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8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81화
갈등(1)
1학년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트리니티는 단순히 친교를 쌓기 위해 모인 곳이 아니다.
배우러 온 곳이지.
학생들은 지난 한 주 동안 각자 졸업 프로젝트 계획과 수강 계획을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졸업 프로젝트를 짜는 게 정말 머리가 터질 만큼 힘들었다.
너무 목표를 높게 잡아서 4년 내로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너무 목표를 낮게 잡아서 1~2년 사이로 끝나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샤를로트와 아이린의 졸업 프로젝트를 보자면…….
[졸업 프로젝트 계획서]학번 : 1-1
이름 : 샤를로트 드 프리하르덴
주제 : 소드 마스터
부주제 : 검술 개발
지도 교관 :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학기 목표
1학년 1학기 : 신규 검술 개발 및 검술서 제작
…….
[졸업 프로젝트 계획서]학번 : 1-2
이름 : 아이린 드 벨프
주제 : 소드 마스터
부주제 : 성물 용혈검 획득
지도 교관 :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트리샤
학기 목표
1학년 1학기 : 검술 훈련, 성좌의 시련 및 던전 교육, 역사 교육.
1학년 2학기 : 검술 훈련, 성좌의 시련 및 던전 교육, 역사 교육, 성물 우로스 사냥팀 참가.
…….
샤를로트와 아이린의 목표는 옛날부터 정해져 있었기에 굉장히 쉬운 편에 속해 있었다.
4년 내로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
1년 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던 일의 연장이었기에 딱히 복잡할 게 없었다.
대신 그들은 부주제를 골랐다.
샤를로트의 경우에는 티그리스가 전수한 검술을 자신의 몸에 맞게 재개조하여 검술을 만들고 검술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티그리스의 판단으론 샤를로트가 이 검술을 완성하는 그날, 소드 마스터가 될 것이라 보고 있었다.
문제는 아이린이었다.
아이린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드 마스터라기보단 벨프 가문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때문에 부주제로 벨프 가문의 보검인 용혈검을 얻는 팀을 꾸리고 용혈 자리의 시련을 극복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아이린이 용혈검을 얻을 수 있도록 티그리스가 도울 수도 있다.
원래 그러려고 했고.
하지만 티그리스는 나서지 않기로 했다.
-이건 제가 해야만 해요.
티그리스가 직접 나서서 용혈검을 되찾는다면 그나마 쉽겠지만, 아이린은 벨프 가문의 보검은 무조건 자신이 되찾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자기가 세울 벨프 가문의 일이니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용혈 성좌가 내릴 성좌의 시련이 어떤 것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용혈검을 얻었던 기록은 벨프 가문의 서고에 남아 있었지만, 그 서고 자체가 완전히 불타 버렸기 때문에 용혈검과 관련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나마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 희망을 걸어보긴 하겠지만…… 워낙 정보량이 방대한 데다가 드워프들이 아이린에게 기록 보관소의 문을 열어줄지 알 수 없었다.
그럼 다른 학생들의 졸업 프로젝트는 어떨까?
루안의 경우에는 샤를로트와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창술을 개발하기로 했고, 에이든의 경우에는 검술 교관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제는 요리와 예술 분야였다.
예술이나 요리의 영역은 소드 마스터처럼 일정 단계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어떤 기준으로 졸업 프로젝트를 세울 것인지 교관들과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요리와 음악 그리고 미술과 관련된 성좌의 시련을 극복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긴 한데, 수업을 진행하면서 계획을 더 자세하게 설정하자고 이야기를 끝냈다.
그럼 가장 중요한 라칸의 졸업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3월 첫째 주 금요일.
라칸의 졸업 프로젝트 계획이 황국 전역에 퍼져 나갔다.
[라칸, 드워프와 함께 마공학 공방을 세울 것.] [라칸 공방, 처음은 군수 사업으로 시작.]라칸의 졸업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굉장히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왔다.
라칸의 졸업 프로젝트는 마공학 공방을 세우는 것.
단순히 마공학 공방을 세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황국의 지원 없이 스스로 이익이 창출되는 생산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라칸은 그러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홍보라고 생각했고, ‘라칸 공방’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 세계에 알리기로 결정했다.
[오는 금요일, 마탄총 시연할 예정.]라칸은 꾸준히 자신의 얼굴을 알려왔지만, 티그리스만큼 유명세를 떨치진 않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느낌이랄까?
중앙 정계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라면 어디선가 보고 들어봤을 법한 인물이었고, 티그리스의 최측근이라는 점만 거의 알려졌다.
지금까지 라칸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인퀴지터 요원이라는 특수한 신분도 있었지만, 로타와 아르펨으로부터 라칸을 지키기 위한 목적도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탄총 개발과 생산은 황국 전체를 뒤흔들 대사건이 될 것이다.
마탄총의 개발은 그야말로 편제와 군수 및 병참 분야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마탄총 개발의 핵심 연구원인 라칸의 이름이 안 밝혀지려야 안 밝혀질 수 없다.
그래서 황국은 마치 티그리스를 황도의 영웅으로 만든 것처럼, 라칸을 아예 세상을 뒤바꾸는 천재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밝혀질 거 유명세를 떨침으로써 얻게 되는 보호 효과를 노린 것이다.
물론 마탄총 광고도 할 겸.
라칸은 사람들이 보는 시연장에서 개발한 마탄총을 들고 섰다.
“이게 바로 병사들에게 지급될 가장 기본이 되는 라이플인 M-1입니다.”
라칸은 부가 설명을 하지 않고 바로 인형에게 마탄총을 발사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곧바로 날아가는 마탄.
마탄 30발이 연속으로 날아가 모조리 인형에게 꽂혔다.
“오오!”
인형은 거의 걸레짝이 되어 산산이 부서졌고, 그 모습을 기자들은 열심히 사진으로 찍었다.
마탄총이 지구의 총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반동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화약이 폭발하며 생겨난 고압의 가스가 총알을 밀어내며 작동하는 원리가 아니라 마법으로 작동하는 것이니까.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라칸이 완벽한 탄착군을 설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라칸은 카트리지를 바꿔 끼웠다.
그러자 군중 속에 숨어 있던 한 마법사가 눈빛을 반짝였다.
‘마공학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마법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파스칼이 디스펠에 성공한다면 저 마탄총은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어진다.
그리고 파스칼은 분명히 마탄총이 발사되면서 발현된 마법진을 확인했다.
직소퍼즐형 보안 술식이라 마법의 이해도보단 창의력과 사고력을 요하긴 했지만, 난이도가 그리 어렵지 않아 1분 만에 모두 풀어버렸다.
이제 이 보안 술식을 토대로 디스펠을 시도한다면, 이번 공개 시연장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말 것이다.
‘어딜 감히 주제넘게 마법을 넘봐.’
마법은 오직 귀족의 것이다.
마법 연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평민 출신들은 마법사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놈들은 그냥 마법 연구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법 연구가 주제에 마법을 제멋대로 다루는 것은 파스칼로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파스칼은 디스펠을 준비했다.
라칸이 다시 방아쇠를 당기자 마법진이 그려졌다.
‘지금!’
파스칼은 디스펠을 바로 시도했다.
그러나 갑자기 눈앞에 불똥이 튀며 뒤로 넘어졌다.
“컥!”
파스칼의 입에서 피가 튀며 속이 진탕이 되었다.
디스펠 실패로 인해 발생한 리바운드 현상이었다.
그런데 디스펠을 시도한 사람이 파스칼만은 아닌 듯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라칸은 빈 카트리지를 뽑으며 피식 웃었다.
“아, 제가 말씀드리려던 걸 다른 마법사분들께서 몸으로 보여주셨군요.”
기자들은 파스칼처럼 디스펠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마법사들을 향해 사진기를 들이댔다.
파스칼은 어떻게든 얼굴을 찍히지 않으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찍지 마! 찍지 말라고! 이 더러운 평민 새끼들이!”
라칸은 마법사들이 그러든 말든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마탄총은 마법사들의 디스펠을 막기 위해 특수한 방법으로 보안 술식을 구성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건 기술 보안 문제 때문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마탄총은 마법사들의 디스펠 문제를 완벽하게 개선한 제품입니다. 이제 대량생산만 앞두고 있죠.”
라칸은 그리 말하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보안 술식이 갑자기 변했어!’
똑같은 직소퍼즐형 보안 술식이긴 하지만 퍼즐 모양이 아예 다르다.
마치 다른 제품의 직소퍼즐을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랄까?
가장 큰 문제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 보안 술식이 바뀌었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카트리지였다.
각각의 카트리지는 단순히 마석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마탄총에 결합하는 일반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마공학 기법이 들어간 특수한 카트리지다.
이 특수 카트리지가 마탄총에 끼워지면, 마탄 마법에 보안 술식이 덮어씌워지며 발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마법사들이 보안 술식 해석에 성공하더라도, 카트리지를 바꿔 끼우기만 하면 다시 처음부터 보안 술식을 해석해야 한다.
파스칼은 이를 악물며 라칸을 노려봤다.
‘어서 올페르 백작님께 빨리 말씀드려야겠어.’
파스칼은 몰려드는 기자들을 물리치고 재빨리 준비된 마차에 도망치듯 올랐다.
저 물건이 대량생산 되어 세상에 뿌려지는 순간 세상의 판도가 바뀐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저 빌어먹을 평민을 죽여서라도.’
***
마탄총 시연회 이후에 트리니티에 대한 관심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엘프나 사냥꾼이나 사용하던 활의 대체품이자 위력도 제법 강한 마탄총을 개발함에 따라 전쟁 및 몬스터 사냥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란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기존에는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기사단을 꾸리고 병사들을 교육했지만, 저 마탄총만 있다면 다르다.
일개 평민이나 여자, 아이도 방아쇠 당길 힘만 있다면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 값어치를 알아본 몇몇 귀족들이 라칸과 드워프 공방에 후원을 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루체트 황가와 노르베르드 가문, 그리고 프리하르덴 가문과 로드엘림 가문이 드워프 공방에 제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를 해놨기 때문이었다.
“이거 한 방 크게 먹었군.”
올페르 백작은 신문을 내려놓았다.
[올페르 백작의 막내 파스칼, 왜 마탄총 시연장에서 허가 없이 마법을 시도했나?]파스칼은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올페르 백작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이게 함정일 줄은 꿈에도…….”
올페르 백작은 일어나 파스칼에게 다가갔다.
파스칼은 덜덜 떨며 올페르 백작의 회초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회초리 대신 올페르 백작은 부드럽게 파스칼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괜찮다. 파스칼.”
“가…… 감사…….”
“이리 큰 문제인 줄 알았다면 네가 아니라 바질을 보냈겠지. 실망하지 않았으니 괜찮다.”
파스칼은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실망하지 않았다는 뜻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파스칼은 주먹을 부서져라 쥐었다.
“제가 어떻게든 수습을 하겠습니다.”
“어떻게?”
파스칼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전 마법학부 학생회 부회장이니 라칸과 필연적으로 마주칠 일이 있을 겁니다. 그때……!”
“파스칼.”
올페르 백작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참았다.
“멍청한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지가 멍청한 줄도 모르고 망나니처럼 날뛰는 건 죄지.”
“네?”
“라칸은 트리니티에서 마법 교육을 받는다. 그 잘난 조코비치 교관에게 직접 마법 교육을 받고 드워프에게 마공학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 어떻게 너랑 마주칠 일이 있겠니?”
“아……. 아……. 그것이.”
올페르는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당장에 손이 뺨으로 날아갈 것 같았지만 올페르는 참았다.
이 모자란 아이는 그래도 올페르 백작의 혈육 중에서 유일하게 제국 대학을 다니고 있다.
물론 2년이나 유급을 한 게 문제이긴 하지만…… 덕분에 제국 대학 이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는 눈이 하나 더 생겼으니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올페르 백작은 파스칼의 어깨를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넌 가만히 있어라. 그냥 네 사촌 형이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하기만 하면 돼. 알겠느냐?”
파스칼은 이를 악물었다.
바질이 대단한 놈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놈은 방계 출신이다.
심지어 순수 귀족도 아닌 평민의 피가 섞인 잡종이었다.
그런 잡종 놈의 말을 따르라는 것은 큰 모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파스칼은 이를 뿌득 갈았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가봐라.”
파스칼이 떠나자 올페르 백작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멍청한 놈.”
놈의 눈빛으로 봐선 또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저런 무지렁이 같은 놈의 눈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만큼 주의를 줬으니, 당분간은 조용하겠지.’
올페르 백작은 머리 아픈 막내의 생각은 털어버렸다.
그러자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랍으로 향했다.
올페르 백작은 잠시 깊게 생각하더니 마법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서랍 자물쇠가 달칵! 소리와 함께 열렸다.
올페르 백작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장부와 서류들 그리고 봉인된 편지가 있었는데, 올페르 백작은 편지를 들었다.
밀봉된 편지지엔 길리온 왕가의 인장이 박혀 있었다.
이 편지는 얼마 전 올페르 백작이 업무를 보고 돌아왔을 때, 서재 책상에 올려져 있던 편지였다.
아직 열어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이 편지를 여는 순간 올페르 백작은 황국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 있겠지.’
그래서 지금까지 열어보지 않았다.
올페르 백작은 누군가에게 주도권이 빼앗긴 채 끌려다니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하지만 제국이 30년 전처럼 마법사 가문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땐 임기응변으로 로드엘림 가문의 가주를 암살함으로써 해결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임기응변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귀족파의 목을 확실히 죄어오고 있었다.
귀족파의 힘만으론 황제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렇다면 황제의 적과 동맹을 맺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일터…….
하지만 길리온 왕국 놈들의 속내를 도통 알 수 없다.
만약 길리온 왕국이 건네는 손을 잡았다가 이용만 당할 뿐이라면?
그보다 비참한 최후는 없을 것이다.
무엇이 최선인가.
황제에게 넙죽 엎드리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시커먼 속내를 감춘 독사와 손을 잡을 것인가.
“독배를 마실 거면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 마셔야지.”
고민 끝에 올페르 백작은 결국 페이퍼 나이프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