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34)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34화
우로스(6)
렐리우스는 온몸이 피 칠갑이 된 채 날아온 시그마의 모습에 보기 드물게 놀랐다.
윤기 나던 비늘은 늙은 와이번의 비늘처럼 생기를 잃고 우수수 떨어졌으며, 오른쪽 눈과 입에선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함께 날아갔던 다른 500마리의 와이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구냐? 누가 이렇게…….”
시그마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분, 분명 그 멸망한 왕국의 마법사들이었다.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부릴 수 있었다면 어째서 우리에게 멸망했던 거지? 도대체 왜……?”
렐리우스는 입술을 씹었다.
살아 돌아온 와이번은 시그마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오다가 추락했고, 용아병은 당연히 살아남은 녀석이 없었다.
기존에 날아왔던 와이번 1,500마리 중 1,100마리가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모조리 당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이 상태론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패배를 고하자니 그란티스에게 죽을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쓸모없는 소모전만 반복하자니 절대 저 요새를 정복 못 할 것 같고.
‘이걸 어떻게 해야…….’
시그마가 몸을 덜덜 떨며 일으켰다.
“내, 내가 그란티스 님께 보고하겠다. 놈들이 예상보다 너무 강하다고.”
렐리우스는 눈을 번뜩였다.
시그마가 직접 보고한다면 그란티스의 분노를 직접적으로 받을 필요가 없다.
심지어 가장 많은 전력 손실을 입은 것도 시그마가 아닌가?
용아병은 기껏해야 100마리 정도.
반면 시그마는 병력의 3분의 2가 날아갔다.
‘이거 잘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는데?’
렐리우스는 그제야 걱정 어린 눈빛으로 시그마를 다독였다.
“정말 괜찮겠나? 부상이 심한데?”
“섬까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부탁하마.”
시그마는 간신히 날개를 펼쳤다.
좀 전처럼 거센 돌풍을 만들진 못했지만, 간신히 날아오를 정도는 되었다.
렐리우스는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시그마를 보며 생각했다.
시그마가 저렇게 당했는데 연합군 쪽에 아무런 피해도 없다면, 그란티스는 렐리우스의 존재 이유를 의심할지 모른다.
적어도 그 황금 갑주를 입은 사내의 목이나 시그마를 저렇게 만들었던 마법사의 목이라도 가져와야 했다.
‘그렇다면…….’
렐리우스는 서문과 동문 어디를 쳐들어갈지 고민했다.
얼마 가지 않아 렐리우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자. 적장을 만나고 와야겠다.”
모르는 마법사보단 적어도 조금은 아는 기사가 낫지 않겠는가?
* * *
나달의 보고를 받은 레인로버는 뛸 듯이 기뻤다.
와이번들 500마리를 모두 죽이고 용아병 50마리를 죽였으며 시그마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놈들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승부를 했다면 굉장히 위험했겠지만, 역시 티그리스가 말한 대로 놈들은 천천히 간을 보면서 공격을 했다.
놈들이 그란티스를 닮아 나태하기도 하고 겁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대로 버티면 됩니다.”
엉덩이가 무거운 그란티스가 벌써부터 움직일 리가 없으니 시간은 확실히 연합군의 편이었다.
“그런데 조금 걱정이 되네요. 시그마가 겁을 집어먹고 그란티스에게 날아가지 않을까요?”
아이린의 말에 레인로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걱정은 우리만 하도록 해요. 지친 병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니까요.”
아이린은 자신이 분위기에 맞지 않는 질문을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죄송해요.”
“아녜요. 저도 아이린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만약 그란티스가 온다면…….’
레인로버는 아공간 주머니를 매만졌다.
이 안에는 그란티스의 용언을 잠재울 신의 창이 있다.
티그리스가 갖고 있는 천공의 사슬과 함께라면 시간을 충분히 벌어줄 수 있을 터.
그 안에 드워프들이 우로스를 빨리 만들어주길 바라야 했다.
그때,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변했다.
땅을 뒤흔들며 돌진해 오던 몬스터들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더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지?”
방벽을 올라왔던 몬스터들도 싸움을 멈추고 방벽을 빠르게 내려와 뒤로 물러났다.
레인로버는 눈을 감고 몬스터들이 왜 저리 도망치는 것인지 교감을 시도했다.
-뒤로 물러나.
-뒤로 물러나래.
-뒤로. 뒤로. 뒤로. 뒤로.
레인로버는 왜 저들이 도망치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레인로버는 곧바로 수정구를 들었다.
“티그리스. 렐리우스가 몬스터들에게 후퇴를 명령했어요.”
방벽 수호 때문에 잠깐 망루에서 벗어났던 티그리스가 망루로 돌아왔다.
“정말입니까?”
“네. 분명해요. 그런데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요?”
“아뇨. 처음 있는 일입니다.”
티그리스는 총 3번 전투를 치렀지만 몬스터들을 뒤로 물리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란티스가 나타났을 때도 몬스터들을 짓밟으며 나타났을 정도니까.
그때, 티그리스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몬스터들이 좌우로 갈라지자 길이 열렸고, 그 열린 길로 용아병들이 줄 맞춰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용아병들은 또다시 좌우로 물러나며 길을 만들었고, 그 길로 한 용아병이 걸어왔다.
다른 용아병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더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저놈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용아병들의 대장이자 그란티스의 총애받는 권속, 렐리우스다.
렐리우스는 티그리스가 만들어놓은 긴 선 앞에 섰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짝!
렐리우스의 박수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소리에 민감한 수인족들은 귀를 막고 눈썹을 찌푸렸고, 아슬아슬하게 장벽에 매달려 있던 금속조각이나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대단하다! 미물들이여!”
렐리우스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난 이름마저 입에 담기 버거운 위대한 드래곤, 그란티스 님의 권속 렐리우스라고 한다.”
렐리우스란 말에 베키우 왕국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렐리우스란 이름은 베키우 왕국인들에게 있어서 지울 수 없는 흉터와도 같았다.
렐리우스는 베키우 왕국의 국왕의 머리를 잘라 왕성 앞에 목을 걸어둔 악질 중의 악질이었기 때문이었다.
“300년의 긴 생에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전투를 했다. 그러나 그중 내 흥을 돋운 전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렐리우스는 베키우 왕국의 기사들을 쳐다보며 웃었다.
“이름 모를 왕국을 무너뜨릴 때는 잠이 쏟아졌고.”
렐리우스는 시선을 옮겨 수인족을 쳐다봤다.
“개새끼들의 왕과 싸울 땐 난잡했으며.”
마지막으로 엘프들을 쳐다봤다.
“나무 신봉자들의 숲을 불태울 땐 하품이 났다.”
명백한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인들과 인간 그리고 엘프들은 모욕감에 손을 벌벌 떨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흥미로운 전투를 하게 되었구나.”
그때, 화살 하나가 쏜살처럼 렐리우스에게 날아갔다.
타티아나의 화살이었다.
렐리우스는 타티아나의 화살을 잡아냈다.
그러자 화살이 크게 폭발했다.
화염의 정령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연기가 사라지고 렐리우스가 나타났다.
“역시 촌것들이라 예의가 없군.”
렐리우스는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예의를 알려줘야지.”
렐리우스는 검을 한 번 휘저었다.
렐리우스의 검이 움직인 것을 본 것은 오직 티그리스뿐이었다.
렐리우스의 짙은 갈색 검강이 타티아나에게 곧장 날아갔다.
“피해!”
본능적으로 바야가는 타티아나를 밀쳤지만, 검강은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왔다.
타티아나의 오른팔과 바야가의 왼팔이 절단 나기 직전, 티그리스가 북극성의 망토를 사용해 나타났다.
쩌엉-!
검강과 검강이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타티아나와 바야가를 포함한 수인들과 엘프들은 충격파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엘프들과 수인들은 귀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에 신음했고, 렐리우스는 감탄했다.
티그리스가 대단한 기사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우아한 검술을 펼칠 것이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이었다.
몇 시간 전에 보여주었던 패도적인 검술과는 정반대의 깔끔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발도.
그것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강을 사용해 막아냈다는 게 티그리스의 수준이 단순한 7성 기사급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렐리우스는 티그리스를 지목했다.
“너.”
렐리우스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나의 유희 거리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렐리우스의 말에 티그리스는 생각했다.
렐리우스가 무슨 생각으로 대장전을 원하는 걸까?
인간들 사이에서 대장전을 요구하는 경우는 딱 세 가지다.
첫 번째, 너무나도 불리한 상황이라 시간과 시선을 끌어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두 번째, 적들의 기세를 꺾기 위해서.
세 번째, 적은 피를 흘리기 위해서.
티그리스가 봤을 때 셋 중에 하나를 굳이 꼽자면 두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한 가지 약속하마. 네가 나와 싸우는 동안 나는 일절 몬스터들과 용아병들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네 부하들은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해도 좋겠지.”
렐리우스의 말에 병사들은 동요했다.
지금까지 거의 4~5시간 동안 계속 전투만 했다.
몸은 녹초가 되었고 휴식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반면 몬스터들은 그런 게 없다.
배고프면 병사들과 죽은 몬스터들을 뜯어 먹으면 배고픔이 사라지고 체력도 회복된다.
장기전이 될수록 불리한 것은 연합군 쪽이었다.
“네가 장수라면 이 기회가 천금 같은 기회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 어떠냐? 나와 검을 겨뤄볼 테냐?”
티그리스는 잠시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트리샤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다. 10분 후 채비해 내려가마.”
“인간 주제에 유희를 아는 놈이군.”
레인로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렐리우스는 한 번 죽여봤던 녀석이니 어렵지 않습니다.”
“함정일 가능성은요?”
“렐리우스는 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오만합니다. 자기 명예를 생각한다면 그런 짓은 하지 않겠죠.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 함정의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도주하겠습니다.”
“그럼 렐리우스를 어떻게 하실 셈이신가요?”
“죽이진 않을 겁니다.”
렐리우스가 죽으면 그란티스가 직접 움직인다.
아직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란티스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것은 재앙이다.
그러니 티그리스가 유도해야 할 상황은 딱 하나다.
“최대한 비등한 싸움을 유도해 시간을 끌겠습니다. 그동안 병사들에게 휴식을 충분히 취하라고 하십시오.”
티그리스는 트리샤와 아이린 그리고 샤를로트를 봤다.
“그리고 너희 셋은 나를 따라와라.”
“네? 저희도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공부가 될 테니까.”
소드 마스터 간의 피 튀기는 싸움을 가까이서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 * *
렐리우스는 티그리스와 함께 내려온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름다운 꽃들이군. 네 시체 위에 고스란히 얹어두면 제법 괜찮겠어.”
렐리우스의 도발에 티그리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렐리우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재미없는 놈이군. 그래서 저년들은 왜 데리고 온 거지?”
“하나는 내 기사고 둘은 내 제자들이다.”
“그래서?”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을 뽑아 들었다.
“좋은 교보재가 앞에 있는데 굳이 안 데려올 필요가 있나.”
티그리스의 말에 렐리우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샌님인 줄 알았는데 제법 혓바닥도 잘 놀리군.”
렐리우스도 검을 뽑아 들었다.
얼마나 긴지 렐리우스는 검을 뽑아 드는 데 거의 한 세월이 걸렸다.
티그리스는 렐리우스가 뽑은 길고 얇은 검이 무슨 검인지 알고 있었다.
수많은 왕과 우두머리를 벤 검, ‘킹 슬레이어’였다.
무려 검신이 2m에 달하는 길고 얇은 검이라 쉽게 부러질 것 같지만, 그란티스의 빠진 송곳니로 벼려진 검이라 티그리스도 자르지 못하는 굉장히 단단한 검이었다.
렐리우스는 오만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렐리우스의 키가 무려 2m 50㎝에 달했기 때문에 당연히 내려다보는 것이 맞긴 하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티그리스가 이상하게 커 보인달까?
그 이유가 티그리스의 정돈된 자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때문이라는 걸 렐리우스는 알아챘다.
‘……역시 대단하군.’
티그리스의 첫 공격을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집중하니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였다.
“싸우기 전에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뭐지?”
“그 갑옷, 뭐로 만들어진 거지?”
시그마가 왜 이놈에게서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저 황금 갑주.
드래곤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궁금하면 나를 꺾어라. 그리고 정당하게 승자의 지위를 사용해 물어봐라.”
렐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게 맞지.”
용아병 하나가 걸어와 금화를 손가락 위에 걸쳤다.
그리고 위로 튕겼다.
부드러운 유선형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지자 렐리우스와 티그리스는 곧바로 부딪혔다.
—-!
귀를 찢는 굉음에 아이린과 샤를로트는 순간 다리가 풀렸다.
그나마 트리샤가 저 둘이 부딪히기 직전에 리플랙트 실드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다행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늦었다면 저 용아병 꼴이 났을 것이다.
금화를 던졌던 용아병은 격돌의 후폭풍 때문에 하늘을 날아 구덩이에 처박혔다.
몸이 꿈틀꿈틀거리는 게 살아 있긴 한 것 같지만, 극심한 뇌진탕 증세로 당분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티그리스와 렐리우스는 서로 검강을 맞댄 채 서로를 노려봤다.
은색의 검강과 짙은 갈색의 검강 조각들이 이리저리 튀면서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렐리우스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러의 색깔은 검술가의 개성을 나타내지. 얼마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가? 얼마나 자신의 오러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가? 자신이 갈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렐리우스의 검과 티그리스의 검이 다시 부딪혔다.
순간 주변에 있던 공기가 밀려나며 진공상태가 되었다가 되돌아왔다.
격류가 두 사람을 거세게 몰아붙였지만, 그 누구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네 오러 색은 섬?할 정도로 깨끗하군.”
렐리우스는 씨익 웃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반쯤 미친놈인 경우가 많지.”
“아직 여유가 있는 모양이군.”
티그리스는 자신의 심상을 담아 검을 횡으로 그었다.
렐리우스는 느리지만 묵직한 베기를 흘려 막았다.
정면으로 막았다간 팔이 부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렐리우스의 검이 살짝 밀려나며 마치 조각칼이 나무에 파고드는 것처럼 렐리우스의 검강이 깎여 나갔다.
렐리우스는 부드럽게 몸을 뒤틀어 피해낸 뒤 뒤를 돌았다.
보통 기사라면 뒤를 도는 일을 하지 않는다.
변칙적이라 적을 당황시킬 수도 있고 순간적으로 검이 보이지 않아 검의 경로를 잃어버릴 수 있긴 하지만 움직임이 커서 빈틈을 많이 내어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인간에 해당되는 얘기고 렐리우스에겐 꼬리가 있다.
두꺼운 꼬리가 티그리스의 발목을 노리며 묵직하게 들어왔다.
티그리스는 그런 렐리우스의 꼬리를 강하게 밟고 검을 내리쳤다.
렐리우스는 아차 하며 검을 뒤로해 막아냈으나, 티그리스의 검이 미끄러지듯 놈의 검을 타고 내려가 바닥을 내려찍었다.
서걱-!
나무토막을 베어내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붉은 선혈이 튀었다.
렐리우스는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렐리우스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티그리스는 도마뱀 꼬리처럼 요동치는 렐리우스의 꼬리를 발로 툭 쳐 멀리 보내 버렸다.
티그리스는 고통에 신음하는 렐리우스를 추적하지 않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지금처럼 말이 많은 적과 붙을 경우가 간혹 있다. 일부러 멘탈을 흔들어 빈틈을 노리는 거지. 생각보다 이런 트레쉬 토크가 승패에 영향을 많이 준다.”
“……뭐?”
렐리우스는 이를 뿌득 갈며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렐리우스.”
티그리스는 멀리서 지켜보는 제자들을 가리켰다.
“지금 내 제자들과 기사에게 가르치고 있는 중 아닌가?”
“이 씹어 먹을 놈이!”
렐리우스는 티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티그리스는 반박자 빠르게 앞으로 달려들어 렐리우스의 타점을 흔들었다.
쩡-!
렐리우스는 몸이 공중에 떠 있었기에 티그리스의 공격을 온전한 체중으로 받아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뒤로 한참을 날아갔다.
티그리스는 아이린과 샤를로트 그리고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지금처럼 상대가 흥분하면 공격 방향이 단순해진다. 너희는 지금의 렐리우스를 반면교사 삼아 적의 혓바닥에 놀아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한다.”
샤를로트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희도 스승님께 트래쉬 토크하는 법을 배우면 안 되나요?”
“난 트래쉬 토크를 하는 법을 모른다.”
“에? 그럼 지금 티그리스 님이 하고 계신 건 뭔가요?”
“교육.”
티그리스는 작게 웃었다.
“좀 전에 말했잖나. 좋은 공부가 될 거라고.”
샤를로트는 그제야 깨달았다.
트래쉬 토크는 노력이 아닌 재능의 영역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