그리스의 앞길을 막았다.
그 엘프들은 활시위를 당기고 정령을 불러내었으며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간 물러나라.”
엘프들은 티그리스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엘프들이 알아봤다기보단 세계수가 엘프들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세계수의 영향권 안에 있는 엘프들은 굉장히 강력하다.
세계수에서 나오는 찬란한 황금빛 축복으로 인해 마나가 떨어지지도 않았고, 세계수가 보살피는 정령들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에게 있어 눈앞에 있는 다섯 엘프들을 물리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주위에서 티그리스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251명의 엘프들이 티그리스가 죽을 때까지 추적을 강행할 테니 여기서 난동을 부리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었다.
아무리 티그리스가 엘프들의 검술을 보고 싶다고 하더라도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통해 검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무슨 이유로 밀림을 찾아온 거지?”
“거래를 위해서다.”
티그리스는 엘프들과 친구, 아니, 적어도 다른 인간들과 달리 미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티그리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커다란 귀를 하나 꺼냈다.
그 귀를 보자 엘프들은 눈을 번쩍 떴다.
“그건……!”
티그리스가 잘라 온 것은 거인의 귀였다.
엘프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거인의 귀를 잘라 온 인간.
그 말의 의미는 명확했다.
“거인을 죽인 건가?”
“그렇다.”
“어느 거인을 죽인 것이지?”
“이곳에서 북쪽으로, 엘프들의 보폭으로 닷새 정도 달리면 나오는 황폐한 땅에 사는 거인을 죽였다.”
“설마…… 철몽둥이를 든 거인이었나?”
“그래.”
티그리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적당량으로 잘라온 거인의 철몽둥이 조각을 꺼냈다.
엘프들은 또다시 한번 놀랐다.
저 철몽둥이를 엘프들이 모를 리가 없다.
저 거인은 엘프들의 숲을 호시탐탐 노리는 ‘마카 부족’의 수장 ‘크룰’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룰을 어떻게 죽인 거지?”
“그냥 베어 죽였다.”
“믿지 못하겠다.”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거인이 죽었다는 정보를 너희들에게 제공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너희들에게 대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너희들 말고 관을 쓴 자를 데려와라.”
엘프들은 쑥덕였다.
관을 쓴 자.
인간들로 치면 영주나 왕에 준하는 권력자를 뜻하는 말이다.
엘프들은 굉장히 평등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의외로 수직적이다.
권력 분포를 그래프화시키면 압정과 같은 모양새랄까?
세계수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제사장’이나 엘프들의 정책을 결정하는 ‘원로’들, 제사장을 보조하는 ‘사제’, ‘무녀’와 같은 극소수의 권력가들이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고, 그 외의 엘프들은 모두 그들의 명령을 따르는 신권정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티그리스의 눈앞에 있는 엘프들은 티그리스가 가지고 온 정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없다.
잠시 후 나무에 숨어 있던 엘프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프들은 죽기 직전까지 나이를 먹지 않아 얼굴로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엘프들도 딱히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나이를 표시할 수 있는 수단 따위는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엘프족 내에서의 입지를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옷차림이었다.
“무녀가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군.”
“내가 무녀인 것은 어떻게 알았지?”
“여성체고 하얀 옷을 입었으며 머리에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든 관을 썼으니 무녀지. 옷의 색깔이 굉장히 하얀 것으로 보아 무녀장 정도는 되겠군.”
티그리스의 앞에 나타난 엘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기껏해야 20년쯤 살았을 법한 인간이 엘프들에 대해 아는 게 많은 모양이군. 어머니의 밀림을 방문할 때 예의를 갖추는 법도 알고, 엘프어도 할 줄 알고 말이야.”
티그리스가 엘프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좌의 던전의 효과 덕분이었지만 길게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설명하기도 힘들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이런 예의 있는 인간은 흔하지 않으니 통성명 정도는 해줘야겠지. 나는 무녀장 뮤네라고 한다. 네 이름은 뭐지?”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라고 한다.”
“티그리스라……. 노르베르드가 어느 가문인지 모르겠지만 북쪽에서 온 이름 같군.”
뮤네는 티그리스에게 천천히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뮤네의 몸에서 나는 체취는 구름을 벗어난 달을 닮았다.
슴슴하고 우수에 잠기게 하고 청량하며 외로운 내음이 났다.
티그리스는 손을 뻗어 뮤네와 짧게 악수했다.
엘프들답게 손이 굉장히 차가웠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우면서도 차가운 오러의 기운에 살짝 놀랐다.
“영약을 두 가지를 먹었군.”
“붉은 마나초와 얼음 정수를 먹었다.”
“붉은 마나초는 인간과 잘 맞으니 그렇다고 쳐도 얼음 정수는 인간의 몸으론 감당할 수 없는 영약일 텐데? 어떻게 체화시킨 거지?”
“엘프답지 않게 굉장히 호기심이 많군.”
“경계심이라 표현해 두지. 거인을 벤 젊은 인간이 어머니의 밀림에 제 발로 찾아왔는데 당연히 궁금한 게 많지 않겠나?”
뮤네는 티그리스의 손을 놓았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우리에게 거인의 귀를 가져온 이유가 뭐지? 우리는 인간들처럼 동물을 사냥해 박제해 두는 질 나쁜 취미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거인이 죽었다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런 정보는 레인저들을 파견해 보면 알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거인이 죽었다는 정보를 알아내는 사이에 거인들의 수장 뽑기는 끝나 있었겠지.”
티그리스가 벤 거인은 일반적인 거인이 아닌 한 부족의 수장이다.
거인들은 수장이 불미스러운 일로 사망하거나 죽으면 복수를 하기 전에 우선 수장을 새로 뽑는 일부터 한다.
수장 뽑기는 거인들답게 전투로 이루어지는데 거의 열흘 동안 서로 치고받고 싸우다가 마지막까지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거인이 수장이 된다.
“내가 크롤의 목을 벤 것은 정확하게 6일 전이었다. 이제 한창 거인들의 수장 뽑기가 진행되고 있겠군. 거인들의 수장 뽑기가 끝나기 전에 거인들이 사는 황폐한 땅에 인접한 나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좋지 않겠나?”
티그리스의 말을 들은 뮤네는 재미있다는 식으로 티그리스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신기하게도 인간과 거인들을 잘 아는군. 그 정도 실력을 갖추려면 평생 검만 수련해도 모자랄 텐데 말이야.”
뮤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 말에 일리가 있으니 네 정보를 귀하게 취급하도록 하지. 그러면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지?”
티그리스는 미리 머릿속에 생각해 두었던 답을 내놓았다.
“혹시 최근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달라고 요청한 수인 두 명이 있지 않았나?”
뮤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그랬지. 혹시 그 수인들과 아는 사이인가?”
“그런 셈이라고 해두지. 그 수인들은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받아 갔나?”
뮤네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왜 그런 것을 묻는 거지?”
“만약 그 둘이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받아 가지 못했다면, 이번 정보와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
“그 수인들에게 줄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네가 받길 원하는 건가?”
“아니, 그 둘에게 줘라.”
뮤네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지 턱에 손을 올리고 계속 티그리스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 수인들과 도대체 무슨 사이인지 알고 싶군. 왜 그 둘을 돕는 거지? 수인과 인간 사이는 우리나 인간이나 똑같이 안 좋을 텐데. 그냥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친한 동료라고 해두지.”
뮤네는 뭔가 알았다는 식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엘프들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아나 했더니만 그 수인들과 친구였기 때문이었군.”
“그래서 그 둘은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받았나?”
“아직 주진 않았지. 하지만 조만간 건네줄 생각이었다. 최근 동쪽 숲에서 나무껍질을 마구 긁고 다니는 룬 베어들을 몰아내 달라고 부탁했거든. 나무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룬 베어들을 사투티메오의 땅으로 다 몰아냈다고 하더군.”
룬 베어는 자신들의 영역을 표시할 때 나무에 발톱 자국을 남기는데, 나무가 상처를 입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엘프들은 룬 베어를 증오했다.
하지만 룬 베어는 오우거와 동급인 2등급 몬스터다 보니 엘프들도 사냥하기 까다로웠고, 밀림 동쪽에 사는 마법용 사투티메오의 둥지 인근에 사는지라 룬 베어들을 멸종시키진 못했다.
“그럼 돌아오면 바로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를 주겠군.”
“그렇겠지.”
네메시스와 소라는 제시간에 나달의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티그리스가 나달의 연구소에서 밀림까지 달려서 오는 데 닷새 정도 걸렸으니까 둘의 속도로 보자면 일주일 정도 걸릴 것이다.
별일이 없다면 3주 내로 나달의 연구소에 도착할 것이다.
‘연구소로 같이 돌아가면 되겠군.’
“그럼 또 원하는 게 있나?”
“너와 대련을 하고 싶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말에 흥미가 동했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와 대련을 하고 싶다고?”
“넌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검을 수련한 티가 나더군. 엘프들의 검술을 경험해 보고 싶다.”
티그리스는 엘프들의 검술을 책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그리고 엘프들은 드워프와 달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검술 관련 기록이 거의 없다.
아마 엘프들에겐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특별한 검술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이게 본론이었군. 하긴 너처럼 강인한 전사가 어머니의 밀림에 찾아올 이유는 그것밖에 없긴 하지.”
뮤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넌 인간들 중에서 얼마나 강하지?”
“강하다는 기준이 뭐지?”
“그건 네가 정하는 거겠지.”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했다.
티그리스는 이번 성좌의 던전을 준비하면서 이 시대에 살아 있는 소드 마스터 명단을 떠올렸다.
말레 왕국과 같은 소국에는 당연히 소드 마스터가 없었으니 대륙 전체를 기준으로 살펴봐야 한다.
티그리스는 성물을 모두 사용한다고 할 때 7성 기사는 무리 없이 죽일 수 있다.
8성 기사는 격이 다르기 때문에 상대할 수 없다.
그럼 이 시대에 8성 기사가 있었는가?
트리샤가 조사한 바에는 없었다.
“순수한 오러 고리의 개수로만 보면 나보다 위에 있는 기사는 총 14명이 있다.”
“호오 그럼 너보다 강한 자가 14명이나 된다는 뜻인가?”
“그러나 순수한 검술 실력으로만 보자면 나를 따라올 자는 없다. 한마디로 나와 1 대 1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뮤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굉장히 오만하군. 아니지. 거인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니 오만할 자격이 있는 걸까? 제아무리 성물의 힘을 빌렸다고 하지만 말이야.”
티그리스는 순간 저들이 대적자의 검을 알아본 것인가 착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들이 대적자의 검을 알아볼 수 있을 리 없다.
대적자의 검은 거인의 시대를 종결시킨 검.
아직 거인이 살아 있을 때 존재하는 검이 절대로 아니었다.
심지어 대적자의 검은 아공간 주머니에 안에 들어가 있으니 엘프들이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뮤네는 티그리스가 허리춤에 찬 샐러맨더의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그 검을 못 알아볼 거라 생각했나? 티그리스?”
“이 검? 샐러맨더의 검을 말하는 건가?”
“샐러맨더의 검? 그 성물에 무슨 불도마뱀 같은 이름을 붙이는 거지?”
“이 검은 도마뱀자리의 성물이니까.”
뮤네는 어이없다는 식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도마뱀자리? 혹시 일부러 드래곤을 저열하게 부르는 건가? 뭐 그런 거라면 마음에 들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성좌에게 도마뱀이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양심이 없는 거 아닌가?”
티그리스가 정말 모르겠다는 식으로 쳐다보자 뮤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 그 검의 성좌가 어떤 성좌인지.”
“모른다.”
뮤네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인간들은 은혜를 쉽게 잊는다고 하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단순한 이름 놀음으로 성좌의 격을 떨어뜨리다니. 일부러 그런 것인가 아니면 실수인가?”
“이 검이 도마뱀 성좌를 상징하는 성물이 아니라면 무슨 성좌의 검이지?”
“그 검은 마왕으로부터 인간들과 대륙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모든 화염룡들의 왕이자 인간들에게 원소 마법을 가르쳐 준 ‘헨게나 성좌’가 아닌가? 용사 페레이라가 죽기 전에 지정한 몇 안 되는 성좌인데……. 헨게나가 이 사실을 알면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겠군.”
헨게나.
페레이라 모험기 극초반부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선룡이다.
모든 드래곤들이 비늘 산으로 도망친 게 아니라 몇몇 극소수의 드래곤들은 대륙과 인간들을 지키고자 자신을 희생했는데, 그중 페레이라와 유독 인연이 깊은 드래곤이 바로 헨게나였다.
‘그러고 보니 헨게나를 아는 사람이 없군.’
헨게나를 포함한 몇몇 드래곤들이 마왕의 흑마법으로 언데드로 되살아나 페레이라를 공격했을 때, 페레이라는 눈물을 머금고 헨게나와 드래곤들의 목을 쳤다는 내용이 모험기에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쏙 빠져 있다니.
페레이라의 연인인 아모리스와 마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사 자료는 너무나도 오류가 많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역사서를 다시 고쳐야겠군.’
“그런데 성좌의 격이 떨어지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당연하지. 성좌가 잊혀지기 시작하면 그 성물의 힘도 퇴행되는 법이다. 더구나 헨게나를 불도마뱀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말을 다 했지. 만월이 되면 헨게나를 위한 치성을 드려야겠어. 인간들이 잊었으니 우리라도 기억해 줘야지.”
티그리스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럼 왜 아모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아, 아모리스 님은 샐러맨더의 검이 나타나기도 전에 봉인을 당했지.’
성좌가 탄생하자마자 곧바로 성물이 내려오는 게 아니라 몇 년이 지나고 난 후에야 나온다.
헨게나 성좌의 성물이 땅에 내려왔을 때는 아모리스가 봉인되어 있었을 테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럼 다시 성좌를 복권시키는 방법이 뭐지?”
“당연히 사람들이 헨게나 성좌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해야겠지. 도마뱀이 아니라 헨게나가 인간들을 위해 어떤 희생을 했고 어떤 비극으로 끝이 났는지까지 모두 알게끔 해줘야겠지? 그런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군. 사람의 인식을 통째로 바꾸는 일은 그 유명한 페레이라도 애를 먹었으니까.”
뮤네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잡담을 하다 보니 해가 벌써 중천에 떴군. 시간이 없으니 빨리 대련이나 하지.”
뮤네 정도 되는 엘프가 한가하게 티그리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을 리가 없다.
티그리스도 이해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지.”
“그럼 따라와라. 좋은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 * *
티그리스는 뮤네와 서로 마주 보고 섰다.
티그리스는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뮤네에게 말했다.
“대련을 하기 전 조건이 있다.”
“뭐지?”
“실전처럼 나를 죽일 듯이 덤벼라.”
티그리스의 말에 뮤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지? 넌 그냥 엘프들의 검술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온 게 아닌가?”
“단순한 검술뿐만이 아니라 세계수의 힘을 받은 엘프가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경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지?”
“죽지 않는다.”
“흐음…….”
뮤네는 손가락으로 미쉬타를 굴리며 말했다.
“좋다. 그럼 이렇게 하지. 네가 인류 최강이라고 했으니 네가 죽으면 인류에게 있어서 큰 손해겠지.”
“그런 걱정은……”
“그럼 굉장히 좋겠군. 인류의 최고 전력을 여기서 뭉개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뮤네는 살기를 담아 웃으며 말했다.
“죽이지는 않으마. 단, 신체 한 부위가 잘려 나갈 각오는 해라. 이게 내 조건이다.”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뮤네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엘프들의 전통 곡검 미쉬타를 뽑아 들었다.
미쉬타의 외관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곡검과 그리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일반 곡검과 미쉬타의 큰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미쉬타는 무조건 월석이 들어가 있다.
그 때문인지 미쉬타는 은은한 달빛을 내뿜고 있었고,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홀릴 것처럼 아름다웠다.
“후회는 없겠지? 티그리스?”
티그리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은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
뮤네는 종달새처럼 기습으로 시작했고.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얼음 결정의 기운이 담긴 오러가 티그리스의 허리를 양단할 것처럼 날아왔다.
티그리스도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티그리스의 은빛 검기와 뮤네의 차가운 오러가 부딪히자 뮤네의 오러가 마치 햇빛에 얼음이 녹는 것처럼 사르르 사라졌다.
“무슨……!”
당황할 틈은 없었다.
티그리스의 빠른 검격이 다시 이어졌고, 뮤네는 반항할 틈도 없이 허벅다리를 내어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