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genius should be taught by another genius RAW - Chapter (35)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35화
제자
직속 제자와 스승.
예시는 멀리 찾을 필요 없이 베르강과 고든과의 관계를 떠올리면 되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가르침과 함께 제자를 보호할 의무가 생긴다. 반대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성실히 받을 의무 외에 별다른 의무를 짊어지지 않는다.
대신 제자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가문과 함께 스승의 이름을 소개해야 한다.
샤를로트가 황제 폐하의 앞에서 훈장을 받거나 상을 받을 때도 티그리스의 이름을 대야 하고, 가주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선포할 때도 티그리스의 이름이 함께 불린다.
샤를로트가 유명해지고 훌륭한 기사가 되면 티그리스의 명예도 같이 높아지는 것이고, 샤를로트가 전 국민에게 칭송을 받는다면 티그리스도 함께 칭송을 받는 것이다.
샤를로트는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마음속에서 싹텄다.
샤를로트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티그리스의 제자가 되는 걸 불편해하는 걸까?’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는 걸까?
자격 조건으로만 보자면 차고도 넘친다.
젊은 피 토너먼트 우승, 제국 대학 최연소 교관, 최연소 4성 기사에 차기 블랙 마이스터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교관으로서 실력이 부족한 걸까?
그것도 아니었다. 티그리스의 첫 강의를 들은 모든 학생은 네 종류의 내려치기를 그날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성이 문제일까?
티그리스는 귀족과 평민들 사이에서 모두 인품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젊은 피 토너먼트에서 톰이란 용병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검을 준 모습에서 귀족의 품위를 보였고, 오만하다 소문이 났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샤를로트에게 고개를 숙여 자신의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자격, 실력, 인품 모두 완벽한 티그리스의 직속 제자가 된다는 건 모두가 꿈꾸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샤를로트는 내키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샤를로트가 꺾어야 하는 목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슈베어트에서 자신을 모욕한 것에 대한 앙금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걸까?
전자가 이유라면,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는 일은 많았기 때문에 말이 되지 않았고.
후자가 이유라면, 그건 티그리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샤를로트에게 있었다.
샤를로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냥 나 티그리스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였구나.’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티그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베어트에서 티그리스에게 진 그날부터 그냥 샤를로트는 티그리스를 미워하기로 한 것이었다.
‘나 엄청 나쁜 년이었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눈을 봤다.
감정을 알 수 없는 고요한 눈빛이었다.
“티그리스 교관님. 왜 저희를 직속 제자로 삼아서까지 가르치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티그리스의 표정과 눈빛이 순간 바뀌었다. 너무 찰나의 순간이라 샤를로트는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티그리스의 잔잔한 마음에 돌멩이를 던진 것은 확실해 보였다.
잠시 후 티그리스의 입이 열렸다.
“세공사가 왜 보석을 다듬는다고 생각하나?”
“……더 아름다워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도 그렇다.”
티그리스의 말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 울림을 샤를로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샤를로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충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 티그리스 교관님의 직속 제자가 되는 게 진짜 부끄러워요. 나이도 제가 2살이나 더 많고 슈베어트에서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들어놓고 교관님 밑에서 배운다는 것 자체가 정말 굴욕적이에요.”
샤를로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니 저랑 한판 붙어요. 이 부끄러운 감정을 완전히 지워낼 수 있도록 철저하게 저를 짓밟아주세요. 제가 어떤 점이 부족한지 하나하나 다 꼬집어주세요.”
샤를로트의 표정은 마음속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던 돌덩이를 내던진 사람처럼 굉장히 후련해 보였다.
“그래야 제가 교관님의 직속 제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티그리스는 일어났다.
“네가 그걸 원한다면.”
* * *
샤를로트는 검을 뽑았다.
오늘따라 검날이 소름이 끼치도록 바짝 서 있는 것 같았다.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을 뽑아 중단세를 취했다.
빈틈이 없었다.
둘은 서로를 잠시 응시했다. 차가운 바람이 샤를로트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따로 신호는 없었다.
잠깐의 눈빛 교환 후 둘은 서로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쩡-!
검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샤를로트는 전에 자신이 왜 졌는지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를 쉽게 이기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론 티그리스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유효타를 입혀 이긴다는 생각으로 티그리스를 대해야 하는 게 아니라, 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이길 수 있었다.
쩡-! 쩡-!
“큭!”
이제 막 시작했는데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티그리스가 힘을 딱히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었고, 오러 고리를 3개 이상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힘의 배분이 완벽한 것뿐이었다.
“정직한 검을 정직하게 받아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직선은 곡선으로 받아내야 한다.”
티그리스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검을 흘려내며 받았다. 힘이 덜 들고 더 차분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흘려내 받아내는 탓에 반격할 기회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건 곡선으로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검로를 끝까지 읽고 내 몸을 열어라.”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말을 곧장 이해했다. 샤를로트의 눈동자가 티그리스의 횡베기를 끝까지 추격했다.
샤를로트의 검이 부드럽게 티그리스의 검에 달라붙었다.
쇠 부딪히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말 대로 곡선으로 티그리스의 검을 비껴냈다.
티그리스의 검이 샤를로트의 머리칼을 스쳤다. 그리고 티그리스의 몸이 열렸다. 그 빈틈을 향해 샤를로트는 검을 집어넣었다.
티그리스의 검이 도달하려면 멀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종이 한 장 차이로 샤를로트의 검을 피했다.
티그리스의 검이 다시 번뜩였다.
쩡!
샤를로트는 다시 티그리스의 검을 받아냈지만 제대로 막지 못해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시선과 검의 방향을 동일하게 두는 버릇을 고쳐라. 빈틈을 포착해 찔러 넣어도 시선과 검의 방향이 똑같다면 상대방은 쉽게 피해낼 수 있다.”
다시 티그리스의 검이 정직하게 날아갔다. 샤를로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딱히 기술이 들어간 검도 아니고 정직한 검일 뿐인데 제대로 막지 못했다.
티그리스의 검이 갑자기 변화했다. 사선으로 내리그어지던 검이 갑자기 중간에 멈추고 샤를로트의 어깨를 향해 날아갔다.
샤를로트는 깜짝 놀라 검을 위로 쳐냈지만,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티그리스의 발차기가 옆구리에 직격했다.
“억!”
갈비뼈가 부서진 것 같은 충격에 눈앞이 어지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또다시 티그리스의 정직한 검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정직한 검의 장점은 변수 창출에 있다. 상대방이 언제 또다시 변칙적인 검이 날아올지 긴장한 나머지 제대로 반격도 못 하기 때문이다.”
샤를로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티그리스의 검을 읽고 비껴냈다. 그리고 시선과 검을 따로 하며 검을 내질렀다.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샤를로트의 천재성에 티그리스는 속으로 감탄했다.
티그리스는 큰 동작으로 검을 피했다.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샤를로트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샤를로트는 프리하르덴의 검술 ‘칼바람’을 사용했다.
지독한 겨울철,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뒤섞인 칼바람과 같은 난격이 펼쳐졌다.
1초에 무려 7번을 내지르는 난격은 쾌속 그 자체였다. 그러나 칼바람은 티그리스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갈 뿐 유효타를 주지 못했다.
티그리스가 검을 미세하게 조정해 샤를로트의 난격을 모조리 비껴낸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뒤이어 티그리스의 정직한 검이 날아왔다. 피할 수 없었다.
샤를로트는 최대한 힘을 끌어모아 티그리스의 검을 막아냈다.
쩡-!
샤를로트의 검이 공중을 날았다.
악력이 떨어져 검을 놓친 것이었다.
“너는 네 검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군. 난격의 장점은 속도가 아니라 적이 막기 힘든 각도로 공격을 연달아 집어넣는 것이다.”
샤를로트는 자신의 손아귀를 봤다. 굳은살이 벗겨지고 손바닥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카렌이 눈치 빠르게 붕대와 연고를 바로 가져왔다.
티그리스는 직접 샤를로트의 손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샤를로트는 지금 티그리스가 자신에게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철저하게 져버린 탓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렇게 질 것이라 예상했고 지고 나면 속 시원하게 모든 것을 다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미련이 자꾸 남았다.
샤를로트는 진짜 열심히 노력했다.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티그리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분했다.
“샤를로트.”
“……네.”
티그리스의 붕대가 포근하게 샤를로트의 손을 감쌌다.
“지금 네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여서, 나중에 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보장은 없다.”
“……네?”
“넌 내 모든 것을 배울 것이고 난 네게 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리고 넌 나를 꺾기 위해 나를 배울 것이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눈동자를 봤다. 그 눈동자에는 지금의 샤를로트가 아닌 다른 샤를로트가 비쳤다.
“네가 내게 도전할 기회가 백만 번이 있다면 난 네게 도전할 기회가 없다. 제자에게 도전하는 스승이란 없으니까.”
“제가 티그리스 교관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알지 못한다.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렸으니까.”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이 달콤한 말이 진심인지 궁금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그러나 그건 샤를로트가 티그리스가 아니고서야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믿기로 했다.
저 말이 티그리스의 진심이라고.
“티그리스 교관님, 제 스승이 되어주십시오.”
그날 스승과 제자가 탄생했다.
* * *
평화로운 일요일.
티그리스는 황실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To: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From: 레인로버 데 루체트.
시간 되면 차 한잔하러 와요. 그 맛있다던 쿠키 맛을 보고 싶네요!]
단순히 차 한잔하자고 황녀가 황궁으로 부를 일은 없었다.
‘때가 된 모양이군.’
소탕 작전 계획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티그리스는 곧바로 옷을 갖춰 입고 황도로 향했다.
기사들에게 이미 말을 전달해 두었는지 티그리스에게 곧바로 1급 패찰을 지급했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티그리스 경. 다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젊은 피 토너먼트에서 자웅을 겨루었던 고든이었다. 고든은 황금 기사단의 정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기운을 숨길 줄도 몰라서 중구난방으로 기운을 흩뿌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잘 갈무리되어 있었다.
“많이 성장했군.”
“하하. 티그리스 경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고든은 베르강에게 올바른 훈련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각종 검술은 물론이고 오러 운용술도 배웠다.
그중 ‘기감’을 읽는 법도 배웠는데, 고든의 실력으론 티그리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 말은 같은 4성 기사임에도 불구하고 고든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티그리스의 경지가 높다는 것이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티그리스 경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정진하게. 자네는 옥석이니 다듬어지면 누구보다 훌륭한 기사가 될 것이니.”
“감사합니다.”
고든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기사의 예를 표했다. 이제 용병티가 아예 사라지고 제법 기사다워졌다.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고든은 황녀가 있는 ‘봄의 궁전’으로 안내했다. 봄의 궁전은 경비가 삼엄했는데, 고든과 티그리스를 보자 기사들은 곧바로 문을 열고 들여보내 주었다.
궁전 안 작은 정원으로 향하니 익숙한 얼굴 셋이 보였다.
하나는 황녀였고 또 다른 하나는 베르강이었다.
“어! 티그리스 교관님!”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트럭 와이퍼처럼 크게 흔드는 라칸이 있었다.
라칸의 턱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때 턱이 부서졌다고 하던데 아직 완쾌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티그리스는 황녀에게 곧바로 예를 표했다.
“위대하신 황금의 일족을 뵙습니다.”
“일어나세요. 티그리스 경. 저 그런 거 싫어한다는 거 알고 있잖아요.”
“예와 법도가 안 세워지면…….”
“아아! 늙은 환관들이 하는 소리를 또 듣고 싶진 않아요!”
레인로버는 아예 귀를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재미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자리에 앉죠. 쿠키 맛이나 좀 보게.”
티그리스는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레니가 어젯밤 열심히 구운 버터 쿠키와 마들렌을 꺼냈다.
“호오~ 이게 샤를로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던 쿠키인가요?”
“샤를로트를 언제 만나셨습니까?”
“토요일 점심에 잠깐 만났죠. 티그리스 교관이 샤를로트랑 아이린을 불렀다길래 궁금해서요.”
단순히 샤를로트와 아이린이 왜 티그리스를 찾아간 것인지 궁금해서가 아니라, 이번 소탕 작전에 변수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찾아간 것이었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를 믿긴 하지만 ‘만약’이라는 마법의 주문은 사람을 자꾸 의심하게 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이번 소탕 작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를 이제 정말 완전히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보니까 샤를로트랑 아이린을 직속 제자로 삼기로 하셨다면서요? 처음에 들었을 땐, 진짜 깜짝 놀랐어요. 왜 둘을 제자로 삼으신 거예요?”
“제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황국을 지킬 훌륭한 검이 될 것입니다.”
“진짜 그 이유 때문이에요?”
레인로버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혹시 샤를로트나 아이린에게 마음이 있으신 건 아니고요? 아니면 둘 다거나~?”
“저는 제 제자를 제자로만 바라볼 것입니다.”
“에이~ 그런 경우는 나이 차가 꽤 나는 사람이나 그런거고. 아이린이랑 샤를로트하곤 나이 차가 얼마 안 나잖아요. 스승님~ 이러다가 여보~ 이러는 건 한순간일지 몰라요.”
레인로버의 아저씨 같은 말투에 베르강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녀님, 제발 체통을 좀 지키십시오.”
“참나, 베르강이 그런 말 하니까 이상하네요. 레이첼이 베르강의 제자였다는 건 대부분이 알 텐데?”
“아니……. 그게…….”
“나이 차가 분명 10살이나 나던가? 이거 거의 삼촌뻘 아니야?!”
“……죄송합니다.”
베르강은 말 한번 잘못했다가 침몰해 버렸다. 레인로버는 흘흘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기숙사도 정리하고 펜트하우스로 옮기라고 하셨다면서요.”
“제가 매일같이 제국 대학에 밤늦게까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방금도 말씀드렸다시피 둘은 그냥 제 제자일 뿐입니다.”
“프리하르덴 백작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내가 생각해 봐도 엄청나게 오해할 것 같은데?”
“프리하르덴 백작은 이해심이 높은 인물이니 충분히 받아들일 겁니다.”
“아직 프리하르덴 백작을 만나보신 적 없죠? 다른 건 몰라도 외동딸에게 얼마나 극성인데요? 불시에 집에 쳐들어갈지 몰라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티그리스가 알고 있던 프리하르덴 백작은 로타와 아르펨의 목을 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헌신적인 인물이었다.
심지어 블랙 마이스터인 베르강이 죽은 시점에서 유일하게 7성 기사가 될 수 있는 인물인 티그리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리하르덴의 상징이자 성물인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줄 정도로.
그런 인물이 딸바보라는 건 처음 알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군.’
프리하르덴 백작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던 시점은 샤를로트가 죽은 이후였다.
그리고 항상 전투에 나서기 전 ‘딸아이의 복수를 해주겠다’라는 말을 한 뒤 전투에 임했었다.
“뭐,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겠…… 아악! 내 쿠키!”
티그리스가 가져온 쿠키는 어느새 라칸과 베르강의 입에 거의 다 들어가 있었다.
레인로버가 베르강과 라칸을 쏘아봤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둘 다? 쿠키가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베르강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음 생각보다 맛있군요. 자꾸 손이 가는 맛이랄까?”
“……맞습니다. 새우 과자 같은 느낌이에요.”
“새우 과자? 이건 버터 쿠키인데?”
“아 그게…….”
“둘 다 조용히 해요!”
레인로버는 쿠키 상자를 자신 앞으로 당겼다.
“둘은 손댈 생각도 하지 마요. 이건 다 내 거니까.”
티그리스는 한심하게 라칸을 쳐다보며 말했다.
“라칸이 황녀님께 폐를 끼치진 않았습니까?”
“누구와 달리 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오히려 편했어요. 당신도 라칸의 반만 닮는 건 어때요? 그 정도가 제일 적당할 것 같은데?”
연무장을 알몸으로 달리는 라칸의 반을 닮으라는 소리에 티그리스의 얼굴이 구겨졌다.
티그리스가 정말 싫어하는 표정을 짓자 황녀는 깔깔 웃었다.
“당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군요?”
레인로버는 쿠키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전에 말했다시피 라칸 덕분에 작전 계획을 세우는 데 수월해졌어요. 디테일한 부분은 손을 봐야겠지만 작전 진행일도 나왔고요.”
“언제입니까?”
“다음 주 일요일에 국정 업무로 황제 폐하께서 강 이남 지역을 직접 순찰하시기로 계획되어 있어요. 목적은 실종 사건 현장 순찰이죠.”
티그리스는 황녀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그러면 토요일까지 보안 조치가 이뤄져야겠군요.”
“예. 맞아요. 다음 주 토요일까지 인퀴지터들과 철혈 마법 병단이 나서서 강 이남 지역 맨홀 뚜껑이 절대로 열리지 않도록 특별 제작된 고정 마법으로 막아버릴 거예요.”
“그리고 한 곳만 열어두겠죠.”
“루체트 강 하류에 있는 출구 쪽만 열어둘 거예요. 거기엔 황금 기사단과 철혈 마법 병단이 들어갈 거고요.”
“연구실 쪽에서 텔레포트로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이 도주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인퀴지터의 ‘히드라’가 안티 스크롤 마법과 방해 마법을 펼칠 거예요.”
현 인퀴지터의 히드라는 7서클의 대마법사다.
그가 작정하고 방해 마법과 안티 스크롤 마법을 사용한다면 쥐새끼 하나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레인로버는 매력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작전 실행일은 토요일 오후 6시예요. 티그리스도 거드시겠어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예. 하겠습니다.”