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196)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96화
권속
핏줄로 만들어진 왕좌 옆에 놓인 작은 의자에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스페스는 눈을 떴다.
“왔군.”
리벡 근교에 넓게 포진시켜 둔 핏줄 거미들과의 연결이 툭툭 끊기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 핏줄 거미를 사냥할 만큼 강력한 몬스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 티그리스가 온 게 분명했다.
몇 분이 지나자 포에토와 사티로스가 텔레포트로 나타났다.
“놈이 리벡에 도착했다.”
“정말 혼자서 온 게 맞나?”
포에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 주변에 조력자가 있나 꼼꼼히 확인해 봤지만 없었다.”
“놈은 좀 어때? 많이 지친 것 같나?”
사티로스는 살짝 애매하다는 듯이 머뭇거렸다.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 숨소리는 좀 거칠어진 것 같긴 하지만 완전히 탈진한 것 같진 않더군.”
“흠······.”
원래 놈이 많이 지쳤으면 리벡에 진입하자마자 키메라들과 함께 끝장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애매하다고 하니 살짝 머뭇거려졌다.
포기해야 하나?
그렇다고 티그리스를 놔두고 그냥 길리온 왕국으로 도망가기엔 포획해 둔 실험체들이 너무나도 아깝다.
“어차피 티그리스를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리벡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놈을 몰아붙여도 나쁘지 않아.”
스페스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리벡 곳곳에 감지 마법과 함정 마법을 숨겨두었고, 핏줄 거미들의 영역을 최대한 늘려두었다.
놈이 리벡에 들어오는 순간 8만 마리의 핏줄 거미들과 수십 개의 함정 마법이 놈을 무릎 꿇릴 것이다.
“그럼 일단 남아 있는 키메라들만 사용해서 끝내보도록 하지.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놈의 오러는 바닥을 쳤을 거다.”
“그건 확실한가?”
“이상하게도 그건 도저히 감지해 낼 수가 없어서 확신은 못 하겠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48시간 동안 1분도 쉬지 못하고 검을 휘둘렀는데 당연히 오러가 바닥이 났겠지.”
사티로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길리온 왕국으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티그리스를 지금까지처럼 몰아붙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리라 생각되지 않는군. 싸워본다면 지금이 맞을 거다.”
“지금보다 더 나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이건가······.”
사티로스와 포에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48시간 동안 티그리스를 감지 마법으로 지켜본 바에 따르면, 저놈이 인간인 이상 안 지칠 수가 없다.
그리고 놈을 상대하는 지리적 조건도 셋에게 너무나도 유리하다.
리벡 곳곳은 스페스가 준비한 함정 마법들과 핏줄 거미의 거미줄로 가득하니까.
놈은 스스로 함정에 발을 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스페스가 고심하기 시작하자 저 멀리서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놈이 리벡 안으로 들어왔다.
사티로스는 솟구치는 화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서 결정해라. 네가 빠진다면 나라도 키메라를 보내 전투 데이터만 모으고 빠질 테니까.”
스페스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확실히 여기서 그냥 물러나는 건 아쉽긴 하지.”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스페스와 사티로스, 마지막으로 포에토는 리벡 변두리에 숨어 있는 키메라들에게 소집 명령을 내렸다.
분쇄자부터 시작해서 오염 박쥐와 오염 두더지 그리고 인면 나무까지 모두 리벡으로 모여들었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키메라들이 몰려드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출발하자 셋이 있는 리벡의 비밀 연구소까지 땅이 울렸으니까.
모든 키메라들의 숫자를 합치면 대략 10만 마리.
티그리스가 제아무리 대단한 놈이라고 하더라도 이만한 숫자를 홀로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자 스페스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확실히 펠렌이 왜 죽었는지 알 것 같군.”
티그리스는 사티로스와 스페스의 말대로 오러가 다 떨어졌는지 검강을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다.
그냥 샐러맨더의 검의 능력만을 사용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키메라들은 맥도 못 추고 죽어 나갔다.
물론 그 성물의 능력만 믿고 설치는 게 아니다.
티그리스 본인이 갖고 있는 전투 센스와 능력이 대단했다.
티그리스에게 사각(死角)이란 존재하지 않는지 뒤에서나 땅에서나 엄폐물 뒤에서 날아온 공격을 모조리 쳐냈다.
심지어 스페스가 설치해 둔 함정 마법을 역이용하여 키메라들을 잡아내기까지 했다.
셋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있는 바를 열심히 적으며 입을 놀렸다.
“특별한 오러 운용술을 가동하는 흔적이 보인다. 핏줄 거미의 독도 먹히지 않아.”
“오염 두더지의 체액에도 저항하는 모양이다. 분명 피부에 튀었는데 멀쩡해. 오러 유동이 감지된 것으로 봐선 맹독에 저항할 수 있는 오러 운용술을 개발한 모양이다.”
“설마 즉석에서 오러 운용술을 개발을 했다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이곳에 오슬로나 슈비츠가 있었다면 적당히 설명이라도 해줬을지도 모르겠는데······.”
티그리스의 전투가 지속될수록 세 사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 느꼈나? 놈은 일부러 키메라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방금 검강을 사용했나? 검강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분쇄자의 갑주를 베어낸 거지? 검기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놈이 단순히 검만 잘 다루는 게 아니라 약점 파악도 잘하는 것 같군. 거미보단 거미줄을 먼저 태워 없애고 있어. 주변에 거미줄이 없으면 핏줄 거미들이 힘을 못 쓴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다.”
“감지 마법과 분석 마법이 티그리스의 움직임을 쫓아가질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산정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어.”
“설마, 베르강과 같은 7성 기사라는 건가? 반년 전에 6성 기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럴 리가······.”
셋은 전투 데이터를 수집하면 수집할수록 참을 수 없는 욕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티그리스를 실험대에 묶어놓고 메스를 꽂아 세포 단위로 분석해 보고 싶은 지식욕 때문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단언컨대 티그리스의 육체는 인류의 정점이다.
티그리스를 제대로 조사한다면 이들이 원하는 불멸의 삶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포에토가 펜을 멈췄다.
“······잠깐.”
“뭐지? 뭘 발견했나?”
“아니, 오염 두더지들이 모두 죽었다.”
티그리스를 관찰하는 데 정신이 팔려 키메라들의 개체 수를 생각하지 못했다.
더 많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키메라들을 때려 박아 넣어버린 탓에 손실이 너무 컸다.
“뭐? 설마 전멸을 당했다고?”
“그래. 너희들도 남은 개체 수를 확인해 봐라.”
포에토와 스페스도 남은 키메라 숫자를 세어봤다.
둘은 충격에 휩싸여 순간 말을 잊었다.
“분쇄자가 100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아니, 90마리. 아니, 지금은 82마리······.”
“핏줄 거미들의 개체 수가 4만으로 줄어들었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오염 박쥐들은 그래도 1,000마리 정도는 살아 있긴 하지만······.”
셋은 눈을 마주쳤다.
지금이라도 도망을 쳐야 하나?
하지만 아직 티그리스의 한계를 보지 못했다.
지금 얻은 데이터론 티그리스를 상대할 수 있는 키메라를 만들 수 없다.
티그리스의 약점을 조금이라도 찾아내야 공략할 방법이라도 찾아낼 것 아닌가?
“······티그리스가 확실히 지치긴 했다. 더 이상 검기를 사용하진 못하는군.”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검을 휘두르는 대신 함정 마법을 교묘히 사용해서 개체 수를 줄이고 있군.”
티그리스가 지치고 있다.
이건 너무나도 긍정적인 신호다.
좀 더 몰아붙이면 티그리스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일단 더 지켜보자.”
“데이터가 부족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티그리스를 더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났다.
“······오염 박쥐들이 모두 죽었다. 두더지도 마찬가지고.”
“분쇄자는 1시간 전에 끝이 났고 인면 나무도 마찬가지다. 신호가 잡히지 않아.”
그러나 저 멀리서 전투가 치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좀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말의 의미는 하나였다.
티그리스가 셋의 위치를 파악했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싹!
셋의 등골이 오싹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셋의 위치를 파악한 걸까?
마법이 간파된 흔적은 없었다.
기사 특유의 직감인가 아니면 티그리스의 재능인 것일까?
“······스페스. 함정 마법은 준비되어 있나?”
“곳곳에 깔아두었다. 걱정 마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페스는 이미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사실 말하기 전부터 설치해 둔 함정 마법이 하나둘씩 파괴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쾅! 쾅!
-캬아아아아아아!
굉음이 터져 나가고 핏줄 거미들의 비명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셋은 다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망을 쳐야 하나?
아니면 티그리스와 정면으로 붙어봐야 하나?
욕망과 생존 본능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되었고, 역시나 이긴 것은 욕망이었다.
셋은 티그리스에 대항하기 위해 성물들과 지팡이를 모두 꺼냈다.
티그리스는 확실히 많이 지쳤다.
놈은 검을 드는 것도 힘들어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회피하고 공격하고 있었다.
오러는 진작에 떨어졌으리라.
지금 상태에서 티그리스를 이기지 못한다면 놈을 이길 수단이 없다.
이젠 샐러맨더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의 화끈함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가까워졌다.
이젠 물러설 수 없다.
콰아아앙!
그때, 벽이 통째로 터져 나가며 지독한 혈향과 함께 주홍빛 화염이 뱀 혓바닥처럼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쿵!
그리고 잠시 후 뚫린 벽으로 거대한 거미 하나가 미끄러지며 흘러나왔다.
진득한 붉은 피를 울컥거리며 쓰러진 핏줄 거미.
다른 핏줄 거미들보다 다섯 배는 컸고 배가 불룩했다.
이 거미는 리벡 둥지를 관리하는 관리인이자 모든 핏줄 거미들의 여왕이었다.
여왕 거미의 허리춤에 황금색 사슬이 묶여 있었는데, 그 사슬은 심연과도 같은 어두운 구멍에 연결되어 있었다.
-캬아아아아아!
거미 여왕은 하나 남은 눈으로 스페스를 쳐다보며 애타게 목숨을 구걸했다.
하지만 스페스가 뭔갈 해볼 새도 없이 갑작스레 당겨진 황금 사슬에 의해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직! 콰직!
뒤이어 뭔가를 베는 것이 아닌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셋은 긴장한 채로 심연을 쳐다봤다.
저 심연에 몸을 감춘 티그리스도 셋을 지켜보고 있다.
감지 마법은 이미 모두 망가져서 티그리스를 볼 수 없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티그리스는 저 심연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포에토는 라이트 볼 하나를 심연으로 던졌다.
푸른 라이트 볼이 심연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빛이 간신히 닿은 그곳엔 한 손에 천공의 사슬, 다른 한 손에 샐러맨더의 검을 든 티그리스가 있었다.
지독한 혈향과 살기를 뿜어내는 것과 달리 그의 경갑과 망토는 핏물 하나 튀지 않고 깔끔했다.
그 깨끗한 공포에 세 사람은 몸을 움찔했다.
“역시 모두 여기에 모여 있었군.”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오만한 말투.
멸종한 드래곤을 연상케 하는 공포가 몸을 휘감았다.
놈들이 머뭇거리는 짧은 틈에 티그리스는 곧바로 천공의 사슬을 하늘 위로 던졌다.
그러자 천공의 사슬이 분열하고 엮이더니 그물이 만들어졌다.
셋은 공격이 오는 줄 알고 방어 마법을 빠르게 펼쳤다.
하지만 천공의 사슬은 셋을 노리지 않고 하늘로 솟구쳐 땅에 파묻혔다.
멀리서 지켜보면 황금빛 새장이 티그리스와 셋을 가둔 모양새였다.
스페스는 그제야 눈치챘다.
놈은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둔 것이라고.
“일이 쉬워졌어.”
티그리스는 천천히 셋에게 걸어왔다.
* * *
티그리스는 셋의 얼굴을 동시에 보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환희가 뒤섞였다.
분노의 감정은 놈들에게 당했던 과거의 흔적 속에서 흘러나온 것이고 환희는 놈들이 사라질 미래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티그리스는 차분하게 분노는 제어하고 환희는 죽였다.
과거의 망령에 휩쓸려 감정적으로 전투에 임할 필요도 없었고, 화려한 망상에 젖어 시야가 좁아질 필요도 없었다.
모든 감정은 이 모든 것이 다 끝난 이후에 쏟아내도 상관이 없다.
티그리스는 질척이는 피 웅덩이를 걸으며 놈들에게 다가갔다.
철벅- 철벅-
온몸이 삐걱거리고 오러는 바닥이 났으며 혀에는 단내가 풀풀 날렸다.
지금처럼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회귀 후 처음이었으나, 이 정도로 지치지 않았다면 놈들과 마주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놈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
티그리스는 말없이 놈들에게 다가갔고, 정신을 차린 포에토가 지팡이를 들며 입을 열었다.
“멈춰라. 티그리스.”
티그리스는 말을 무시하고 더 걸었다.
놈들이 티그리스의 기세에 짓눌려 패닉 상태에 빠졌을 때.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1초라도 더 많이.
가까워지고 휴식해야 한다.
결국 20걸음을 남겨두고 스페스가 움직였다.
스페스의 채찍 같은 기다란 손이 티그리스를 향해 날아왔고, 티그리스는 딱 한 걸음 뒷걸음질 치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손이 거둬지며 스페스가 입을 열었다.
“정말 이곳까지 혼자 오다니. 정말 그 용기와 실력 하나만큼은 칭찬해 주마. 하지만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티그리스? 넌 지금 지쳐서 검을 들고 있는 게 겨우 아닌가?”
스페스의 입에서 비소가 흘러나왔다.
그 비소 속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흘러나왔다.
이미 놈들의 머릿속엔 티그리스를 사로잡아서 메스를 꽂아 넣고 있는 망상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놈들의 탐욕 어린 눈빛은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굉장히 익숙했다.
놈들은 키메라 연금술사다.
인간이란 종의 초월을 위해 연구하는 미치광이 마법사.
놈들의 눈에는 티그리스가 마치 걸어 다니는 선물 보따리처럼 보일 것이다.
티그리스는 대답하는 대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산소와 한 줌 남은 오러가 삐걱거리는 근육에 스며들었다.
애초에 놈들이 이 정도 거리를 티그리스에게 허용한 이상 놈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부터 사용하는 게 낫겠지.
티그리스의 눈과 포에토와 마주쳤다.
포에토는 살기를 느꼈는지 바로 마법을 준비했지만, 이미 늦었다.
티그리스가 유령 걸음으로 포에토의 뒤를 점한 것과 검이 움직인 것은 동시였다.
티그리스의 검이 놈의 배리어를 잘라내고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단번에 베어냈다.
“이······ 무슨······.”
포에토의 몸이 반절로 잘려 나가며 피가 용솟음쳤다.
“끄아아아아아!”
그리고 포에토의 피가 순식간에 기화되면서 지독한 맹독 가스를 뿜어냈고, 바로 옆에 있던 스페스와 사티로스의 살점과 폐부를 헤집기 시작했다.
티그리스는 그 뿌연 안개 속을 차분히 쳐다보며 숨을 골랐다.
“일단 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