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17)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17화
길 잃은 자의 낙원(6)
다우드의 오만한 말투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트리샤가 아닌 아모리스였다.
“지금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아모리스가 이렇게 화끈하게 반응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 다우드는 토끼눈으로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너, 넌 뭐냐!”
“그건 알 거 없고. 그것보다 암탉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하! 어이가 없어 가지고.”
아모리스는 다우드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다우드는 자신을 향해 살기를 풀풀 날리며 걸어오는 아모리스가 굉장히 당황스러웠는지 뒷걸음질을 쳤다.
“그 말 혹시 나한테 한 말이었냐?”
“그게 아니라 트리키아에게······.”
다우드는 자신이 꼴사납게 변명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황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대신 만만한 병사들을 노려봤다.
“뭐 하느냐! 이자가 나를 겁박하고 있지 않느냐?!”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아모리스의 진득한 살기와 함께 흘러나온 귀기에 발이 묶인 것이다.
아모리스는 품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
“내가 고구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시원하게 한 대 맞고 시작하자.”
어느새 아모리스의 손엔 제인의 성질머리를 고쳐놓았던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다.
“자, 잠······!”
아모리스는 다우드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다우드는 반사적으로 아모리스의 주먹을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모리스의 노련한 주먹이 다우드의 양팔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더니, 놈의 인중에 박혔다.
“크어어어!”
다우드의 앞니가 진득한 피와 함께 투둑 떨어졌다.
뒤에 있던 병사들은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왕세자가 얻어맞아 피를 쏟고 있었다.
병사들은 덜덜 떠는 손으로 창을 치켜세웠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이오!”
트리샤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병사들의 뒤로 돌아가 당수를 쳐 기절시켰다.
레인로버는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방 전체에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다.
다우드는 붉게 충혈된 눈빛으로 아모리스를 노려봤다.
“끄으으······. 네, 네년이 지금 뭘 한 짓이나 알고 있는 거냐? 나는 이 나라의 근간이자 보배다. 당장에 네년의 사지를 잘라······.”
퍼억!
아모리스의 주먹이 다우드의 관자놀이에 꽂혔다.
영혼을 울리는 고통에 다우드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레인로버의 정신도 나가 버렸다.
“아, 아모리스 님! 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왕세자를 때려눕히다니!”
“말을 하도 싸가지 없게 하니까. 좀 예의를 가르쳐 준거지.”
트리샤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이거 뒷수습을 어떻게 하시려고······.”
“그럼 이놈하고 쓸모없는 설전이나 벌이자고? 우리한테 그렇게 시간이 많은 것 같아? 어서 이 일 끝내고 우로스를 찾으러 가야 할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너무 과격하셨습니다. 아모리스 님.”
“과격은 무슨. 이런 놈은 뒤지게 맞아도 싸. 그리고 국왕이 일어나기만 하면 모두 해결되는 거 아니야?”
아모리스는 라칸을 흘겨보며 말했다.
“라칸 어때? 고칠 수 있겠어?”
“잠시만요.”
라칸은 정신을 차리고 일단 국왕의 병세를 ‘최상급 탐색’으로 확인했다.
[푸석한 피부.] [맥이 잘 잡히지 않는다.] [저체온증.] [오러가 심장 쪽에 과도하게 모여 있다.]······
라칸은 눈앞에 뜨는 수십 개의 메시지를 분석했다.
[최종 결과]국왕의 몸은 종합병원 같다. 안 걸린 질병이 없다.
단순한 노환은 아닌 것 같지만 정확한 병명은 잘 모르겠다.
오러가 극도로 심하게 심장 쪽에 몰려 있는 이유를 찾으면 답이 나올 것 같다.
그런데 궁중 의사는 과연 국왕의 상태를 전혀 몰랐을까?
“······음. 일단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론 정확하게 무슨 병인지 알 수 없어요.”
역시 1만 포인트짜리 퀘스트답게 쉽게 해결할 수 없었다.
레인로버는 눈앞이 캄캄해져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세상에······.”
왕세자는 이빨이 부서져 기절해 있고, 왕의 침소를 지키던 병사를 기절시켜 납치 감금시켰다.
그런데 국왕을 지금 당장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단다.
“아모리스 님. 왕세자의 기억을 없애는 주술이라도 있나요?”
“그냥 죽을 때까지 때리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아모리스 님!”
아모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기억을 왜곡시키는 주술쯤이야 있긴 하지. 대충 달리다가 기둥 모서리에 대가리 박은 기억으로 만들어주면 될까?”
“······그런 게 가능한가요?”
“내가 그런 재주도 없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벌였을 것 같아? 그것보다 심각한 건 국왕의 상태지.”
라칸의 ‘탐색’ 스킬로도 정확한 병명을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국왕의 상태를 매일같이 체크했던 의사가 있을 겁니다. 그 의사를 데려와 물어보도록 하죠.”
“그런데 그 의사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그건 트리샤 경이 알고 있겠죠.”
트리샤는 기절한 병사들의 투구와 창을 들어 올렸다.
“내가 아모리스 님하고 같이 데려올게.”
“에? 나도 간다고?”
트리샤는 투구를 아모리스에게 던지며 말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든 사람이 같이 가야죠. 그럼 저만 보내시려고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아모리스는 투덜거리며 투구 안을 살폈다.
“이 녀석들 머리는 제대로 감았겠지?”
* * *
트리샤와 아모리스는 금방 의사를 데려왔다.
의사를 데려오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병사들로 폴리모프한 뒤 다우드 왕세자가 급히 불렀다고 하니, 의사는 급하게 청진기만 챙긴 채 병사들의 뒤를 따라왔다.
의사는 피를 쏟아내며 기절한 다우드와 옷이 벗겨져 손발이 묶인 병사들을 보며 기겁했다.
“와, 왕세자 저하?!”
궁중 의사로 평생 일하면서 이런 광경은 처음일 것이다.
트리샤도 처음 보는 거였으니까.
트리샤는 폴리모프 아티팩트를 끈 뒤 의사의 목에 자신의 칼, 르미르를 들이댔다.
“뭐 해. 어서 살려내.”
“누, 누구를?”
“우리 아빠.”
“네? 아빠라면······.”
의사는 고개를 돌려 트리샤의 얼굴을 슬쩍 봤다.
그러자 기겁했다.
“트리키아 공주님?!”
“역시 날 알아볼 줄 알았어. 거의 10년 만인가? 샤힌.”
“어떻게 공주 전하께서 여기에······.”
트리샤는 샤힌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네가 직무 유기를 한 게 중요한 거지. 우리 아빠가 이렇게 될 때 동안 넌 뭘 한거야?”
“저, 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노환은 저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모리스가 머리를 빗으로 쓱쓱 정리하며 말했다.
“구라치고 있네.”
“뭐?!”
“너 알고 있잖아. 국왕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샤힌은 기겁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뭐야 진짜야? 그냥 대충 찔러본 건데?”
의사는 자신이 유도심문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리자 얼굴이 시뻘개졌다.
샤힌의 목에 르미르가 살짝 파고들었다.
르미르의 능력이 발현되며 불에 덴 듯한 고통이 찾아와 샤힌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
“우리 아빠를 어떻게 한 거야.”
“저, 저도 협박을 당했습니다. 다우드 왕세자 전하께서······.”
“변명은 그만하고 어서 말해. 시간 없으니까.”
샤힌은 또박또박 설명했다.
“국왕 폐하께선 병에 걸리신 게 아닙니다.”
“그럼?”
“기생충에게 감염되신 거죠.”
“기생충?”
샤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를 다루는 기사들이 안개의 숲 너머에 있는 밀림에 가면 간혹가다 감염되어 오곤 하는 병 중 하나 입니다. 기사의 심장 쪽에 자리를 잡아 마나를 빨아먹곤 하죠.”
“설마 오러 써커를 말하는 거야?”
“네. 네. 맞습니다.”
트리샤는 샤힌의 목에 칼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히이익!”
“거짓말하지마 오러 써커에 감염되면 체온이 오히려 더 급상승해. 나도 제법 고생해 봐서 알아.”
“마, 맞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노출되면 오히려 체온이 떨어지고 기생충이 배설한 독성 성분 때문에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워집니다. 특히 국왕 폐하처럼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겐 굉장히 위험하죠.”
“넌 그걸 다 알고서 지금까지 방치해 둔거야?”
“······죄송합니다. 저도 다우드 왕세자 전하께 협박을 당해서.”
“협박은 무슨.”
놈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와 함께 놈의 목에 걸려 있는 보석 목걸이가 증명을 한다.
놈은 협박이 아니라 회유를 당한 거다.
당장에 목을 베어 죽이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힌 트리샤는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병세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지,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기생충에 오러를 빼앗겨서 몸이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버티신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낫게 할 수 있냐고!”
샤힌은 손을 싹싹 빌었다.
“정말로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기생충은 장기에 가득할 거고 외과 수술로도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게다가 연세도 많으셔서 도저히 회복하실 수 있는 방법이······.”
“아뇨. 있어요.”
라칸의 말에 샤힌은 눈을 크게 떴다.
“오러 써커에게 장기간 중독된 게 맞고 인체 면역력만 떨어진 게 확실하다면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어떻게?!”
“기생충이야 밀림에서 사용하는 구충제로 모두 죽이면 될 일이고, 떨어진 면역력과 체력은 영약으로 채우면 돼죠.”
샤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몸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기생충이 죽으면서 내뿜을 독소를 생각하면······ 컥!”
라칸은 샤힌의 턱에 주먹을 갈겼다.
샤힌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졌다.
트리샤나 레인로버는 어이없다는 듯이 라칸을 쳐다봤다.
“라칸, 너도 아모리스 님을 닮아가는 거야?!”
“아모리스 님의 말대로 잡설이 길어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아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그치.”
라칸은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오러 써커 전용 구충제]가격: 1,000포인트.
무려 1,000포인트.
진짜 비싸긴 하지만 앞으로 구매할 영약에 비하면 그리 싸지 않다.
[황금계의 심장]가격: 10,000포인트.
개수: 1개.
무려 1만 포인트짜리 영약.
티그리스가 먹었던 별빛을 머금은 얼음 정수를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하려면 1만 포인트 정도니 그것과 비견될 정도로 값이 비싸다.
하지만 돈값은 충분히 한다.
황금계의 영단은 보양과 체력 증진에 한해선 거의 최상급 영약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기생충 때문에 떨어진 체력을 단번에 채워줄 것이다.
물론 양기가 너무 강해서 이걸 먹이면 이사의 몸은 들끓어 오르는 열기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양기를 중화시켜 줄 수 있는 음기가 강한 영약이 필요하다.
라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작은 뿌리를 꺼냈다.
그건 천 년 묵은 설삼(雪蔘)이었다.
“라칸, 그건 너 먹으라고 준 영약이잖아? 왜 아직도 안 먹은 거야?”
“총기 개발하느라 시간이 없어서요. 뭐, 어쨌든 지금 사용할 수 있으니 좋죠.”
좋은 영약 두 개를 구했으니 나머지는 라칸의 연금술의 몫이다.
이제 황금계의 심장과 천 년 묵은 설삼을 적절히 조합해서 이사의 몸에 맞는 영약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라칸의 설명을 모두 들은 트리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할 수 있겠어?”
“영약을 배합하는 것도 못 하면 스승님께 혼나요. 장비도 아공간 주머니에 다 있으니 금방 만들 수 있어요.”
라칸은 퀘스트 창을 열었다.
[이사 국왕을 살려라]보상: 10,000포인트.
기간: 나흘.
벌써 11,000포인트를 썼으니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고 생각했을 때 11,000포인트와 귀한 영약 하나 정도의 교환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물론 시간을 더 들여서 방법을 찾으면 더 싸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라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라칸은 포인트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티그리스의 말대로 포인트는 라칸이 이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괜한 손익을 따지기보다 한 인간과 국가를 구하기 위해 11,000포인트를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보다 세 분이 해주실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
“국왕 폐하께서 영약을 드시고 난 이후에 언제 깨어나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때까지 이 침실에 아무도 들여선 안 됩니다.”
“치료에 방해가 돼선 안 된다는 말이지?”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으음······. 얼마나 걸릴까?”
“확실하게 낫긴 하겠지만 하루가 될지 나흘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이사 국왕 폐하께 달렸거든요.”
“그럼 그동안 이 네 사람을 잡아둬야 한다는 말이지?”
“네. 맞습니다.”
레인로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이 녀석들의 몸으로 폴리모프한 다음에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가능하시겠습니까?”
“안 되면 되게 해야죠. 트리샤 경이 고디바 왕국 문화를 잘 알고 있을 테니 다우드로 변하시고, 아모리스 님과 저는 병사로 변하도록 하죠. 그리고 샤힌은······.”
“샤힌은 제가 괜한 짓 못 하도록 붙잡아두겠습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트리샤는 자기가 혐오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에 눈썹을 찌푸렸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기왕 다우드로 변한 김에 어떻게 하면 남쪽으로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을지 나름대로 찾아볼게요.”
“나랑 아모리스 님은 침소 안으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할게요. 그동안 들키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트리샤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해볼게요.”
* * *
다우드가 된 트리샤는 사실 좀 긴장했다.
다우드의 성격도 잘 모르고 다우드가 평소에 뭘 하는지 정확히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소문대로 망나니처럼 굴면 될까 싶으면서도 망나니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트리샤는 집무실에 가만히 앉아 일단 누군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그때, 한 시종이 들어오며 다우드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우드 왕세자 저하. 바르그 재상이 저하를 뵙고자 합니다. 들여보내도 되겠습니까?”
아모리스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들라 하라.”
시종이 당황했다.
“예?”
“응?”
“아, 아닙니다. 들라고 하겠습니다.”
시종은 닫았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르그 재상이 들어왔다.
바르그 재상은 트리샤도 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즈라크 가문의 일원이자 일평생 고디바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가신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결국 재상이 되셨구나.’
트리샤가 떠날 땐 어떤 직책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재상이 아니라 재무국에서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바르그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걸어 들어와 트리샤에게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붉은 사막의 일족을 뵙습니다.”
“좋은 아침일세.”
“······?”
바르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트리샤는 자기가 실수했나 싶어 등허리를 타고 땀이 줄줄 흘렀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십니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했을 뿐인데 도대체 왜 저런 반응이 나오는걸까?
트리샤는 괜한 질문이 또 나오기 전에 빠르게 답했다.
“그것보다 왜 온 거지?”
“오늘 아침 조정 회의 결과를 보고드리려고 왔습니다.”
트리샤는 국정 업무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조정 회의는 국왕이 무조건 참석하게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처럼 국왕이 아플 경우엔 왕세자가 같이 가는 게 좋은데 왜 자신을 부르지 않은거지?
설마 국정 업무도 다 내팽개쳐 줘야 망나니라고 불리는 걸까?
트리샤는 눈치 좋게 노선을 변경하기로 했다.
“말하든 말든 알아서 하게.”
트리샤가 귀찮다는 듯이 말을 하자 그제야 바르그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현재 국채 만기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루체트 황국으로부터 당장 국채를 갚지 않는다면 루체트 황국 은행에 있는 모든 계좌를 동결시키겠다고 합니다.”
“미르그 부족을 포함한 12개의 부족들이 남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적 떼 소탕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해결하지 않을 시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재상의 보고가 쭉 이어지자 트리샤의 머릿속에 남는 생각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나라가 이 꼴이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한거야?!’
트리샤는 당장에 침실에 기절해 있는 다우드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재상의 보고는 무려 30분간 지속되었고 보고가 끝나자 재상은 고개를 숙였다.
“끝까지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왕세자 저하.”
가만히 듣기만 했는데도 감사를 받다니.
망나니로 살면서 칭찬받기 참 편하다.
“이 안건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게.”
“또 그렇게 미루시기만 하면······.”
재상은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생각을 해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으니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여기 조정 회의 결과 보고서는 놓고 가겠습니다. 찬찬히 생각하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바르그가 고개를 숙이고 떠나려 하자 트리샤는 바르그를 불렀다.
“재상.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재상의 눈빛이 반짝였다.
돌아온 탕아가 잘못을 뉘우치자 기뻐하는 부모의 눈빛이었다.
“예! 무엇이든 하문하십시오.”
트리샤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망나니처럼 지르기로 했다.
“사막 남쪽으로 휴가를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재상의 눈에 깊은 실망이 담겼다.
“평소처럼 투투를 타고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혹시 투투의 날개가 다치기라도 했습니까?”
“어······.”
“그럼 소신은 업무가 바쁘기에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상은 그 말을 끝으로 밖으로 나갔다.
트리샤는 재상이 나가자마자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지?!”
투투.
고디바 왕국의 국조(國鳥)이자 고디바 사막의 토종 독수리로 그리폰이나 와이번처럼 사람을 태우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걸 타고 남쪽으로 가면 몬스터나 도적 떼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빠가 일어나면 투투를 좀 빌려달라고 해야겠다.’
어서 아빠가 일어나야 할 텐데······.
트리샤는 일분일초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