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1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18화
길 잃은 자의 낙원(7)
트리샤가 다우드로 살아간 지 약 이틀 정도 되었을 무렵.
국왕이 병마를 이겨내고 정신을 차렸다.
트리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침소로 향했다.
트리샤가 국왕을 찾아갔을 땐 라칸이 만들어준 스프를 떠먹고 있었다.
“······트리키아.”
트리샤는 국왕이 일어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해 두었다.
몸은 좀 괜찮냐.
어서 털고 일어나라.
지금 당신이 누워 있는 사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만큼 쌓였다.
이런 식으로 최대한 덤덤하고 털털하게 국왕을 대할 생각이었다.
막상 정신을 차린 국왕을 보니 트리샤의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 담겼다.
“······몸은 괜찮아?”
“괜찮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국왕의 정감 넘치는 목소리와 그리움이 잔뜩 묻어난 말투에 트리샤는 한편으론 기분 좋기도 하면서도 굉장히 낯설었다.
트리샤의 기억 속 국왕은 언제나 강철처럼 강인한 사내였기 때문이었다.
국왕은 트리샤와 언니 오빠들에게 왕가의 일원으로서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물론 트리샤는 다 무시하고 어렸을 때부터 애교가 많아 국왕을 미소 짓게 했지만······.
엄하게 대할 땐 호랑이보다 무서울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강철도 녹슬게 만드는 법이다.
트리샤의 눈에 담긴 국왕은 늙고 지친 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라칸이라고 했던가? 제법 솜씨가 좋더구나. 몸에 기운은 아직 없다만 한 달 전보다 훨씬 좋다.”
트리샤는 말을 조심히 골랐다.
국왕에게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고, 국왕이 병들어 눕게 된 이유가 다우드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해야만 했다.
“그게 사실······.”
트리샤가 머뭇거리자 국왕은 손을 내저었다.
“설명은 대충 라칸이라는 자에게 들었다. 다우드가 날 죽이려고 했다지?”
트리샤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일어나자마자 알게 된 사실이 아들의 배신이라니.
국왕의 몸에 힘이 없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구나. 너무 오래 살았어.”
이사는 한쪽에 기절해 있는 다우드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우드를 어떻게 할 셈이냐?”
“그건 아버지께서 정하셔야죠.”
“······난 모르겠구나.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다우드를 너무 못살게 굴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국왕의 마음은 진작에 꺾인 지 오래였다.
“차라리 죽었으면 이 꼴을 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트리샤의 주먹이 떨렸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써야만 했는데 지금 그런 말이 나오냐고.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입술을 씹어 삼켰다.
지금의 국왕은 트리샤가 기억하고 있는 국왕이 아니다.
일단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이 차올라도 참아두자.
국왕은 트리샤의 떠는 손과 실망으로 가득 찬 눈빛을 외면했다.
“졸립구나. 미안하다만 좀 자겠다.”
국왕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고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
트리샤는 라칸을 데리고 바로 옆에 있는 서재로 향했다.
“라칸. 물어볼 게 있어.”
“혹시 카이라에게 당한 게 아니냐고요?”
“어. 우리 아빠가 저렇게 나약하실 리가 없어. 내가 결혼을 하기 싫다고 그렇게 고함을 치고 미친 척을 했는데도 무조건 성사시키겠다고 말한 그 인간이······.”
트리샤는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라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세뇌의 흔적이나 카이라와 접촉한 흔적은 없었어요. 혹시 아모리스 님이 국왕 폐하께서 주술에 당한 건가 확인해 봤지만 당한 흔적도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마음마저 늙고 녹슬어 버린 저 사람이 진짜 아빠란 말인가?
트리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긴 했잖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아들에게 살해당할 뻔했으니까요. 정신적으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트리샤는 얼굴을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편지를 보낼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정말 믿기지가 않네.”
왕이 칭송받는 이유는 왕이라는 이름의 권력이 아닌 능력 때문이라고 늘 강조했던 강철 같은 인간이다.
그런데 저렇게 무른 진흙처럼 나약해질 줄이야.
차라리 덤덤하게 일어나 왕성에 몰래 잠입했던 트리샤에게 품위 없다고 노성을 터뜨렸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트리샤는 저런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지금 이곳까지 달려온 게 아니었다.
“우리 아빠 괜찮을까?”
“······모르겠어요.”
육신의 병은 고칠 수 있어도 마음의 병은 고칠 수 없다.
“말끔히 털고 일어나길 기다릴 수밖에요.”
* * *
물빛으로 물든 하늘에 새벽별들이 총총히 떠 있는 새벽녘.
이사는 눈을 떴다.
이사의 손등 위엔 거칠지만 따뜻한 여인의 손이 이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의 주인은 트리샤였다.
트리샤는 이사를 간호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는지 침대에 제대로 눕지 않고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많이 거칠어졌구나.’
어렸을 적 트리샤는 검술 훈련을 좋아해서 손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손바닥에 박여 있었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보드라움이 향수처럼 남아 있었다.
이 거친 손을 보니 고디바 왕국을 떠나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사는 손을 들어 트리샤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려다가 멈칫했다.
-난 사막의 최고의 여전사가 될 거야!
-아빠 이것 봐. 나 별이 생겼어! 나 재능이 있나 봐!
-아빠? 아니지? 정말 나 결혼하는 거 아니지?
-아빠, 나 진짜 결혼하기 싫어. 난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아빠! 아빠아아아!
이사는 손을 다시 거뒀다.
이사는 가슴이 너무 아파 트리샤를 도저히 볼 수 가 없었다.
이사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어릴 적 트리샤의 절규가 더욱 선명히 보였다.
다시 눈을 뜨자니 트리샤가 보인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의 개미지옥에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손을 빼자니 트리샤의 손과 온기가 너무 그립다.
이사의 깊은 주름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딸인데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지? 왜 망설여?”
이사는 창가에 들려온 묘령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불 꺼진 곰방대를 들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아모리스였다.
“······트리샤의 동료인가?”
“동료라. 그리운 단어네.”
죽음의 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갔다가 와서일까?
아니면 이사가 충분히 늙어서일까?
아모리스의 말투와 목소리 그리고 눈빛과 손짓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혜와 후회의 냄새가 꽃향기처럼 은은하게 났다.
그래서 그런지 아모리스가 반말을 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아모리스는 비어버린 곰방대에 담뱃잎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그것보다 어때? 죽다가 살아난 기분은?”
“······이런 꼴을 볼 거라면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모리스는 피식 웃었다.
“나도 이해해. 차라리 잊었으면 하는 기억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거든.”
아모리스는 기억이 되살아난 이후에 잠에 잘 들지 못한다.
잠이 들면 생생한 악몽이 그녀를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모리스는 남에게 표출하지 않았다.
자신이 불면증에 걸렸다는 것을 들키면 티그리스나 레인로버에게 괜한 마음의 짐을 지워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남의 고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도 노인을 병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1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네가 겪는 고통은 새로운 기억과 고통으로 덧씌워져 잊혀질 테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이사의 질문에 아모리스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미 아모리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오래전에 내렸기 때문이었다.
“난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이미 만났다고 할 수 있지만 만났다고 하기엔 그 사람은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급한 일이 끝나면 그 남자를 만나러 가 볼까 해.”
이사는 아모리스가 도저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녀가 굉장히 슬퍼한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아모리스는 트리샤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도 죽기 전에 트리샤를 보고 싶어서 그 편지를 보낸 거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그래서 더 미안합니다. 이렇게 착한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려 했다니. 신께서도 무심하지지. 이렇게 착한 아이를 왜 이 못난 아비의 밑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아모리스는 가만히 이사가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건 모두 제가 잘못한 일입니다. 다우드나 트리샤나 제가 너무 아이들에게 과중한 책무를 떠맡게 했습니다. 다우드가 비틀린 것도 제가 너무 강하게 키우려고 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고디바 왕국은 수십 개의 부족들이 뭉친 왕국인 만큼 왕권이 그리 강하지 못하다.
과거엔 드래곤을 사냥했던 하마자르 왕가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으로 많은 부족들이 따랐지만, 드래곤 슬레이어의 영광은 시간과 바람에 깎여 희미해졌다.
그래서 이사는 막 직위 했을 때 굉장한 고초를 많이 겪었다.
늙은 부족장들은 차기 왕이 된 이사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가신들도 왕의 명의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는 다우드를 더욱 다그쳤다.
강인한 왕이 되려면 많은 지식을 섭렵해야 했기에 어려서부터 제왕 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우드는 이사가 만족할 만큼 따라와 주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다우드에게 핀잔을 주며 호통을 쳤다.
“트리샤가 태어났을 무렵이니 다우드가 14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다우드가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우드는 내 눈을 피해 자꾸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뮬을 드나들기 시작했죠.”
다우드는 이사에게 혼날 때마다 뮬을 갔다.
그곳엔 이사에게 들을 수 없는 달콤한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론 겉잡을 수 없이 다우드는 변했습니다. 더욱 방탕해지고 주색잡기에 빠졌습니다. 뮬이 원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그때 이후부터 뮬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뮬에서 만난 부족장들과 회합 핑계로 뮬에 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죠.”
이사의 주름진 피부를 타고 눈물이 흘렀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다우드를 엇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제가 잘못한 일입니다. 다우드가 저를 죽이려고 한 것도······.”
아모리스는 더 이상 이사의 자책을 들을 수 없어 말을 끊었다.
“다우드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만 너를 닮은 거였네.”
“······네?”
“도저히 해볼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하니까 도피하려고 하는 게.”
아모리스는 곰방대를 꺾어 부러뜨린 뒤, 화로에 던져 넣었다.
“지금 네가 죽는다고 다우드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 네가 낳은 자식이고 네가 저지른 잘못이라면 네가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해야지 죽어서 도망가려고 해?”
아모리스는 다우드를 노려봤다.
“네가 그딴 말을 하니까 트리샤가 힘들어하는 거 아니야. 차라리 나쁜 놈이 될 거였으면 끝까지 나쁜 놈이 되든가 어중간하게 착해 빠져 가지고 주변 사람을 힘들게 만들어.”
아모리스는 건틀릿을 꺼냈다.
“그래. 차라리 죽을 거라고 그렇게 한탄할 거면 내가 지금 죽여주는 게 낫겠네. 딱 대. 한 방에 보내줄라니까.”
아모리스가 진짜 죽일 것처럼 다가오자 이사의 몸이 떨렸다.
“그, 그게 아니라.”
“얼씨구 겁먹는 표정도 다우드 그놈하고 아주 쏙 빼닮았네.”
아모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도 사람이니 잠깐 약해지고 길을 잃을 수 있어. 하지만 네가 이 나라의 국왕이고 아버지면 정신을 빨리 차려야지. 그러라고 지금 이 호화로운 방에서 잠을 자고 먹고 싸는 거 아니야?”
아모리스의 신랄한 말에 이사는 순간 가슴이 조여올 듯이 아파왔다.
-네가 이렇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건 네가 책임져야 할 백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우드에게 했던 말이 자신에게 돌아오다니.
이젠 숨이 막혀왔다.
이사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자 아모리스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이사의 이마를 눌렀다.
“그러니 조금만 더 자고 정신 차려. 아무리 지치고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네가 해내야 하는 일이니까.”
이사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처럼 말했다.
“두렵습니다.”
“나도 알아.”
이사는 몰려오는 수마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넌 해내야만 해. 그게 아버지고 왕이니까.”
아모리스의 마법과도 같은 목소리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이사는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다가 다시 감았다.
눈을 뜨는 것이 두렵다.
다우드의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당최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감추기엔 다우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너무나도 많다.
역모를 꾀한 자는 왕세자라고 해도 무조건 참수형이다.
속이 쓰리고 아파오며 심장이 조여온다.
다우드가 엇나가게 된 것도 이사의 탓이다.
그런데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사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기절한 병사도 묶여 있던 다우드도 손을 잡아주던 트리샤도.
이사는 메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봐라.”
이사의 말에 문이 열리며 시종이 고개를 숙였다.
“예. 전하.”
“······트리키아와 다우드는 어디에 있느냐?”
시종은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다우드 왕세자 전하께선 역모죄로 현재 근신 중이고 트리키아 공주님은 아침을 먹고 계십니다.”
이사는 결심하고 이불을 걷었다.
“관(冠)을 준비해라. 앞으로 1시간 뒤 조정 회의를 열겠다.”
그녀의 말대로 결국 부딪쳐야 하는 법.
죽었어야 했던 생이 연장이 되었다면, 그건 하늘이 아직 이사에게 남긴 일이 있기 때문이리라.
* * *
다우드는 집기를 집어 던지고 부쉈다.
“으아아아아!”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국왕이 죽기만 한다면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지존이 될 수 있었다.
다우드는 힘이 빠져 부서진 집기들 사이에 파묻혔다.
그리고 이미 피가 철철 흐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젠장할······! 젠장할!”
다우드는 굉장히 무서웠다.
그 무서운 아버지가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지 않을까?
감히 패륜을 저지른 놈이 국왕이 될 자격이 있을 것 같으냐며 혼을 내시지 않을까?
다우드는 그때처럼 길을 다시 잃은 기분이었다.
14살이 되었을 무렵, 아버지의 회초리가 무서워 낙타를 타고 도망쳤던 밤.
다우드는 한기가 스며드는 추운 사막 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리고 길을 잃은 곳에 다우드만의 아름다운 낙원이 있었다.
다우드를 사랑해 주고 다우드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괜찮다며 토닥여 주던 그 길을 잃은 낙원.
다우드는 몸을 둥굴게 말았다.
제발 다시 그곳으로 보내줘.
그녀가 있는 곳으로 나를 보내줘.
아빠를 다시 볼 자신이 없어.
아빠의 회초리가 무서워.
아빠의 싸늘한 눈빛이 무서워.
아빠가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나를 다시 낙원으로 보내줘.
제발.
그때, 부드러운 모래가 뒤섞인 바람이 다우드의 뒷목을 간질였다.
“어······?”
다우드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피로 절여진 손가락이 거친 모래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다우드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낙원이다.”
다우드는 갓 태어난 낙타처럼 비틀거리며.
마치 어린아이가 어미의 젖을 찾듯.
무너질 것 같은 미소와 함께.
길을 잃은 자의 낙원.
뮬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