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28)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28화
복귀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겨울이 왔다.
체감상 며칠 전에 시작했었던 것 같던 트리니티의 2학기는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간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성장했다.
아이린은 키가 훌쩍 커져 리니아와 비슷한 171㎝에 안착해 성장을 멈췄다.
아이린의 신장이 커지니 대검을 다루는 것이 더욱 매끄러워졌지만, 아직 변화한 몸에 적응이 덜 됐는지 간혹 검로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 육체에 적응하고 있었고, 잘하면 내년 초에 4번째 고리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샤를로트 또한 아이린의 급격한 성장에 자극을 받았는지 오러를 세밀하게 다루는 데에 집중했다.
뭉툭한 고드름 같던 검기가 이젠 얇지만 단단한 창처럼 변했다.
이젠 이 날카로운 창을 마치 자신의 검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일만 남았다.
리니아도 이제 방검술에 익숙해진 것을 넘어 샤를로트처럼 자신만의 검술을 만들어가는 학구적인 열정까지 불태우고 있다.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가 열리면서 잊혀지고 사라졌던 검술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자신에게 알맞은 검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티그리스는 굉장히 신기하다고 느꼈다.
성장은 비단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번 연도 입학 테스트의 문제점을 개선해서 더 많은 신입생을 받아보죠. 솔직히 말해서 이번 연도 입학 테스트는 너무 졸속이었어요.
네메시스가 이런 기특한 말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교관 일에 굉장히 열의를 불태웠다.
트리샤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한 터라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떠나기로 한 사람도 있었다.
-난 조만간 학교장을 그만둘 생각이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기엔 난 너무 늙었어.
바스티얀은 7서클의 대마법사이지만 세월 앞에선 평범한 노인일 뿐이다.
-마법학부 재편만 마치고 내년 입학식 때 떠나겠네. 내 후임으로는 네이션이 올 걸세. 잘 말해둘 테니 학교를 잘 부탁하네.
티그리스는 그제야 바스티얀의 얼굴에 깊게 자리한 주름이 보였다.
아예 떠나는 거냐는 아쉬운 말도 전하지 못했다.
바스티얀은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의지해도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이끌어줬던 사람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이미 회귀 전에 겪어봐서 안다.
예전에는 오만함으로 고독함을 지워냈지만, 오만함이 사라진 티그리스는 바스티얀이 떠난다고 말을 했을 때 이 고독함을 지워내지 못했다.
그래서…….
티그리스는 번뇌와 함께 검을 멈췄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티그리스의 검을 멈춘 것은 다름 아닌 새하얀 눈이었다.
첫눈은 티그리스의 손등에 떨어져 눈물처럼 녹아 흘러 떨어졌다.
“…….”
외롭다.
티그리스는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르칠 학생들과 교관들이 함께하고 있지만 이상하게 외로웠다.
그래서 자꾸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과연 그녀는 지금 어디쯤일까?
“티그리스.”
티그리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춥고 외로운 겨울에 장미꽃 한 송이가 티그리스의 앞에서 싱그럽게 웃고 있다.
레인로버다.
“……기다렸습니다.”
티그리스는 신기하게 외롭지 않았다.
* * *
티그리스는 네 사람으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들었다.
그리고 한 줄 평을 남겼다.
“계획대로 된 게 단 하나도 없군.”
“아하하…….”
라칸은 뼈를 맞은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잘했다.”
“진짜요?”
“그래.”
티그리스는 진심으로 라칸을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라칸이 없었다면 이번 일을 누가 해결할 수 있었을까?
라칸은 불안한 고디바 왕국의 국왕을 살리고 카이라를 죽인 후 우로스까지 얻어 왔다.
물론 우여곡절과 실수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결국 해결했다면 그것 또한 라칸의 업적이다.
라칸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었다.
“그래서 우로스는 어디에 있지?”
“제 아공간 주머니에요. 지금 꺼낼까요?”
“아니. 괜히 이곳에 꺼냈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지금 즉시 돌아가서 황제 폐하를 영접하고 보고에 당분간 넣어놓도록 해라.”
지금 우로스는 아직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만졌다간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창고지기 마테오라면 아직 성좌의 시련이 남아 있는 성물의 관리법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쯤 우로스의 시련을 깨실 예정인가요?”
“학사 일정이 끝나는 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아직 3주 정도 남았으니 그동안 푹 쉬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뒤에 서 있는 혼령 세 명을 쳐다봤다.
“자네들의 이름이 뭐라고?”
-미쉬타다.
-후마윤이다.
-아만이다.
셋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불만이라도 있나?”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날 쳐다보고 있는 거지?”
-알려주기 싫다.
티그리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모리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셋 모두 아하드의 전사들이야. 특히 미쉬타는 아하드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녀석이었고.”
“그렇습니까?”
“그리고 호스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어.”
“……왜 그렇습니까?”
미쉬타는 고함을 질렀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놈이라 생각하는 고상한 놈이니까!
이제야 이해가 된다.
미쉬타는 티그리스의 영혼이 호스의 영혼과 똑같다는 걸 보자마자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싫어하는 거겠지.
티그리스는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좋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열 정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레인로버는 내 아내다.”
“예?! 옜?!”
레인로버는 갑작스러운 말에 너무 놀라 혀를 씹었다.
“그러니 너희들이 내 아내를 잘 지킬 수 있을지 좀 알아보고 싶군.”
미쉬타는 재밌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웃었다.
-그냥 한판 붙고 싶다는 말을 그리 길게도 하는군.
“아니. 너희들의 수준을 좀 알아보고 싶다는 거다. 나보다 아래인 건 당연하니까.”
-……건방진 소리를 하는 건 호스랑 똑같군.
미쉬타는 굴곡진 칼을 꺼내 들었다.
-많이 아플 거다. 난 사막의 뜨거운 태양에 담금질되었으니까.
* * *
30분 후.
미쉬타와 후마윤 그리고 아만은 연무장에서 널브러져 있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우아하게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잘 봤다. 하지만 조금 부족한 것 같군.”
‘……재수 없어.’
“우왁 재수 없어.”
모두가 생각만으로 재수 없다고 말을 할 때, 아모리스만 헛구역질을 하며 입밖으로 감정을 토해냈다.
티그리스는 아모리스의 말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셋에게 말했다.
“내일 새벽부터 나와라. 혼령을 가르쳐 본 적은 없지만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는군.”
미쉬타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 어떻게 나를 공격할 수 있었던 거지? 난 혼령인데?
“그게 내 심상이다. 내가 가르고 싶다고 하면 가를 수 있고, 내가 가르지 않겠다고 하면 가르지 않는 것. 그게 내 검술이고 삶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군.
“너희도 혼령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공격하지 않았나? 그건 어떻게 한 거지?”
-그거야 난 수호령이니까.
“수호령이면 다 되는 건가? 언제 왜 그게 가능해졌지?”
-…….
미쉬타는 답을 하지 못했다.
“역시 모르는군. 네가 가진 힘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휘두르는 것은 어린아이가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위험하고 난폭하지.”
-그럼 넌 알고 있다는 건가?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른다.”
-그런 주제에 우리를 가르치겠다고?
“그건 네가 찾아가야 할 몫이다. 난 그걸 조금 도와줄 뿐이지.”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곤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란 것 하나만큼은 알아뒀으면 좋겠군.”
미쉬타는 물론이고 아만과 후마윤 또한 치욕감에 몸을 떨었다.
티그리스에게 진 것도 분하지만 레인로버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분한 것이다.
레인로버는 그런 세 혼령을 토닥토닥해 줬다.
“티그리스가 말이 거칠어서 그렇지 세 분의 실력을 인정하시기 때문에 그러신 거예요. 아예 재능이 없거나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면 가르치겠다고 얘길 안 했겠죠.”
-……젠장.
미쉬타가 티그리스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 특유의 담담한 말투와 눈빛이 호스와 너무 닮아 인정한다는 말 자체가 입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아하드는 셋에게 있어서 신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다.
그런데 매일같이 호스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봐와야만 했으니 분통이 어찌 안 터지겠는가?
물론 그 분노를 티그리스에게 풀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그게 쉽게 풀렸다면 마리아를 끝까지 지키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아 1,300여 년 동안 혼령으로 떠돌았을 리가 없었다.
-젠장!
셋은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결국 말없이 레인로버의 소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티그리스. 너무 말이 심했어요. 이분들 얼마나 자존심이 강하신 분들인데.”
티그리스는 레인로버가 짐짓 화난 표정을 짓자 괜히 눈을 피했다.
“……미안합니다.”
티그리스가 기억하고 있는 고대의 영혼의 강력함에 감탄하면서도, 조금 더 세밀하게 힘을 컨트롤했다면 더 좋았을 법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셋의 뻔히 보이는 도발에 자존심을 굽힐 사람도 아니었고.
아무튼 저 셋과 티그리스는 별로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나중에 만나면 사과를……”
아모리스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레인로버. 가만히 둬.”
“네?”
“사과하고 자시고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
아모리스는 서로 앙숙 관계나 다름이 없던 아하드와 호스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저 세 멍청이와도 똑같은 방법으로 친해지게 될 것이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거야.”
트리샤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정말 할머니 같습니다.”
“……할머니한테 맞아볼래?”
아모리스는 터덜터덜 걸었다.
“그것보다 나 빨리 황제를 만나고 쉬고 싶은데. 나 따라올 사람?”
* * *
티그리스는 새벽에 눈을 떴다.
옆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레인로버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나온 후 정원으로 나왔다.
새벽은 티그리스가 유일하게 홀로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른 시간엔 샤를로트와 아이린, 리니아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새벽은 너무나도 티그리스에게 소중했다.
하지만…….
미쉬타와 세 혼령은 퉁명스러운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늦었군. 새벽이라더니. 해가 곧 뜨겠어.
“해가 뜨기 직전을 새벽이라고 부르는 거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남에게 할애한다는 것은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다.
미쉬타와 아만 그리고 후마윤은 검을 뽑아 들었다.
-말하는 시간도 아깝군. 그럼 시작할까? 우리가 뭐가 부족하다고 하는 거지?
“어제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모르는 모양이군.”
티그리스는 작게 웃었다.
“오늘은 너희들의 주제를 아는 시간을 갖도록 할까?”
* * *
혈귀가 무심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한 사내의 목이 데구르르 굴러 쌓인 시체더미 근처에 널브러졌다.
길고 길었던 내전이 저 이름 모를 인간의 목으로 종식되었다.
“……지겹군.”
누가 들으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올지도 모를 말이다.
무기를 놓으며 항복하던 군인들과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죄다 죽여 버린 저 사내가 내뱉는 말이 고작 지겹다니.
그에게 죽은 원혼들이 울부짖으며 통곡할 일이다.
하지만 혈귀, 아니, 페이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은 정말 질색이다.”
페이라는 풍요로운 흑토지대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년 전쟁에 시달려야만 했다.
한 뼘이라도 더 풍족한 땅을 얻겠다는 영주들의 욕심은 황제조차 말리지 못했고, 그사이 수없이 많은 선량한 인간들이 피를 흘렸다.
그런 그가 룩스 여신을 모시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룩스의 사제들이 봉사하고 있는 곳엔 병사들이 화살을 날리지 않았고, 기사들은 슬쩍 쳐다만 보고 떠났으니까.
페이라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며 치유했다.
그러나 페이라의 바람 하나만으로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세상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 인간이 발을 붙이고 있는 한 분노하며 또 그 분노를 분노로 맞받아치는 영원한 굴레에 빠질 것이다.
페이라의 대검들이 피 웅덩이에 처박혔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이길.”
대검은 수없이 많은 사체들의 피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시체들에 남은 피마저 사라져 메말라 붙어 버린다.
“부디 마지막이길.”
페이라의 피로 물든 사제복이 눈처럼 새하얀 빛으로 돌아왔다.
페이라는 뒤를 돌아 메마른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오슬로에게 말했다.
“아르펨 님께 전해라. 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게이트를 열어달라고.”
“충분해?”
페이라가 주먹을 쥐니 대검에서 흘러나온 신성한 피가 검강처럼 대검을 단단하게 감쌌다.
“난 충분하다.”
“알았어. 말해볼게.”
오슬로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페이라는 눈을 감고 기다렸다.
흑토지대가 피로 물드는 그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