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29)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9화
수사(1)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티그리스는 바스티얀 학교장의 부름을 받고 학교장실로 향했다.
비서가 문을 두들기며 말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교관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티그리스는 학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스티얀은 마른 수건으로 난을 닦고 있었다.
“교관직은 할 만하던가?”
“아직 강의를 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다음 주 화요일이었지? 떨리진 않던가?”
“괜찮습니다.”
바스티얀은 마른 수건을 내려놓았다.
“그것참 다행이군. 난 굉장히 떨었다네. 불 속성 마법을 가르치기로 했었는데 교재를 다른 걸로 가져와서 급하게 집무실로 돌아가 책을 가져왔었지. 그때 얼마나 민망했는지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네.”
“교장님께서 그런 시절이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난 당시 22살이었네. 평생 마법과 동물 연구만 하던 젊은 총각이 학생들을 가르쳤어야 했으니 얼마나 떨었겠는가? 그것도 몇 개월 전만 해도 농담이나 나누던 후배들을 상대로 가르쳤어야 했으니 더 떨렸지.”
바스티얀은 제국 대학을 2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보통 마법사는 제국 대학을 졸업하면 마법 연구를 위해 마탑에 들어가거나 제국 대학 교관을 선택한다.
바스티얀은 제국 대학을 선택했다.
대대로 로드엘림 공작 가문에서 훌륭한 마법사가 배출되면 제국 대학에 수년간 봉사하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19살이군. 자네 앞에서 나이 핑계를 대다니……. 거참 부끄럽군.”
“교관의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전 젊다고 하나 당시의 바스티얀 학교장님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티그리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검을 잘 다루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잡담이 길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직 자네가 맡은 직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
“예. 그렇습니다.”
티그리스는 본래 8학점 이상 교육을 해야 하지만 다른 교관들이 전부 거절한 탓에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 과목만 맡고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학교 보안 요원이나 기숙사 사감 등의 중책을 맡아야 했다. 바스티얀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남색 상자를 들고 왔다.
“본래라면 자네에게 보안 요원의 자리를 주려고 했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티그리스는 저 남색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예상이 갔다.
황제 폐하께 빌었던 소원에 대한 답변이 들어 있을 것이다.
바스티얀은 상자를 열어서 티그리스에게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뱀은 실제로 살아 있는 듯 빛을 보자 붉은 눈을 껌벅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티그리스는 이 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황실 직속 기관 중 하나인 황제의 눈이라 불리는 정보부대.
인퀴지터 요원의 상징인 은사(銀蛇)였다.
“학교 규정상 제국 대학과 관련 없는 외부의 직무는 맡을 수 없네. 그러나 딱 하나 예외가 있네. 바로 황제 폐하의 직속이 되는 것이지.”
“황제 폐하께서 저를 인퀴지터 요원으로 임명하신 겁니까?”
“그렇네. 정확한 명칭은 인퀴지터 소속 특별 수사관이네. 원래는 아예 없던 직급이지. 오직 자네를 위해 만들어낸 직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인퀴지터의 권한은 막강하다.
독자적인 수사권은 물론이고 즉결 처분권과 면책권이 쥐어진다.
이런 막강한 권한 때문에 오로지 황실에 충성하는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떻게 선출되는지도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리고 라칸이 몸을 담았던 곳이지.’
라칸은 인퀴지터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고 ‘육두사’까지 올라갔으며, 현 인퀴지터의 수장 ‘히드라’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받았다.
철이 없는 라칸이 히드라의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라칸은 인퀴지터 내에서 꽤 유능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인퀴지터의 임무 자체가 극비인지라 티그리스로선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라칸은 인퀴지터 내에서 ‘청염(靑炎)의 독사’라는 이명을 가졌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들었다.
“수사권, 즉결 처분권, 면책권 그리고 1급 징발권까지 인퀴지터 요원들이 갖고 있는 모든 권한을 사용할 수 있네. 대신 인퀴지터 본부로부터 그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고 면책권도 단 하나뿐이네.”
징발권이 있지만 본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징발 비용은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면책권이 단 하나라는 말은 티그리스가 잘못을 저지르면 딱 한 번만 봐주겠다는 뜻이었다.
‘아마 면책권이 사라지는 날 은사(銀蛇) 또한 반납해야겠지.’
“그럼 상부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의무도 있습니까?”
“지원을 받지 않는데 어떻게 명령을 받을 의무가 있겠나? 오직 황제 폐하의 명령을 제외하곤 그 누구에게도 명령을 받을 필요가 없네. 자네는 인퀴지터 소속일 뿐이지 별개의 기관이라고 봐도 좋네.”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법무부 공무원들이 3개월 동안 코피를 쏟도록 법리 해석을 했다고 들었네. 혹시 법무부에 갈 일이 있다면 칼침 맞지 않게 조심하게.”
바스티얀은 은사(銀蛇)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그 뱀에게 손을 뻗어보게. 그 아이를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지.”
티그리스는 은사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작은 뱀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작고 붉은 혀로 티그리스의 손끝을 핥았다.
그리고 천천히 티그리스의 손위에 올라탔다.
크기는 뱀이라기보단 지렁이만 했고, 무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뱀은 마치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듯이 티그리스의 손에 몸을 비볐다.
“허허. 은사가 자네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군.”
“아티팩트가 감정을 가질 수도 있습니까?”
“영혼은 없지만 온순한 뱀의 행동 패턴을 마법으로 엮어 만들었네. 인퀴지터들의 임무가 다소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다 보니, 정신을 케어해 주기 위해서 최대한 귀엽게 만들었지. 잘 보게.”
바스티얀은 한창 티그리스의 검지와 놀고 있던 은사를 향해 말했다.
“은사야 뛰어보렴.”
그러자 은사는 몸을 용수철처럼 말더니 티그리스의 손바닥 위에서 뛰었다.
띠용- 띠용-
“보게. 굉장히 귀엽지 않은가?”
바스티얀은 마치 손녀딸이 재롱을 부리는 걸 보는 것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혹시 이 아티팩트를 만드신 게…….”
“맞네. 바로 나네.”
그러고 보니 바스티얀은 원소 마법학뿐만이 아니라 아티팩트 제조에도 재능이 있었다.
“이 아이에겐 총 세 가지 마법이 걸려 있네. 형상 변화, 통신, 배리어네. 그중 통신 마법은 수신은 안 되고 오직 송신만 되게 만들었네. 만약 긴급하게 인퀴지터를 소환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통신’이라고 말하고 왜 소환해야 하는 것인지 이유를 설명하면 될 걸세.”
“배리어는 어떤 종류의 배리어가 걸려 있는 것입니까?”
“5서클의 3중 배리어가 들어 있네. 만약 한 번 사용했다면 중급 마석 10g을 먹이면 다시 한번 사용이 가능하네.”
티그리스는 은사의 사용 방법을 모두 듣곤 은사를 형상 변화시켰다.
“회중시계로 변해라.”
그러자 은사는 티그리스의 손바닥 절반만 한 작은 회중시계로 변했다. 디자인도 심플해서 어느 옷에 입어도 튀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정장 단추에 고리를 걸고 회중시계는 품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자네는 뭘 걸쳐도 잘 어울리는군. 나도 한때 저런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내 손녀와 만나볼 생각은 없는가?”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바스티얀이 또 손녀 이야기로 1시간을 떠들 것 같아 보이자 티그리스는 먼저 일어났다.
“쯧. 참으로 매정하구먼. 우리 손녀가 울겠어.”
“황제 폐하께서 수사관의 직무를 주셨는데 어서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스티얀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이지?”
“연쇄 실종 사건부터 처리할 생각입니다.”
황도는 굉장히 넓고 강 이남 지역인 그레이 타운의 경우에는 각종 범죄자들이 세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는 실종 사건이나 살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쇄 실종 사건은 특별했다.
범인은 귀족과 기사, 용병과 같은 오러 고리를 갖고 있는 오러 유저들만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다.
“쉽지 않을 걸세. 경찰은 물론이고 인퀴지터도 수사하고 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했어.”
“제가 나서면 달라질 것입니다.”
티그리스는 이 사건의 진범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 *
다음 날.
티그리스는 가벼운 경갑을 입었다.
가슴과 팔목만 가려주어 방어력은 낮았지만, 움직이기 편했기에 티그리스는 전쟁에서도 경갑을 애용했다.
샐러맨더의 검을 허리에 매고 회중시계로 변한 은사를 바지 주머니에 넣은 뒤 거실로 나왔다.
“오늘 어디 가세요?”
리니아는 티그리스가 주말에 경갑을 꺼내 입은 것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실종 사건의 조사를 하러 간다.”
“아…….”
리니아는 어제 티그리스가 인퀴지터의 요원이 되었다는 걸 들었다. 그리고 이번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당분간 바빠질 것이란 것도 들었다.
리니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제가 따라가면 민폐일까요……?”
리니아는 티그리스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번 검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서 1등 했어요. 그리고 검술도 그전보다 많이 발전…….”
“리니아 네 마음은 고맙지만, 이번 일은 굉장히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네가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렇군요…….”
리니아는 마치 풀죽은 강아지처럼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아직 제가 모자라는군요…….”
티그리스는 리니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때가 되면 네게 부탁하겠다. 그러니 그때까지 정진하거라.”
“……알겠습니다.”
티그리스는 제인을 보며 말했다.
“제인.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내게 바로 연락을 주도록 해라.”
“알겠어. 무슨 일이 있으면 레이아나가 네게 바로 알려줄 거야.”
꽃병에 꽂혀 있던 하얀 꽃송이 하나가 날아오더니, 티그리스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렸다.
“레이아나! 너 자꾸 끼 부리면 다른 애로 바꾼다!”
그러자 하얀 꽃송이는 잽싸게 꽃병으로 쏙! 들어갔다.
레니는 티그리스에게 작은 가방을 건넸다.
그 가방 안에는 티그리스가 말해두었던 포션과 구급 용품 등이 들어 있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래.”
티그리스는 레니가 건넨 가방을 허리에 매곤 밖으로 나섰다.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그레이 타운이었다.
* * *
빅토리에는 크게 강 이북 지역과 이남 지역 두 개로 나뉠 수 있고, 총 7개 구역으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강 이북 지역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몰려 사는 업타운, 상업이 집중된 미들타운, 그 옆으로 학교와 각종 첨단산업이 개발 및 연구되고 있는 아카데미 타운이 있다. 그리고 황제 폐하가 있는 황궁 또한 이북 지역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북 지역은 잘사는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남 지역은 용병들과 모험가들이 몰려 사는 트레져 타운이 있고, 각종 공장들이 몰려 있는 퍼플 타운이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가난한 자들이 몰려 사는 동네, 그레이 타운이 있었다.
그레이 타운은 본래 퍼플 타운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주택 지구로 계획이 되었다. 하지만 황국 곳곳에 사람들이 몰려온 탓에 수용할 집이 모자랐다.
그들은 길바닥에서 잘 수 없었기 때문에 건축자재들을 훔쳐 와 불법으로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고, 뒤늦게 알아챈 국토부는 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20만 명이 사는 거대한 판자촌이 세워진 후였다.
지도로 그릴 수조차 없이 복잡한 판자촌은 자연스럽게 범죄의 소굴이 되어버렸고, 각종 갱단이 그레이 타운의 왕으로 군림하며 갖가지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그레이 타운과 미들타운을 잇는 레인보우 브릿지를 통과했다.
그러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티그리스를 괴롭혔다.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거지들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레인보우 브릿지 입구에 창과 검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서 있었다.
그레이 타운의 거지들이 이북 지역으로 올라와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거기에 실종 사건까지 겹치면서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다.
“혹시 무슨 용무 때문에 오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실종 사건 조사 목적이다.”
티그리스는 회중시계를 꺼냈다. 회중시계가 은색 뱀으로 변하자 경찰들은 살짝 놀란 눈치로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인퀴지터……!”
인퀴지터들은 보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 은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티그리스는 자신이 수사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생각도 아니었고, 인퀴지터 비밀 요원도 아니었기에 당당하게 은사를 내비쳤다.
척!
경찰들은 티그리스에게 경례를 했다.
“고생하십시오!”
자신들의 직속상관이 아니었기에 경례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경찰들은 자신도 모르게 경례를 했다.
“고생하게.”
티그리스는 입구를 지나 그레이 타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피라냐 떼처럼 거지들이 몰려들어 왔다.
“나리! 한 푼만 주십시오! 제 아이에게 줄 약이 필요합니다.”
“빵 살 돈 조금만 주세요! 제발요!”
티그리스는 가차 없이 검을 빼 들었다.
“히이익!”
거지들이 상어를 만난 물고기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들이 불쌍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돈을 줄 생각은 없었다.
티그리스의 손이 닿는 거리는 사방 2.3m다.
2.3m 범위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이든 잘라낼 수 있는 기사지, 저들의 가난의 연쇄를 잘라낼 수 있는 정치가가 아니었다.
티그리스는 가난한 거지들의 눈동자를 봤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동공이 열려 있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가난한 자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마약 ‘레드 파우더’를 복용한 자들이었다.
저들에게 돈을 던져줘 봤자 아이의 열병을 낫게 할 해열제가 아닌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에서 고개를 잠깐 돌릴 수 있는 마약을 사는 데 탕진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돈은 범죄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티그리스는 거지들이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자 그레이 타운 안쪽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골목길은 구불구불했으며 굉장히 비좁았다. 가로등은 모조리 깨져 있었고, 가로등 안에 들어 있는 마석은 이미 오래전에 탈취되었는지 기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티그리스는 발을 멈췄다.
티그리스가 멈춰 선 곳은 건물 앞도 아니고 도로 한가운데였다.
‘찾았군.’
티그리스는 허리를 굽혀 땅을 봤다. 땅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걷어내니 동그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맨홀이었다.
인퀴지터들과 경찰들의 수사 방향은 그레이 타운의 갱단들로 향해 있었다.
갱단들의 강력 범죄는 판자촌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가려지기 쉬웠고, 실제로 그레이 타운에 멋모르고 들어갔던 기사와 귀족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경찰과 인퀴지터들이 이번 연쇄 실종 사건을 공화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갱단들의 소행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범인은 지상이 아닌 지하에 있었다.
티그리스는 허리를 숙여 맨홀 뚜껑을 쳐다봤다.
맨홀 뚜껑을 훔쳐서 고물상에 팔려는 거지들이 많았기 때문에 웬만한 힘으론 열 수 없도록 무겁고 단단하게 설계되었다.
거기에 고정 마법으로 확실하게 고정하기까지 했다.
수도국에서 점검을 나올 때도 최소 고리 2개 이상의 오러 유저나 3서클의 염동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마법사를 동원하는 것이 지침이었다.
그런데 이 맨홀 뚜껑은 마법이 강제로 파괴되어 있었고, 최근에 움직인 흔적이 있었다.
‘이 하수구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군.’
티그리스는 당연하게도 이번 실종 사건의 주범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바로 하수도에 자리한 불법 키메라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키메라들이었다.
키메라들은 연구원들의 명령을 받고 오러 유저들이라면 닥치고 납치해 왔다.
처음엔 용병들이 사라진 터라 경찰은 관심도 가지지 않았지만, 중앙 귀족의 자제가 사라지자 다급하게 수사에 돌입했다.
티그리스는 맨홀 뚜껑에 적혀 있는 번호를 적었다. 이 번호를 하수도 지도와 대조하면 키메라들이 어느 하수도로 많이 돌아다녔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티그리스는 기왕 온 김에 더 움직인 맨홀 뚜껑이 없는지 둘러보기로 했다.
“어? 교관님?”
그때, 의외의 인물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라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