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4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48화
충돌(5)
30분 전.
아모리스는 미련이 남아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을 모았다.
-단장님을…… 변경백님을 지켜 드려야 해.
-내 임무를 아직 다하지 못했어.
-억울해.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 너무 억울해.
-내가 좀 더 강했다면…….
-황제 폐하…….
모두 열차 전복 사태로 죽은 검은 늑대 기사들과 하얀 늑대 기사들 그리고 노르베르드에서 비브라토에게 암살을 당한 황금 기사들과 인퀴지터들이었다.
모두 애국을 위해 죽음조차 불사할 젊은이들이었고, 자신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비통함과 억울함에 구천을 떠돌았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모리스는 그들에게 계약을 제안했다.
한을 풀어주고 힘을 주겠노라고.
아모리스와 계약한 혼령들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임무를 다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들은 몸을 던져가며 크리처들을 베어 넘겼다.
“키야아아아아아!”
기사들이 든 검이 크리처의 육편을 조각내고 짓뭉갰고, 베르강과 베오울프에게 달려드는 크리처들을 온몸으로 밀어냈다.
베르강과 베오울프 그리고 호른은 이 광경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베르강과 베오울프를 따르던 기사들은 혼령이 되었지만 죽어서도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았다.
그 숭고한 희생에 베르강과 베오울프는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베오울프는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혼령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최전방으로 향했다.
서걱-!
베오울프의 폭포 가르기가 날아가자 꿈틀거리던 크리처들이 둘로 나뉘며 바닥에 추락했다.
기사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조각난 크리처들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검을 멈추지 않았고, 조금씩 조금씩 전장을 넓히기 시작했다.
베르강도 이대로 멈출 수 없었다.
베르강은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한 황금 기사들과 인퀴지터들을 모아 베오울프의 옆에 섰다.
그러자 혼령들은 자연스럽게 베오울프와 베르강을 최전방에 둔 쐐기형 진형을 완성시켰다.
베르강은 은묘의 망토를 혼령들에게 넘기며 호른에게 말했다.
“호른, 이자벨을 부탁하네.”
호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자벨의 몸에 은묘의 망토를 걸쳐주었다.
그러자 이자벨은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호른은 이자벨을 등에 업고 기사들의 한가운데에 들어갔다.
“전군 돌격!”
펠렌이 만들어낸 구름이 다시 하늘을 가리기 시작하고, 검은 벼락이 떨어졌다.
대부분이 혼령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떨어졌으나, 혼령들은 번개를 직격으로 맞고도 크리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발밑에서 기어오르는 크리처들은 기사들의 강력한 군화에 짓밟혀 핏덩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몇 시간이고 계속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혼령들과 크리처들은 지치지 않을 테지만, 살아 있는 호른과 베르강 그리고 베오울프는 지칠 테니까.
그때, 아모리스는 빗자루를 타고 내려와 낫을 들고 합세했다.
점프를 해서 달려드는 크리처들을 향해 낫을 내지르자 음각된 문양이 푸르게 빛이 나더니 크리처들이 공중에서 멈추었다.
아모리스는 베오울프의 옆에 섰다.
“네가 베오울프니?”
자연스러운 하대지만 베오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강이 존댓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혼령들을 부리는 것을 보아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탈출 방향은 알고 도주하는 거니?”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태를 바로잡을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뭔데?”
“이 괴물들을 만들어낸 놈을 죽이는 것입니다.”
베오울프는 마나 감지로 정확하게 펠렌의 위치를 찾아냈다.
놈이 있는 방향에 크리처들이 득실득실거렸지만 어떻게든 뚫고 나아가 펠렌의 목을 베어 죽이면 이 사단도 끝이 나리라.
“정면 돌파라. 티그리스가 누구를 닮았나 했더니만 너를 닮은 거구나.”
아모리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 나쁘지 않아. 그럼 내가 기회를 딱 1번 만들어줄게. 펠렌의 목을 칠 수 있겠어?”
베오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겠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걸? 좋아.”
아모리스는 곰방대를 품속에서 꺼내 빙글 돌렸다.
곰방대에서 흘러나온 탁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연기 안에서 종이 부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모리스는 낫을 휘둘러 종이 부적들을 하늘 높이 올려 보냈다.
종이 부적들은 마치 겨울 숲에 내리는 하얀 눈처럼 펄럭이며 내려왔다.
그리고 낫을 이용해 아모리스는 머리칼을 한 움큼 잘라냈다.
단발이 된 아모리스는 주술을 발동시켰다.
“봉(封)의 으뜸은 머리칼이어라.”
아모리스의 손에 들린 머리칼이 푸른 불꽃과 함께 사라지더니 하얗게 내리던 부적들이 푸르게 빛이 났다.
그리고 부적들에서 검은 머리칼들이 마치 비처럼 쏟아지더니 주변에 가득한 크리처들을 속박하기 시작했다.
-카아아아아!
크리처들의 손과 발 그리고 몸뚱이들이 머리칼에 이끌려 부적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배수구로 휩쓸려 나가는 물처럼 사라졌다.
전방을 가로막고 있던 크리처들이 모조리 봉인당하자 저 멀리 펠렌이 보였다.
펠렌의 옆에는 페이라와 오슬로 그리고 비브라토가 있었는데, 셋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베오울프와 호른을 쳐다봤다.
페이라는 베오울프의 악귀 같은 표정을 보자 입술을 씹었다.
“그냥 우리끼리만이라도 도망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은 펠렌이 페이라를 노려봤다.
“도망은 무슨! 지금이 베르강까지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비브라토는 침통한 표정으로 페이라를 쳐다봤다.
“이미 늦었다. 텔레포트를 시전하면 베오울프가 마법을 베어버릴 거다.”
비브라토는 펠렌의 앞에 서서 술식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베오울프가 노리는 게 펠렌의 목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베오울프를 어설프게 망가뜨리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 그냥 여기에 있는 모두를 죽이는 것으로 알겠다.”
비브라토의 파동 마법이 공기를 공명시키며 날아왔다.
베오울프는 그 파동을 검으로 찢어발기며 앞으로 전진했다.
남은 크리처들이 촉수와 손을 뻗어 베오울프의 발목을 잡아채려고 했지만, 혼령들이 몸을 날려 막아냈다.
마치 거친 물살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떼처럼 베오울프와 늑대 기사단들은 크리처들을 베고 살점을 짓밟으며 올라갔고, 결국 비브라토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비브라토의 목을 베려는 순간 비브라토의 입이 귓가에 걸렸다.
“걸렸다.”
그때, 비브라토의 손가락이 튕기더니 베오울프의 귓가로 날카로운 음파가 파고들었다.
마법도 아니고 순수한 비브라토의 능력이었기에 드윈의 검으로 막아낼 수 없을 터.
베오울프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죽고 말 것이다.
그때, 베오울프의 오른쪽 귀로 검 한 자루가 끼어들었다.
쩌어엉-!
베오울프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려던 음파가 검과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그 때문에 베오울프의 오른쪽 고막이 터져 나갔지만, 비브라토의 공격은 무산되었다.
대신 베오울프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목덜미를 가르고 지나가는 베오울프의 검날.
비브라토는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어라. 비브라토.”
비브라토는 처음으로 베르강의 눈을 보았다.
베르강의 깊숙하게 숨겨둔 비밀을 모두 엿본 비브라토는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말도 안…….”
서걱-!
비브라토의 목이 붉은 피를 뿌리며 허공을 날았고, 그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페이라는 기겁했다.
베오울프의 다음 표적이 누구인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베오울프의 코앞에 검은 벼락이 떨어졌다.
콰릉-!
베오울프는 돌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하늘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벼락이 연속으로 베오울프를 계속 노리고 들어오자 뒤로 계속 빠질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펠렌은 중력 마법까지 시전하며, 베오울프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했지만 드윈의 검으로 마법을 베어내며 계속 피해냈다.
베르강이 펠렌을 향해 검강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펠렌은 계속 베르강을 노렸을 것이다.
펠렌은 재빨리 블링크로 피해 도주했다.
혼령들이 베오울프를 지키기 위해 펠렌에게 다가갔지만, 금세 불어난 크리처들에 의해 앞이 막히고 말았다.
검은 벼락이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하자 하늘을 날아다니던 아모리스도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검은 벼락이 이미 살아 움직이는 크리처들을 계속 집어삼키고 미처 피하지 못했던 오슬로마저 집어삼켰다.
-끄으으으으으!
크리처들은 폭발하기 직전까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변했다.
그 살덩이에 오슬로와 비브라토의 얼굴 그리고 죽은 시민들의 얼굴들이 올라와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뻐끔뻐끔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아모리스마저 눈썹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다.
“이거 답이 없는데.”
베르강은 티그리스가 왜 펠렌을 보고 전장의 악몽이라고 불렀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야 이 인근에 시체가 거의 없어서 다행이지 전쟁통에서 펠렌과 마주했다면…….
베르강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시체를 계속 집어삼키는 게 불사의 대장군을 보는 것 같네.”
“뾰족한 수가 없겠습니까?”
베르강의 질문에 아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저 녀석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이렇게 지저분하게 싸울 줄 알았으면 준비 좀 하고 올걸.”
살아 있는 염소나 소 같은 제물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탈출 경로라도 만들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시간이라도 벌어볼 수밖에.”
이렇게 계속 싸우다간 지치는 것은 오히려 이쪽이다.
그리고 멋모르고 황금 기사들이나 인근의 병사들이 몰려오면 펠렌의 전력을 늘려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다.
“지금부터 봉인진을 펼칠 거야.”
“봉인진이라면 저들을 봉인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우리도 같이 봉인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뭐……. 적어도 티그리스가 나올 때까지 버텨봐야지 않겠어?”
아모리스는 낫 끝에 피를 조금 묻혔다.
“시간 비율은 대충 24 대 1 정도로 하면 되려나? 티그리스가 사흘 내로 던전을 공략한다고 치면……. 1시간 반 정도만 버티면 되겠다.”
“그게 가능합니까?”
아모리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마왕을 어떻게 봉인했을 거라 생각해? 그 방식이랑 조금 비슷하다고 보면 돼.”
아모리스는 입맛을 쩝 다시며 말했다.
“이거 만들려고 50년 걸렸는데. 이렇게 보낼 줄이야. 조금 아쉽네.”
아모리스는 낫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그러자 낫이 비명을 지르며 절반으로 뚝 부러졌다.
아모리스는 낫에서 흘러나온 푸른 귀기를 모으더니 입을 열었다.
“뭐, 티그리스한테 다 받아내면 되지.”
저 멀리 어둠을 몰아내고 아침 햇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티그리스는 눈앞을 가로막는 진득한 안개 앞에 섰다.
신비의 땅처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탁한 안개로 가득했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안개 안으로 들어가면 이상하게 무조건 바깥으로 저절로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 봉인진을 억지로 잘라내 들어가 볼까 했지만, 아모리스가 이렇게 봉인을 해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드니 함부로 베기가 어려웠다.
애초에 베어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티그리스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검은 벼락이 내리쳤다고 하니까 펠렌이 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펠렌의 크리처들은 베어도 베어도 죽지 않는다.
그 원리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당시 절단의 묘리를 깨닫지 못했던 티그리스도 펠렌과 전쟁터에서 마주하면 결국 무승부로 끝나곤 했다.
‘지금이라면 벨 수 있을까?’
펠렌을 죽인 것은 티그리스가 아니라 라칸이었다.
라칸은 펠렌의 크리처들을 모조리 불태웠고, 집요하게 쫓아오는 벼락은 레인로버가 ‘황금 벼락 지팡이’로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절단의 심상을 이용한 검기라면 크리처들을 단번에 죽일 수 있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아직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했기에 절단의 심상을 담은 검을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할 순 없다.
지금 몸 상태로 기껏해야 4~5번 정도?
철혈 심장을 먹는다면…… 펠렌의 목을 자르는 것은 아주 쉽겠지만, 던전에서 구른 3주는 무의미하게 변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철혈 심장을 먹는 것도 고려를 해야겠어. 베르강 님과 변경백님 그리고 어머니를 여기서 잃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때, 레인로버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티그리스 경.”
티그리스는 뒤를 돌아봤다.
“예.”
“……걱정되시는 것은 알겠지만 조금 쉬시는 게 어때요?”
티그리스는 끈적이는 밤을 이미 완전히 밀어낸 아침 해를 보며 말했다.
“……얼마나 제가 이러고 있었습니까?”
“밤새도록 서 있으셨죠.”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뒤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티그리스와 안개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리니아를 봤다.
리니아는 어렸을 때부터 초조할 때마다 손가락 살을 손톱으로 긁었는데, 지금 그 버릇이 다시 튀어나왔는지 엄지에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군.’
지금의 티그리스보다 리니아가 더 걱정이 될 텐데 보듬어주지 못했다.
티그리스는 리니아에게 다가갔다.
리니아는 초조한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는 무사하시겠죠?”
티그리스는 피가 줄줄 흐르는 리니아의 오른손을 잡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두 분은 굉장히 강하신 분이니까.”
리니아는 티그리스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럴 거예요. ……그러시겠죠.”
티그리스는 리니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고, 리니아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티그리스의 기감에 기묘한 것이 걸렸다.
방향은 봉인진 쪽이었다.
“어?!”
봉인진 주변을 감시하고 있던 황금 기사들과 인퀴지터들이 탄성을 질렀다.
봉인진 주변을 둘러싼 안개가 점점 옅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역한 피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리니아에게 말했다.
“너는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을 뽑아 들었다.
대적자의 검도 있긴 했지만 크리처들을 상대할 때는 대적자의 검보다는 불을 사용할 수 있는 샐러맨더의 검이 더 나을 터.
티그리스는 주변을 둘러싼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결계에서 떨어져라!”
콰릉-!
옅어진 안개 너머로 검은 벼락이 내리치는 것이 보인다.
티그리스는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수 있게 마력회로와 근육을 예열했다.
최우선 목표는 펠렌이 아니라 베오울프와 베르강 그리고 호른과 이자벨의 구출이다.
그다음이 펠렌이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검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자 봉인진이 풀렸다.
봉인진이 풀리며 크리처들이 마치 구멍이 뚫린 둑으로 흘러나오는 강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티그리스는 검을 강하게 내지르며 돌진했다.
티그리스의 절단의 심상이 담긴 검강과 함께 불이 크리처들을 향해 날아들자 크리처들의 육편이 재도 남지 않고 삽시간에 타올랐다.
‘……검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겠어.’
샐러맨더의 검의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무엇이든 태울 수 있는 불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크리처에게도 당연히 통했고, 샐러맨더의 검에서 발한 잔불이 옮겨붙자 크리처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난동을 부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샐러맨더의 불꽃을 최대한 넓게 퍼뜨리는 것이다.
저 많은 크리처들을 티그리스도 모두 죽일 순 없다.
차라리 놈들의 몸에 불을 붙여 제압한 뒤, 베오울프를 구출하는 게 최선이었다.
티그리스는 여섯 개의 고리에서 흘러나오는 오러를 검에 가득 담았다.
그리고 거대한 노르베르드 장벽 앞에 선 자신을 떠올리며 검을 내질렀다.
화르르르륵!
불의 장벽이 몰려드는 크리처들 앞에 세워졌고, 놈들은 불의 장벽을 통과하자마자 역한 오물을 토해내며 타올랐다.
그 불들은 심지어 크리처들끼리 옮겨붙으며 빠르게 타올랐고,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레인로버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다.
티그리스는 불타고 있는 크리처들을 놔두고 번개가 내리치는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옆으로 기운 아침 햇살이 저 멀리 크리처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베오울프와 베르강 그리고 호른과 아모리스를 비췄고, 그 뒤를 따르는 수십 명의 혼령들이 보였다.
그 뒤로 눈이 뒤집힌 채 미친 듯이 벼락을 내리치는 펠렌과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감시하는 페이라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오슬로도 보였다.
티그리스는 펠렌을 먼저 죽이러 갈까 순간 고민했지만 참았다.
티그리스는 열심히 도주하고 있는 베오울프에게 향했다.
화르르르륵!
티그리스는 다시 검을 내질러 베오울프와 베르강의 앞을 가로막는 크리처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캬아아아아악!
티그리스를 발견한 베르강과 베오울프는 불타는 크리처들을 밀어내고 티그리스에게 향했다.
“티그리스!”
“아버지!”
거의 1년 만에 만나는 부자 상봉이 전장에서 이뤄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베오울프는 티그리스를 보자마자 격하게 품에 안았다.
티그리스는 베오울프가 이렇게 감정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티그리스도 베오울프의 품에 안기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아모리스는 부적을 날리며 말했다.
“일단 감동의 재회는 나중에 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게 어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탈출 경로를…….”
“아니, 봉인진은 이미 풀렸으니까 바깥으로 탈출하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어. 하지만 네가 할 일은 그게 아니잖아?”
아모리스는 펠렌이 있는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저 미친놈 멱을 좀 따 와. 저놈의 번개 때문에 귀가 아직도 먹먹해.”
티그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아갈 때, 베오울프가 티그리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던 드윈의 검을 건넸다.
“이게 필요할 거다.”
티그리스는 드윈의 검이 베오울프에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8서클의 대마법사인 펠렌을 상대할 땐 이만한 검이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검을 받았다.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을 베오울프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