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03)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03화
마녀들의 신전(1)
“이걸 어떻게······.”
황제나 티그리스에게 이 정보를 알리긴 알려야 한다.
하지만 라칸은 이 큰 죄악을 자신의 입으로 알릴 자신이 없었다.
라칸은 나달을 쳐다봤다.
나달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책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금기는 대가 없이 깰 수 없는 것인가.”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금기를 저버린 아버지의 죄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무겁지 않은가?
마고는 도대체 어떻게 이 무거운 짐을 졌을까?
그래서 웃지 못한 것인가?
나달을 보면 이 대륙의 최후가 보이기 때문에.
나달은 홀린 듯이 수첩을 꺼내 글을 적었다.
이 모든 사태를 끝내야 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황도로 가자.”
“······전부 말씀드리실 건가요?”
“해야지.”
나달의 펜이 뚝! 부러졌다.
“무조건.”
* * *
라칸과 나달은 황도로 출발하기 전에 뒷정리부터 하기로 했다.
일단 마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책들과 호문쿨루스 연구 기록을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서재 문을 마법으로 단단히 잠갔다.
“밀러. 내가 따로 연락할 때까지 아무도 아센시오 저택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네가 지켜주게.”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밀러 요원에게 아센시오 저택을 맡긴 뒤, 황도로 빠르게 향했다.
행여나 기습이 있을지 몰라 나달과 라칸은 열차 안에서도 번갈아 잠을 자며 24시간 최고 경계 태세를 유지한 채 황도에 도착했다.
빅토리에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을 나온 것은 베르강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복귀했군. 고향에 간 김에 좀 쉬지 그랬나?”
“오래 머물 곳은 아니였습니다.”
“그래? 그럼 일단 마차로 가지.”
나달은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일단 마차에 도청 아티팩트가 없는지 확인한 뒤 사운드 블록 마법을 꼼꼼하게 펼쳤다.
그사이 라칸은 베르강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레인로버 황녀 전하와 티그리스 교관님은 어디로 가셨죠? 전보로 같이 나와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요.”
“두 분은 나흘 전에 안개의 숲으로 가셨네.”
“안개의 숲을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별일이라면 있었지.”
라칸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혹시 나달과 라칸이 우노를 간접적으로나마 관측한 탓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혹시 안개의 숲에서 키메라들이······.”
“아니, 그런 건 아니네. 아모리스 님께서 모든 기억을 되찾으셨네.”
그러고 보니 이맘때쯤 아모리스의 기억이 모두 돌아올 거라고 얘기를 했다.
라칸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럼 안개의 숲에 무슨 보물이라도 있는 건가요?”
“전해 듣기로는 아모리스 님이 기억을 잃기 전에 숨긴 보물이 있다고 하더군. 정확히 그게 뭔지는 돌아와서 설명해 주겠다고 하더군.”
“아······.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난 또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았어요.”
“그나저나 레인로버 황녀님과 티그리스 경을 모두 부른 이유는 뭔가?”
나달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베르강 경만 알고 계십시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됩니다.”
“맹세하지.”
“아센시오 가문의 저택에서 호문쿨루스 연구 기록물을 찾았습니다.”
베르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설마 히드라······ 아니, 마고 그자가 인체 실험도 같이 진행한 건가?”
“네. 맞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호문쿨루스 연구를 위해 인퀴지터에 잡혀온 범죄자들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직접 진행했습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은 아니고? 협박을 당했다거나 아니면 세뇌를 당했다거나······.”
“순수한 자의였습니다.
베르강은 침음을 삼켰다.
“그럼 호문쿨루스 제작을 할 수 있는 방법도 남아 있던가?”
“예.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 방법입니다.”
“방법? 그러면 지금 자네라면 호문쿨루스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긴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호문쿨루스 제작은 그 어떤 연금술사와 주술사도 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고는 어떻게 호문쿨루스를 만든 거지?”
언제나 냉정하고 이성적인 나달이라고 하더라도 이 끔찍한 죄를 모두 고하자니 머뭇거려졌다.
나달은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오염과 침식의 여왕. 우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 뭐라고? 우노?”
“예. 그렇습니다.”
“지금 마고가 그 우노와 결탁하여 자네를 만들고 로타와 아르펨을 만들었다는 이야긴가? 그자가 황국의 배신자라고?!”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를 살리기 위해선 우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께선 그 대가로 로타와 아르펨을 만든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로타와 아르펨의 영혼이 담길 수 있는 그릇을 만든 거죠.”
“결국은 이 모든 사달이 마고 때문이라는 거 아닌가?! 마고가 그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면······.”
베르강은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멈칫했다.
마고는 세상을 배신했을지 몰라도 나달 하나에게만큼은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감사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달의 앞에서 아들을 살리니 마니를 논할 순 없었다.
“······미안하네. 하지만 난 도저히 모르겠군.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는 순간······.”
“밝힐 겁니다.”
“그건 안 돼. 밝히면 자네는 죽네. 아니, 아센시오 가문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이 모두 사형장의 이슬로 변하고 말걸세.”
“아센시오 가문은 이제 없습니다.”
“뭐? 설마······.”
“아뇨. 아센시오 가문은 마고 님의 유언에 따라 제가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몰락시켰습니다.”
나달은 왜 마고가 아센시오 가문을 몰락시키라고 했는지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마고는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질 경우 아센시오 가문과 연루된 모든 사람이 사형대에 오를 것임을 예상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달에게 아센시오 가문을 몰락시키고 아센시오 가문와 연관된 모든 사람, 기업과의 인연을 끊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래도 자네의 죽음을 피할 수 없네. 적어도 지금은 안 돼.”
“지금 밝힐 생각은 저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우노에 의해 죽은 모든 이들에게 속죄를 해야 합니다.”
베르강은 나달의 입에서 저렇게 감정이 묻어 나오는 말을 들으리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베르강이 지금까지 봐온 나달은 속죄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노르베르드 열차 테러 사건도 겪고 오늘 일도 겪으면서 나달이 점점 변화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때까진 입을 다물게. 황제 폐하껜 내가 어떻게든 설명을 드릴 테니.”
“아뇨. 한 사람만큼은 더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트리샤 경이 필요합니다.”
“트리샤 경이 왜 필요한 거지?”
“잘하면 우노의 성물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달은 열차를 타고 오면서 마고가 남긴 메시지를 수백 번이고 곱씹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두 가지였다.
달의 그림자를 비추는 별자리.
둘과 하나 아는 별자리.
‘둘과 하나가 아는 별자리’란 의미는 로타와 아르펨과 마고만이 아는 별자리란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달의 그림자를 비추는 별자리’란 의미는 달의 뒷면을 비추는 별자리란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이 행성에서 달의 뒷면에 가려진 별자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문제는 마고가 어떻게 달의 뒷면에 가려진 별자리를 관측했는지인데, 그것은 나달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트리샤 경이 갖고 있는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사용하면 로타와 아르펨을 상징하는 성좌와 우노를 상징하는 성좌를 모두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이용하면 분명히 우노의 성좌를 발견할 수 있다.
* * *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말없이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아모리스는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숲을 꽉 채운 안개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상이 변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일을 겪냐에 따라 인상이 변한다.
얼굴 근육의 긴장도와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 순서와 각도가 변하면서 눈매가 얇아지거나 늘어난다.
그래서 전쟁을 겪고 온 사람들의 인상이 더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마치 아모리스처럼.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모리스는 닳고 닳은 전쟁 용병과도 같은 눈매를 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땐 여유롭지만 속에 칼을 숨기고 있는 자의 위험한 꽃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피를 보는 것조차 지겨운 전쟁터의 지박령과도 같다.
그러면서도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를 볼 때면 뭔가 아련해지는 눈빛을 하는데······.
-다음 역은 우리 열차의 종착역 포그 우드입니다.
안내 방송이 울린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모리스는 일어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모리스 님 다 왔어요.”
“음? 아, 벌써 다 왔구나.”
아모리스는 안내 방송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모리스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털털하게 일어서 열차를 나갔다.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도 다른 사람들이 얼굴을 보면 귀찮아질 테니 검은 후드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후드엔 인식 장애 마법이 걸려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티그리스와 레인로버 그리고 아모리스를 보려고 해도 집중이 흐트러져 볼 수 없었다.
티그리스는 안개로 가득한 포그 우드를 살폈다.
포그 우드는 딱히 달라진 점이 없었다.
답답한 안개와 미몽처럼 흔들리는 푸른 불꽃으로 만들어진 마을 그대로다.
하지만 티그리스와 레인로버의 눈엔 다르게 보인다.
특히 저 답답한 안개를 밀어내는 푸른 불꽃.
저 푸른 불꽃을 아모리스가 만들고 알리지 않았다면, 안개의 땅은 영원히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금지의 땅이 되었을 것이다.
오직 신비의 땅 너머에 있는 한 사내가 오기만을 막연하게 기다렸던 한 여인의 바람 하나로 마을이 만들어지고 삶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바로 안개의 숲으로 가자.”
“그나저나 얼마나 걸릴까요?”
“길어도 현실 시간 기준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안 걸릴 거야. 체감 시간은 1시간도 안 걸릴 거고.”
따로 부적을 사거나 보급이 필요하진 않았다.
아모리스 하나만 있으면 안개의 숲에서 길을 잃을 필요도 없고 악령들에게 죽을 위험도 없으니까.
안개의 숲 초입에 들어가자 아모리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찾아갈 곳은 작은 신전이야.”
“신전이요?”
“그래. 마녀들과 호스가 세운 신전.”
아모리스는 다가오는 혼령들을 푸른 불꽃으로 밀어냈다.
“내가 처음 신비의 땅에서 나와 문명을 마주했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자매들이 인류의 적이 되었다는 것이었어.”
마녀는 마왕의 시대에서 살아 있는 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마녀들은 마왕이 만들어낸 키메라들의 정신에 간섭해 자멸시키는 교란 작전과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막는 수비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녀가 있는 전장은 100% 승전한다는 공식이 세워질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칭송받던 그녀들인데 왜 갑자기 인류를 배신한 걸까?
아모리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개인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마녀의 시대를 거치면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 왜곡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마왕의 성좌에 대해 알고 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인류의 역사가 강제로 지워지고 왜곡되면서 많은 성물들이 없어지거나 변했어.”
성물의 변화는 티그리스가 자주 사용하는 샐러맨더의 검만 봐도 알 수 있다.
샐러맨더의 검은 원래 인류를 돕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드래곤, 헨게나를 상징하는 성물이었다.
그러나 마녀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록이 왜곡되면서 샐러맨더의 검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능력도 변질되었다.
“마왕의 성좌를 인간들이 잊는 것. 그 일은 페레이라와 내가 바라던 것이긴 했어. 그걸 위해 나랑 페레이라가 마왕을 봉인한 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자매들이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 분명 무슨 음모가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난 마녀들이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고 했던 땅. 잊혀진 평원으로 향했어.”
“잊혀진 평원이라면 저희가 알고 있는 멸지 바로 아래에 있는 땅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노르베르드 가문이 지키고 있는 갈리아 산맥 위에 있는 평원을 말하는 거야. 거기서 마녀들의 신전을 발견했어.”
티그리스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잊혀진 평원에 대한 조사는 노르베르드 가문이 700년이 넘도록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신전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발견을 못 했겠지. 그 신전은 마녀들의 주술로 가려졌으니까. 마법사나 기사들은 절대 발견 못 해.”
“그렇다면 그 신전은 누구를 위한 신전이었습니까? 모시는 신이 있으니까 신전이라고 칭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인간들의 신이라곤 뭐가 있겠어. 룩스 하나지.”
레인로버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혹시 사죄하는 의미로 그 신전을 지은 걸까요?”
아모리스는 잔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내 자매들은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던 거야.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학살이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이 무너진 거지. 뭔가 기댈 것이 필요했어.”
마녀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룩스교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크게 활약했다고 들었는데, 정작 마녀들이 룩스 여신을 크게 신봉하고 있었다라······.
세상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건 신앙심만으론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 중간에 미쳐 버린 자매들이 너무나도 많았지.”
“미쳐 버렸다는 건······.”
“레인로버 하나만 물어볼게. 소환술사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게 뭐지?”
“어······.”
굉장히 쉬운 질문이라 답변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몬스터와의 교감이 너무 깊어져서 정신이 붕괴되는 거죠. 그래서 함부로 대량의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그리폰이나 와이번 같은 고지능의 몬스터를 정신 방어 마법 없이 부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
“마녀도 마찬가지야. 자매들은 인간들을 죽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심해졌는데, 심지어 대량의 몬스터를 쉬지도 않고 조종했어. 정신이 망가질 만도 했지.”
레인로버는 숨을 삼켰다.
소환술사는 정신이 붕괴하면 주변에 있던 모든 몬스터들을 자극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어모은다.
그렇다면 마녀가 정신이 붕괴되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정신이 망가진 자매는 다른 자매들이 죽일 수 없었어. 몬스터들을 이끌고 가봤자 정신이 붕괴된 마녀의 정신파에 모두 이끌려 세력만 더 커질 뿐이었으니까. 그때, 정신이 붕괴된 자매들을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어.”
티그리스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설마 그게 호스입니까?”
“맞아. 호스라면 그 몬스터 군단을 홀로 비집고 들어가 정신이 붕괴한 언니 동생들을······ 죽일 수 있는 역량이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