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4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45화
마지막 왕자(2)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천장에 붙어 있던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발끝에 전해지는 진동의 방향으로 봐선 방향은 이자벨의 성전.
아르펨은 피식 웃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
티그리스라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무조건 성배를 노리고 올 것이라 확신했다.
아르펨은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산 아래에서 내려다본 도시 이자벨은 지옥도로 변모해 있었다.
하늘은 마치 태양을 집어삼킨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고, 성전이 있던 자리는 깊은 크레이터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조용히 기습해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화끈하군.”
하긴, 티그리스의 성격으로 봤을 때 이 모습이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르펨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어둠에 숨어 덜덜 떨고 있는 매튜 왕자가 보였다.
“매튜 왕자님.”
“나, 나보고 저런 괴, 괴물하고 싸우라는 거야? 아르펨? 나, 나는 난…….”
아르펨은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옛날의 매튜 왕자님이라면 불가능했겠죠. 그래서 제가 선물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하, 하지만…….”
아르펨은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왕자님 왜 제가 당신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왕자니까……?”
“아뇨. 당신이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제일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 난 겁나지 않아. 나는 이 나라의 와, 왕이 될…… 히이이이익!”
아르펨의 팔찌가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매튜를 구석에서 끄집어냈다.
“당신의 내면에 자리한 공포를 믿으십시오. 매튜 왕자님께서 꾸시는 악몽과 망상은 당신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매튜 왕자는 불꽃을 뿜어대는 도시를 보자 몸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당신은 공포를 깎아내는 자. 공포를 왕자라는 위세로 감추려 하지 마십시오. 솔직해지시고 인정하세요.”
“아, 아냐. 나는 와, 왕이 될…… 선택받은 사람이다. 룩스 여신과 만민의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왕위에 오를 인간이야. 난 거, 겁 따위 내지 않아.”
아르펨은 비소가 절로 나왔다.
왕성에 있으면 티그리스에게 노려질 수도 있다며 이렇게 허름한 판잣집에 숨어 사는 주제에 왕이라니.
이 대륙의 역사상 가장 비루한 왕이 아닐까 싶다.
“나,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야. 페, 페이라는 어디에 있지? 성기사단은? 내 어머니는? 왕국 제일의 검 오슬로는 어디에 있나? 티, 티그리스가 지금 코앞에 있어. 나, 나를 죽이려고! 감히 나를 죽이려고!”
매튜 왕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는 점점 형체를 갖기 시작하더니 한 인간을 만들어냈다.
이건 매튜 왕자의 망상이 빚어낸 내면 속 깊이 자리 잡은 공포.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였다.
“티, 티그리스를 죽여야 해. 티그리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나, 나는 왕이야. 이제 왕이라고. 그, 그 늙은이가 죽기만 하면 흐흐흐……. 이젠 나는…….”
아르펨은 매튜 왕자를 놓아주었다.
매튜 왕자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며 자신의 공포를 유감없이 입으로 토해냈다.
아르펨은 그런 매튜 왕자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래. 바로 그겁니다.”
* * *
티그리스는 화마에 휩싸인 주변을 훑었다.
성전은 뼈대만이 남아 있었고, 오직 반파된 룩스의 석상만이 몇 초 전 성전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제법 마음에 드는군.’
헨게나가 준 새로운 능력은 ‘화마의 날개’라는 능력이었다.
화염룡의 날개를 등에 달아 하늘과 주변을 불로 뒤덮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 덕분에 티그리스는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못한 방향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고, 그 효과는 티그리스의 상상 이상이었다.
티그리스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끄어어어억!
그곳엔 화마의 날개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에 집어삼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재생하는 성기사들이 보였다.
살이 죽으면 안에서 새로운 살이 돋아나고, 또 그 살이 타 죽으면 새로운 살이 돋아난다.
회귀 전에도 수도 없이 봐왔던 끔찍한 광경이었으나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서걱-!
티그리스의 검이 놈들의 목과 심장을 가르며, 성기사들은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티그리스는 눈을 감고 주변을 감지했다.
놈들이라면 성배를 과연 어디에 보관해 두었을까?
물론 성배를 찾는 건 티그리스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성배의 곁엔 늘 성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 터.
티그리스는 그들을 쫓다 보면 성배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티그리스는 땅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지하가 무너지며 새로운 공간이 드러났다.
“주, 죽여!”
성기사들과 키메라들이 달려들고 사제들이 기도 마법을 준비한다.
티그리스는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성기사들과 키메라들이 단칼에 양분되며 한순간에 사제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여, 여신이시여!”
티그리스는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죄다 죽였다.
심문을 할 수 있겠지만, 경험상 고문 따위론 놈의 입을 열 수 없다.
그러니 심문할 시간에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더 깊이 향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티그리스는 어둠만이 가득한 성전의 지하로 몸을 던졌다.
* * *
트리샤는 성전으로 몰려가는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도 멍하니 있는 것보단 돕자.”
티그리스가 저 안에서 성배를 찾는 동안 밖에서 혼란을 줘야 티그리스도 편하게 성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네메시스는 그림자를 타고 성기사의 심장을 찔렀다.
재생되려던 성기사의 심장이 단번에 파괴되며 죽는다.
네메시스는 황국으로부터 새로운 단검을 하나 선물받았는데, 그 단검은 ‘블랙 맘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암살자들 사이에선 ‘세 걸음’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성물로 뒤에서 심장만 찌를 수 있다면 거인도 죽일 수 있는 극독을 품은 단검이었다.
트리샤도 전투에 나섰다.
트리샤는 자주 사용하던 성화의 검 대신 곡도 테티우스와 블리더를 꺼냈다.
“끄아아아악!”
테티우스에서 나온 불꽃 여우가 사제들을 물어뜯고, 블리더에서 뿜어져 나온 핏줄기가 성기사들의 팔다리를 자른다.
그르르르륵-!
그러나 성기사들과 사제의 잘려 나간 팔과 다리에서 잿빛 살점들이 돋아 올라오더니 금세 복구했다.
심지어 머리까지 재생시키는 녀석도 있을 정도였다.
“미친 것들…….”
트리샤는 수많은 성물 사냥에 나서면서 볼꼴 못 볼 꼴을 다 봤지만, 이렇게 기괴한 것들은 처음 봤다.
“내 단검이 아니면 죽지 않아! 그냥 팔다리만 자르고 튀어!”
어차피 둘의 역할은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성전에 닿기 전까지 시간을 끄는 것.
트리샤는 네메시스의 말대로 팔다리만 썰어 넘기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기습 공격이다!”
“네메시스와 트리샤다! 사제들은 속박 마법을 준비해라!”
길리온 왕국의 정보력도 제법 높은지 둘을 단번에 알아봤다.
트리샤와 네메시스는 사제들의 기도 마법이 쏟아지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주했다.
네메시스는 그림자를 타고 이동했고 트리샤는 은묘의 망토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다른 골목으로 넘어가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기습했다.
둘의 유격전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가뜩이나 물을 들이부어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성전을 감싸고 있어서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기습 공격까지 받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트리샤와 네메시스는 한창 휘저은 뒤 숨을 잠깐 돌렸다.
“트리샤. 실력 제법 좋아진 것 같은데?”
“그래?”
“어. 뭔가 안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검술에 대해 모르니까 뭐라 말할 순 없겠지만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
트리샤도 살짝 느끼고 있었다.
티그리스에게 하도 혹독하게 검술 훈련을 받아서 그럴까?
전투는 생각보다 시시했다.
“이제 움직이자.”
“잠깐.”
트리샤가 네메시스를 붙잡았다.
트리샤의 감각에 이상한 것이 걸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굉장히 익숙한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
“티그리스 님?”
“뭐?”
무너진 골목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걸어왔다.
그의 손엔 헨게나의 검과 똑같은 검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서 있는 자세가 어설펐다.
오러의 기운도 다르고 검을 잡고 있는 모양새도 어설프다.
그러나 티그리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설마…….”
검은 티그리스의 발끝이 움직였다.
방향은 정면.
그리고 정직한 내려치기.
트리샤는 블리더를 내려놓고 테티우스만 양손에 잡은 채 검을 비켜 막았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쾅-!
굉음과 함께 주변 공기가 터져 나갔다.
트리샤는 오싹오싹한 감각에 근육이 굳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드래곤을 마주했을 때처럼 근육이 제 말을 듣지 않았다.
설마 놈들이 티그리스의 복제품을 만든 것일까?
그런 이야긴 티그리스에게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트리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더니 놈의 몸에 들어갔다.
오러가 빠져나간 것도 아니고 뭔가 강탈당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놈이 트리샤로부터 뭔가를 강탈해 간 것이 분명했다.
“넌 누구냐.”
검은 티그리스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번엔 횡 긋기.
트리샤는 검을 받아쳤다.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막지 못했다.
내려치기 때처럼 비켜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검술이 아니었다.
비틀어 막아내려 했지만 좀 전과 달리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월등히 높았다.
트리샤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검술이 변했어.’
놈이 내려치기를 할 때는 기교 따윈 없는 정석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횡 긋기는 분명 ‘노르베르드류’였다.
또다시 트리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더니 다시 검은 티그리스에게 흡수되었다.
‘뭐지?’
다시 한번 놈이 달려들었다.
트리샤는 검을 다시 정면으로 받았다.
또다시 횡 긋기.
이번엔 더 완벽한 모양새였다.
우득-!
트리샤는 가까스로 검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트리샤의 어깨가 부서지며 탈골되었다.
그럼에도 트리샤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네메시스!”
네메시스가 무너진 잔해 그림자를 타고 이동해 검은 티그리스를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완벽한 기습이었고 놈은 저항할 각이 보이지 않았다.
푹-!
네메시스의 단검이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검은 티그리스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단검을 쳐다보더니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트리샤는 주저앉았다.
“윽…….”
단 한 번 제대로 막아냈을 뿐인데 오른쪽 어깨가 탈골되며 부서졌다.
네메시스는 재빨리 포션을 가져와 응급처치를 했다.
라칸이 준 최상급 포션인지라 금세 부서진 오른쪽 어깨가 치료되었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그 녀석은 뭐였지?”
“모르겠어. 저런 게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확실한 것은 진짜 티그리스 님보다 약한 것 같아. 만약 티그리스 님을 그대로 복제한 거라면 내 단검에 저렇게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겠지.”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황을 보고하자.”
트리샤가 수정구를 들어 보고하려던 찰나 또다시 익숙한 기백이 뒤에서 느껴졌다.
“트리샤!”
트리샤는 수정구를 내던지고 다시 테티우스를 잡았다.
허리를 양단해 오는 기습적인 횡 긋기.
이걸 정면으로 받아치면 테티우스가 잘려 나가든 트리샤의 어깨가 다시 망가지든 둘 중에 하나일 게 분명했다.
노르베르드류는 절삭력 하나만큼은 대륙에서 제일가는 검술이다.
특히 노르베르드류 제1식 폭포 가르기는 완력으로 쳐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완벽해 보이는 검술엔 약점이 분명 존재했다.
-노르베르드류는 힘보단 테크닉이 굉장히 중요한 검술이다. 테크니컬한 검술의 극명한 단점이 있다면 일정 타점에서 힘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그 타점에 도달하기 전에 쳐내거나 타점을 벗어난 상태에서 쳐내면 생각보다 쉽게 쳐낼 수 있다는 것이지.
-아하~ 그런데 왜 이런 걸 제게 알려주시는 겁니까? 전 노르베르드 가문의 사람이 아니잖아요.
-넌 내 첫 번째 기사니까. 적어도 노르베르드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는 있어야겠지.
트리샤는 몸을 최대한 뒤로 뺐다.
폭포 가르기에서 가장 힘이 많이 실리는 지점은 상체를 기준으로 양각 25도.
폭포 가르기는 이 각도에서 벗어나면 힘이 현격히 떨어진다.
트리샤는 놈의 각도에서 최대한 벗어난 뒤 검을 위로 올려 쳤다.
묵직한 감각이 손끝에 걸린다.
올려 쳐야 하지만 쉽사리 올라가지 않는다.
기술적 완성도도 높지만 놈의 완력이 상상 이상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비껴내지도 못하고 트리샤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트리샤는 티그리스의 가르침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술을 믿었다.
트리샤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검을 올려 쳤고, 티그리스의 검은 트리샤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메시스!”
네메시스의 단검이 검은 티그리스의 심장을 파고든다.
그러나 네메시스는 뭔가를 찌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티그리스가 즐겨 쓰는 회피기.
유령 걸음이었다.
유령 걸음은 상대방을 현혹시킴과 동시에 유리한 위치로 이동하는 굉장히 좋은 경신술이다.
그러나 단점이 있다면 이동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것.
네메시스의 뒤로 이동한 검은 티그리스가 검을 내려쳤다.
트리샤는 반 박자 빠르게 검은 티그리스의 검을 비껴 쳐낸 후 어깨로 받아냈다.
놈은 뒤로 나동그라지지 않았지만 균형이 무너졌다.
다시 네메시스의 단검이 놈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검은 연기와 함께 다시 사라진 검은 티그리스.
그러나 네메시스와 트리샤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어, 어떻게. 티, 티그리스를 두, 두 번이나 죽인 거지? 티그리스가 이렇게 약하지 않을 텐데?”
한 사내가 건물 잔해 사이로 걸어 나왔다.
매튜 왕자였다.
“새, 샐러맨더의 검을 들고 있지 않아서일까? 여, 역시 그 녀석은 성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이었어.”
매튜 왕자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다시 티그리스를 만들어냈다.
이번엔 검은 티그리스의 검엔 검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검은 티그리스가 트리샤를 덮쳤다.
콰아아아앙-!
트리샤는 검을 간신히 막아냈지만 검은 화염이 트리샤를 덮쳤다.
매튜 왕자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웃었다.
“그, 그래. 이게 티그리스지.”
* * *
티그리스는 위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기운에 발을 멈췄다.
‘이건…….’
이 느낌 굉장히 익숙하다.
지금은 없지만 회귀 전 등장했던 질투를 깎아내는 자 모리타의 기운과 거의 비슷했다.
모리타의 능력은 복제 복사.
티그리스의 신체를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그 때문에 티그리스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과 오러의 기운이 완벽히 똑같았다.
‘다른 대체품을 찾은 건가?’
당연히 아르펨이 당하고만 있을 거라곤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설마 모리타와 비슷한 계열의 능력자를 추가로 만들 줄이야.
티그리스는 수정구를 들었다.
“트리샤. 네메시스. 들리면 응답해라.”
수정구에서 대답이 없다.
티그리스는 고심했다.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가면 성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둘의 상태를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
-제가 합류하겠습니다!
그때, 수정구에서 다른 목소리가 울려 펴?다.
티그리스는 그 음성을 듣더니 수정구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이 사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 * *
트리샤는 화마에 휩싸였을 때 죽음을 예감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이건…….”
검은 티그리스는 트리샤를 감싼 황금빛 보호막을 깨부수기 위해 다시 검을 내려쳤지만 잠깐 출렁일 뿐 부서지지 않았다.
오히려 놈의 검이 튕겨져 나갔다.
이건 라칸의 여신의 방패였다.
뒤에서 라칸이 소리쳤다.
“지금!”
트리샤는 검을 내질렀다.
검은 티그리스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매튜 왕자는 덜덜 떨었다.
“너, 너는 뭐야. 티, 티그리스의 검을 막을 수 있는 실드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어.”
매튜 왕자의 입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와 검은 티그리스에게 흡수된다.
티그리스의 몸집이 더욱 커지며 검이 대검의 형태로 변한다.
“이, 이건 내가 알고 있는 티그리스가 아니야. 겨, 겨우 이 정도 실력일 리가 없어.”
검은 티그리스가 다시 달려든다.
이번엔 순간적으로 트리샤도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로 빨랐다.
놈이 노리는 것은 라칸.
“라칸!”
라칸의 반사신경으론 티그리스의 검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라칸은 티그리스가 있는 오른쪽 방향이 아닌 정면을 보고 있었다.
트리샤가 달린다.
하지만 검은 티그리스의 검이 더 빨랐다.
쩡-!
그러나 라칸은 놀랍게도 여신의 방패를 사용해 검을 막아냈다.
[매튜의 악몽이 당신의 옆구리를 노립니다.]쩡-!
라칸에겐 거의 예지 수준에 가까운 탐색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