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67)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67화
순회(1)
라칸은 드워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다시 한번 개조한 마탄총에 대해 설명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그러니까 이 마선에 마나가 순간적으로 몰리면서 불필요한 마나가 새어 나간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주파수는 물론이고 압력이 안정되지 않은 거죠.”
“호오……. 그럼 여기만 마선을 두껍게 만들면 되지 않나?”
“아뇨. 그렇게 하면 생산에 문제가 생기겠죠. 어떻게 이 부분만 다른 두께로 마선을 생산하겠어요. 그러니까 여기 제가 개발한 감압기를 설치하는 게 낫죠.”
“호오……. 이게 감압기라고?”
이과들 사이에 낀 문과생과 체대생의 느낌이 이럴까?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당최 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듣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라칸의 말을 하나라도 빼놓지 않겠다는 생각인지 수첩을 꺼내 필사를 하고 정리를 했다.
“오호……. 이러면 압력이 낮아져서 열이 오르지 않겠군. 엔진 수명도 당연히 올라가고.”
“마선 소재도 손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스릴을 떨어뜨리고 금의 비율을 좀 더 높이는 것도 좋아 보여요.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지금 기술력으론 마나 전도율이 너무 높아서 다른 부품들이 버티질 못해요.”
“나도 그런 생각은 했어. 그럼 몇 프로가 좋을까? 한 2%?”
“아뇨. 미스릴 비율은 더 떨어뜨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0.5~1%? 금은 3%대로 올리고요. 아, 물론 호고 님의 마탄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긴 하지만요.”
“크흠! 그렇군.”
드워프들은 자기들이 개발한 귀여운 마탄총을 라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 것만 같았다.
드워프의 체면상 먼저 권할 수가 없어서 문제였지.
라칸은 드워프들의 의중을 눈치채곤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분들의 마탄총을 구경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러면 내 걸 먼저 보여주지. 호고 할아범과 내 엔진은 시스템 자체가 다르거든.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걸세.”
“아니지! 내 걸 먼저……!”
호고는 말레우스에게 툴툴거리며 말했다.
“뭐, 네가 사제 관계를 요청해? 암만 봐도 마탄총 분야는 라칸이 한 수 위인 것 같은데?”
“아직 손이 좀 느리고 못 본 제품이 많아. 열차 엔진도 보여주고 다른 제품들도 보여줘야지.”
“뭐? 간이고 쓸개고 다 보여줄 셈이야?”
“제자가 된다면 말일세! 제자가 된다면!”
라칸의 재능은 확실히 말이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일주일 만에 호고와 말레우스의 마탄총을 완벽하게 분석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까지 했으니 대단하긴 했다.
“아무튼 마탄총 개발 분야는 나랑 라칸이랑 함께 공동 개발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시제품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네. 보안 술식 문제도 해결 방안이 보이는 듯하니까.”
“보안 술식 문제도 해결한다고? 어떻게?”
“카트리지 쪽을 이용한다고 하더군. 내 마탄총을 개조해서 말이지.”
“뭐?! 네놈 걸 왜 이용한다는 거야!”
“내 게 더 안정성 있고, 그 무엇보다 토드 황제도 내 걸 채택했으니까.”
라칸이 드워프들과 마탄총 분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던 레인로버와 티그리스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라칸은 저리 놔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아모리스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모리스는 생각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모리스는 근처 벤치에 홀로 앉아 막대 사탕을 물고 있었다.
포즈만 보면 막대 사탕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으십니까? 아모리스 님?”
“……너희구나.”
아모리스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우울하긴 한데 생각보다 속 시원하네. 진작에 다 말할 걸 그랬나 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모리스의 상태는 영 좋지 못했다.
마치 실연을 당한 여주인공의 모습 같달까?
항상 당당하기만 하던 아모리스가 이렇게 작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라칸이 그러더라. 자기는 페레이라가 아니고 라칸이라고. 자기를 김유신이나 페레이라가 아니라 라칸으로 봐달라는 소리겠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모리스는 의식의 흐름대로 주절거렸다.
“사실 모르겠어. 티그리스 널 아예 안 만났다면 그냥 페레이라가 안개를 뚫고 나오길 기다리면서 포그우드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았겠지. 하지만 티그리스 널 만나면서 라칸을 만났고, 라칸이 김유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 뭔가 허망해. 100년 동안 페레이라가 안개를 뚫고 나오길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아는 페레이라는 없을 테니까.”
아모리스의 눈에서 잿빛 눈물이 다시 흘렀다.
“라칸을 보면서 헛된 희망을 품은 거지. ……이젠 나도 포기해야 하나 봐.”
아모리스는 라칸이 준 축축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교관 일은 제가 바스티얀 학교장님께 말씀드려서 안 하는 것으로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있었지.”
아모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냐. 할게.”
“무리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언제까지 라칸을 안 보고 살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라칸에게 봉인술도 알려줘야 하니까.”
“봉인술을 가르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포인트 상점으로 봉인술 배우기엔 포인트가 너무 아깝잖아. 운이 좋으면 봉인술을 사용하지 않고도 우노 모가지를 따버릴 수 있는 거고.”
“포인트 상점에 봉인술이 있다고 합니까?”
“……그건 안 물어봤지만 있지 않을까? 네가 한번 물어봐 봐.”
아모리스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 그래도 한바탕 우니까 괜찮네. 아, 맞다. 그리고 티그리스.”
“네.”
“실컷 우니까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 돌아왔어.”
레인로버가 말했다.
“봉인되었던 기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레인로버는 내 기억이 봉인되었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네?”
“마왕을 상징하는 별자리를 잊기 위해서 봉인하셨다면서요? 그 대가로 다른 기억도 함께 봉인되었다고 들었어요.”
“뭐, 그렇지.”
“그런 위험한 정보를 왜 아시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으시겠죠.”
아모리스는 티그리스를 슬쩍 흘겨봤다.
아모리스가 기억을 되찾으려는 이유는 마왕을 상징하는 별자리가 뭔지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왕의 성좌가 어떻게 대륙에 현현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함이다.
‘거짓말쟁이가 다 됐네.’
아모리스가 겪고 있는 참담한 고통을 레인로버가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속인 거라고 하지만, 과연 티그리스는 끝까지 진실을 숨길 수 있을까?
오늘 일을 겪어보니 티그리스의 거짓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무슨 내용입니까?”
“뭐, 심각한 내용은 아니고 소소한 거야. 그 푸른 등불의 술 있잖아?”
“13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그 주술을 말하는 겁니까?”
“어. 그거 말이야. 그거 사실 내가 만든 거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아모리스 님은 100년 전에 신비의 땅을 나오셨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130년 전에 만들어진 푸른 등불의 술을 개발하셨다는 겁니까? 설마…….”
아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 생각보다 더 일찍 신비의 땅을 벗어났나 봐. 한 30년 정도. 그런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
레인로버가 심각한 눈으로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중요한 기억이었을까요?”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눈을 보며 말했다.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었다면 봉인되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티그리스는 아모리스의 눈을 피했다.
***
다음 날,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황궁으로 향했다.
테호 대장로와 바스티얀이 티그리스에게 트리니티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한 일을 맡겼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트리니티 교육 프로그램에 있어서 티그리스가 할 것은 거의 없다.
건축 분야는 베이튼과 알브레 백작이 맡아서 잘하고 있고, 교육 일정은 바스티얀과 교육부 그리고 테호 대장로가 맡아서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티그리스가 트리니티 프로그램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홍보였다.
티그리스는 아침 회의에 참석해 중앙 귀족들에게 트리니티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했다.
“전 검술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밖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공학, 건축, 연금술, 원소 마법, 소환술 등 재능을 갖춘 인재들이 황국의 지원을 받아 올바르게 성장한다면 황국의 미래가 얼마나 더 밝겠습니까?”
사실 티그리스가 트리니티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신들과 정치 귀족들은 이미 트리니티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티그리스가 조간 회의에 나와 발표를 하는 이유는 귀족들을 압박하기 위함이다.
“트리니티는 황국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인재들의 보금자리이자 출발점입니다. 그들이 귀족이건 평민이건 수인이건 드워프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재능과 역량 그리고 심성. 이 세 가지만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황국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귀족들, 특히 마법사 가문 출신들은 트리니티를 곱게 보지 않았다.
마법은 신성한 것이고 오직 선택받은 귀족들에게만 열려 있는 학문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아직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그러나 티그리스의 질문에도 대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티그리스의 손에 모가지가 잘려 나간 귀족들만 해도 열 수레다.
흑토지대의 대표인 빈스모크 백작의 목을 자르고, 마법사 가문의 대표인 루카스 후작의 목을 황국의 반역자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잘랐다.
여기서 괜한 말을 지껄였다가 자신들의 이마에 반역자라는 딱지를 붙인 뒤 목을 칠지 몰랐다.
토드 황제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신들을 훑었다.
트리니티의 ‘트’ 자만 나와도 어떻게든 어깃장을 놓으려 발악하던 대신들의 입이 꾹 닫혔다.
“티그리스 경.”
“예. 폐하.”
“내일부터 고생이 많겠군. 그 많은 도시를 돌아다니려면 제법 힘들 텐데.”
티그리스는 내일부터 약 한 달 정도 트리니티 홍보 대사를 자처하며 각 도시들을 순회할 계획이다.
길리온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구 바로스 후작령부터 시작해서 북쪽 끝에 있는 노르베르드 변경령과 프리하르덴 지역까지 무려 15곳이나 들러야만 했다.
굉장히 빠듯한 일정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전국을 순회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는다.
로타와 아르펨은 펠렌과 비브라토까지 잃어 적극적으로 티그리스를 방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빠르게 트리니티 홍보를 끝내고 황도로 돌아와야 한다.
“아닙니다. 폐하.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 말해주니 정말로 고맙구나. 아, 그리고.”
토드 황제는 대신들과 귀족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노르베르드 변경령에 도착하면 변경백과 잘 상의해서 약혼식 일정을 다시 잡도록 하라. 약혼식은 생략하고 결혼식만 해도 상관이 없다고도 전해주고.”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고향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1년이 넘도록 노르베르드를 가보지 못했으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 멸지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두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었다.
***
황성을 떠나기 전, 티그리스는 몇 군데 들르기로 했다.
드라코 레퀴엠 산에 올라 드래곤 발골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한 사내를 만나야 했다.
-아, 전 황제 폐하께서 잠깐 부르셔서요. 1시간 뒤에 북쪽 성문에서 만나요.
레인로버는 토드 황제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기에 홀로 황성을 거닐었다.
티그리스는 룩스교 성전으로 향했다.
지나가던 대신들이나 시종들이 티그리스가 룩스교 성전으로 향하자 깜짝 놀랐다.
-세상에 저분 티그리스 님 아니야?
-티그리스 님이 룩스교 신자셨나?
-아니라고 들었는데? 무신론자라고 들었어.
-아니, 그런데 왜……?
황성 내 룩스교 성전은 프란치스코 교구장이 길리온 왕국으로 강제 송환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예배를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레인로버의 생일파티 때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 룩스교 사제라는 점과 룩스 교의 부정부패가 세상에 다 까발려지면서, 룩스교 성전은 사실상 혐오 시설로 취급받고 있었다.
그런 곳에 티그리스가 들어가니 사람들은 깜짝 놀라 수군대기 바빴다.
티그리스는 사람들이 뭐라 수군대는지 다 듣고 있었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예배당 안으로 향했다.
예배당엔 한 사내가 홀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사내의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뒷자리 구석에 앉았다.
‘먼지 하나 없군.’
룩스교를 섬기는 사제들과 수녀들은 황성을 모두 떠났기에 관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의자나 책상, 그리고 룩스교를 상징하는 성배 장식까지 먼지 하나 없었다.
저 사내가 주기적으로 관리해 왔으리라.
잠시 후, 기도를 드리던 사내가 일어나 티그리스에게 다가왔다.
성전 내부를 밝히는 불이 없다 보니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가까이 다가오니 알아볼 수 있었다.
모르고트였다.
모르고트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티그리스 님.”
모르고트는 정말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살이 너무 쪄서 숨 쉬는 것도 힘들어하던 사내가 이젠 기사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다부진 몸매로 탈바꿈되었다.
“오랜만이군. 살을 빼느라 꽤 고생했다고 고든에게 들었네.”
“제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이 기회를 발로 차버릴 순 없죠.”
몸이 건강해지니 성격도 달라졌다.
어떻게 하면 티그리스의 기분을 맞춰줄까 눈치만 살살 보던 소심한 성격이 사라지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제야 티그리스가 기억하고 있던 모르고트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했다.
“그것보다 여기까지 오시지 않으셔도 제가 찾아갔을 텐데요. 솔직히 이젠 성배 문양만 봐도 사람들은 눈썹을 찌푸리지 않습니까?”
“그런 자네는 왜 이 성전을 관리하고 있던 거지? 내가 자네라면 성전은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을 텐데?”
모르고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사실 룩스교 성전은 제 피난처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대외적인 활동을 하면 매튜 형님이 모질게 굴었기 때문에 제가 있을 곳은 딱히 없었거든요.”
검술 훈련도 안 되고 서고에서 책을 읽어 지식을 늘리는 것도 안 된다.
그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고팠고, 자연스럽게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이 성전을 찾게 되었다.
“성전에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척하면 매튜 형님은 만족했었죠. 그래서 이곳은 제 마음의 피난처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모르고트를 지켜준 피난처가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는 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지라도 열심히 쓸고 닦았던 모양이었다.
“그럼 딱히 룩스 여신을 믿는 게 아닌가?”
“그게 사실 애매하긴 합니다. 제가 룩스 여신님을 믿고 있는지 아닌지 확신이 안 가거든요.”
“그런데 왜 기도를 드리고 있던 건가?”
“음……. 버릇이랄까요? 길리온 왕국에서 지낼 땐 마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나 상대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항상 기도 시간에 룩스 여신님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곤 했었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죠.”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모르고트는 외로워서 신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슬픈 이야기는 하나쯤 갖고 있다고 하지만, 모르고트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고독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티그리스 님은 원래부터 룩스교 신자셨습니까?”
“아니. 난 아니었네.”
모르고트는 살짝 장난기를 담아 말했다.
“아니었다는 말씀은 지금은 룩스교 신자라는 뜻입니까?”
“흠…….”
티그리스는 지금까지 신을 믿지 않았다.
설령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갔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도움 하나 주지 않은 신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세계수의 말에 따르면 마왕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신격을 포기하면서까지 페레이라를 이 땅에 불렀고, 결국 마왕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영혼은 다시 라칸으로 전생하여 오염과 침식의 여왕 우노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건 룩스 여신의 보살핌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라칸 개인의 역량이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라고 봐야 하는 걸까?
“글쎄.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알겠군.”
“네?”
티그리스는 뒤를 돌았다.
“좀 걷지. 할 말이 있으니.”
모르고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곤 티그리스의 뒤를 따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