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3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35화
우로스(7)
렐리우스는 몰아치는 티그리스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좀 전처럼 빠르진 않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각도에서 검이 날아왔다.
쩌어엉!
렐리우스는 티그리스의 검을 힘겹게 막아냈다.
‘젠장 꼬리가……!’
렐리우스에게 있어서 꼬리는 없어도 되는 부위 같은 게 아니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지금처럼 격렬한 전투를 할 땐 꼬리로 충격을 분산시키거나 체중을 옮겨 원활한 공수 교환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인 부위다.
그런데 꼬리가 갑자기 사라지니 렐리우스는 티그리스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게다가 피가 멈추지 않아.’
용아병은 인간이나 수인에 비해 월등히 빠른 자연 치유력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꼬리에선 피가 계속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죽는다.
으득!
렐리우스는 이를 강하게 악물고 있는 힘껏 티그리스를 밀어냈다.
“헉……. 헉…….”
렐리우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싸운 거지?
티그리스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어 시간도 확인하지 못했다.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렐리우스는 망토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포션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하나를 티그리스에게 던졌다.
티그리스는 포션병을 받아들였다.
“이만하면 네가 뛰어난 기사인 것은 충분히 안 것 같다. 해도 저물었으니……”
“넌 검술가가 아니다.”
“……뭐?”
티그리스는 해가 완전히 저물자 하늘 위로 아티팩트를 띄웠다.
달처럼 아름답지만 강하게 빛을 내는 ‘데이 라이트’라는 아티팩트였다.
전장이 어둠을 밀어내며 렐리우스와 티그리스의 무대를 만들었다.
“넌 본능적으로 최적의 검로를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런데도 너는 검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드 마스터다. 너도 검강을 발현하기 위해 기술은 딱히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는 거겠지.”
렐리우스는 포션을 꼬리에 붓고 나머지는 마신 후 땅에 버렸다.
그제야 조금씩 꼬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치유되는 속도가 너무나도 더뎌 계속 피가 줄줄 샜다.
‘저놈 날 곱게 보내줄 생각이 아니군.’
렐리우스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꼬리가 완전히 치유될 때까지 시간을 좀 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난 태어났을 때부터 마스터 클래스였다. 기술 따윈 필요가 없었지.”
렐리우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란티스에게 선택을 받았다.
다른 용아병들과 달리 저절로 빠진 용의 이빨이 아니라 직접 생니를 뽑아 만들어낸 권속이었고, 구별 지어진 용언 마법으로 더욱 단단한 비늘과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
“난 태어났을 때부터 6개의 마나 고리와 심상을 갖고 태어났다. 난 본능적으로 뭐를 숭상하고 바라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
렐리우스는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티그리스를 가리켰다.
“그게 너와 나와의 차이다. 난 태어났을 때부터 강했지만, 너는 부족하게 태어났지. 그것이야말로 내가 네놈보다 위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다. 자연의 섭리지.”
“아니다. 넌 나보다 위라고 할 수 없다. 넌 자연스럽게 태어난 존재가 아닌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도구에 불과하다.”
“뭐……? 내가 도구?”
“그래. 가위는 종이를 자르기 위해 만들어졌고,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너는 그란티스를 대신해 전쟁하기 위해 태어난 장수일 뿐이다.”
티그리스는 검을 들었다.
“너는 단 한 번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네가 무엇이고 네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그란티스의 뜻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검에 불과해. 그러니 넌 내게 이길 수 없는 거다.”
렐리우스는 지난 300년간 이렇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도구라고?
그란티스 님의 총애받는 권속은 맞지만 도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저 사내가 마음속에 던진 작은 돌멩이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렐리우스는 그 파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도 전에 감정의 격류에 휩싸였다.
으득-! 으드득-!
렐리우스의 몸에서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렐리우스의 비늘은 양손부터 팔꿈치, 꼬리 그리고 양쪽 발과 가슴께가 끝이다.
하지만 렐리우스의 온몸에 짙은 갈색빛의 비늘이 자라나더니 입은 갑주를 으스러뜨리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비늘이라기보단 마치 나무껍질 같았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심지어 유연했다.
“크르르…….”
렐리우스의 입에서 하얀 증기가 새어 나왔다.
마치 네발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손으로 땅을 짚었고, 한계까지 팽창시킨 고무줄처럼 근섬유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이길 수 없다고? 헛소리!”
–!
렐리우스가 짐승처럼 뛰었다.
좀 전에 보여주었던 안정된 검술이 아닌 짐승이 손톱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검로가 불안정해 검의 속도가 확 죽었고, 흉폭함만이 가득 남아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소드 마스터의 검술이라고 볼 수 없는 불완전하고 감정이 담긴 돌진 공격.
렐리우스가 땅을 박찰 때 생겨난 땅의 비명보다 티그리스에게 먼저 도착했다.
티그리스는 신중하게 렐리우스의 검을 받아쳤다.
—-!
티그리스와 렐리우스의 검이 부딪히자 거대한 마나 폭풍이 몰아쳐 땅을 파먹었다.
땅을 파먹었다는 표현은 아주 정확했다.
트리샤의 눈으로도 주변의 땅을 누군가 베어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땅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꺼진 건가?’
실제로 티그리스와 렐리우스의 검이 부딪힐수록 땅은 마치 대리석처럼 단단해지고 매끈해졌다.
티그리스와 렐리우스는 새로운 전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을 초월한 마스터 클래스 간의 전투.
좀 전의 전투는 마치 소꿉장난이었다는 것처럼 전장 이곳저곳이 난장판이 되었다.
티그리스는 뒤에서 다가오는 렐리우스의 검을 부드럽게 받아내 흘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짓누르는 바람과 마력의 압박에 땅이 꺼지고 공기가 밀려났다.
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티그리스는 렐리우스의 공격을 받아치느라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공간을 찾아 들어올 때면 동시에 렐리우스의 검이 몰아쳤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렐리우스의 검을 정면으로 받았다.
끼기기기긱-!
티그리스의 몸이 처음으로 뒤로 밀려나며 긴 홈을 만들어냈다.
렐리우스와 눈을 마주쳤다.
놈의 눈빛은 섬?한 살기로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렐리우스의 목에서 강철을 긁는 듯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나보다 더 나은 존재라면, 나를 꺾고 증명해 봐라!”
렐리우스는 티그리스보다 큰 덩치를 사용해 티그리스의 몸을 짓눌렀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마치 고목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것이 네 자부심인가?”
티그리스의 물음에 렐리우스는 진하게 웃었다.
“그래. 이 드래곤의 비늘이야말로 내 자부심이자 심상이자 나의 모든 것이다.”
렐리우스의 잘려 나간 꼬리의 단면쪽에서 꼬리가 점점 만들어지고 있었다.
꼬리가 재생하는 것은 아니다.
렐리우스는 검강으로 빚어 만든 꼬리 비늘로 꼬리를 채우고 있었다.
끼기긱-!
“넌 기회가 있었을 때 내 꼬리가 아니라 내 목을 쳤어야 했다.”
끼기기긱-!
“인간 주제에 감당하지 못할 오만함과 교만함으로 나를 살린 죄.”
렐리우스가 온 힘을 다해 티그리스를 짓눌렀다.
“죽음으로 갚아라!”
티그리스는 렐리우스의 내려찍기를 흘려내며 뒤로 물러났다.
단단하게 굳은 땅이 부서지며 하늘 위로 비산했다.
트리샤와 샤를로트 그리고 아이린이 서 있던 땅까지 균열이 일어났다.
세 사람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 났다.
“미친…….”
샤를로트의 입에서 절로 욕이 흘러나왔다.
렐리우스의 검이 땅을 찍자 드워프의 방벽 앞까지 깊고 긴 흉터가 생겼다.
* * *
시그마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란티스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걷지도 못해 겨우 기어 들어가 시그마가 지나간 자리엔 메마른 붓으로 그린 선처럼 거친 피의 길이 만들어졌다.
시그마는 간신히 그란티스의 앞에 도착했다.
그란티스는 황금 보화 위에 누워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시그마는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위대하신 그란티스 님. 그대의 충복이 말씀을 올립니다.”
시그마의 말에도 그란티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시그마는 마음이 급했지만, 그란티스가 일어나길 기다렸고 한참이 지나자 그란티스의 눈이 떴다.
“뭐지?”
그란티스는 시그마가 다친 것 따위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단잠을 깨운 시그마가 짜증이 날 뿐이었다.
“저희가 부족해 화산지대 공략이 힘들 것으로…….”
쿵!
그란티스의 거대한 꼬리가 시그마의 앞에 뚝! 떨어졌다.
시그마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날개를 펼쳐야 한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증원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사실 증원이 아니라 그란티스가 직접 나가야 할 것 같지만 그대로 설명하면 시그마는 한 줌의 핏물이 될 것 같았다.
“증원이 필요하다고? 단 하루 만에 그 병력들을 모두 날린 거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와이번들과 용아병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란티스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느끼자 시그마는 다급하게 말을 이어 붙였다.
“드, 드워프가 끌어들인 적 중에 이상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자?”
“예. 그렇습니다. 황금 갑주를 입은 기사들인데. 그자들에게서 위대한 드래곤님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드래곤?”
세계수에게 변방으로 밀려난 사투티메오는 아닐 거고.
그렇다면 남은 건 아우로므와 타이케스뿐인데 거리상 가까운 것은 아우로므였다.
“설마 아우로므가 화산지대의 드워프들을 발견한 것이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우로므와 확실히 관련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아우로므가 감히 그란티스의 드워프들을 노린다면 이건 시간 싸움이다.
그란티스는 직접 날아갈까 했지만…….
‘아우로므가 직접 나타난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이건 자존심 싸움이다.
그란티스가 드워프들을 얻기 위해 직접 행차한다면 얻을 수야 있겠지만, 아우로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굉장히 귀찮은 것도 있었다.
그란티스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용아병과 와이번들을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그리고 확실하게 아우로므와 관련이 있다면 내게 보고하도록.”
시그마는 고개를 조아렸다.
“네. 알겠습니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 * *
렐리우스는 허공을 박차고 티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티그리스는 렐리우스의 검을 부드럽게 흘린 후 재빠르게 검을 올려쳤다.
티그리스의 검이 렐리우스의 비늘과 부딪혔다.
티그리스의 검이 렐리우스의 비늘을 온전히 가르지 못하고, 렐리우스를 밀어냈다.
렐리우스는 티그리스가 남긴 흉터를 쳐다봤다.
거칠지 않고 일정하며 올곧으며 얕다.
그러나 렐리우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떻게.”
렐리우스는 티그리스가 너무나도 놀라웠다.
렐리우스의 비늘은 드래곤의 비늘과 완벽히 똑같다.
“어떻게 내 비늘에 흠집을 낸 거지?”
“알려주지 않겠다.”
“그렇다면 네 심상은 도대체 뭐지?”
“알려주지 않겠다.”
“이 새끼가!”
렐리우스의 포효에 티그리스의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티그리스는 덤덤히 말했다.
“알려줘도 넌 못 알아듣는다.”
티그리스는 좀 전과 다를 바 없이 중단세를 취했다.
“너는 기사나 군인이 아니다. 아들과 딸, 노인과 병자, 황제와 전우를 위해 검을 휘두르지 않고 오로지 날개 하나 펼치기 싫어하는 나태한 드래곤 하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정복자일 뿐이다.”
“넌 실패를 하면 드래곤의 꾸지람을 받을까 두려워하지만, 나는 실패를 하면 내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다. 그러니 너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렐리우스는 하찮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너는 개미들이 죽어도 슬픔을 느끼나? 그란티스 님에게 있어서 네 목숨은 그 정도에 불과하다. 나 또한 그렇고! 그런 벌레의 삶을 나보고 이해하라고 하는 거냐?”
“그러니 너는 내가 어떻게 네 비늘에 흠집을 냈는지 이해를 못 하는 것이다. 나는 살리기 위해 베어야 하는 삶을 살아왔고, 너는 그란티스를 위해 살아가는 도구일 뿐이니까.”
티그리스는 아예 방벽 위로 피신한 아이린을 쳐다봤다.
“……어쩌면 그 사람도 그런 마음이었을지 모르지.”
렐리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또 날 도구라고 폄훼하는 것이냐?!”
“잡소리가 길었군.”
티그리스는 다리를 구부려 돌진을 준비했다.
“나는 네 비늘을 베어낼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토록 염원하는 그란티스의 비늘을 가르고 네 목을 베어내기 전까지 나를 무너뜨려라. 그러기 위해 너와 내가 이 무대에 서 있는 것이 아니냐?”
티그리스는 렐리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렐리우스의 돌격과 달리 매우 조용하고 은밀했으며 빨랐다.
렐리우스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끼기기기기긱!
불똥이 튀며 렐리우스의 가슴에 또 다른 흠집이 생겼다.
그 흠집은 좀 전보다 더욱 깊었다.
렐리우스는 티그리스의 차분한 눈동자에 공포를 느꼈다.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렐리우스의 심상을 잘라낼 것 같다.
아니, 그것보다 방금 전에 뭐라고 했지?
그란티스의 비늘을 염원한다고?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지금 렐리우스가 구현한 비늘이 바로 그란티스의 비늘이다.
내가 바로 그란티스의 비늘이다.
쩌어어엉-!
킹 슬레이어를 둘러싼 날카로운 비늘에 이가 나갔다.
“난!”
렐리우스는 짐승처럼 그란티스의 송곳니를 휘둘렀다.
“나는 용아병이다!”
티그리스는 그 거칠며 무자비한 송곳니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마치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처럼 멈춰 있었고, 렐리우스는 몸을 날렸다.
렐리우스는 허공을 박차고 다시 티그리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란티스 님의 총애받는 권속이란 말이다!”
렐리우스의 흠집 난 갑주와 이가 나간 검에 비늘이 새롭게 돋아났다.
흠집 나고 모난 비늘이 땅에 떨어졌지만 티그리스와 렐리우스가 만들어낸 충격파를 버티지 못하고 마나로 돌아가 사라졌다.
렐리우스의 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검술이라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갔다.
그러나 더욱 빠르고 강력해졌다.
렐리우스에게 있어서 검술이라고 함은 본디 빠르고 강력하게 검을 내지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마치 렐리우스가 그란티스의 도구인 것처럼…….
렐리우스의 손에서 뻗어나간 비늘이 킹 슬레이어를 뒤덮는다.
“난!”
우드득! 우득!
렐리우스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돋아난 비늘이 렐리우스의 몸을 뒤덮는 것이었다.
“도구 따위가 아니다!”
난 용아병이다.
나는 두려운 드래곤의 발톱이나 이빨 같은 게 아닌 용아병이다.
‘그런데 무슨 차이가 있지?’
나태한 드래곤은 직접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기 싫어 렐리우스를 보냈다.
그 삶으로도 렐리우스는 만족했다.
수없이 많은 왕들이 무릎을 꿇어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공포에 젖은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짜릿했으니까.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정복과 피로 점철된 삶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공포의 눈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었다면.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그란티스를 향한 공포였다면.
‘난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우드드득!
렐리우스의 머리를 둘러싼 비늘로 만들어진 투구가 변형되며 드래곤의 입처럼 주둥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갈색 날개가 등허리에서 튀어나온다.
렐리우스는 짐승, 아니, 드래곤처럼 네 발로 땅을 짚었다.
“나는!”
렐리우스는 그란티스의 송곳니를 버리고 앞발을 휘둘렀다.
다섯 줄의 검강이 티그리스의 몸을 난도질하기 위해 날아왔다.
티그리스는 그 검강을 쳐내며 접근했다.
렐리우스는 좀 전에 보지 못했던 티그리스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티그리스의 검과 렐리우스의 앞발이 부딪혔다.
“너희들의 공포다.”
아니.
“난 그란티스다.”
렐리우스는 어느덧 완연한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렐리우스의 앞발에 티그리스는 허공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