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2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21화
길 잃은 자의 낙원(10)
레인로버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적들을 어떻게 사용하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뮬을 한번 갔던 사람이라면 더 쉽게 뮬에 오고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도적에게 뮬을 찾게 만들고 저희는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하긴 뮬을 여러 번 오고 갔던 사람이라면 더 쉽게 갈 수 있는 노하우가 있겠지.”
“그러면 도적 33명 모두 데리고 가야 하나?”
33명을 묶어놓는 것과 33명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은 난이도가 다르다.
도적 놈들이 무슨 순한 양 떼들도 아니고 라칸의 지시에 정확히 따라줄 리가 없었다.
틈만 보이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하겠지.
“당연히 저 도적들을 모두 데려가서 좋을 건 없겠죠. 한두 명이면 충분할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건데?”
아모리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죽여야지. 저놈들 딱 봐도 도적질을 한두 번 해본 것 같진 않잖아? 살려두면 다른 피해자가 분명히 생길 거야.”
아모리스의 말을 들은 레인로버는 본능적인 거부감에 눈썹을 찌푸렸다.
“……맞는 말씀이시긴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주변 오아시스 도시에 도적들의 처분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요.”
“언제 그놈들을 오아시스 도시까지 보내는데. 그리고 오아시스 도시에 놈들을 맡기는 것도 문제야. 사마곤 남쪽으로 모두 카이라의 영향권이라면서. 우리가 다른 도시에 입성하는 순간 카이라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몇 분 내로 알아챌 수 있어.”
라칸이 단검을 빼어 들며 일어났다.
“아모리스 님의 말씀이 맞아요. 지금은 우리가 물렁하게 나올 정도로 여유로운 형편이 아니에요.”
라칸의 번쩍이는 단검을 보자 아모리스는 살짝 당황했다.
“라칸! 네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 차라리 내가……”
“제가 트리샤 씨나 아모리스 씨를 시켜서 죽이는 것하고 제가 직접 죽이는 것하곤 무게가 다르죠. 이건 리더인 제가 해야 할 일이에요.”
라칸을 붙잡으려던 아모리스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라칸의 단호한 눈빛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눈빛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여기에 잠깐 있어주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라칸은 아모리스의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을 외면하고 동굴 밖을 나섰다.
* * *
라칸이 동굴 밖으로 나간 지 1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동굴 안은 조용하다 못해 숨이 막혔다.
라칸이 살인을 경험해 본 것은 처음이 아니긴 하지만, 완전 무방비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처형하는 건 트리샤나 레인로버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면 상대가 나를 공격해 오니까 어쩔 수 없이 죽였다는 핑계 따윈 먹히지 않는 처형은 인간의 감정을 빠르게 마모시킨다.
아모리스는 30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 것보다 이번 일로 인해 라칸의 마음이 많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밖에 잠시 나가볼까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조심스럽게 밖을 나가려는 순간 동굴 안으로 라칸이 들어왔다.
라칸의 손과 발엔 피가 아닌 메마른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다 끝난…… 건가요?”
트리샤는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라칸의 쓴 미소와 초연한 눈빛에서 묻어 나온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네. 이제 출발하죠.”
아모리스는 라칸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갔다.
밖을 나가니 보이지 않던 32개의 모래 무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무덤에서 죽음의 향기가 났고 라칸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처리했음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아모리스는 가슴이 쑤시듯 아팠다.
‘너는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페레이라는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먼저 자처하고 나섰다.
더러운 일을 하기엔 호스는 고상하고, 아하드는 여렸으며, 아처피터는 소심했고, 아모리스는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그러니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언제나 페레이라였고, 모두가 페레이라의 검에 피가 묻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험난한 세월을 거치면서 모두가 페레이라처럼 더러운 일쯤이야 눈을 똑바로 뜨고도 하게 되는 빌어먹을 놈들이 되긴 했지만…….
리더라는 이름값에 어울리게 궂은일을 제일 먼저 나서는 사람은 페레이라 하나밖에 없었다.
얼마나 멍하니 무덤을 쳐다본 걸까?
어느새 레인로버와 조종사들이 나왔다.
레인로버나 트리샤도 살짝 충격을 받았는지 멍하니 무덤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예상이 갔기에 아모리스는 라칸이 나오기 전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괜히 신경 쓰는 표정 짓지 마. 그게 라칸에게 더 상처니까.”
아모리스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칸이 개인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뮬로 가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요.”
트리샤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뭔데?”
“뮬에 가려면 투투는 놓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역시 하늘을 날아서 뮬에 갈 순 없겠지?”
“어찌 됐건 뮬에 가려면 길을 잃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투투를 이용해서 하늘을 날면 지형이 한눈에 다 보이니 길을 잃을래야 잃을 수가 없겠죠.”
“그럼 그냥 걸어가면 되나?”
라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도적들이 타고 온 낙타 네 마리를 남겨놨어요. 도적이 앞에 서서 걷게 하고 우리는 도적의 뒤를 따라가면 될 거예요.”
라칸은 투투 조종사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아쉽지만 여러분과는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투투 조종사 하나가 입을 열었다.
“뮬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서 대기하는 건 안 되겠습니까?”
“뮬에서 나와 저희가 이곳으로 올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해요.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뮬에서 체류하게 될지 알 수도 없고요. 그리고…….”
라칸은 무덤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긴 도적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하루라도 빨리 사마곤에 돌아가시는 게 나으실 거예요.”
라칸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기에 투투 조종사들은 잠시 쑥덕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동안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오히려 편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주셔서 저희가 감사드리죠.”
투투 조종사들은 트리샤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트리키아 공주님.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 * *
사막 한가운데를 떠돌기 시작한 지 거의 2시간이 지났다.
트리샤는 쏟아지는 땀과 뜨거운 햇빛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투투가 그립네요.”
아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투투를 타고 날 때도 햇빛이 뜨겁긴 마찬가지였지만, 맞바람 덕분에 땀이 금방 식어 굉장히 시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투투에 비하면 달팽이나 다름이 없는 낙타를 타고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하니 짜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그러다 보니 레인로버는 더더욱 세 사람 눈치가 보였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가 준 북극성의 망토 덕분에 땀이 하나도 나지 않아 굉장히 쾌적했기 때문이었다.
레인로버가 아모리스를 보며 말했다.
“제 망토 빌려 드릴까요?”
“됐어. 티그리스가 준 물건인데 어떻게 뺏냐. 그것보다…….”
아모리스는 앞에 걸어가는 도적을 쏘아보며 말했다.
“야!”
“네, 넵!”
“얼마나 걸려?”
도적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것이 원래 뮬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립니다…….”
“얼마나 걸리는데.”
“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도착할 겁니다.”
“너 분명 30분 전에도 금방 도착할 거라고 했잖아!”
“그, 그게 사실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아모리스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럼 그걸 더 빨리 말해야 할 거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도적은 말없이 수평선만 바라보는 라칸을 슬쩍 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너무 무서워서……. 이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라칸은 도적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 방법이 뭔데?”
“그게 사실 뮬에 처음 가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려 합니다. 그래서 처음 가는 사람에겐 눈을 가리게 만든 뒤 걷게 만듭니다.”
“그래야 방향 감각을 잃으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트리샤는 눈을 가렸다는 말에 뭔가 이상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뮬에 처음 데려갔다는 사람들 모두 어떤 사람들이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여행객을 납치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 그건…….”
도적이 말을 하지 못하자 트리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불에 순간 칼을 빼어 들 뻔했다.
“납치한 사람들이네. 그치? 너 그 사람들 어떻게 했어?”
도적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그게……. 남자는 결투장에 팔고 여자는…… 무희들에게 팔아넘겨서 잘…….”
“어린아이는?”
“…….”
“저 X발 새끼가……!”
도적놈들은 넷이 생각했던 것보다 쓰레기였다.
트리샤가 잔뜩 흥분해 칼이라도 빼어 들 기세로 다가가자 아모리스가 막았다.
“됐어. 더 깊게 파고들어 봤자 우리 귀만 더러워지지.”
레인로버까지 나서서 트리샤를 말리자 겨우 진정했다.
트리샤는 놈이 보기도 싫은 지 그냥 아예 제일 뒤로 가버렸다.
라칸은 뒤를 돌아 세 사람을 쳐다봤다.
“그것보다 어떻게 하실래요? 눈을 가리면 더 빨리 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데요.”
“음…….”
도적이 비무장 상태라곤 하나 눈을 가리고 이동하는 건 조금 위험해 보인다.
놈이 이상한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대로 가면 얼마나 사막을 떠돌아야 할지 알 수 없다.
아모리스가 입을 열었다.
“녀석 말을 한번 들어보자. 제까짓 게 뭘 어떻게 하겠어.”
트리샤는 품속에서 번뜩이는 단검을 꺼내며 말했다.
“허튼짓하면 이게 네 등허리에 박힐 줄 알아.”
“네, 네!”
네 사람은 적당한 두건을 하나 꺼내 눈을 가렸다.
“그,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긴 했지만 확실히 방향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때마침 태양이 정수리에 올라온 정오였기 때문에 태양열로 동서남북 위치를 가늠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체감상 10분 정도 낙타를 타고 걸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잘 가던 낙타가 멈췄다.
낙타가 갑자기 멈추자 네 사람은 시야를 가린 두건을 올렸다.
뜨거운 태양빛이 갑자기 눈으로 쏟아지자 섬광 마법을 맞은 것처럼 눈앞이 순간 보이지 않았다.
눈이 햇빛에 적응이 되자 네 사람은 입을 떡 벌렸다.
황금으로 빚은 듯한 반짝이는 성문과 눈이 따가울 정도로 새하얀 성벽이 마치 거인처럼 네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저곳은 환락 도시 뮬이었다.
타다다닷!
그 아름답고 웅장한 성을 향해 도적은 미친 듯이 달렸다.
“살려줘! 제발 살려…… 케엑!”
도적이 성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트리샤의 단검이 눈 깜짝할 새에 놈의 등에 박혔다.
등허리를 뚫고 들어가 척추를 부수고 심장까지 꿰뚫었으니 도적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도적은 몇 번 손을 모래에 허우적거리더니 결국 숨이 끊어졌다.
“내가 말했지. 허튼짓하면 죽인다고.”
라칸은 트리샤의 과격한 손속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도적의 쓸모는 여기까지 이기도 하니까.
라칸은 주변을 훑었다.
“주변에 태양을 피할 만한 바위나 동굴 같은 건 보이지 않네요.”
“그러게 완전 허허벌판이야.”
“저기 성밖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요?”
라칸은 망원경을 꺼내 들어 레인로버가 가리킨 오른쪽 끝을 쳐다봤다.
“저건 쓰레기 처리장 같은데요.”
“쓰레기 처리장?”
“네. 성안에서 발생한 쓰레기들을 모두 처리할 순 없으니까요. 모았다가 밖에다가 버리는 모양이에요.”
라칸은 주변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쓰레기 처리장 쪽으로 가볼까요? 임시 거처도 만들어야 하니까요.”
아모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임시 거처를 만드는 건 우리가 할게. 넌 어서 안에 들어가서 우로스를 찾는 게 나을 것 같아. 트리샤, 천체지도 반응은 어때?”
트리샤는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사용해 우로스의 위치를 빠르게 탐색했다.
“역시 뮬에 우로스가 있는 게 맞았어요. 바로 앞에서 신호가 와요.”
“우로스를 딴 놈들이 채가기 전에 일단 우로스의 위치부터 알아 와. 그리고 저기 쓰레기장에서 만나는 거로 하자. 만약 12시간 내로 나오지 않으면 우리가 돌입할게.”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만약 늦을 것 같으면 수정구로 연락을 드릴게요. 혹시 밖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수정구로 연락을 할게. 수정구가 진동하면 연락 줘. 그리고…….”
아모리스는 라칸의 팔찌를 가리키며 말했다.
“폴리모프 마법 잊지 말고 사용하고.”
* * *
성문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라칸은 웅장한 성벽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마곤에 있던 고디바 왕국의 왕성의 성벽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이런 거대한 성벽이 도시 하나를 감싸고 있다니.
이런 건축물을 이 척박한 땅에 누가 어떻게 지었을까 굉장히 궁금했다.
성문에 다가갈수록 라칸은 주변에 모르는 일행들이 늘어났다.
마치 신기루처럼 낙타를 탄 사내들이 양옆 앞 뒤에서 등장했다.
값비싼 도자기나 비단, 소금 등을 낙타에 실은 유랑 상인도 있었고, 맨몸으로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으며,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온몸을 도배한 부호도 보였다.
그리고 눈을 가린 여인과 사내들을 줄에 묶어 끌고 가는 도적들도 보였다.
‘남부에 도적이 들끓는 이유가 이거군.’
값비싼 향유나 비단을 구해 파는 것보다 작은 오아시스 도시를 습격하거나 여행자를 잡아다가 뮬에 팔아넘기는 게 저들의 입장에선 더 쉬울 테니까.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성문 앞에 당도했다.
성문이 워낙 거대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가도 병목현상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분 나쁜 달콤한 냄새에 라칸은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가 발현 중입니다.]눈앞에 뜬 메시지에 라칸은 눈썹을 찌푸렸다.
성안에 들어가자마자 세뇌가 작동하는 건가?
라칸은 같이 들어온 상인들과 도적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풀려 있었다.
“오빠~ 너무 오랜만 아니야?”
하늘하늘한 옷차림을 한 무희.
서큐버스들이 달려와 사내들을 반겼다.
서큐버스들은 들은 것처럼 굉장히 아름다웠다.
남자라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외모와 미소 그리고 가벼운 터치까지.
남자를 미치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라칸은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얼굴이 다 똑같아.’
무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똑같은 얼굴을 갖고 있었다.
마치 도플갱어처럼 오른쪽 눈 아래에 눈물점이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미소 지을 때 생기는 눈주름의 위치까지.
모두 똑같았다.
그런데 사내들은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움직이자.’
서큐버스들이 다른 사내들을 사냥할 때가 기회다.
낙타를 버리고 도시로 잠입해 우로스를 찾아야만 했다.
그때, 라칸의 옆에서 달콤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한심하지? 여자들에게 빠져서 헤벌레 웃는 게.”
라칸은 잔뜩 긴장한 채 옆을 쳐다봤다.
다른 무희들과 똑같은 얼굴.
하지만 미소 짓는 방법이 달랐다.
라칸에게 다가온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라칸의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경고 알람이 울린다.
당장에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언제 오나 기다렸어. 라칸.”
여인의 날카로운 손톱이 라칸의 목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라칸의 여린 피부에 생채기가 나며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가 발현 중입니다.]“넌…….”
“그러고 보니 예의 없게 내 소개를 못 했네. 미안해.”
여인은 한 발자국 물러나 깊은 가슴골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난 길 잃은 자의 도시, 뮬의 성주. 카이라라고 해.”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가 발현 중입니다.]“너랑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있는데 잠깐 따라와 줄 수 있을까?”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가 발현 중입니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가 발현 중입니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가 발현 중입니다.]라칸은 눈앞에 뜨는 무수히 많은 메시지를 치우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