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7)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7화
토너먼트(4)
단 일격에 끝난 경기에 레인로버는 어리둥절했다.
“베르강. 방금 움직임 봤어요? 순식간에 파밧! 하고 끝나서 잘 모르겠는데.”
베르강은 티그리스가 취한 담백한 승리에 혀를 내둘렀다.
“……못 본 사이 정말 괴물이 되어버렸군요.”
“괴물이요?”
베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티그리스가 검술의 천재인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도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검술에 재능이 있는 것하고 전투에 재능이 있는 건 다른가요?”
“검술은 그저 검술일 뿐입니다. 검을 다루는 기술이죠. 하지만 전투는 다릅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찰나의 순간에 상대보다 빠른 판단으로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 그것이 전투입니다.”
티그리스는 정확하게 도리아의 검로를 읽고 어느 정도 파고들 것인지 계량하여 한 보 뒤로 물러섰다.
티그리스는 검 끝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질렀다.
그 과정에서 오러는 눈곱만큼도 사용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완벽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완벽한 육체 통솔, 깔끔한 검로, 거기에 대담함까지. 저것보다 완벽한 승리를 얻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티그리스가 사는 노르베르드는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을 겪어볼 수 있는 환경이 절대로 아니었다.
오우거나 오크와 같은 몬스터들이 갈리아 산맥을 수시로 내려오는 탓에 인간과의 전쟁이 벌어질 일이 없다.
차라리 티그리스가 몬스터를 사냥할 줄 안다면 이해를 할 것이다. 티그리스는 노르베르드의 피를 이었으니까.
그러나 티그리스는 사람을 벨 일이 없는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사람을 죽이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베오울프가 티그리스에게 직접 지도했나? 아닌데……. 성인이 되지도 않은 아들에게 사람 피를 묻힐 양반은 아닐 텐데…….’
만약 저것도 재능이라고 한다면 티그리스는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천살성(天殺星)이 되든가 아니면 구국의 영웅이 되든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자신의 피보다 남의 피를 많이 볼 운명이었다.
베르강은 티그리스의 무심한 눈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가르쳐 볼까?’
베르강은 티그리스의 본성이 어떤 지을 떠나서 한 번쯤은 가르쳐 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아났다.
자신이 인도한다면 티그리스의 검이 올바른 곳에 쓰이지 않겠느냔 생각이 들었다.
레인로버는 심각하게 티그리스를 보는 베르강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번 내기는 제가 이길 것 같네요. 베르강.”
베르강은 헛기침하며 말했다.
“그래도 고든이 이길 겁니다. 고든은 고리가 4개나 되니까요. 방심하지 않고 검기를 사용하는 순간 고든의 승리가 될 겁니다.”
“베르강 혹시 소설 같은 거 많이 보셨어요?”
“소설이요?”
“네. 지금 베르강처럼 그렇게 확정을 지으면 100%로 틀려요. 그걸 클리셰라고 부르죠.”
레인로버는 경기장을 나가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클리셰대로라면 티그리스가 이길 거예요.”
“……이건 소설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말이 그렇다고요. 그런데 종종 그런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시는 거 아시죠? 제가 봤을 땐 오늘이 딱 그날이에요.”
베르강은 레인로버의 손에 든 도박권을 보며 말했다.
“티그리스에게 10실버나 거셔서 그런 게 아니고요?”
“……아니라니까요! 이건 분명히 터져요!”
“황제 폐하께 레인로버 황녀님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너무 노리시는 것 같으니 걱정된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내기하자고 하셨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레인로버는 눈썹을 찌푸렸다.
“레이첼을 만나면 도박했다고 다 이를 겁니다.”
“제발 아내에게 그것만은…….”
레인로버와 베르강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고든은 자신의 순서가 되자 대기실을 나왔다.
고든은 경기장에 들어섰지만 싸울 상대를 보지 않았다. 관중석에 있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관중석을 훑는 고든의 눈동자가 멈췄다.
시선이 닿은 곳에 티그리스가 있었다.
‘티그리스…….’
고든은 좀 전에 보여준 티그리스의 깔끔하고 대담한 움직임을 계속 떠올렸다.
검로는 비단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웠고 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는 움직임은 대담하면서도 노련했다.
‘쉽지 않겠어.’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가 천재라는 소문은 파다했다. 하지만 노르베르드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기에 뜬소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니 그것이 아예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축소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고든은 어느새 자신이 상대방과 검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비.”
심판이 동전을 엄지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고든은 검을 빼 들었다.
상대에 대한 정보는 거의 몰랐다. 그저 제국 대학 예비 졸업생 출신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고리의 개수는 2개에 창술사다.
상대방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돌진을 준비했다. 그 모습에서 어리숙함이 느껴졌다.
팅-!
하늘 위로 동전이 날아오르다가 땅에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상대가 달려들었다. 상대는 고리 2개짜리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굉장한 속도로 돌진했다.
‘속도는 제법 괜찮다만.’
창술사가 먼저 돌진해 온다는 것 자체부터 글러먹었다. 창술의 장점은 거리에 있다.
고든의 무기는 대검도 아니고 일반 롱소드이기 때문에 리치 차이에서 불리함을 떠안고 가야 한다.
저 창술사는 조급한 마음에 창이 가진 최고의 이점을 스스로 버렸다.
섬전 같은 찌르기.
고든은 몸을 옆으로 가볍게 돌려 피해냈다.
그 이후의 작은 딜레이.
고든은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으나 창술사의 눈빛이 묘했다.
‘뭔가가 더 있군.’
고든이 검을 내지르는 척을 하자 두 번의 찌르기가 고든의 몸통을 향해 날아왔다.
고든은 두 번째 찌르기를 검으로 툭 쳐서 막은 뒤 정확히 한 걸음 앞으로 전진했다.
콧망울에 있는 작은 점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창술사는 당황했는지 뒤로 물러서려고 하지만 고든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쿵-!
고든은 발을 굴렀다. 그러자 지진이라도 난 듯이 땅이 울렁였다.
기본 오러 운용술 중 하나인 ‘땅울리기’였다. 뒷걸음질 치려는 상대를 잡아놓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였다.
상대방은 뒤로 물러서려다가 땅이 움직인 탓에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상대는 발악을 하려 했다. 하지만 노련한 고든은 변수를 만들지 않았다.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왼손으로 옮겨 잡고 오른팔로 창대를 뱀처럼 휘감았다. 그리고 넘어진 상대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승자! 고든 데이커!”
심판의 말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든은 검을 치우고 상대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상대는 고든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4개 고리를 가졌다고 하더니 정말인 것 같군.”
고든은 그게 아니라 당신이 창을 다루는 기본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녀석의 곱상한 얼굴과 자연스러운 하대를 보아하니 귀족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괜한 소리를 했다간 욕만 얻어먹지, 좋을 게 하등 없었다.
고든은 그것보다 녀석의 뒤로 보이는 한 사내를 주목했다.
‘티그리스.’
티그리스가 고든의 전투를 지켜봤다. 여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마 별 소득이 없겠지.’
고든은 눈앞에 있는 녀석에게 전심을 다하지 않았다. 고든은 자신의 장기를 두 개 모두 숨겼다.
고든이 이렇게 티그리스에게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있었다.
‘검기를 잘 뽑아내지 못한다는 걸 들키면 안 돼.’
4개 고리를 얻었다고 해서 바로 검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훈련되어야 하고 지도받아야 한다.
그러나 용병 출신인 고든은 검기를 다루는 법을 누군가에게 배워본 적이 없었다. 그저 맨땅에 헤딩하듯이 홀로 연습해 볼 뿐이었다.
고든이 생각하기에 검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상황에서 티그리스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승패는 50 대 50으로 갈린다.
‘티그리스를 확실하게 이기려면 내 장기를 숨겨야 해.’
고든은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티그리스의 맹금 같은 눈을 피해 경기장을 떠났다.
* * *
연전연승.
티그리스와 고든은 상대를 가볍게 제압하며 결승의 무대를 향해 올라갔다.
다른 경기들은 최소 10분에서 30분 정도 걸렸지만, 티그리스와 고든의 경기는 길어봤자 5분 남짓이었다.
티그리스는 10초 이상을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티그리스는 그냥 검을 피하거나 옆으로 툭 쳐내곤 목에 검을 가져다 댔기 때문이었다.
고든도 자신의 검술 실력을 최대한 숨기면서 승리를 가져갔다.
상대방이 발악했지만 고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13년 용병 생활로 다져진 노하우와 천재성을 막을 자는 오직 티그리스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토너먼트가 예상외로 일찍 끝날 것 같다는 소식이 황궁에 전해지자 황제가 부랴부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올 정도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환관의 외침에 의자에 앉아 있던 모든 관객이 일어났다.
웅장한 관악이 경기장을 울리자 희끗희끗한 금발의 사내가 황금 면류관을 쓴 채 특별석에 등장했다.
황제가 등장하자 모든 사람은 고개를 숙였다.
경기장에 입장한 티그리스와 고든 또한 마찬가지였다.
레인로버의 예상대로 황제는 결승전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도착했다.
토드 황제는 입을 열었다.
“루체트 황국의 신민들이여.”
황제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담긴 위엄 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절로 더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젊은 영웅의 탄생과 황국의 찬란한 미래를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우린 영웅들과 한 공간에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의 영원한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황제의 연설이 진행되는 와중 고든은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황제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티그리스와의 결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든은 티그리스와의 결투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티그리스도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다.’
티그리스는 단 일격에 승리를 쟁취했다. 고든이 검술이 아닌 오로지 전투 센스 하나만으로 올라온 것처럼 티그리스 또한 그랬다.
아무리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그려봐도 티그리스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두근- 두근-
고든은 16살에 첫 전쟁에 나섰을 때처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땐 살고 싶어서 심장이 뛰었지만, 지금은 정말 이기고 싶어서 심장이 뛰었다.
티그리스가 재수 없는 귀족이라서도 아니고 19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검사라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남자 대 남자로 티그리스를 꺾고 싶었다.
“……룩스 여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황제의 연설이 끝났다. 티그리스와 고든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경기를 시작하라!”
황제의 말에 티그리스와 고든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티그리스는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검을 먼저 뽑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스릉-
티그리스가 먼저 검을 뽑았다. 그 광경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티그리스가 검을 뽑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검투를 볼 수 있게 된 거냐?!
고든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티그리스가 검을 뽑은 이유는 자신을 존중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든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면 나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야지.’
고든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고리 4개 모두가 가동되며 오러가 마력 회로를 타고 거세게 흘렀다.
오러의 움직임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그렇기에 용병다웠다.
“후…….”
고든의 입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예열이 끝이 났다.
고든은 마치 굶주린 맹수처럼 티그리스를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듯이 노려봤다.
팅-!
심판이 동전을 튕기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동전이 바닥에 추락하자마자 서로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쾅-!
둘 모두가 얼마나 강하게 발을 굴렀는지 경기장 바닥이 부서졌다. 바닥이 부서진 것과 서로의 검이 부딪힌 것은 거의 동시였다.
쩌어어엉!
소름이 끼치는 강철의 비명에 몇몇 관객들은 귀를 막았다.
뒤이어 연달아 검이 부딪혔다. 그때마다 굉음이 터져 나가 몇몇 관객들은 실신할 정도로 격렬했다.
고든의 검술은 마치 길들지 않은 맹수의 발톱 같았다.
고든이 13년 동안 전쟁터를 굴러다니며 사용한 것은 단순한 종베기 횡베기 사선베기 찌르기 이 네 종류밖에 없었다.
마치 짐승이 이빨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할퀴듯이 본능적인 움직임처럼 빈틈이 보이면 공격하고 위험하면 막거나 피했다.
안 좋게 말하자면 검로가 단순하고 거칠다고 말할 수 있지만, 강인한 육체와 생존 본능이 그 모든 것을 커버해 주고 있었다.
티그리스가 고든의 종베기를 흘리고 위로 올려 베었다.
두 번의 동작이지만 한 번의 동작처럼 매끄러운 움직임이었다.
고든은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고든의 갈색 머리칼 몇 올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 이후로 티그리스는 고든을 향해 몇 번이고 공격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든은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하거나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단순한 본능이라고 하기엔 미묘했다. 티그리스는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티그리스는 종베기를 하다가 검을 당겨 멈추고 찔러 넣었다.
페인트 공격이었다.
완벽한 엇박자였기에 평범한 사람의 반응속도라면 이 공격을 절대로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든은 몸을 젖혀 피해냈다.
티그리스는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움직임은 생존본능 따위가 아니었다.
“굉장히 좋은 눈을 가졌군.”
“……이거 벌써 들킬 줄은 몰랐는데.”
고든이 화살과 마법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13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검술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오러 운용술에 재능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반응속도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의 반응속도는 0.25초가 한계고 어느 정도 훈련된 기사는 0.1초 내지 0.15초 안에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고든은 0.01초 안에 반응할 수 있었다. 가히 초능력이라 해도 무방한 어마어마한 반응속도였다.
티그리스는 검을 내질렀다. 엇박자에 페인트 공격에 검이 아닌 발로 공격까지 했다. 하지만 고든은 그 모든 것을 피해내고 막아냈다. 심지어 티그리스의 종베기를 패링하기까지 했다.
몸이 열린 티그리스의 품으로 고든의 검이 날아들어 왔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몸을 땅에 거의 붙일 듯이 숙이는 것으로 완벽하게 피해냈다.
“……어떻게.”
티그리스의 올려 베기가 다시 날아오자 고든은 피해냈다. 멀찍이 떨어져 티그리스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각도와 속도였는데…….”
“자네의 반응속도가 뛰어난 것은 인정하네. 하지만…….”
티그리스의 동공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베르세르크라고 반응속도와 동시에 각성 효과를 주는 오러 운용술이 있네.”
물론 고위 등급의 오러 운용술이라서 사용할 수 있는 이가 황국 전역에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오러 운용술이었다.
“보아하니 100분의 1초까지 느낄 수 있는 것 같은데 나도 그에 맞춰주지.”
“그게 무슨……!”
티그리스가 돌진하여 종으로 검을 베어냈다. 고든은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고든의 검신을 따라서 내려갔다.
‘젠장!’
훙-!
고든의 가슴을 노리는 검로에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지만 패착이었다. 티그리스는 중간에 멈추고 찔러 넣었다.
고든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옆으로 피해냈지만 날카로운 검 끝이 오른쪽 어깨를 스쳤다.
티그리스는 다시 횡베기를 했다. 검이 시시각각으로 고든의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게 보인다.
고든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꺼낼 수밖에 없나.’
정말로 이것만큼은 꺼내기 싫었다. 이걸 꺼내면 다른 귀족들이 고든을 죽이려고 달려들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고든은 이 사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험하고 싶었다.
자신의 전부가 그에게 얼마나 닿을 수 있을지.
그 마음은 용병이라기보단 기사에 더 가까웠다.
고든은 마치 유령처럼 사라졌다.
소음도 없고 움직임의 예고도 없었다. 말 그대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어디에서 검이 날아올지 바로 파악했다.
‘뒤 그리고 우상단.’
티그리스는 뒤에서 등을 베어 들어오는 종베기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을 들어 막아냈다.
고든은 어이가 없었다.
“……뒤에도 눈이 달리셨습니까?”
“자네가 숨긴 ‘유령 걸음’처럼 나도 숨긴 몇 가지 수가 있지.”
티그리스는 검을 튕겨내며 고든과 다시 대치했다.
“유령 걸음은 11년 전에 슈바인 백작가가 몰락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자네가 익히고 있지?”
“그런 티그리스 님은 어떻게 제 보법이 유령 걸음이란 걸 알아차리셨습니까?”
“귀족들은 항상 기록하네. 각 가문의 무기술의 특징을 모조리 기록해 두지. 눈을 현혹하는 잔상을 남기고 사라지는 보법은 유령 걸음 하나밖에 없지.”
“이거 참……. 단순히 검만 잘 다루는 공자님이신 줄 만 알았는데 공부도 열심히 하신 모양입니다.”
“귀족의 힘은 검이 아니라 펜에서 나오는 법일세. 모든 가문의 서고에는 각 가문 검술의 약점과 파훼법이 모두 적혀 있지. 물론 유령 보법에 대한 파훼법도 노르베르드 가문의 기록에 남겨져 있네.”
고든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거참 사람 맥 빠지게 하는 말을 참 잘하십니다. 하지만…….”
고든은 검을 역수로 잡았다. 롱소드를 역수로 잡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느껴졌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기록을 티그리스 님만 보셨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오산입니다. 제가 무너뜨린 귀족 가문들만 해도 6개나 되니까요.”
전쟁 용병들이 무서운 이유가 이것이다. 무너진 가문들의 비급서나 기록물들을 몰래 탈취해서 본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탈바꿈한다.
그것이 대다수의 귀족에게 지탄받을 일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고든을 포함한 모든 용병은 그렇게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었다.
티그리스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려 13년이나 전쟁터를 구른 데다가 검술과 오러 운용술에 재능이 있는 고든이 얼마나 많은 귀족의 기술을 익혔을지 티그리스로선 상상이 가지 않았다.
티그리스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럼 시험해 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