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5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56화
봉인(2)
아모리스는 어느 정도 산을 올라가자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아모리스는 마치 곰방대의 영혼이라도 빨아먹을 듯이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더니 뱉었다.
“후……. 이제야 살 만하네.”
티그리스는 묘한 눈으로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사실 아모리스가 따로 티그리스와 산을 오르려는 이유가 금단 현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뭘 그렇게 쳐다봐. 내가 겨우 이거 때문에 따로 산 올라가자고 한 것 같아?”
“아닙니다.”
귀신같은 사람이다.
“뭐, 사실 그것도 맞아. 내가 좀 골초잖아.”
“……그냥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피우셨어도 괜찮았을 텐데요?”
“무슨 소리야. 저기엔 라칸이 있잖아.”
그러고 보니 아모리스가 예전부터 라칸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아직 아모리스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하게 듣진 못했다.
“아모리스 님은 라칸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단순한 연애 질문이 아니었기에 아모리스는 제법 길게 생각했다.
1,300년이 지난 사랑.
라칸과 페레이라는 전혀 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모리스는 자꾸 심장이 떨렸다.
지금 라칸을 좋아하는 것이 페레이라를 사랑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자꾸 라칸의 앞에만 서면 갓 20살 된 소녀처럼 변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네가 연애 상담이라도 해주게?”
“……그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이 문제를 상담해 줘. 너도 네 앞가림을 못 하는데.”
“큼…….”
아모리스는 괜히 눈을 돌리는 티그리스가 귀여워 팔을 툭툭 쳤다.
“어제 일로 레인로버하고 조금 싸운 것 같던데, 그건 어떻게 됐냐?”
“……황녀님께선 잘 이해해 주실 겁니다.”
“역시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닌 모양이지? 원래 이런 소소한 일…… 은 아니지. 어제 일은 좀 크긴 했네. 아무튼 싸우면서 사랑은 더 단단해지는 거야.”
“아모리스 님께선 페레이라하고 다투셨습니까?”
아모리스는 티그리스가 연애 상담을 요청하자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세상에 네가 이런 질문을 진짜 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왜 궁금해?”
“……됐습니다.”
“야. 삐졌냐? 삐졌냐고.”
티그리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금 빠르게 산을 올랐다.
아모리스의 털털한 아줌마 같은 말투는 도저히 적응되지 않았다.
티그리스의 꿍한 모습이 더 귀여워 아모리스는 산이 떠나가라 웃었다.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뒤를 빠르게 쫓으며 말했다.
“나하고 페레이라랑 싸울 틈이 어디에 있었겠냐? 페레이라나 나나 전쟁터를 구르고 다녔는데 말이야.”
티그리스는 아모리스가 산을 걷다가 혀를 씹지 않게 보폭을 아모리스에게 다시 맞췄다.
“그냥 우리는 전쟁이 끝나면 서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 그만큼 하루하루가 끔찍했지.”
아모리스는 티그리스를 흘금 보며 말했다.
“그래서 난 너희들이 좀 부럽다. 적어도 지금은 평화의 시대잖냐. 맛있는 거 먹고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시대. 이 시대를 페레이라나 나나 꿈꿨지.”
“그럼 지금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라칸에게 대쉬하면 라칸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1,300살이나 된 늙은 마녀가 지금 내게 주접떠는 거냐고 생각하겠지.”
“진실을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지? 넌 전생에 나랑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다음은 뭐라고 얘기해야 해?”
티그리스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모리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칸은 라칸이고 페레이라는 페레이라야. 환생했다고 해서 동일 인물이라고 착각해선 안 돼.”
그 말은 티그리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아모리스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제 이런 이야기는 그만. 젠장 기분만 더러워졌네. 이 엿 같은 기분 이놈에게 풀어야지.”
아모리스는 허공에 주먹을 갈겼다.
-까아아아아아아악!
귀곡성이 울려 퍼지며 아모리스의 주먹에 푸른 화염이 휘감겼다.
아모리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후……. 이제야 좀 기분이 풀리네.”
아모리스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어디 괜찮은 놈이 또 없나?”
이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들이 갑작스럽게 떨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티그리스와 아모리스는 거의 1시간을 넘게 산을 올라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는 동굴에 도착했다.
티그리스는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는 동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우로므가 키메라화되었을 땐 드라코 레퀴엠 산이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산에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봉인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모리스는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진짜 어마어마하게 크네.”
아모리스의 말대로 동굴 입구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컸다.
동굴 입구는 수직 250m 너비 200m로 이만한 크기의 드래곤이 드나들 거라 생각하니, 몸이 떨릴 정도였다.
티그리스는 입구를 막고 있는 뿌연 안개에 다가갔다.
베르강의 말대로 이 거대한 동굴 입구는 포그우드의 안개처럼 끈적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안개로 막혀 있었다.
티그리스가 손을 뻗어보자 어느 정도 깊게 들어가더니 더 이상 들어가지지 않았다.
“흐음…….”
아모리스는 본업 모드로 들어가 동굴 주변을 확인했다.
이 동굴을 둘러싼 부적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는 곳인 만큼 부적들은 굉장히 많았다.
검은 비석들이 마치 동굴을 포위한 기사들처럼 둘러싸고 있었고, 그 비석들 너머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신수(神獸)상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 외에도 새끼줄이 묶여 있던 말뚝의 흔적도 보였는데, 그것은 세월이 지나며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아모리스는 혀를 차며 말했다.
“참나. 잘 만들면 뭐 해. 관리가 안 되는데 관리가. 정 관리가 안 될 것 같으면 비늘 산처럼 드라코 레퀴엠 산 전체를 봉인하든가. 뭐, 딱 봐도 정치적인 이유였겠구먼. 쯧.”
아모리스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봉인을 살피다가 한 검은 비석 앞에 섰다.
비석들에 음각되어 있는 글자들은 기묘한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아모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이상하네.”
“뭐가 이상한 겁니까?”
“이 부적들은 망가졌는데?”
“봉인이 풀렸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봉인이 완전히 풀렸으면 황도는 진작에 쑥대밭이 되었겠지. 엄밀히 말하자면 절반만 부서졌다랄까?”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아모리스는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심플하게 설명해 줄게. 일단 이 검은 비석들의 역할은 딱 하나야. 아우로므의 ‘의념’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거지.”
“의념이라는 게 무슨 뜻입니까?”
“혹시 용언이 뭔지 알아?”
“용언이라면 드래곤의 마법 체계 아닙니까?”
“그 말도 맞긴 해. 난 마법사가 아니니까 주술적인 관점으로 용언을 설명하자면, 오직 마나만으로 주술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해.”
“마나로 주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드래곤 정도 되니까 가능하지. 원리를 설명하자면 끝도 없으니까 대충 설명하면, 드래곤은 마치 마법처럼 주술을 사용할 수 있어. 방법도 정말 간단해. 그냥 생각만 하면 돼.”
“생각이라는 게 그냥 상상한다는 뜻입니까?”
“맞아. 원하는 현상을 상상하면 그게 이루어져. 그게 바로 ‘의념’이지. 그 의념으로 용언을 부리고 그 용언을 바탕으로 자연을 바꿀 수 있는 거지. 브레스도 와아악~ 하며 쏘고 말이야.”
아모리스는 비석 하나를 곰방대로 툭 쳤다.
그러자 비석 하나가 와르르 무너지더니 주변에 빛을 내고 있던 비석들도 동일하게 부서졌다.
그 광경에 티그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이 비석들이 무슨 이유에선지 모조리 부서졌어. 그 말은 무슨 의미겠어?”
“……드래곤이 용언을 통해 이 봉인을 부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 정도까진 아니야. 겨우 이거 하나 사라졌다고 해서 봉인을 풀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 적어도 지금은.”
적어도 지금은 봉인이 풀리지 않는다는 말은 시간이 흐르면 곧 봉인이 풀릴 것이라는 말과 똑같다.
‘그러고 보니 아르펨이 어떻게 이 봉인진에 접근했나 했더니만…….’
이 정도로 봉인진이 망가졌다면 아르펨이 아우로므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이게 자연적인 현상입니까?”
“부적을 관리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게 맞긴 하지.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부적들이 망가졌으면 지금처럼 난장판이 되어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니겠어?”
“누군가 인위적으로 부적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만들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티그리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아르펨과 로타가 드라코 레퀴엠 산에 아우로므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주기적으로 관리하다가 필요할 때, 아우로므를 키메라로 부활시키려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로타와 아르펨이 이 드라코 레퀴엠 산에 매번 접근할 수 있었던 걸까?
“일단 하산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 그게 낫겠지. 하지만 저놈들이 그렇게 두지 않을 것 같은데?”
티그리스는 등골을 스치는 살기에 검을 뽑아 들었다.
하나둘씩 겨울 숲에서 검은 유령들이 나타났다.
티그리스는 저 검은 유령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악령이 여기에 어떻게…….”
악령은 강력한 만큼 탄생하기 정말 까다롭다.
포그우드가 아니면 전쟁터처럼 사람이 떼거지로 죽는 곳에서 아주 가끔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드라코 레퀴엠 산에서 한두 마리도 아니고 이만한 수의 악령들이 나오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지?”
“예. 그렇습니다.”
샐러맨더의 검에 푸른 불길이 솟구쳤다.
악령들은 푸른 불을 보자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푸른 불을 굉장히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게 네가 말했던 악령 베기야?”
“예. 그렇습니다.”
“참 신기하네. 어떻게 주술을 검술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었던 거지?”
티그리스는 아모리스의 말이 굉장히 익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투가 익숙했다.
자신에게 악령을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악령 사냥꾼 지오의 말투와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포그우드에 지오라는 악령 사냥꾼이 없다고 들었는데.’
티그리스는 회귀록을 보여주며 악령 사냥꾼 지오를 찾아달라고 나달에게 부탁을 했다.
지오는 티그리스가 알고 있는 최고의 악령 사냥꾼이었으니까.
하지만 인퀴지터의 조사 결과 지오라는 악령 사냥꾼은 아예 없었다고 했다.
‘……설마.’
그때, 악령 하나가 티그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휘둘렀다.
-캬아아아아아아악!
악령이 푸른 불길에 휩싸이더니 재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소멸했다.
잡생각은 나중에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일단 하산하도록 하겠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그럴 줄 알고 올라오면서 악령 쫓음 주술을 걸어놨어.”
“언제 말씀이십니까?”
“내가 그냥 곰방대를 태운 줄 알아? 밑에 녀석들은 걱정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악령들이나 처리하자.”
악령들이 덤벼들었다.
검은 파도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하다는 말에 안심했을 뿐이다.
티그리스나 아모리스나 악령들 따위에게 죽을 일이 없으니까.
티그리스는 사방에서 덤벼드는 악령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티그리스가 횡으로 검을 긋자 푸른 불꽃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달려들었다.
악령들은 그 푸른 불꽃의 파도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캬아아아아아아악!
나뭇가지에 얹혀 있던 눈들이 모조리 떨어질 정도로 끔찍한 귀곡성이 메아리쳤다.
그러나 악령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모리스와 티그리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내지르며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이 푸른 불꽃을 보기만 해도 악령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도망친다.
공포를 몰고 다니는 악령들은 역설적이게도 공포에 굉장히 취약하니까.
하지만 이 악령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명령을 받은 것처럼, 아모리스와 티그리스를 향해 목숨도 저버리며 달려들었다.
‘누군가가 악령들을 조종하고 있다.’
악령들은 개개인의 힘으로는 버틸 수 없었는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티그리스가 그걸 쉽게 허락할 리가 없었다.
악령들이 뭉치는 지점을 정확하게 확인해 검을 찔러 넣었다.
낙엽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악령들은 삽시간에 불이 옮겨붙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단 3분도 채 되지 않아 악령들은 괴멸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소수의 악령들이 산꼭대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티그리스가 추격을 하려고 하자 아모리스가 팔뚝을 잡았다.
“아직 가지 마.”
“네?”
“너도 알았을 거 아니야. 이 악령들이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다는 것쯤은 말이야.”
“그러니까 더더욱 추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 악령들이 드라코 레퀴엠 산을 빠져나가면 황궁이 위험해집니다.”
“악령들을 부리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아니, 그냥 대륙에 나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야.”
아모리스가 하려는 말이 무엇일까?
티그리스는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만한 숫자의 악령들을 부릴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는 혼령술사치곤 너무 허술하군요.”
“맞아. 만약 나라면 이런 식으로 악령들을 소모하지 않을 거야. 아예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았으면 도망쳐야지.”
아모리스의 말대로 악령들은 마치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티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 때문에 달려든 것이랄까?
술사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계속 덤벼들었을 것이다.
“그래. 악령을 세밀하게 다루지도 못하는 데 악령을 다루고 있지. 이런 경우는 오직 한 가지야. 악령들이 하나의 거대한 영혼에 흡수당해 명령을 받는 것이지.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군체화(群體化)’라고 불러. 굉장히 드문 경우지.”
“……설마.”
아모리스는 부서진 비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비석들의 역할이 아우로므의 의념을 가두는 봉인이라고 말했지? 이게 부서졌다는 뜻은 의념이 이 봉인진을 이미 뚫고 나왔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야. 그리고 의념이란.”
사방에 퍼져 있던 악령들이 산꼭대기로 모이더니 하나의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드래곤이었다.
검은 드래곤은 반절쯤 찢어진 날개를 활짝 펼쳤다.
-죽여 버리겠다!!!
“영혼이란 말과 똑같지.”
아우로므의 피어에 산천초목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